순정철학논고

[라이소피] 배웅

순정철학논고 라이프니츠 X 소피아

덕질용 by 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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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 내가 뭘 쓸지 궁금하다고 했었지."

내려앉아있던 라이프니츠의 눈동자가 지금 걷는 속도처럼 느릿하게 소피아를 향해 움직였다. 얼마 못 잔 듯, 옅은 분홍빛으로 충혈된 흰자에는 생기가 부족했다. 때마침 불어오는 찬 바람에 라이프니츠의 긴 머리와 잘 묶인 목도리가 흔들렸다. 말라붙은 입술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그랬지."

"미안. 못 보여주고 가서."

소피아의 입꼬리가 씁쓸하게 올라갔다. 모든 인물들과 호감도 100%를 달성한 날, 담당자는 프로젝트 종료를 예고했다. 꽤나 오래되고 정성 들인 프로젝트의 끝은 허무했다. 몸이 아파서 요양 차 자퇴한다는 설정이에요. 담당자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그저 직장으로만 여겼던 이 세계에서 끝을 맺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잠이 한숨도 오지 않아 2시간도 채 자지 못한 탓에 학교에서도 내내 졸아야 했다. 잠깐동안의 일터였을 뿐인데. 돈 받고 하는 재미없는 게임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담담하게 자퇴 예고를 할 때에도 실감은 나지 않았다. 호들갑 떨며 아쉬워하는 르네와 앤, 적지 않게 당황한 티를 내던 벤과 라이까지. 많은 아이들이 자신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요양을 응원했다. 가슴이 무언가에 찔리는 듯 욱신거렸지만, 애써 모르는 체 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이상한 기분을 속으로 삼키며 아쉬움을 전할 뿐이었다. 교문까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소피아는 최대한 담담히 말을 꺼내려 노력했다.

"추운데 너도 들어가야지."

몸이 좋지 않은 르네는 어제 미리 인사를 끝냈다. 눈발이 마침 조금씩 흩날리고 있었기에, 아주 적절한 행동이었다. 다른 수리과 학생들과는 아까 교실에서 인사를 끝냈다. 마침 바깥에 나가야 할 일이 있다며 라이프니츠가 함께 나왔지만, 핑계임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를 말리지 않은 것은 그의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라이프니츠의 호감도가 100%까지 올라간 날, 소피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이놈까지 공략이 끝났구나. 길고 긴 고난도 미연시의 끝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기쁨은 잠깐이었다. 묘하게 달라진 그의 태도와 표정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젝트의 종료가 고지됐다.

"튼튼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지 않았어? 여태까지 아무 문제도 없었잖아."

말 한마디와 입김이 같이 나왔다.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보자니, 처음 동아리를 정하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 아마 농구 골대가 쓰러지려고 해서 라이프니츠가 내 머리를 끌어안았었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결정론자 아니었어? 그냥, 갑자기 이렇게 될 거였나 보지."

뭐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직이던 라이프니츠는 입을 다물었다. 차분한 표정과 달리 눈동자는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애써 생각을 멈추려 했다. 알면 뭐할 건데. 입 안이 썼다.

"... 응. 잘 지내. 치료 잘 받고."

가지 마. 도대체 무슨 병인데? 자퇴까지 해야 하는 거야? 이전부터 아팠는데 숨긴 거야? 왜 언제부터 아팠는지, 무슨 병인지 알려주지 않는 건데?

라이프니츠는 꽤 많은 말을 속으로 삼켰다. 말을 안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숨기려는 것을 굳이 캐묻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의 마음을 자각했을 즈음, 그녀는 자퇴를 선언했다. 모두가 당황했으나, 요양을 위한 자퇴라고 설명하자 더 이상 뭔가를 묻지는 않았다. 눈물을 흘리는 이도, 좋은 병원을 추천해주겠다고 하는 이도 있었으나 라이프니츠는 짤막한 위로와 응원만을 전했다. 그때도, 지금도 꾹꾹 눌러 담은 말이 많았지만 한마디는 자신도 모르게 뱉고 말았다. 눈발이 더욱 굵어졌다. 풍성하고 긴 그의 머리에 눈송이가 하나둘 쌓였다.

"다시 볼 수 있는 거지?"

"..."

소피아는 잠깐 동안 고민했다. 굳이 사실대로 말할 필요는 없겠지. 웃으려고 노력했다. 마지막까지 가장 고생시킨 놈이지만, 같이 보낸 시간이 있고 쌓인 정이 있었다. 그리고...

"응. 꼭 연락할게."

나름대로 애정도 있었나보다. 울고 싶지는 않았다. 꼴사납게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교문까지 배웅해준 그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촉촉해진 눈가를 애써 말리려 고개를 든 찰나, 라이프니츠가 자신의 목에 걸린 목도리를 풀었다. 거절의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는 평온하게 자신의 목도리를 소피아의 목에 둘렀다. 라이프니츠에게서 나던 향이 훅 끼쳤다. 말없이 목도리를 만지작거리던 소피아는 그냥 멋쩍게 웃었다. 현실 세계에 가져가지도 못할 것이었다. 돌려주는 게 맞았다.

"목도리는 왜. 춥잖아."

"다 나으면 돌려주러 와. 간다. 잘 지내."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뒤돌아 학교로 향했다.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 탓에 그의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펑펑 내릴 것 같았던 눈발은 차츰 잦아들었다. 꽤 오랫동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피는 목도리에 턱을 묻고 복귀 지점으로 향했다. 눈이 시렸다. 차라리 비라도 왔으면 좋을 텐데. 목도리의 한 귀퉁이가 빠르게 젖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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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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