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염비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뜨거운 매미 울음소리가 귀를 울리는 여름이 되어도, 건조한 낙엽이 길거리에 나뒹구는 가을이 되어도, 새벽녘의 찬 공기가 얼굴을 감싸는 겨울이 되어도, 그리고 첫눈이 내리는 오늘도. 그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며칠 간은 그의 출석을 걱정하던 몇몇 학생도, 이제는 마치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그의 빈자리를 신경
* 살인, 유혈 묘사가 있습니다 . . . . "아..." 소피아는 살인자라도 본 듯 새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열린 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초가을의 쌀쌀한 바람이 창고 안으로 훅 들어와 상쾌한 공기가 눅눅한 냄새를 조금이나마 몰아냈다. 태양이 져, 창고 안도 바깥도 어두운 탓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달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나는
별이 예뻤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와..." 소피아는 밤하늘에 흩어진 수많은 별을 보며 감탄했다. 구름 한 점 없이 짙은 남색과 검은색이 섞여 사포로 간 듯 매끈하고 청명한 하늘에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소피아는 한때 수리과 학생들과 함께 아고라에 대해 얘기했던 잔디밭에서, 이번에는 뉴턴과 나무에 기대앉아 별을 바라
차라리 널 몰랐다면 좋았을 텐데 로크는 황급히 볼펜으로 줄을 찍 긋고 종이를 구겼다. 종이는 순식간에 오그라져, 로크의 손 안에 빨려 들어갔다. 망설임 없이 종이를 바닥에 던진 로크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없었다. "왜 하필 여기로 오자고 한 거야?" "너 같으면 이미 다 부서지고 찾을 것도 없는데 여기 오겠어? 하루라도 좀 마음 놓고 자자."
소재주의-인권유린 박스 "여기가 맞아? 다른 종이도 너무 많은데." "나와. 그냥 내가 찾을게." 재수가 더럽게 없는 날이었다. 서류를 한가득 들고 교무실에 가려던 라이프니츠의 어깨를 실수로 밀었고, 종이 뭉텅이가 바닥에 쏟아짐과 동시에 몇 장은 팔랑거리며 날아갔다. 무슨 우연의 장난인지, 근처의 큼지막한 사물함 문 몇 개는 열려 있었고,
"이번만큼은 안 됩니다. 한지혜 씨의 일은 그곳에 간섭하는 게 아니라, 그들과 호감도를 쌓는 거예요. 라이프니츠도 한지혜 씨에게 뭔가를 기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표절 논란을 뒤집을 결정적인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수리과 학생들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까." 서인식은 단호했다. 하지만 오늘 봤던 라이프니츠의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그가 구긴 논문이 떠올랐다
"... 진짜 잠긴 거 같은데?" 소피아는 연신 문고리를 돌려댔다. 덜컹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로크도 근처로 다가와 문고리를 세게 흔들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소피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폰 안 가져왔어?" "교실에 두고 왔는데. 너는?" "나도..." 피곤한 직장인은 포기가 빨랐다. 소피아는 문고리를 놓
징하게도 더운 여름의 끝이었다. 소피아는 얼굴로 비치는 햇빛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목덜미에서 땀이 한 방울 떨어졌다. 입이 바짝 마르고 목이 탔다. 교탁에 물병이 있었지만, 둘 외에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는 가만히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노을을 바라보던 소피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름도 다 끝났네." "그치. 덥지는 않아? 머리, 묶은 걸 본
"소피아." 소피아는 올 것이 왔다는 긴장된 표정으로 라이프니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분노에 차서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이려 들 거라는 예상과 달리, 라이프니츠는 생각보다 차분하게 소피아를 불러냈다. 그럼에도 소피아는 차라리 교장과는 면담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축을 기다리는 소처럼 처량하게 눈을 떴다. 미적거리며 라이프니츠를 따라 교실을 나
벤... 소피랑 학교 수돗가에서 물장난하는걸 보고싶음 운동장과 수돗가가 잘 어울리는 남자 1위 라이프니츠가 고백하자마자 거짓말 . 하고 일축하는 소피 자기한테는 쌍둥이 지구가 취업하면 떠날 임시직장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라서 나를 피해서 느낀 죄책감을 좋아하는 감정이랑 착각하는 거라고 칼같이 선그음 소피아는 그냥 바빠서 라이랑 말 안 하고 안 만나
이별은 원래 갑작스레 찾아오는 법이다. 평소보다 이른 복귀 호출과 교문까지 직접 찾아온 담당자. 숨을 헐떡이며 소피아의 손을 잡아 끈 그는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뛰쳐나가려 했다. 한눈에 봐도 다급해 보이는 모습에 일단 이끄는 대로 뛰긴 했지만, 어처구니는 없었다. "무슨 일이에요?"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일단 뛰어요." 몇 초 지나지 않아 설명은 필요
"이제부터 따로 다녀." 라이프니츠가 왼쪽 발을 질질 끌면서 걸으며 말했다. 어젯밤, 쉘터를 급습한 좀비 떼를 피하려 2층에서 뛰어내리다 잘못 착지하여 생긴 부상이었다. 그 이후로 걸음은 미묘하게 느려졌고, 그는 이따금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참으며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이마에 묻은 피를 대충 문질러 닦던 소피아가 외쳤다. "아직 다 낫지도 않았는데 무슨
"라이프니츠, 내가 뭘 쓸지 궁금하다고 했었지." 내려앉아있던 라이프니츠의 눈동자가 지금 걷는 속도처럼 느릿하게 소피아를 향해 움직였다. 얼마 못 잔 듯, 옅은 분홍빛으로 충혈된 흰자에는 생기가 부족했다. 때마침 불어오는 찬 바람에 라이프니츠의 긴 머리와 잘 묶인 목도리가 흔들렸다. 말라붙은 입술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그랬지."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