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철학논고

[라이소피] 벼랑

순정철학논고 라이프니츠 X 소피아

덕질용 by 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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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만큼은 안 됩니다. 한지혜 씨의 일은 그곳에 간섭하는 게 아니라, 그들과 호감도를 쌓는 거예요. 라이프니츠도 한지혜 씨에게 뭔가를 기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표절 논란을 뒤집을 결정적인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수리과 학생들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까."

서인식은 단호했다. 하지만 오늘 봤던 라이프니츠의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그가 구긴 논문이 떠올랐다. 한지혜는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어떻게 보고만 있어요."

"나름의 친밀감을 느끼고 계시는 건 압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참아주세요.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아고라가 끝난 후,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세차게 내리꽂혔다. 간만에 보충수업도 없고 기숙사생들도 모두 집에 돌아간 날이라, 어두컴컴한 시간대의 학교에는 학생이 없었다. 날씨만큼이나 분위기는 우중충했고, 소피아는 쫄딱 젖은 채 등을 보이는 라이프니츠에게 할 말을 골라야 했다. 순식간에 빗줄기가 옷을 적셨지만, 둘 다 우산을 찾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숨을 들이마신 소피아가 겨우 입을 열었다.

"라이프니츠. 아까 그건 사정이..."

"됐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돼."

그는 여전히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의 논문과 옷과 곱슬거리는 머리는 비에 젖어 축축해진지 오래였고, 소피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치워낸 소피아는 라이프니츠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딱딱한 구두소리는 빗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라이프니츠는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 미안해. 그러려던 건 아니었어. 네 편을 들고 싶었어. 정말이야."

머뭇거리던 소피아는 라이프니츠의 재킷 소매를 잡았다. 이대로 그를 보내면, 반드시 후회할 것 같았다. 이미 푹 젖은 소매를 잡자 빗물이 손을 적셨다. 라이프니츠는 그제야 소피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공허한 눈동자는 묘하게 소피아의 얼굴을 벗어나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라이프니츠의 얼굴도 이미 빗물 범벅이었다. 머리카락과 뺨에서 물방울이 계속 떨어졌다. 빗소리는 계속해서 귀를 울렸다. 소피아가 말없이 고개를 숙이자, 라이프니츠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 네게 뭔가를 바랐던 건 아니야. 우리 반 애들도 마찬가지고."

"..."

"그치만, 그때..."

"라이프니츠."

"그때 내 눈을 피하지는 말지 그랬어."

높은곳에서 떨어지듯 장기가 바닥으로 쏠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피아는 순간 울컥해서, 말없이 고개를 쳐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라이프니츠는 소피아와 눈을 맞췄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자포자기한 듯한 그의 눈동자는 절망과 배신감, 비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을 원망하는 듯한 푸른 눈동자를 계속 바라볼 자신이 없어 소피아는 시선을 피했다. 잊고 있었다. 그도 한낮 고등학생이라는 것을. 또래의 시선에 예민할 나이에, 자존심도 학문적 열정도 강한 그가 어떤 감정을 느낄지 자신이 몰랐을 리 없는데. 지금도, 그때도 일부러 그의 눈을 피한 건 아니었다. 지금도, 그때도 그저 그의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 뿐이다. 빗소리는 한층 더 거세졌다.

"... 미안해. 똑바로 마주 볼 수가 없었어."

"소피아. 너에게서 계속 뭔가를 계속 기대하게 되는 내가 문제인 거겠지."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것도 모른 채, 소피아는 자신도 모르게 라이프니츠의 손을 양손으로 감쌌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라이프니츠의 사건은 표절이라는 문제 치고는 빠르게 가라앉았다. 아마도 평소 그의 행실이 크게 한몫했을 것이다. 그날, 빗속에서의 대화는 없었던 일인 것처럼 라이프니츠는 평소와 똑같았다. 소피아에게 스터디를 하라며 갈궈대고, 르네에게 반장 일을 그만 떠넘기라며 화를 내는 것도 똑같았다. 속을 알 수 없는 그의 태도에 불안해질 무렵, 어느 날 갑자기 그는 반가운 기색으로 소피아에게 다가왔다.

"소피아, 증거 찾았다."

"무슨..."

그는 말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순간 소피아의 머리에 뭔가 번쩍이듯 지나갔다. 소피아는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라이프니츠를 껴안았다.

"잘됐다."

"잠깐..."

소피아는 당황한 라이프니츠를 놓아주고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간만에 느끼는, 날아갈 것 같은 상쾌함 때문에 환한 미소가 나왔다. 정말 잘 됐다. 소피아는 그의 손에 들린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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