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소피] 소원
순정철학논고 뉴턴 X 소피아
별이 예뻤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와..."
소피아는 밤하늘에 흩어진 수많은 별을 보며 감탄했다. 구름 한 점 없이 짙은 남색과 검은색이 섞여 사포로 간 듯 매끈하고 청명한 하늘에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소피아는 한때 수리과 학생들과 함께 아고라에 대해 얘기했던 잔디밭에서, 이번에는 뉴턴과 나무에 기대앉아 별을 바라보았다. 시원하고 조금은 쌀쌀하기도 한 바람이 불어왔고, 뒤에서 풀벌레 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소리만이 둘 사이를 채웠다. 소피아는 간만에 심장이 간질거리는 설렘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별자리를 찾았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별이 그들 위에서, 리케이온 위에서 자신을 태우며 두드러지게 빛났다. 뉴턴은 말없이 옆에서 사과를 아삭거리며 평소의 그 모호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과를 큼지막하게 베어 무는 소리에 소피아의 시선이 뉴턴에게로 향했다.
예나 지금이나 속을 알 수 없는 학생이다. 처음 만난 날에도 사과를 먹으며 무심하게 자신을 바라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로크와 함께 자기 갈 길을 가던 뉴턴이 떠올랐다. 바람에 날린 머리카락을 대충 정돈한 소피아는 뉴턴의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고라에 제출할 논문 일부와 여러 필기를 끄적인 흰 종이 몇 장이 눈에 들어왔다. 소피아의 시선을 느낀 건지, 고개를 돌린 뉴턴과 소피아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소피아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말 없이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말끔한 사과를 건넸다. 먹으라고 주는 거겠지. 소피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사과를 받아서 들고 한입 물었다. 친하지도 않은 뉴턴과 별똥별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몰래 학교에서 빠져나와 이런 경험을 할 줄은. 소피아는 덤덤하게 자신을 교실에서 빼내던 뉴턴을 생각하며 입 속의 사과를 씹었다. 뉴턴은 그새 사과 하나를 깔끔하게 다 먹고는 씨앗을 근처에 심고 있었다. 나뭇가지가 흔들거릴 정도의 바람이 다시 불어왔다. 소피아는 벗어뒀던 가디건을 챙겨입고 별을 관찰하는 일에 집중했다. 밤하늘을 이렇게 여유롭게 올려다본 게 얼마 만이더라. 소피아의 눈도 생기로 가득 찼다.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오기 잘했다.
시험 기간에 도서관 밖으로 나와 공부는 안 하고 동기와 함께 수다 떨던 시간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도 짧게 머릿속을 스쳤다. 소피아의 얼굴에는 완연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 별똥별이다."
빠르게 사라진 빛을 발견한 소피아가 중얼거리자, 뉴턴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소피아는 서너 개의 별똥별을 바라보며 빌 소원을 생각했다. 여기 그만둬도 취업 잘 되게 해주시고, 건강하게 한 해 보내게 해주시고, 블랙 기업 안 가게 해주시고... 양손을 깍지 끼고 가슴 앞에 딱 붙인 채 눈을 꼭 감은 소피아는 알아들을 수 없게 중얼거리며 소원을 빌었다. 그러는 동안 유성우와 소피아를 번갈아보던 뉴턴의 시선이 소피아에게로 고정됐다. 그는 멀뚱한,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을 평소와 달리 또렷하게 뜨고는 소피아를 바라보았다. 소피아는 소원을 꽤나 오래 빌었다. 뉴턴이 자신의 앞에 있는 전학생을 계속 응시하며 눈을 몇 번이나 깜빡였을 쯤, 소피아는 눈을 뜨고 환희에 찬 얼굴로 그와 시선을 맞췄다.
"너도 소원 빌었어?"
"응."
뉴턴의 눈동자에 소피아의 얼굴이 비쳤다. 학과 통폐합에 거세게 저항하며, 로크와 함께 건의문을 작성하고 홉스의 다리를 걷어찬 미지의 전학생. 그리고 그 전학생은 얼마 되지 않아 음수의 시험 점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뉴턴은 난생처음 들어본 음수 성적을 떠올리며 자신의 종이 더미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는 사이 몇 개의 유성우가 더 떨어졌고, 둘 사이에는 미세하게 들뜬 분위기가 흘렀다. 별은 영원할 것처럼 반짝였고, 소피아는 조만간 뭔가를 열렬히 바랄 수 있을 것 같은 떨림과 기대를 느꼈다. 이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갈까."
더이상 유성우가 떨어지지 않자, 뉴턴은 가방에 모든 짐을 챙겨 넣었다.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나서 교복 치마를 털었다. 짤막한 풀 몇 가닥이 치마에서 떨어졌다. 소피아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곧 복귀해야 할 시간이었다.
"넌 무슨 소원 빌었어?"
"그냥..."
뉴턴은 시선을 피하며 얼버무렸다. 그는 오히려 묻고 싶었다. 네 소원에 누구의 이름이 나왔냐고. 그는 소원을 빌던 소피아의 얼굴을 멍청히 바라보던 자신을 떠올렸다. 소피아는 싱겁다는 듯 웃으며 가방을 맸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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