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 않고서야
무츠노카미 요시유키X남심신자 CP, 욕설, 모욕적 언행
22.08.28
어처구니 없다는 낯짝으로 무츠노카미를 본 텐노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제가 잘못 들은 줄 알았는지 재차 대답을 요구했다.
“다시 말해 봐.”
무츠노카미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대답했다. 얼굴빛도, 자세도, 눈짓도 어디 한 군데 달라진 곳이 없었다. 그답다면 그다웠다. 텐노는 머리카락 아래의 이마를 잠깐 짚었다가 다시 한번 어이없는 숨을 터뜨렸다. 야. 그는 이름도 담지 않기로 했다.
얇은 손가락이 무츠노카미의 가슴께를 찔렀다. 힘이 실린 손가락이 그의 가슴을 후빌 때마다 무츠노카미는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모욕적으로까지 보이는 언사임에도 무츠노카미는 입을 굳게 다물기만 하며 대답하지 않았다. 곧은 시선은 텐노의 얇은 안경알 너머만을 응시했다. 웃지 않는 그는 진중하다 못해 근엄해 보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건 텐노의 알 바가 아니었다.
“허황되다고 했지. 모든 걸 이겨내는 사랑이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그의 주인은 오만했다. 오만했으나 어리석지 않았고 비관적이었으나 앞길을 개척할 줄 알았다. 합리적인 인간이어서다. 이익이 될 일을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도 언젠가는 ‘무츠노카미 요시유키’의 수행을 받아들이겠지. 그 때가 지금은 아닌 것이다.
무츠노카미는 그의 이중적인 면모를 잘 알았다. 알고파 하여 알아낸 것이 아니다. 그저 곁에 있기만 했는데도 보였다고 말한다. 그의 주인은 철두철미해 보일 정도로 냉담했으나 단지 그것 뿐이었다. 하늘을 뚫고 들을 덮을 정도로 거대해보이는 방어기제 한 겹. 언뜻 보기에 견고하고 음험하여 필시 저 속에도 수십 가지 재료로 이루어진 겹문이 자리하고 있을 것처럼 보이게 하는, 그리고 스스로도 그렇게 강대하다 여기는, 마치 겨울철의 꽁꽁 언 얇은 철문마냥. 겨우 그런 것.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모든 걸 이겨내는 사랑이 어딨어. 정신머리도 닳고 마모되고 그렇게 죽고 못살게 사랑했던 거, 지겹고 징그러워지는거 한순간인데 몇 번만 반복되어도 결과는 나. 그게 여전히 사랑스러운가. 평생을 안고 갈 정도로 귀한가. 아닐걸. 그럴 수가 없어.”
그는 까탈스럽고 때로 강압적이었으나 만회하고도 남을 수완이 있었다. 날카로운 말 아래 납득할 수밖에 없는 깔끔한 논리들을 숨겨 가져왔다. 한때는 그게 천성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지? 네가 그걸 몰라? 아냐. 너는 똑똑해. 모를 수가 없어. 그럼 왜? 내 신경을 그렇게 박박 긁고 싶었나? 왜 진작에 한대 치지 않고. 중상으로 강행군 내보낼 때 그러지 않고. 일주일 내내 원정을 돌렸을 때 그러지 않고? 왜.”
그의 주인은 빈말로라도 선인이라 할 수는 없다. 당연한 것이고, 하려면 한대도ㅡ 분명 그런 구석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고. 모두가 알았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든 타고난 성정이든 그 눈앞에 있는 남자는 선과 악에 한 발짝씩을 걸치고 있었다. 복잡한 삶이었다.
누가 봐도 수치심을 얹어 주려 하는 손짓이다. 그러나 무츠노카미는 그런 손가락 하나조차 기꺼웠다. 미친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온갖 미사여구로 그의 존재를, 깊은 심계를 부정해대는 그가 당장이라도 품에 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리 없었다.
“시간은 상대적인 거야. 추억도 상대적인 거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상대적인 거라고. 그걸 알면서 그런 말이 나와? 미치지 않고서야 네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해?”
사랑이 기실 첫눈에 반한다는 것만을 말하는 건 아닐 것이다. 무츠노카미는 생각했다. 세간에서 말하는 불 같은 사랑과 애정이 아니더라도 수십 수천 가지 사랑이 있으리라. 처음을 넘어, 불같은 연심을 넘어, 숨기던 치부를 넘어, 그의 지난한 삶에 공감하고 이해하고 그리고 마침내 그를 온전히 안아들어 다정한 말로 울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는 비로소 사랑에 빠진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주 솔직히 말해서, 사랑이란 애매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그의 삶에 사랑이란 다시 없었다.
심성이 사납고 곱지 못하다. 상냥하지 않고 다정하지 않으며 행동에 거침이 없다. 많은 이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림짐작으로 반쯤 이해한 자가 있고 한 마디 말만으로 모든 상황을 유추해내 납득한 이도 있었다. 그리고 무츠노카미는 그 모든 것을 직접 본 자다. 그에게 향할 것을 대신 맞아도 봤고 입에 담기 천박하며 상스러운 말도 들어 봤다. 그러나 무츠노카미는 그 모든 멸시와 치욕보다, 지금 가슴에 맞닿아 있는 손가락으로 발라 준 씁쓰름한 고약 냄새와 괜히 나섰다고 질책하는 욕설을 더 선명하게 기억했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길 위는 무슨, 이미 오래 전에 독파해 가로질러 온 뒤인 것을.
“…웃어? 웃음이 나오는군 그래. 그렇게 주인 주인 하더니 결국 그것도 아무것도 아니었나 보지.”
그의 웃음은 건조하다. 입꼬리를 빳빳하게 올린 얼굴이 새파랗다. 무츠노카미는 그의 웃음을 본 일이 손에 꼽았다. 진심으로 웃는 날이 그의 삶에 있긴 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그러나 이제 무츠노카미는 안다. 그건 자조였다. 그의 주인은 지금의 삶에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목적이 없었더라면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다. 근거 없는 예상이라고 일축해도 할 말은 없었다. 그건 가장 오랜 시간 가까이서 지켜본 이의 자신이었다.
“만에 하나 네가 맞다고 치자. 사람이 쉽게 변하든? 알 거 아냐?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안 변해, 사람은. 나도 안 변할 거고. 우린 내일 또 같은 얘길 하겠지. 이런 멍청한 갑론을박이나 하면서. 모레에도 아흐레 뒤에도 계속.”
그는 지금 흔들리고 있다. 언제나처럼 닥치라는 한 마디로 일축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부정하고 싶은 것일테지만, 아마 전자일 테다. 그건 수많은 날들의 경험이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모든 것의 결론이었다.
아무리 가진 것이 적고 막다른 길에 몰려도 그는 늘 승부수를 던진다. 어지간하면 패퇴하지 않고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다. 그가 지는 날은, 그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하는 날일 것이라, 그의 남사들은 입을 모은다. 그의 자존심이 그렇다.
그러나 텐노는 자존심이 없다. 단지 기분의 유무만이 있을 뿐 그를 자존심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입버릇같은 것이다. 자존심이 밥 처먹여 주나. 구시렁대지 말고 일이나 하시지. 극강의 이득과 효율을 뽑아내는 것, 그의 삶은 그렇게 이뤄져왔다.
그렇다면 자존감은? 무츠노카미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알려주길 바랐다. 틈을 주길 바랐고 좀 더 잘 이해하고 싶었다. 무츠노카미는 아마노가와가 궁금해졌다. 아주 오래. 계속해서.
“…이젠 그냥 무시하기로 했나? 그래? ……됐다. 할 말도 없어. 그러든지 말든지 어디든 꺼져. 연무장 바닥이나 닦든지.”
바싹 마른 장작같이 무던하던 목소리가 흐트러진다. 아마노가와가 흔들린다면 무츠노카미는 망설이고 있다. 그의 말대로 감히, 주인의 손목을 잡아채도 되는가. 뻔뻔하게 두 번씩이나 똑같이 내뱉어놓고 하는 고민이라기엔 지나치게 비루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일의 주체가 자신이 아니어서, 그의 애타는 주인이자 연민이어서, 매이지도 않는 목줄을 쥐어주고 싶었기 때문에.
그에게 20년은 그리 길지도 않은 세월이었다. 그러나 인간에게 그의 주인에게 20년은, 반평생을 훨씬 넘는 세월이었다. 20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렇다면 이제 그만해도 됐다. 그만하면 됐다.
적어도 지금은. 지금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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