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노의 시선

타천 재연 기반, 약 발렌루카

 https://les-sanspapiers.postype.com/에서 백업한 글입니다.


남자를 좋아한다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어디서 들었어?

그냥, 밀라노를 돌아다녀보면 들려.

그래서, 들릴 때까지 돌아다녔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됐어, 아무래도 좋아. 사실이니까.


다빈치는 항상 분주했다. 얼마나 바쁜지 식사는 허구한 날 감자 스프였다. 자코모가 그때그때 제 선생을 위해 끓여놓은 것도 아니었으며, 그냥, 한 냄비 가득 스프를 끓여두고 뜨겁든 식었든 퍼서 먹었다. 그러다 쓰러지겠다고, 발렌티노가 한마디 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은 그래도 좋다나. 어처구니없는 대답이었다. 발렌티노가 대답도 하지 않고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자, 타락천사 주제에 사람을 걱정해주다니 별일이라고, 다빈치가 혼잣말을 해댔다. 발렌티노는 입을 열다 말았다. 당신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자코모는 누가 돌봐주느냐고, 말하려다 말았다. 다빈치는 그 모습을 보고는 싱겁긴, 하고 발렌티노를 등졌다. 그러게, 싱겁네. 발렌티노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다빈치가 웃었다.

다빈치는 그런 식이었다. 저렇게까지 감정에 솔직하지 않은 사람은 글쎄, 몇 백 년 만에 보는 거였는지 모르겠다. 자코모를 바라보다 문득 다 빈치의 생각이 날 때가 있었다. 무엇보다 자코모의 곁에는 자주 루카가 있었으니까, 발렌티노는 ‘문득’보다는 자주, 다빈치를 생각했다. 그래서 바라봤다. 원래 남의 시선에 둔한건지 발렌티노를 보고도 못 본 척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빈치는 제 등 뒤를 잘 보지 않았다. 이정도면 알 법도 한데, 눈치 챌 만도 한데. 하지만 단 한 번도 다빈치는 뒤에 서 있는 저를 보지 않았다.

발렌티노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마음 놓고 흥미로운 인간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다만 걱정거리가 있다면 다빈치가 제게 홀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뿐이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럴 수 있었다. 그래서 뒤에서 바라보는 걸 택했다고나 할까.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뒤를 보지 않는 다빈치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에게는 별다른 독촉이 필요 없었다. 루카 녀석이 자주 말하고 다니는 천재들 나름대로의, 자신만의 페이스가 이런 것인가 싶었다. 한번 집중을 하면 그 누가 와도 못 말렸다. 자코모가 옆에서 붓들로 시답잖은 장난을 치고 있어도, 발렌티노가 이젤 바로 옆에 앉아있어도, 루카가 실없이 돌아다니다 다빈치의 책상 위 술병을 넘어뜨려도 그는 집중을 흐트러뜨리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캔버스 위에는 며칠째 흐릿한 스케치만이 있었다. 다빈치는 밤낮없이 제 머릿속에 그려져 있을 그림만을 생각하는 듯 했다. 캔버스 앞을 새벽 늦게까지 지키다가 어영부영 잠자리에 들어놓고, 동이 틀 무렵 눈을 번쩍 뜨더니 대충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몇 숟갈 뜨다가 이내 캔버스 앞에 다시 서 있었다. 발렌티노는 공방의 구석에 서서 그를 지켜봤다. 그의 이젤은 공방 안에 있는 가장 햇볕이 잘 드는 창문을 등지고 놓여있었다. 한겨울의 창백한 햇살을 받으며 미간을 좁힌 채 알 수 없는 스케치로 차 있는 캔버스 앞에 서 있는 다빈치는 뭐랄까, 신의 축복을 받을만한 존재로 보였다. 심술궂은 못돼먹은 천재인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름다운 구석도 있구나, 발렌티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다빈치는 발렌티노를 향해 “뒤통수에 구멍 나겠어. 그만 쳐다봐.” 라고 말했다. 발렌티노는 웃지도 당황하지도 못 한 채 조용히 미안하다고 했다. 뭐가 미안하단 걸까. 본인이 말해놓고도 알 수 없었다. 발렌티노는 여전히 캔버스를 노려보는 다빈치를 두고 공방에서 나왔다.

슬럼프래. 자코모가 그렇게 말했다. 루카는 호들갑을 떨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슬럼프가 올 때도 있냐고 되물었다. 그럼 없겠냐며 자코모가 핀잔을 줬다. 루카는 하긴, 천재들도 끝 발이 떨어질 때가 있지, 라고 했다. 생각 없는 놈. 발렌티노는 나무 위에 앉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루카 자식은 솔직한 건지 멍청한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들을 가끔 한다니까. 눈치가 없어도 정도껏 없어야지. 보스께서 루카에게 뺏어간 것은 토라고 알고 있는데 어쩌면 그때, 보스가 실수로 루카의 눈치도 같이 뺏어버린 게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그 말에 정색을 한 자코모가 루카의 어깨를 퍽 쳤다. 선생님 그렇게 되시려면 아직 멀었어! 하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앳되었지만 힘이 있었다. 제 귀에 꽂히는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발렌티노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름다운 꼬마. 터지지 않은 꽃씨에 들어있는 꽃잎이 아름답고 가치가 있는 것임을 아는, 어여쁜 꼬마. 빵모자를 걸쳐 쓰고 밀라노의 거리를 병아리처럼 돌아다니는 꼬마. 발렌티노는 자코모의 뒤를 바짝 쫓고 싶다가도 그러지 못하고 항상 이렇게, 위에서 그를 쳐다만 봤다. 자코미나가 자코모임을 알게 된 뒤부터 발렌티노는 봄이 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그의 곁에 다가서지 않을 생각이었다. 다가올 봄날에 처음으로 피는 꽃을 들고 자코모를 찾고 싶었다. 비록 그에겐 제 모습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꽃은 볼 수 있을 테니까. 꽃을 정확히 볼 수는 없어도 그의 책상 위에 올라온 갓 피어난 봄을 느낄 수는 있을 테니까. 그날이 오면 반드시 붉은 꽃을 찾아야지. 발렌티노는 루카와 다빈치를 위해 쿠키를 사오는 자코모를 내려다보면서 웃었다.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있어?

발렌티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의 것이었다. 캔버스를 노려보는 것을 관두고 창밖을 구경하던 다빈치가 뒤돌아보며 되물었다.

뭐라고?

귀가 먹었어?

발렌티노는 다빈치의 억양을 따라했다. 하지마라, 하는 다빈치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발렌티노는 다빈치를 놀리듯이 그의 억양을 따라했다.

하지마라~

그만하래도.

신경질적으로 말하는 다빈치는 아랑곳 않고 발렌티노가 까르르 웃었다. 꾸며낸 웃음이 아니라 즐거워서 내는 웃음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천사라더니, 웃는 모습 한번 예쁘다고 다빈치는 생각했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다시 창밖을 바라보기로 했다.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있느냐 물었어.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발렌티노가 말했다.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 저의가 궁금했다. 지난번에도 뜬금없이 남자를 좋아한다지, 레오나르도 다빈치, 하더니. 다빈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발렌티노는 그런 다빈치에게 다시 묻지 않았다.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자코모는 공방 안에 있지 않았다. 적막하고 넓은 공방에는 괴팍한 예술가와 타락천사 뿐이었다. 괴상하기 짝이 없는 조합이로군, 다빈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젠가 있긴 했어.

정적 끝에 다빈치가 작게 얘기했다. 발렌티노는 곧바로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그의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의 코트자락이 펄럭이자 공방의 먼지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꽤 오래된 모양이네.

발렌티노가 조용히 말했다. 그렇게 오래는 아니고, 다빈치는 대꾸했다. 하늘이 희뿌연 색이었다. 눈이 내릴 것 같았다. 다빈치는 곁에 앉은 발렌티노에게 물었다.

감자 스프 먹을래, 발렌티노?

 

발렌티노가 감자 스프는 됐다고 말하기에, 다빈치는 제 몫의 감자 스프를 그릇에 담아다가 가져왔다. 그러고는 발렌티노의 곁에 앉아 조용히 스프를 떠먹기 시작했다. 발렌티노도, 다빈치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빈치는 그들의 앞에 놓인 이젤이 너희 뭐하느냐고 묻는 것 같다고 느꼈다.

웬만하면 하지 않기로 했어.

…사랑을?

다빈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발렌티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빈치는 다시 감자 스프를 몇 번 떠먹었다.

그런데도 바로 몇 년 전에 누군가를 사랑했었어.

…….

이러다가 죽어도 좋겠구나, 싶을 만큼 사랑했던 것 같은데. 정신차려보니 사랑하지 않고 있더군. 아니, 계속 사랑은 하고 있었던 것 같아. 어쩌다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졌지만 흐려졌을 뿐이지 없어진 건 아니었거든.

다빈치는 잠깐 뜸을 들였다. 감자 스프가 아직 절반이나 남아있었는데, 그는 스프 그릇을 옆에다 놓았다. 그릇과 수저가 부딪혀나는 달그락 소리가 맑았다.

그런데 그 사람, 얼마 전에 죽었어. 슬프더라고. 틀어박혀 울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어쩌겠나. 싫어도 캔버스 앞에 서있어야 뭐라도 하지. 그래서일까. 무얼 그려야할지 알 수가 없어. 텅 빈 캔버스를 보고 있으면 내가 비워지는 기분이야. 사라지는 기분이 들어. 그게 싫어서 뭐라도 그려 넣었어.

다빈치는 덤덤히 말했다. 발렌티노는 눈을 내리깐 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의 옆모습이 조각상 같다고, 다빈치는 생각했다. 속눈썹이 참 길다고도 생각했다. 썰렁한 공방에는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다빈치는 감자 스프를 마저 먹었다. 언뜻 바라본 창밖으로는 눈이 하늘하늘 내리고 있었다. 다빈치는 잠자코 그 눈들을 바라봤다.

…레오나르도.

발렌티노가 맑은 목소리로 다빈치의 이름을 불렀다. 다빈치가 아닌 레오나르도로 불린 것은 처음이었기에 다빈치는 발렌티노를 바라봤다.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발렌티노는 다빈치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도 창밖의 눈을 향하고 있었다.

그 사람을 그려보는 건 어때.

강요도, 저번처럼 나를 위한 부탁도 아니야.

당신의 사랑을 위한 그림을, 그려봐. 레오나르도.

 


루카는 발렌티노의 옆에 대자로 뻗어있었다. 속 편히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발렌티노는 그런 그를 웃으며 바라보고는 다리를 뻗고 앉았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피렌체의 밤하늘이나 밀라노의 밤하늘이나 별다른 것이 없었다. 피렌체의 별들이 좀 더 밝아 보이는 착각이 드는 것 빼곤, 다른 것이 없었다. 발렌티노는 조용히 빛나는 별들을 보며 밀라노의 골목길들을 생각했다. 다빈치의 챙이 들린 모자를 생각했다. 자코모, 자코미나의 빵모자를 생각했다. 입을 비죽거리던 귀여운 자코미나를 생각했다. 다빈치의 그림 속 천사들을 생각했다. 다빈치가 기어코 완성하지 못한 그림 속 그의 연인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연인의 얼굴을 생각했다.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도 분명 신의 축복을 받았던 사람일 것이다. 그냥, 그럴 것 같았다. 보스는 질투가 많은 신이니까, 이번에도 이유 없이 은총을 퍼붓다가 거두었을 것이다.

“무슨 생각해?”

문득 루카가 발렌티노에게 물었다. 발렌티노는 루카의 옆에 누워버리며 대답했다.

“이것저것.”

“예를 들자면?”

“밀라노.”

그렇구나아. 루카는 말끝을 늘렸다. 바보 같아. 발렌티노가 그에게 말했다. 어쩌라고. 루카는 그렇게 툭 내뱉으며 빙긋 웃었다. 이상한 놈. 발렌티노는 이번엔 말하지 않고 생각만 했다. 발렌티노도 씩 웃었다.

“자코미나 생각 했어?”

“비슷해.”

루카는 밀라노를 떠난 이후 유독 자코미나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옛날부터 루카는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재잘거리기 좋아했다. 주로 보스를 찾아가 그러거나 다른 천사들에게 찾아가 수다를 떨던 루카였는데, 밀라노를 떠나온 이후로 발렌티노와 화해 아닌 화해를 한 루카는 이제 틈만 나면 발렌티노를 찾아와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발렌티노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신나서 떠드는 귀여운 그를 바라보는 게 즐거웠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하얀 축복. 요즘 발렌티노는 루카를 바라보며 그 때를 자주 떠올린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따뜻이 안아주고 이마에 입을 맞춰주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하면 기겁을 할 게 당연하니 참고 있지만.

“사랑한다는 건 어떤 기분이야?”

루카가 대뜸 물었다. 발렌티노는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

“발렌티노도, 자코미나도, 다빈치도 누군갈 사랑해본 적이 있잖아. 난 아직 없어서 궁금하네.”

사뭇 진지한 루카의 말에 발렌티노는 어떤 말을 해줘야 좋을지 알지 못했다. 뭐라 답을 알려주고 싶었다. 꽤나 어른스러운 미소를 짓고 누워서 밤하늘을 바라다보고 있는 하얀 새에게 그것이 어떤 기분인가 알려주고 싶었으나 발렌티노는 그걸 설명할 수 없었다.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어느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리 대문호라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발렌티노는 대문호가 아니다. 그저 오래 살아온, 인간을 사랑을 할 줄 아는 어리석은 타락천사일 뿐. 아무런 말을 못하고 있는 발렌티노를 바라본 루카는, 하하 웃었다.

“왜 그렇게 심각해. 그냥 물어본 거야.”

“네가 물어볼 일 없는 걸 물어봤으니까 그러지.”

그런가. 루카는 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꾸했다. 보통 이런 말을 할 때면 내가 뭐? 하고 화를 내던 루카는 그러지 않았다. 하긴, 내가 이런 말을 해본 적은 없지. 덤덤히 중얼거리는 루카는 여전히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누워있었다. 저도 모르게 누워있다 상체를 벌떡 일으킨 발렌티노는 가만히 루카를 내려다보다 한마디 했다.

“너...”

“어?”

“…철들었나?”

루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얼굴을 구긴 채 뭔 소리야, 하는 표정을 지었을 뿐. 하지만 발렌티노는 그를 놀리려고 한 말도, 농담으로 한 말도 아니었다. 매우 심각했다. 진짜 철이 든 건가? 내가 주워온 이 새, 드디어 철이 들었나? 싶어서 살짝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문득 루카를 안아주고 싶은 기분이 든 발렌티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일어나봐.”

“뭐, 뭔데. 갑자기 왜 이래?”

뭐 잘못 먹었어? 물어보는 루카를 무시하고 발렌티노는 그를 잡아 일으켰다. 루카는 여전히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자신보다 한 뼘이나 더 큰 루카를 바라봤다. 짜식, 많이도 컸다. 이런 말을 중얼거리며 발렌티노는 루카를 안아주었다. 루카는 피하지 않았다. 웬일로 가만히 안겼다. 별 다른 말도 하지 않았다. 제 숙적이라며 죽어라, 할 때는 언제고. 발렌티노의 입술 사이에서 즐거운 웃음이 새어나왔다. 발렌티노가 웃음소리를 나직이 내며 루카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자 그제야 루카는 양 옆으로 맥없이 늘어놓은 양 팔로 발렌티노를 감쌌다.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너 철들었네, 철들었어.”

“…이제 너만 들면 되겠네.”

루카는 뚱하게 말했다. 그래, 그래. 나만 철들면 되겠네. 발렌티노는 하하 웃으며 넘겼다. 발렌티노의 웃음이 잦아들자 주변은 다시 고요해졌다. 피렌체의 대성당 꼭대기에는 서로 껴안은 천사와 타락천사 뿐이었고, 밤하늘에는 별들이 조용히 반짝였다. 발렌티노는 잠깐 그것들을 바라보다가, 품에서 루카를 풀어주었다. 아니, 풀어주려 했으나 루카는 제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루카? 그의 이름을 불러봤지만 루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발렌티노는 어색하게 제 팔을 들어 올려 그를 감싸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감싸지 않은 것도 아닌 자세로 안겨있었다. 루카에게서는 희미하게 햇볕냄새와 달콤한 냄새가 났다.

“누굴 안는 건 오랜만이야.”

여전히 발렌티노를 안은 채인 루카의 목소리는 어딘가 침울해보였다. 갑자기 얘가 진짜 왜 이러지. 오히려 당황한 건 발렌티노 쪽이었다. 그냥 귀여워서 한번 안아주려 한 건데, 저도 모르게 루카의 마음 속 무언가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발렌티노는 눈썹을 치켜올리고 루카의 등을 천천히 토닥여줬다. 방금 전과는 달리 위로의 의미가 담긴 토닥임이었다. 무얼 위로하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위로해줘야 할 것 같아서. 잠시 후 루카가 발렌티노의 품에서 떨어졌다. 울음을 참기라도 한 건지 코 끝이 발갛게 달아있었다. 그걸 본 발렌티노는 어렴풋이 미소 지었다.

“울었어?”

“아니. 응. 아니.”

“왜 울었어.”

“자코미나 생각이 나서… 아니, 안 울었대도.”

발렌티노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루카는 방금 전의 행동들이 후회되는 듯 발렌티노의 눈치를 봤다. 발렌티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루카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러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루카도 말 없이 그의 옆에 앉았다. 다시 둘에게 고요가 찾아왔다. 간간히 루카가 킁, 하고 코를 들이키는 소리가 들리는 것 빼곤 그들의 사방이 조용했다.

“사랑하면 말이야.”

발렌티노가 입을 열었다. 루카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발렌티노도 고개를 들어서 별들을 바라봤다. 언제나 그래왔듯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들을 보며 발렌티노는 어떤 안도감을 느꼈다. 천년 전에도, 이천년 전에도 그들만은 똑같았으니.

“그렇게 울고 싶은 날이 자주 생겨. 기쁘지만 기쁘지 않고, 슬프지만 슬프지 않고, 뭐 그런거야. 사랑을 하면 그래.”

“…이상하네, 사랑.”

“이상하지.”

그들은 이유없이 마주보고 키득거렸다. 발렌티노는 루카와 함께 하면 실없이 웃을 수 있어 좋았다. 루카라면 어떤 얘기를 나누어도 즐거웠다.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누군가 본다면 멍청하기 짝이 없다고 해도, 그와 이야기 하는 시간이 소중했다.

더 없을 제 마지막 사랑은, 어쩌면 루카일지도 모르겠다고, 발렌티노는 루카의 옆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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