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라스트 댄스

승션 (트친에게바칩니다,,)

8ackyard Lovers by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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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우 선물~

들으면서 썼습니다,,, 같이 들어보세여,,

https://youtu.be/vz71KsOj4rE?si=XknPuUBGbkkjauD8

가을이라기엔 더럽게 더웠다. 승준은 이런 날씨에도 무어라 한마디 없이 가만히 옥상에 서있는 창윤이 신기할 뿐이었다. 손을 올려 작은 그늘을 만들고 있는 창윤의 얼굴 옆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승준은 그런 창윤을 계속해서 바라만 볼 뿐이었다. 분명 처음에는 힐끔거리다 끝나던 시선이 이제는 완전히 고정한 것마냥, 승준의 동공 안엔 계속 창윤 뿐이었다. 조금 이따가 내려가면 될 것 같아 그렇지? 창윤의 목소리 끝이 살짝 떨렸다. 승준은 그런 창윤의 앞머리를 손끝으로 톡 건드려 정리했다. 보통 때라면 창윤이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먼저 했을 행동이었는데 말이다.

갈 준비 됐어? 승준의 말에 창윤은 머뭇거렸다. 푹푹 찌는 초가을에 달려야 한다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어쩌면 이 대화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그 불안함. 창윤은 그저 입꼬리만 스윽 올려 웃었다. 그런 창윤의 얼굴을, 승준은 다시 빤히 바라봤다. 창윤의 걱정이 그에게 전염된 것인지, 승준은 승준 나름대로의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일부러 창윤의 눈코입 그리고 떨리는 손 같은 걸 계속해서 눈에 담았다.

2024년 9월 30일. 걸어다니는 시체로부터의 도망이 시작된 지 정확히 30일이 되는 날이었다.

여름의 라스트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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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승준은 늘 기다려라 말하고, 창윤은 늘 하자~ 같은 말을 했다. 시비는 어찌나 잘 걸고, 잘 당하고, 그래도 계속해서 바보처럼 당하지는 않겠다고 발버둥도 잘만 쳤다. 맞는 듯 안 맞는 스타일은 동갑 커플이니 뭐 그러려니 했다. 친구사이에서 발전했으니 더더욱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창윤은 문득 승준이 왜 자신을 좋아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는 것은, 애정이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거였으니까. 그러다 승준이 무언가 착각을 한 것은 아닐까 걱정도 했다. 친구 사이. 그게 너무 오랫동안 이어지다 보니까 내가 편했던 거지. 안정감 그런 것 때문에, 그걸 사랑이라고 받아들인 건 아닐까.

작은 먼지에 불과한 것이 점점 몸집을 불리더니, 창윤의 머리를 어느새 가득 채웠다. 검정 크레파스로 정신 없이 그려놓은 것처럼 말이다. 너무 꼬이다 못해 창윤을 가득 옭아맨 걱정 타래들이 그의 표정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딱봐도 무언가 말할 게 가득인 얼굴. 승준이 그걸 모를리 없었다. 모르는 척 이따 운동 갈까 하는데… 하고 운이라도 띄우면서 화제 돌릴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표정이 친구 사이였을 때도 본 적 없는 초면의 낯인지라 승준은 결국 씨익 웃으며 무슨 일이라도 있냐며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었다. 창윤은 그런 승준의 태평한 얼굴을 보며 그저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9월 초의 맑고 높은 하늘 아래, 아직은 덥다며 꾸역꾸역 없는 자리 차지해 에어컨 아래에 앉아있는 자신과 승준의 모습이 웃겼다. 이런 짓 하는 거는 친구 때나 지금이나 다름 없네. 그래도 달라진 게 조금 있다면, 굳이 굳이 하나 뽑자면 음료 잘못 시켜 맛 없다고 빨대 휘젓는 모습을 보면서도 승준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잔소리를 참고 있다는 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창윤은 그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 만큼의 한숨을 짧게 내뱉으며 팔을 올려 손깍지를 낀 손으로 머리를 살짝 기댄 후 창밖을 바라봤다.

날씨 좋다. 그치. 우리 놀러갔을 때 생각난다. 왜 그때 있잖아, 돈 없는데 막 캐나다 가겠다고… 응?

창윤은 계속해서 창밖을 바라보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승준의 추억회상에 답은 하지 않고서 말이다. 계속해서 응? 응? 하고 물어오는 그의 유치한 행동에 창윤이 그만 좀 하라고 말 한 마디 하려다가 갑자기 세게 유리창을 향해 돌진하는 남자의 돌발 행동에 입이 다물어졌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카페를 가득 채웠다. 이거 강화유리인가? 승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창윤에게 말장난을 쳤다. 유리창 가득한 핏자국에 창윤이 멍하니 자신을 향해 빨개진 눈을 데굴 굴리는 남자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할로윈? 그런 건가?

창윤은 승준을 돌아봤다. 누군가가 보내는 사이렌 소리가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윙윙 울렸다. 이런 경고음은 술 취해서 혀를 섞었던 그날보다 더 강력했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남자의 비틀거리는 다리에 창윤은 허억 숨을 들이켰고, 그런 창윤의 손목을 승준이 세게 잡았다. 뛸 수 있지? 한강변 러닝 뛰는 것도 아니고 너무 여유있게 말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은 도망이 우선이었다. 아, 오늘은 물어보고 싶었는데. 나 왜 좋아하는 거냐고. 창윤은 승준의 뒤를 따라 달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승준의 옆에 나란히 서서 달리고 있었다.

9월 3일

승준의 집에서 지낼지 창윤의 집에서 지낼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윗층이 승준, 아랫층이 창윤이었으니 그냥 한 건물 들어와 몸만 숨기면 되는 일이었다. 너 안 가냐? 창윤의 말에 소파에 앉아 잘 터지지도 않는 폰과 아이패드를 툭툭 건들던 승준이 응? 하고 고개를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프라이버시니 뭐니 따질 생각은 없었지만, 더 안전하고 멀쩡한 자기 집 두고 ‘너를 두고 어떻게 가’냐는 변명과 함께 삼 일 째 창윤의 집에 들러붙은 그는 모든 걸 창윤의 옆에서 함께 했다. 잠은 물론이고, 같은 집 살며 오늘 뭐했는지 상황 보고 등등 말이다. 너 그거 한 건 나도 아는데…. 창윤은 턱을 괸 채로 승준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나랑 같이 있어주는 건 너무 좋은데, 근데, 내가 너무 궁금한 게 있거든. 창윤은 차마 입밖으로 내지 못할 그 말을 속으로 삼키는 걸로도 모자라서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고 그저 쓰읍 숨을 들이키다 힘들게 한숨을 내뱉었다. 나 가라고? 승준의 목소리에 창윤이 고개를 돌렸다. 승준은 어느새 창윤의 옆이었다. 제 머리카락으로 창윤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툭툭 건들며 장난을 치던 승준의 표정이 갑자기 제법 진지해지더니 창윤의 얼굴 아주 가까이 다가와서는 그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부담스럽다며 시선을 돌려도, 승준은 계속해서 창윤을 제 눈에 담기 바빴다.

입술이 맞닿는다. 짧지만 강하게. 승준은 눈을 한번 깜빡거리더니 다시 입술 붙일 준비를 했고, 창윤은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리에 좀비인지 뭔지 하는 것들도 가득한데 당장 우리 미래 어떻게 할지 얘기도 안 나눠본 이 상황에서 얼렁뚱땅 제 기분 풀어주겠다고 입술 부딪히고 싶진 않았다. 승준의 아쉬움 가득한 표정 같은 건, 모른 척하면 그만이었다. 창윤은 다시 짧게 한숨을 내쉬다가 그래도 그게 싫지는 않았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손을 올려 승준의 뺨을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강아지처럼 축 처진 눈꼬리에 미련이 가득하다. 가득하다 못해 넘치는 게 너무 무거워서, 안 그래도 순해빠진 눈매가 더 울상처럼 보였다. 창윤은 그저 웃었다.

9월 9일

승준이 제 집으로 돌아간 지 이틀 정도 지났다. 정작 없으니 조금 심심한 감이 들어 괜히 의자에 올라가 승준이 사는 윗층을 향해 주먹을 쿵쿵 쳐보기도 했다. 유치하다 유치해. 가라고 그 눈치를 줬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는 심심하다고 이러다니. 창윤은 다시 의자에서 얌전히 내려와 매일 승준이 앉아있던 소파에 제 등을 기댔다. 사실 승준이 그냥 순순히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사랑싸움을 좀 했다. 언제 끊길지 모르는 전기와 수도 등을 이유 삼아 승준에 대한 불안함을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죽은 사람 돌아다니는 판국에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은데, 라는 말이 나옴과 동시에 창윤은 아차 싶었다.

승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가 풀어진다. 그래 그럴 줄 알았지. 너 이게 이유가 아니었잖아. 창윤은 방금 전 승준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그렇게 해석해버렸다. 헤어지자고 하려나? 창윤은 목이 막혀옴을 느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울컥이는 감정에 조금만 목소리가 높아져도 밖에선 무언가 자꾸 깨지고, 부서지고,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나 왜 좋아하냐고, 고작 그거 하나 못 물어봐서 가장 오래된 친구이자, 사랑하는 애인한테 오해만 안겨주고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창윤은 눈을 한참동안 데굴 굴리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냐 됐어. 내가 해결할게.

뭐를?

감정을 해결하겠다고, 아니면 이 상황을 해결하겠다고. 이창윤 니가 무슨 영웅이야? 그런 생각이 다시 밀려드니 그의 불안함이 더더욱 표정으로 새어나왔다. 결국에는 손바닥으로 제 눈을 가린 창윤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유는 말해주지도 않고 말이다. 승준은 그런 창윤의 동그란 정수리를 가만히 보다가 제 두 손을 올려 우느라 붉어진 창윤의 목과 손목을 잡아 끌어내리며 그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입술을 꾹 깨문 채로 눈물만 뚝뚝 흘리는 창윤에게 승준은 애써 밝은 척을 했다. 너 이렇게 얼굴 가리는 건, 어? 부끄러울 때나 나한테 보여주면 되는 거야-. 그 말에 창윤이 더 엉엉 울었다. 승준도 울고 싶었다. 그때의 승준은 무슨 생각을 했냐면,

그는 9월 첫날이 제 이별의 순간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갑자기 머리 들이박은 미친 남자 하나 때문에 이창윤의 손목을 다시 한 번 잡을 수 있어서,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어서, 별 뭣도 아닌 이유를 핑계로 잠에 든 창윤을 밤새 바라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승준은 정말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나 이제 올라갈게. 울지 말고.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 해 알았지? 전화 안 터지니까 그냥 올라오든지, 천장을 막 쳐. 알았어? 걱정 섞인 잔소리에 창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뽀뽀해도 되나. 승준은 현관에 서서 10초 뒤에 벗을 신발을 몇 번이고 고쳐 신으며, 제 시야에 들어온 창윤의 발을 한참이고 힐끔거리며 그런 고민을 했다. 좀 웃긴가. 울려놓고 뽀뽀하는 건. 승준이 끄응 소리를 내며 허리를 쭉 피고는 비장하게 숨을 내쉬었다. 나 갈게? 또 만나?

언제나 사랑 싸움은 물 베기. 문고리 잡고 돌리는 그 짧은 찰나에 창윤이 더 빨랐다. 아쉽네 좀. 입맛 다시던 승준의 가늘게 찢어지는 눈매에 창윤이 얼른 가라며 손짓했다.

9월 15일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 때 뭐할까? 승준이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크리스마스보다 그 전날이 더 중요한 거 알지? 당사자가 모를 수가 없지 않나. 친구로 지내던 때에도 뭘하든 늘 함께 보내던 날이었으니 말이다. 선물 두 번 받고 좋지 않아? 승준의 물음에 창윤이 웃었다. 근데 넌 나한테 두 번 준 적 없지 않아? 창윤이 제 몸을 승준의 어깨에 쿵 부딪히며 일부러 미간을 찌푸렸다. 승준은 입을 꾹 다문 채로 창윤을 힐끔거리다 그를 따라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는 연말 같이 보내는 걸로도 충분하다더니.

계속해서 같이 보내줄 거야?

죽기 전까지 그래줄게.

그래줄게? 당연히 해야되는 거 아니냐?

겹쳐진 손. 닿은 손끝에 정전기가 일었다. 짧게 정돈된 손톱 끝으로 창윤의 검지를 살살 쓸어올리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창윤은 승준만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입술을 스치는 말랑하면서도, 거친 또 다른 온기를 가만히 느끼면서, 이대로 눈을 떴을 때 12월 24일 0시가 되어있기를 바랐다. 늘 당연했던 거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입안으로 먹혀 들어가는 소리. 승준은 집요하게 그 소리를 쫓았다. 여기, 아님 여기? 창윤이 손을 들어 제 눈을 가렸다. 붉은 손마디가 서로 엉키다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게 하나로 뭉쳐졌다. 창윤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마른 침을 삼켰다.

눈을 뜨면 아무도 없는 텅빈 방안. 창윤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보고싶네 좀. 평소에는 별 이유 없이도 잘만 오던 애가, 그날을 계기로 발길을 뚝 끊어버렸단 사실을 창윤은 믿을 수 없었다. 이것봐, 또 나만 좋아하는 거지? 창윤이 또다시 턱을 괸 채로 다리를 달달달 떨다가 결국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문을 열자 보이는 건,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승준이 아닌 카페에서 봤던 그것과 똑같이 생긴 무언가. 응? 그게 제 앞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걸 인지하기도 전에 창윤이 승준을 보기 위해 활짝 연 현관문 안으로 빠르게 달려온 그것이 창윤을 세게 밀치며 덮쳤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모른다. 흥분해서 빨개진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제 가슴팍 위로 뚝뚝 떨어지는 기분 나쁜 색감의 액체가 기다란 막대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는 것. 끄으윽 신음 흘리는 그것 뒤로 승준이 정말 창백해진 얼굴로 덜덜 떨고 있었다는 것. 그뿐이다.

9월 18일

그날 이후로 승준의 창윤에 대한 집착 아닌 집착이 더욱 심해졌다. 그때는 나도 당황해서 대처를 못한 거고, 이제는 충분히 한 판 가능하지. 그 말에도 승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웃어주기라도 바랐는데. 웃을 상황 아니라는 거 물론 잘 안다. 에어컨 바람보다 더 싸늘한 승준의 반응에 창윤만 괜히 눈치보일 뿐이었다. 나는 너 보고 싶어서 문 연 것 뿐이고, 근데 운 나쁘게 좀비 그게 여기까지 올라온 거고. 괜히 헛기침만 했다. 정적만 흐르는 거실에서 이런 소리라도 나지 않으면, 창윤은 정말 숨막혀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때는 정말로….”

“내가 이래서 여기에 있겠다고 했잖아.”

“…내가 뭔 애냐.”

창윤도 안다. 자신의 상황으로 대입했을 때, 승준이 자신을 보겠다고 집 놔두고 뛰쳐나왔다가 그놈들한테 당하기라도 했으면, 그리고 그걸 자신이 발견하게 된다면. 나도 제정신 아니었겠지. 창윤은 손끝을 세워 제 뺨을 몇 번이고 긁적거리다가 코만 훌쩍거렸다. 승준의 옆에 다가가도 찬바람만 부니 뭐 어찌 달랠 방법이 없어 결국 선택한 것이 거리두기였다. 이럴 거면 같은 집에 왜 있어? 창윤의 입술이 삐죽거리다가도 다시 일자를 그렸다.

“나가지 말자.”

“아 근데 이제 슬슬 우리도 나가서 뭔가 좀 해봐야하는 거 아니야?”

“너 죽게? 그럼 나는 니 죽는 꼴 그대로 보고 있으라고?”

“…말을 뭘 그렇게 해?”

“이창윤.”

내가 뭐 말 잘못 했어? 틀린 말 아니잖아. 승준은 정말로 처음 보는 태도로 창윤을 대하고 있었다. 충혈되어서 빨개진 눈, 금방이라도 건들면 툭 눈물방울을 떨어트릴 것 같은 모습에 창윤은 말문이 막힘을 느꼈다. 괜히 소매 끝만 잡았다가 놓았다가 반복하던 창윤이 결국엔 그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이럴려고 너 부른 건 아닌데. 우물쭈물 무어라 중얼거리던 창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승준이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짧아진 저녁에 하늘이 온통 주황빛이었다.

손으로 제 입가를 쓸던 창윤이 조심스럽게 승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승준이 언제 그랬냐는 듯 응? 하고 대답했다. 미안. 창윤은 사과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내가 미안할 일 아니지만, 어쨌거나 너 걱정 시킨 건 맞으니까 미안하다고. 승준은 그런 창윤을 가만히 제 눈에 하나하나 담아보다가 지그시 눈을 감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래도….

이어진 창윤의 말에 승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도 적어도…,

승준이 창윤이 앉은 의자 밑에 가만히 무릎을 구부려 앉아 고개를 들었다.

너 보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

승준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너는, 너는 나 보고 싶은 거 맞냐?! 그동안 내려오지도 않았으면서, 삼일 동안 왜이렇게 눈치 주냐고!

창윤의 손목에 승준의 손바닥이 꽈악 달라붙었다.

너 나 좋아하긴 해?

승준이 멈춰섰다.

나 좋아하긴 하냐고.

9월 20일

창윤은 이틀 동안 앓아 누웠다. 하루는 제 감정을 추스리겠답시고 진정이 안되는 마음을 어떻게든 붙잡고 살다보니 기력이 다 빠져서 일어날 수 없었고, 하루는 눈 떠보니 승준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제 옆에 가만히 앉아있길래 그게 좋아서 잠결에 웃으며 몇번 부비적거리다보니 뭐….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나서 그동안 피해왔던 스킨쉽들을 몰아서 하다보니 몸살이 났다. 좋아하냐고 물어봐놓고 그렇게 혼자 들어가서 하루를 안 나오는 게 말이나 되냐? 승준도 참아온 게 많았던 건지 이것저것 터트릴 게 많았다.

이제는 도로에 차 박는 소리라든가, 이상한 굉음 전부 다 백색소음처럼 들린다. 그치. 주제를 돌리기 위해 내뱉은 말이 승준에게는 꽤 어이없었는지, 그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가만히 팔을 이마에 댄 채 하얀 유리창 너머만 보던 창윤이 찌뿌둥한 몸을 풀어내고는 하, 숨을 뱉어내며 승준의 허벅지에 제 머리를 다시 기대어 누웠다. 제 앞머리를 가만히 쓸어넘기던 승준이 그의 이마에 짧게 입맞췄다.

“대답 듣고 싶어?”

“충분해.”

“안 들려줘도 돼?”

“너가 나 안 좋아하면, 뭐… 우리가 어제 그렇게까진 안했을 거 아니야.”

“그래도 말로 듣는 건 또 다르지 않아?”

“그럼 해주든가-.”

승준은 웃었다. 많이 좋아한다느니, 예전부터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느니 대답은 뻔했고 어차피 고백했던 날 이미 들었던 레퍼토리였기에 창윤은 예전보다 훨 편해진 얼굴로 승준의 대답을 기다렸다. 승준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창윤의 이목구비 곳곳을 보다가 숨을 잠시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안 좋아해.

뭐?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승준의 광대뼈와 창윤의 이마가 세게 부딪혔다. 멍들어도 충분할 정도의 충격에 승준은 턱끝까지 차오르는 온갖 육두문자를 간신히 참아내고 끄응 신음했고, 창윤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그런 승준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예상 밖의 질문인지라, 자신이 아픈 것도 못 느낄 정도의 신선한 충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안 좋아… 안 좋아하는데 그럼 나랑.”

“아니, 끝까지 좀 들어라….”

“너 진짜 뭐, 뭐하는.”

“너 때문에 무드고 뭐고 다 망했어.”

무드고 나발이고, 안 좋아한다며! 창윤의 목소리 끝이 떨렸다. 승준은 계속해서 제 뺨을 꾹꾹 누르다가 확 고개를 들어 창윤을 바라봤다.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그랬어. 승준의 말에 창윤이 갑자기 오소소 돋는 소름을 느끼고 팔로 제 몸을 감싸안았다.

“차라리… 안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진짜 짜증난다 너….”

9월 23일

그 수많은 고민과 오해 끝에 창윤과 승준은 이제야 서로에게 서로밖에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창윤은 승준에게 말했다. 확신이 필요했을 뿐이라고. 그러면서 이유랍시고 덧붙인 게 우리가 이제 슬슬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터전 또는 음식을 챙겨야 하니, 그런 확신이 없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만 주잖아? 라는 것이었다. 승준은 그저 웃었다. 거짓말을 해도 참. 아무튼 창윤과 승준은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고, 그걸 제대로 즐기기도 전에 우선 이 지긋지긋한 곳을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

보금자리를 버리고 떠나는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어젯밤 끊긴 전기로 인해 이제는 무언가 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을 뿐이었다. 그게 헤어질 결심은 아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는 승준이었다. 창윤은 한참 동안 머리를 굴리다가, 얼마전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어느 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었단 기억을 떠올리더니 짝, 박수를 치며 제 계획을 승준에게 하나 둘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승준은 그저 듣고만 있다가 고개만 끄덕였다. 물론 ‘그래 네 말이 다 옳다’ 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 쳐낼 건 쳐내면서, 창윤의 계획에 살을 붙였다.

이런 거 보면 참 잘 맞는 것 같은데 그치? 이미 나간 전기 때문에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둘은 어둠의 대화를 시작했다. 몸정 나눌 때 했어도 충분한 대화를 완전히 모든 정신이 살아있을 때 하려고 하니 둘다 쉽게 집중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동안 맞춰온 세월이 있어 이제는 누가 어떤 숨을 쉬어도, 어떤 제스쳐를 해도 다 알기에 동화되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빨랐다. 창윤은 제 옆에서 쫑알쫑알 다시 자기 할말을 시작하는 승준의 모습을 상상하며 소리 없이 웃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뽀뽀해도 되나.

부시럭 이불 속에서 자세를 잡던 창윤이 옆으로 돌아눕기 무섭게 승준이 덥석 창윤의 손을 잡아왔다. 당황함에 몇번 말을 더듬거리던 창윤이 마른 침을 삼켰다.

좀 덥지 않아?

승준의 사심이 창윤보다 한 수 위였다.

9월 27일

25일에 집에서 나와 가벼운 짐만 챙겨 도로로 나선 지 어연 이틀째였다. 생각보다 속도도 빠르고, 몰려다니는 것도 잦은 그것들에게서 하루하루 살아남고, 살려주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승준은 창윤에게 나오는 것을 후회하지는 않냐고 물었지만, 창윤은 정말 무덤덤한 표정으로 ‘전혀’라 답했다. 하지만 그건 승준도 마찬가지였다. 뭐, 너랑 있으니까 괜찮은 것 같기도 해. 승준의 대답에 창윤이 뒤늦게 웃었다. 집중이나 해. 뛰라고 할 때 뛰고. 알았지?

오래 지내다보니 평소라면 승준이 해야하는 것들을 창윤이 했다. 물론 서로가 주고받긴 했지만, 거리로 나온 뒤로 이제는 승준이 창윤 같았고, 창윤이 승준 같았다. 벽에 숨어 정확한 타이밍을 재는 창윤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승준은 그의 손짓 한 번에 빠르게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다 아주 예전에 자신이 처음 창윤에게 반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거 알아?

뭐를.

난 너가 짐 들고 갈 때 반했었다?

창윤은 또다시 황당하다는 듯이 표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도 갑자기 화르륵 타오르는 귀에 그게 무슨 말이냐며 손을 내저었다. 몰라, 그냥 뒷모습이 좋았나봐. 승준의 애매한 대답은 끝맺음을 정확히 하지 못한 채로 끝이 났다. 짐을 들고 간 적이 있었나 싶다가도 보통 다들 웃는 모습이나, 반전 매력에 빠진다는데 고작 짐 들고 가는 뒷모습이라니… 싶은 생각에 창윤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창윤의 뒷모습을 승준이 지켜보다 활짝 웃었다.

“안되겠다. 너가 앞에서 뛰어.”

“왜?”

창윤은 땀에 젖은 앞머리를 후, 바람을 불어 넘기고는 어깨를 살짝 털었다. 그냥 자꾸 이상한 시선이 느껴지니까, 좀 그래. 그러자 승준이 에이- 같은 반응을 하며 창윤의 등을 툭 밀쳤다. 그냥 하는 소리지 뭐. 내가 설마 창윤이 너 뒷모습만 보고 좋아했겠냐. 빨개진 목과 계속해서 움찔 움찔 올라오는 손. 승준은 그런 것들을 더욱 좋아했다. 말하면 더 곤란해지려나. 상황이 보통 상황은 아니었으니 괜히 창윤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될 수 있다면 민폐 안 끼치고, 오래오래 창윤이랑 살아남고 싶다는 생각? 너무 많이 바라는 건가. 주인 없는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로 잠에 든 창윤을 보던 승준이 마지막으로 주변에 뭐 조심해야할 것은 없나 싶어 그런 그를 두고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다. 저녁이면 그것들도 어디론가 숨는 것인지 이상하다시피 모든 밤이 고요했다. 풀벌레 울음소리 가득한 공터 한가운데에서 무기가 될 만한 것 몇 개를 손에 쥔 채 천천히 몸을 풀던 승준이 갑자기 쩝, 입맛을 다시더니 너무 많은 걸 바라긴 했나보다- 중얼거리며 컨테이너의 문을 살며시 닫았다.

쿵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깬 창윤이 서둘러 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건 이미 온 전신을 파들거리며 또다시 죽어가는 그것과 제 목 한 쪽을 붙잡은 채로 컨테이너에 가만히 기대어 앉은 채로 창윤을 올려다보고 있던 승준이었다.

9월 29일

싫다고. 창윤은 끝내 악을 내질렀다. 목에 칭칭 둘러감은 붕대 사이로 이미 상처는 많이 호전된 상태였지만, 문제는 승준의 변화였다. 이틀만에 넋을 놓을 때가 많아진 그는 가만히 하늘을 보고 있는 시간이, 창윤을 보는 시간보다 더 많아졌으며 손에 힘을 제대로 주지 못하거나, 가끔 타오르는 고통에 걸음을 멈춰세우기도 했다. 그것만 아니면 승준은 평소의 모습과 다를 게 많이 없었다. 창윤은 계속해서 승준을 질질 끌고 다니며 먼저 간 사람들이 갔을 대피 장소로 묵묵히 이동하기 바빴다.

“내가 생각해봤어.”

“야.”

“응”

“내가 니 죽는 꼴 그냥 두고 볼 것 같아?”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라 이승준 제발 좀 그냥 가자고. 그의 손목을 툭 던지듯 놓으며 초조하게 말을 이어가던 창윤이 다시 세게 승준의 팔을 붙든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창윤의 뒷모습만 봐도 그가 슬퍼하고 있단 것을, 승준은 알 수 있었다. 너무 많이 바라지 말 걸 그랬나. 그냥 고백하지 말 걸. 좋아하지 말 걸. 너랑 친구도 하지 말 걸. 승준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우뚝 멈춰 선 창윤이 고갤 돌려 승준을 마주했다.

“너 딴 생각 하지 마라 진짜!”

“안 했어.”

“거짓말도 하지 말라고.”

“…하긴 했어.”

“뭔데!”

승준이 손을 들어 그 거리에서 가장 고층에 있는 빌딩 하나를 가리켰다. 저기 올라가서 길 찾자. 우리 아까부터 계속 같은 곳만 돌잖아.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가 비상계단을 가득 채웠다. 물렸다고 해서 걔들처럼 체력이 갑자기 좋아지고 그러는 건 아닌 것 같다는 말에 지금 그런 말장난할 때냐고 받아치던 창윤이 갑자기 눈물을 터트려서 그들은 옥상으로 향하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창윤은 제 뒤를 따라오고 있는 승준을 계속해서 확인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빨갛게 실핏줄이 선 목, 탁해진 동공. 그런 모습에도 창윤은 공포보다는 슬픔이 더 크게 울컥이며 그를 덮쳤다. 애써 그런 승준을 무시하려고 다시 묵묵히 앞을 보고 계단을 오르던 창윤이 뒤로 손을 뻗어 승준을 불렀다.

“앞으로 와.”

“왜?”

“혼자 있는 것 같으니까.”

“…미안.”

“됐어.”

“미안해.”

“그만 말하고 앞으로 좀 와.”

“창윤.”

너 대체 왜 그러는데! 창윤은 간신히 멈춘 눈물을 또다시 흘리고 있었다. 손등으로 땀인지 눈물인지도 구분 안 가는 물방울을 계속해서 닦아내며 승준을 내려다보던 그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무릎에 제 얼굴을 묻고 숨을 참아내며 울기 시작했다. 창윤의 옆에 승준이 가만히 앉아 그의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툭 건드리다가 애써 씨익 웃으며 창윤을 불렀다.

“왜….”

“부탁 하나만 들어줘.”

“싫어.”

“오늘만 같이 있어줘.”

“싫다고.”

“그러면 크리스마스 전날에 와줄래?”

“내 생일에 니가 와야지 내가 왜 오는데!”

“중간에서 만날까? 너 어디서 올래?”

“…….”

순간 승준의 손등이 창윤의 입술에 닿았다. 승준은 제 손바닥에 세게 제 입술을 짓누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손목을 잡아내리려는 창윤의 힘에도 끄떡 하나 하지 않고 가만히 그의 앞에서 창윤의 숨소리를 듣고 있던 승준이 큭큭 웃었다. 하루만 있다가 가. 알았지? 창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9월 30일

창윤은 문고리를 잡았다. 승준은 혹시 모른다며 집에서 가져온 끈으로 제 다리 하나를 묶은 채 옥상 구석에 쌓아올려져 있던 타이어 위에 얌전히 걸터 앉아 그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계속해서 머뭇거리는 그의 행동에 승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고는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슬픈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았으면, 넌 괜찮은 거 아니냐는 그의 질문에 승준은 단호하게 고개만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창윤은 깊은 한숨을 내뱉더니 갑자기 옥상 문에 제 등을 쿵 기대고는 멀찍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승준을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넌 내가 정말 널 두고 갈 거라고 생각해?”

“응.”

“너는 진짜 나를 모르네.”

“잘 알아. 그니까 가.”

“…….”

창윤은 손을 뒤로 보낸 채 문고리를 살며시 잡아 돌렸다. 끼익, 기분 나쁜 쇳소리에 창윤과 승준이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날 보자 창윤아. 담백한 작별인사였다. 애인한테 하는 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시원시원한 마지막 인사. 창윤은 끝내 승준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옥상을 벗어났다. 이상할 정도로 더웠던 9월이다. 승준은 제 옷을 가볍게 펄럭거리면서 잘 보이지도 않지만, 혹시라도 보일까 싶어 타이어를 가볍게 밟고 올라서서 건물의 입구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창윤을 기다렸다.

부는 바람에도 쉽게 휘청거리는 승준의 몸. 바람결에 흩날리는 앞머리, 창백한 얼굴과 꽉 다문 입술. 나는 사실 네가 내 앞에 있다가 나를 부르며 뒤돌아보던 그 순간이 좋았던 거라고. 가기 전에 말해줘야지, 다짐했던 것이 승준의 속 안으로 삼켜들어가기 시작했다. 승준은 그렇게 한참 동안 도시의 거리 위의 차를 세어보고, 가로수도 세어보고, 창윤의 모습이 보일 때까지 그의 이름을 일부러 밝게 중얼거렸다.

난간 위를 가볍게 토도독 튕기던 손의 움직임이 점점 잦아들었다. 승준은 마지막 숨일지도 모르는 것을 더욱 깊게 들이마시며 창윤만은 더 오래 가을의 공기를 마셨으면 했다. 눈 앞이 흐려졌다. 찾아오겠다고 했으니, 믿는 수밖에 없지. 승준이 타이어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위로 젖혀올렸다.

회색빛 탁한 동공에 눈물이 빠르게 차올랐다. 우리 처음에 봤던 그 사람도 울었을까? 승준은 창윤이 떠난 그곳을 가만히 바라보다 아예 꾸욱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곤 또다시 들려오는 소름끼치는 쇳소리가 전부 제 상상이었으면 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도, 그리고 완전히 온몸을 감싸안는 익숙한 온기까지 전부. 승준은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러면 모든 게 다 사라질 것만 같아서.

뜨거운 옥상 바닥 때문에 등이 타오르는 기분이 들어도 얼굴에 닿는 차가운 공기가 승준을 슬프지 않게 만들었다.

사랑한다는 말 못해준 거 기억나서 다시 왔어.

창윤은 제 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아릿함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승준의 대답이라는 걸 알아서였을까. 그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체온을 제 온몸으로 가득 안아 느끼면서, 이대로 눈을 떴을 때 12월 24일 0시가 되어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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