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G

[현제유현] Pothos

백업


성현제는 욕심이 많은 사내였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가 욕심 많은 사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그가 인간을 닮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반반한 낯짝을 가진 채로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하는 행동들과 위압적이고 화려하며, 견줄 수 없는 그의 능력은 인간이 아닌 인외종인 것 같다며 일반인들은 말했다.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쓴 인외종. 예를 들자면… 괴물. 성현제는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평범하고 연약한 ‘일반인’들에게는 마수들을 상대하는 헌터들이 대단하다고, 동시에 위험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다. 하물며 그 헌터들 사이에서 으뜸가는 자신은 얼마나 그렇게 여길까. 답은 뻔하게 정해져 있었다.

일반인들은 환상을 가진다. 오로지 그들의 머릿속에서만 나온 허구가 가득한 환상. 헌터들은 인형이 된 것처럼 도마 위에 올라서 환상으로 잔뜩 꾸며진다. 다정하고 달콤한 말의 장식과 날카로우면서 상처입히는 말의 장식들로 꾸며진다. 그것은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였다.

성현제를 꾸미는 장식들은 화려하고 화려했다. 동시에 무서움, 두려움, 공포… 그런 부정적인 장식들이 가득하였다.


‘세성 길드장은 정말 멋있어! 어쩜 저렇게 여유롭게 마수들을 상대하는 거지? 정말 대단해!’

‘성현제는 우리와 다르겠지? 뭐랄까. 저렇게 웃고는 있지만 실상 무료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조자 같지 않아? 모든 걸 다 가진 유일한 사람 같기도 하잖아. 다 가지고 있기에 욕심 따위 없고,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사람.’

‘쯧… 저런 놈이 회까닥하면 미친놈이 되는 거야. 웃는 낯짝에 속지 마라!’

‘아무리 대단해도 헌터들은 괴물이야, 괴물. 특히 세성 길드장, 성현제는 괴물 중에 가장 위인 우두머리고.’


성현제는 그런 말들에 무감각하게 반응했다. 인간이란 망가지기 쉬우면서도 이기적인 존재였다. 그들이 자신의 처지가 되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것들이기에 이기적으로 굴었다. 분명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손짓 한 번에 망가질 인간들이 태반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포함된다는 것을. 하지만 대외적으로 가장 평이 좋은 그 성현제가 ‘결코’ 그렇게 나오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믿음 아래에서 지껄이는 말이었다. 물론 그들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므로, 성현제는 멀리서 내다보는 관조자의 태도를 보이며 그들의 말을 무시했다. 공들여 쌓은 탑을 망가뜨릴 수는 없었다.


성현제에게 감정이란 쾌락과 비슷했다. 살아가면서 필요하지만 동시에 필요하지 않은 것. 무감각하고 지루한 일상 아래에서 환기시켜줄 수 있는 것. 하지만 이 세상은 성현제에게 너무도 지루하고, 지루했다. 던전은 그에게 흥밋거리가 되었지만, 감정을 불어넣지는 못했다. 간혹 호적수라 여겨질 수 있는 던전의 보스를 만나게 된다면 잠시간은 잔잔한 수면과 같은 머릿속이 들끓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죽이고, 죽이면서 느껴지는 흥분. 코끝을 아리는 짓은 혈향과 귓속을 파고드는 비명. 그 순간만큼은 치밀어 오르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토해냈다. 그렇지만 지속할 수는 없었다. 손끝에 남는 얼얼함, 무언가 끓어오르는 감각. 힘을 사용한 이후에 찾아오는 감정을 터트릴 수가 없었다. 짧은 시간의 괴리는 허탈함을, 허망함을, 분노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도 모든 것을 억눌렀다. 실낱같은 얄팍한 인간성이, 그를 억제했다. 결국에는 터트릴 수 없는 감정은 쓸모없는 뇌의 작용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그의 삶 처음으로, 감정을 터트릴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났다. 그는 그 존재에게 욕심을 가졌다.


“할 일도 없습니까?”

한유현은 갑작스레 길드장실로 찾아온 성현제를 보고선 퉁명스레 말했다. 그가 방문하기 전까지, 한유현은 몹시 기분이 좋았다. 저녁에 함께하자는 한유진과의 약속을 기다리며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현제의 방문으로 한유현은 직감했다. 아… 망했다.

“도련님을 보는 것이 내 할 일이지.”

성현제는 반반한 낯짝으로 능글맞게 웃으며 한유현을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차마 뱉어날 수가 없었기에 얼굴로 욕을 하는 한유현이 귀여울 따름이었다. 포식자처럼 사나운 눈을 하고 있지만, 제게는 고양이 같았고, 찌푸려진 미간은 꾹꾹 눌려서 펼쳐주고 싶었다. 한유현이 아무리 사납게 굴어도 성현제에게는 귀여울 수밖에 없었다.

“얼굴로 욕해도 소용없다네. 오히려 귀여워서 더 빠져버릴지도 모르지.”

“미쳤습니까?”

“도련님에게 미치긴 미쳤지.”

성난 표정이 순식간에 풀렸다. ‘저기 미친놈이 있어요.’ 라는 표정을 지은 채 성현제를 바라보는 한유현은 성현제가 저주라도 걸려왔나 싶었지만, 늘 저랬던 사람이라 한숨을 쉬고 말았다. 수 초간 이런저런 생각이 한유현의 머릿속에서 퐁퐁 피어날 때, 성현제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가만히 한유현을 보고 있었다. 한유현의 표정만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별다른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보기만 해도 그는 만족스러웠다.


성현제는 한유현으로부터 감정을 얻고, 감정을 터트렸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동족의 눈을 하고 있으며, 동족이지만 착한 동생이라는 가면을 쓰고 구는 모양새가 퍽이나 귀여울 수밖에 없었다. 그 가면이 오로지 ‘한유진’이라는 F급 헌터에게만 적용된다는 것은 부가적인 즐거움이었다. 날을 세우고 달려드는 한유현을 볼 때는 자신도 모르게 호승심이 피어올랐고, 자신이 전력을 다해도 망가지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한 순간부터 억눌렀던 감정이 꽃 피우기 시작했다. 한유현은 질리지 않는 존재였다. 대체로 일관적인 태도를 비추었지만 가끔은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을 했고, 간혹 보여주는 눈빛은… 성현제의 음심을 자극했다. 그때문일까, 그는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 채 한유현에게 욕심을 품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욕심을 알게 된 순간부터 늘 고민했다. 팔을 꺾고, 다리를 부숴서 자신의 품 안에 집어넣는다면 이 욕심이 채워질까. 그가 사랑하는 것들을 망가뜨린다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그는 한유현의 세계를 파괴하고 싶은 충동에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지금과 같은 한유현의 모습은 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미소 짓는 한유현, 화를 내는 한유현, 짜증을 내는 한유현, 자신만 볼 수 있는 얼굴의 한유현…. 그와 연인이 된 이후로 크고 작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색달랐으며, 독과 같았고, 빠져나올 수 없었다. 마치 무저갱에 빠진다면 이런 기분일까. 성현제는 생각했었다. 고작 이 충동에 휘둘려 달콤한 독과 같은 모습이 아닌, 좌절하거나, 포기하거나, 분노만을 표출하는 한유현을 보는 것은 달갑지 않았다. 분명 자극적이고 그의 욕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 테지만, 고작 잠깐일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성현제는 인내하는 것을 잘했다. 억제하는 것도 훌륭하게 할 수 있었다. 그를 만남으로 억누르던 감정을 터트릴 수 있었지만, 어두운 충동을 억누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꽤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닌가. 성현제는 그렇게 생각했다.


“데이트나 할까?”

“오늘은 안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칼같이 돌아오는 거절의 말에 성현제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에게 동물의 귀가, 특히 개의 귀가 달려 있었다면 축 쳐져 있을 거라 한유현은 직감했다.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유현은 알고 있다. 저 얼굴 뒤편에는 드러낼 수 없는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신의 연인이지만 성현제는 늘 알기 어려웠다. 숨기는 것도 많았고, 거대한 존재감 아래에서 곧 부서질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늘이 아닌 날은 된다는 말이겠군. 그럼 내일은 어떤가?”

“아마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 내일 보지.”

성현제는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방문한 용건을 해결했으니, 이만 세성으로 돌아갈 차례였다. 오늘 함께하지 못하는 건 아쉬우면서도 내일 함께할 수 있다니, 내일이 기다려졌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발을 옮겼다.

“성현제씨.”

“더 할 말이 남았나? 나야 좋지.”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약하지 않습니다.”

성현제는 멈춰 섰다. 문을 나서기 전, 한유현은 나직이 말했다. 솔직히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한유현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결과 성현제에게 건네는 말은 자신의 입이 제멋대로 토해낸 말이었다.

“아니… 무시하십시오. 조심히 들어가세요.”

성현제는 그를 바라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금 다급하게 길드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는 의아하게 성현제의 뒷모습을 바라봤지만, 이내 업무를 마저 처리하기 시작했다. 한유진과의 약속에 늦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유현은 모를 것이다. 자신도 모른 채 던진 말이 성현제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한유현은 사랑을 알고 있다. 삶의 평생을 사랑받으며 자라왔고, 그 사랑은 한유현이 S급 중에서도 특이한 존재라 여겨지도록 만들었다. 사랑을 알고 있는 한유현은 사랑을 흉내 낼 수가 없었다.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기에, 사랑의 무게를 알고 있기에.

성현제는 사랑을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랑을 모른다. 사랑을 몰랐었던 성현제는 사랑을 흉내 낼 수 있었다. 타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사랑을 아는 척 흉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한유현을 통해 가지게 된 것이 사랑이었고, 그 사랑은 성현제에게 낯설었다. 생애 처음으로 가지게 된 감정이었다. 느리게 알아가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어두운 면모를 한유현에게 숨겼다. 자신도 모르게.

한유현은 성현제의 어두운 부분을 직시했다. 성현제는 한유현을 통해 깨달았다. 성현제가 한유현의 세계를 부수려 들어도 한유현의 세계는 부서지지 않을 것이다. 한유현은 그의 생각 이상으로 견고했고, 호락호락하게 굴할 상대가 아니었다. 그가 선만 지켜준다면, 한유현은 성현제를 향한 마음은 여전할 것이다. 성현제가 한유현을 생각하고, 깊게 사랑하는 만큼, 방법이 다를 뿐 한유현도 성현제를 생각하고 깊게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성현제는 깨달았다. 제 삶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욕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대라고.





* 포토스Pothos

갈망과 애욕의 신. 이성을 향한 성적 욕망과 심적인 갈망을 동시에 상징함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