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지홍전

청지홍전

동젠 잼젠

주님.

 

제 인생을 주관한다셨던 주님께서 제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마음껏 괴로워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셨다면 아마 오늘밤이겠지요. 지금 제 곁에는 눈물을 닦아 주고 울음을 달래 줄 이가 없습니다. 그들이 어디에선가 나와 같은 것을 위해 빌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믿는 신은 달랐으나 기도의 본질은 같았을 따름입니다. 저는 우유부단하며 미약한 자라 제 마음이 가는 길을 잘 모릅니다. 붉은 것이 인도하는 대로 걸어왔으나 덜컥 푸른 것을 사랑해 버린 까닭입니다.

 

주님.

마당에 흩뿌려지던 처절한 푸른색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는.

나의 붉음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요.

 

자비롭고 긍휼하시며 가장 낮은 곳을 굽어보셔 사랑하시는 주님. 지금껏 저를 살린 것은 팔 할이 그 아이입니다. 태어나게 한 것은 주님의 뜻일진대 살린 것은 그 아이입니다. 다정한 음성이 저를 일으켰고 다시 십자가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제가 길을 잃었다가 당신 앞에 무릎 꿇고 돌아온 어린양 됨은 하나부터 열까지 그 아이의 사역입니다. 다시 일어나서 걷게 했습니다. 멍든 무릎으로 기게 했습니다. 이를 악물고 잠에 들게 했습니다. 목구멍 안으로 끼니를 밀어넣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을 붙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를 살렸습니다.

그러니, 살려주세요.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주님 듣고 계시지요. 굳센 손을 뻗어 제가 아닌 그 아이의 손을 잡아주세요. 눈물로 고해 올리는 기도의 방법을 그 아이는 알지 못합니다. 그저 우는 저를 달래는 법밖에 모르는 이입니다. 저는 싫습니다. 그 아이 없인 죽기도 싫고 살기도 싫습니다. 천국이든 천당이든 열반이든 그 아이를 버리고 갈 수 없습니다. 아시죠. 실은 당신이 아니라 그 아이를 붙들고 눈물 쏟아 기도해 온 걸 아시잖아요. 불온하고 맹랑한 제게 화를 내실진대 그 아이는 안 됩니다. 그 아이는 제 전부요 제 힘이요, 감히 제 신입니다. 꺾인 무릎을 돕는 목발입니다. 저를 위해서 파랑을 기꺼이 감수하는 빨강입니다. 그 아이와 함께한 제 일생 동안의 하루하루는 평생을 바쳐 갚아야 할 빚입니다. 그 아이가 제게 준 것은 충성이었습니다. 애정이었습니다. 심장이 타들어가도록 애절한 보좌였습니다. 꼭 한 번은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아 줬어야 할 마음입니다. 제가 사랑해줬어야 할 사람입니다.

 

지금 동이 트니 아무래도 이것이 마지막 기도가 될 것 같습니다. 잡은 손 위를 겹쳐 지탱해 주시옵고 주께서 주관하사 악을 조준하실 것을 믿습니다. 저희를 향한 화살은 전부 과녁을 빗겨가게 도와주세요. 그래서 저희가, 저희를 버린 나라에서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보란 듯이 살게 해 주세요. 살아 있게 해 주세요.

 

주님.

오늘은 우리의 죽음이 예견된 날입니다.

 

제게 용기를 주시사 살게 하시고,

혹여 죽는다면 함께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웠어요.

이동혁과 이제노, 그리고 나재민.

 

청지홍전靑之紅傳

 

 


 

1866년.

 

새벽기도는 진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느리게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해가 떴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예배당 안을 감싸안았다.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빨갛고 파랗고 노란 아침 햇살이 느리게 슬금슬금 비쳐든다. 새벽 공기가 새어 들어오는 텅 빈 예배당.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은 하나뿐이다. 넓은 강단 앞에 눈을 내리감은 채 그림처럼 고요히 무릎을 꿇고 앉은 하얀 소년.

 

십자가가 새겨진 교단과 풍금, 그리고 그 뒤로 늘어선 두 줄의 교회용 장의자들 위로 길게 빛그림자가 어렸다. 한쪽 면을 통째로 터 전창을 내 둔 덕에, 예배당 안을 꽉 채운 신비로운 빛깔의 햇살은 어디든 가리지 않고 손을 뻗어 먼지 쌓인 구석까지를 비췄다. 물론 소년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도화지에 물감을 칠하듯 희끄무레한 옆얼굴 위로 서서히 노란빛이 번졌다.

“……,”

햇살로 잔뜩 적셔진 눈꺼풀을 천천히 밀어올린 제노가 볼에 엉망으로 번진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사위는 고요했다. 그 침묵을 뚫고 묵직한 노크 소리가 텅텅 울렸다.

“들어와.”

꿇었던 무릎이 저려 허벅지를 두어 번 두드린 제노가 나직이 대답했다. 작다 싶은 목소리를 용케 들었는지 조심히 문이 열렸다. 가무잡잡한 얼굴의 소년이 예배당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하얀 천으로 이마를 둘러 질끈 동여매고서 헐렁한 삼베바지와 팔 소매를 걷어올린 채였다.

“……,”

동혁이 무거운 예배당 문을 탕 닫고는 바지에 대충 손을 문질러 닦았다. 세숫물을 뜨다 말고 종소리를 듣고 바로 뛰쳐나온 탓에 두 손에 물기가 덜 말라 있었다. 고개를 쭉 빼 강단 앞을 살핀 동혁이 종종걸음쳐 예배당 안으로 들어왔다. 저기 멀리 색색깔로 비쳐드는 햇살의 한가운데 앉은, 동그랗고 까만 제노의 뒤통수가 보였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사박, 하고 카펫을 밟는 소리가 울렸다. 두 줄로 길게 늘어선 장의자들 사이 복도로 발을 들여놓은 동혁이 두어 걸음 걷다 말고 허리를 굽혀 헐어빠진 짚신을 벗어들었다. 제노가 동혁을 돌아보다 말고 무너지듯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풀썩 앉았다. 오랜 시간 무릎을 꿇고 있었던 탓에 쥐가 났는지 종아리를 콩콩 치며 인상을 찌푸린 제노의 얼굴에 눈물이 흐른 흔적이 선명해, 동혁이 저도 모르게 미간을 구겼다. 익숙한 모습이지만 사실 죽어도 익숙해지지 못할 것 같았다.

 

제노는 기도할 때면 늘상 울었다.

 

도련님은 매사에 뭐가 그렇게 절박하고 절실하신 거예요. 대체 뭣을 그렇게 열심히 빌길래 그렇게 울음이 나오는데요. 속상한 어투로 튀어나오려는 타박을 억지로 목구멍 너머로 도로 밀어넣은 동혁이 바닥에 주저앉은 제노에게서 두어 걸음쯤 앞에 멈춰섰다. 손을 뻗어 새까맣고 부들거리는 머리칼을 두어 번 헤집자 말간 얼굴이 올려다보며 헤실 웃는다. 눈꼬리는 지나치달 정도로 깊었고 접히는 애굣살은 통통했다. 가자 동혁아. 조곤조곤 이르는 목소리가 울음으로 약간 잠겨 있다. 동혁이 또다시 허리를 굽혀 제노가 벗어 둔 옥빛 태사혜(太史鞋)와 버선 두 짝을 집어 들었다. 한 손이 신발들로 가득 찼다.

“일어나실 수 있으세요.”

“좀 잡아 주라. 다리가 아파.”

코를 킁 먹는 하얀 얼굴이 축축하니 말갰다. 언제 울었냐는 듯 얼굴엔 늘상 그렇듯 얕게 미소가 번져 있다. 또 우셨어요 에이그 쯧쯧. 손을 내민 동혁을 살짝 흘긴 제노가 까맣고 선 굵은 손에 자기 손을 겹쳤다.

“읏차.”

부축을 받고 기우뚱 일어선 제노가 걱정스런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는 동혁의 시선을 무시하며 절뚝절뚝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겨놨다. 내쉬는 숨결 앞에 얕은 한숨을 깔며 팔에 걸쳐 들고 온 곤색 비단 두루마기를 제노 어깨에 걸쳐 준 동혁이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바깥에 해가 완전히 떴는지, 예배당 복도에 깔린 카펫 위에 창살처럼 드리운 스테인리스 그림자가 색색깔로 빛났다. 먼지가 고요히 부유하는 허공에 손을 뻗은 제노가 한 걸음 성큼 걸어 파란 그림자를 눌러 밟았다. 하얀 발등이 파랗게 물들어 빛났다. 동혁은 뒤돌아보며 웃는 제 도련님의 얼굴을 천천히 더듬으며 마주 웃었다. 또 한 걸음 성큼. 밟은 건 역시 파란색이다. 가만히 제노의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던 동혁이 제노를 따라 조심스레 파란 그림자 위에 올라섰다. 일종의 놀이였다. 제노는 다 크고 나서도 가끔 이렇게 아이같은 짓을 하곤 했다. 거기 충실히 맞춰 주는 건 늘 동혁의 몫이었다. 제노가 한 걸음 뛰면 동혁도 한 걸음 따라 뛰었다. 하얗고 까만 발들이 파랗게 물들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앗, 너 빨간 거 밟았어.”

“그러게요. 울 도련님 되게 잘하신다. 다리가 길어서 그런가.”

“너두 길잖아.”

“그건 글쵸.”

“바보.”

돌아보는 얼굴에 어김없이 웃음이 퍼진다. 파란 햇살 아래 선 얼굴이 묘하게 빛난다. 동혁이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문득 제가 발을 딛고 선 곳이 빨간 햇살 아래임을 깨닫는다. 빨간색으로 잠식된 발에 드리운 아지랑이가 느릿하게 일렁인다. 어두운 피부가 노을 너머로 사라지는 선박처럼 파도치는 붉은 햇살 아래서 빛났다. 빨강. 동혁이 인상을 찡그렸다.

 

도련님은 파랗다. 나는 빨갛다.

 

그래서?

 

도련님은 도련님이다. 나는 노비 새끼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동혁이 제노의 뒤통수를 끈질기게 좇으며 또 한 걸음 뛰었다. 햇살을 받은 발등이 따뜻했다. 이번엔 제대로 파란색 위였다. 제노의 흔적을 눌러 밟은 발바닥은 더 따뜻했다. 가끔 이동혁은 제 도련님에 의해 난 길들을 간절히 따라 걸었다. 발자국이 난 곳만 따라 밟으면 이제노의 끝까지 따라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양반과 천것이라 태어난 높이는 달라도 같은 공기 정도는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노가 저와 비슷한 인간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높이 있는 이제노가 안쓰러워서 그랬다.

 

발등이 물드는 색에만 집중하다 보니 문 앞에 닿는 건 금방이었다. 먼저 도착한 제노가 뒤돌자,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저 천천히 걷기만 하던 동혁이 얼른 마지막 남은 파란색 그림자 위에 뛰어올랐다. 제노가 만족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변성기가 지나 청년의 목소리에 가까워지고 있는 낮은 목소리였지만 어쩐지 동혁의 달팽이관을 타고 흐르는 소리는 아이의 그것 같았다.

“아까 너 빨간색에서 삐끗했지?”

“그랬을 걸요.”

“되게 너 닮은 색깔 밟았다.”

“……, 그러게요.”

대답하며 피식 웃은 동혁이 제노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손을 내밀자, 제노가 맨발을 제 손바닥 위에 익숙하게 얹는다. 버선과 태사혜를 차례차례 신기는 내내 제노는 간지럽다는 듯이 발을 온통 비틀어 댔고, 그게 장난에 지나지 않음을 아는 동혁은 이따금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며 제노를 올려다봤다. 내려다보는 얼굴이 또 어린애마냥 웃고 있어 타박도 못 했다.

“다 됐어요. 아오 도련님, 발 좀 가만히 좀!”

“흐흥. 미안.”

제노가 바닥에 발꿈치를 두어 번 꾹꾹 누르더니 손을 뻗었다. 강아지 칭찬하듯 동혁의 머리칼을 두어 번 헤집어 놓았다. 아까 주저앉은 제 머리칼을 헤집던 동혁과 똑 닮은 모양이었다. 따뜻한 손길에 동혁이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당겨 내렸다.

 

추울 것 같애.

예 밖에 많이 추워요.

정말?

 

두루마기 자락을 꼭꼭 여민 제노가 예배당 문을 당겨 열자, 바닷바람의 짭짤한 향이 코끝에 훅 끼쳤다. 제노의 젖은 얼굴에 살짝 씁쓸함이 감돌았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동혁의 눈길이 제노의 뒤통수를 쓰다듬듯이 훑었다. 정말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예수라도 된 것마냥, 열여덟의 소년은 작고 좁고 짠내나는 제 고향을 여느 사람들보다 훨씬 더 사랑했다. 문을 나서며 동혁은 작게 혀를 찼다. 가여운 사랑이고 애착이었다.

 

예배당에서 사이마당을 가로질러 쭉 걸어야 집의 현관문이 나왔다. 높은 나무대문을 밀어 연 제노가 넓은 마당에 깔린 평상을 지나쳐 마루로 올라섰다. 동혁이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문고리를 돌려 열자 집 안에서 따뜻한 공기가 훅 뿜어져 나와 제노를 덮쳤다.

“조반 자시게 얼른 세수하고 나오세요.”

“응. 동혁아 나 수건 새 걸로 좀 갖다 주라.”

“예 잠시만.”

동혁이 재바르게 현관문을 닫고 나갔다. 신을 벗어 두고 안으로 들어선 제노가 도톰한 두루마기를 벗어들며 유리창으로 흘끗 밖을 내다봤다. 날랜 걸음으로 평상을 돌아 마당을 가로지른 동혁이 담장 한켠 빨랫줄에 걸린 마른수건을 두어 장 내려 팔에 걸치는 모습이 보였다.

“……”

제노가 새삼스레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몇 점의 성화(聖畵)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최후의 만찬, 광야의 금식기도, 머리 뒤로 후광이 진 예수가 십자가를 진 모습. 귀가 닳도록 들었던 성경 이야기들을 그대로 옮긴 그림들. 수려한 미간을 슬쩍 찌푸리며 도로 고개를 돌린 제노가 가슴팍을 콩콩 두드렸다. 왜인지 모르게 속이 막힌 기분이 들었다. 체증 같은 갑갑함은 집안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더더욱 심해졌다. 꽤나 넓은 거실, 아늑한 갈색 소파, 탁자 위에 쌓인 낡은 성경책들. 가장 안쪽에 자리한 아버지 목사님의 방, 그 옆에 붙은 제 방. 제노가 십팔 년 동안 먹고 자며 커 온 곳은 이 섬에 단 하나 존재하는 양식 주택이었다. 넓다란 곳간을 개조한 예배당이 딸린 이문덕 목사의 집. 즉, 그 양아들 이제노 도련님의 집. 등 뒤에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제노가 뒤돌았다. 내밀어지는 수건을 받아들며 고마워, 중얼거리자 부리나케 잔소리가 따라붙는다.

“찬물 말고 뜨신 물로 씻으세요, 밖에 날씨 추우니까. 옷두 단디 여미고 나오시구요. 감기 걸리시면 큰일납니다 진짜.”

정작 그렇게 말하는 이동혁 볼은 찬바람에 터서 잔뜩 발갰다. 웅, 하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제노가 수건을 만지작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 앞에 서 거울을 보자 눈물자국이 얼룩진 얼굴이 눈 안에 가득 담겼다. 못났다. 중얼거린 제노가 동혁이 끓여다 적당히 식혀 두었을 세숫물에 두 손을 담갔다. 따뜻한 기운이 손끝을 타고 오르자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당연하던 일상이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들은 늘 섬의 이름을 입속으로 조용히 곱씹을 때 찾아왔다.

 

고란도.

 

대륙에 혹처럼 달린 조선에게서도 철저히 고립된 땅, 고기잡이와 뻘질로 먹고사는 족속들이 모여 이룬 고요한 고을. 좁고 넓고 축축하고 건조한 땅. 바다 냄새 풍기는 섬. 일본이니 미리견이니 영길리니 하는 타국들의 거센 입김도 고란도 위를 덮은 짙은 안개를 뚫지는 못했다. 고립은 곧 독립과도 같았고, 때마다 조세를 걷으러 들르는 말단 관리 말고는 벼슬아치 하나 파견되어 오지 않는 이곳에 눈에 보이는 권력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해서 섬사람들은 나랏님보다도 더 높다는 이를 사랑했다. 기실 순진한 그들은 부처든 천주든 예수든 다들 뭔가 하나씩을 독실히 믿으면서도 자기네들이 무얼 믿는지 잘 구분하지 못하곤 했다. 좁은 섬 작은 마을 안에 야소쟁이고 천주쟁이고 중놈이고 판을 쳤다. 목탁 두들기는 소리와 찬송가 부르는 소리와 묵주 굴리는 소리가 한 동네서 복작복작 나곤 했다. 그 갈피 잃은 신앙의 한가운데 이문덕 목사의 교회가 굳건히 존재했다. 사람들을 모으고 신실하게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를 부르고 헌금을 걷고 헌금을 걷고 헌금을 걷었다. 그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종류의 권력이었다. 이제노 도련님은 바로 그 흉포한 십자가의 한가운데서 자라났다. 제 삶의 기반을 통째로 짊어지고 걷느라 어깨가 욱신거렸다. 누군가를 등쳐먹고 사는 삶을 천성적으로 혐오해 온 탓이었다.

“……,”

제노가 어두워진 안색을 물기와 함께 꾹꾹 닦아냈다. 면경을 들여다보자 오른쪽 눈가에 찍힌 점이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눈물점을 보니 도련님 앞으로 우실 일이 많으시겠어요. 세상 어느 여인이 우리 도련님을 이리 울리려나. 어렸을 적 들었던 이야기. 장난스런 큰스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각났다. 제노가 손끝으로 도톰한 점을 살짝 매만졌다. 매일 눈물을 쏟게 만드는 것이 차라리 여느 여인이었으면 좋겠다. 그저 사내의 감정 따위로 아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삶을 두고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했다.

 

 

-

 

 

한복 자락이 기둥을 스쳤다. 봄의 초입이라곤 하나 여즉 쌀쌀했다. 말개진 얼굴로 현관문을 닫은 제노가 신을 대강 구겨 신고 마당의 대청마루로 향했다. 마루에 미리 깔린 방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 부엌일을 돕는 열 살배기 노비 아이가 쪼르르 아침상을 들고 왔다. 조기 한 마리에 김치, 나물국. 가시를 발라 주려 소매를 걷어붙이고 제 옆에 앉는 아이의 목울대로 침이 꿀꺽 넘어가는 걸 본 제노가 피식 웃음짓고는 한 박자 빠르게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엥, 도련님……!”

“쉬이. 걸리면 너나 나나 경을 치잖겠니.”

사실 지나치게 일찍 일어난 탓에 입맛이 없었다. 해서 제노는 아이의 입에 손수 가시를 발라낸 생선 살점을 한가득 물려 주곤 저 스스로 숟가락을 쥐었다. 네가 바르는 살이 맨날 내 입으로만 들어가니, 네 먹고 싶어 쓰겠니. 배고픈 건 나보단 너인 듯한데. 조곤조곤 이르는 순한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었다. 다정한 도련님 얼굴을 마주하고서 꼬질한 얼굴을 붉히며 몸둘 바 몰라하던 아이는 우물거리며 감사하다 인사하고는 얼른 짚신을 꿰어 신고 마당을 뛰어 행랑채로 향했다. 땟국물 앉은 바지의 엉덩이 위로 삼베 댕기가 팔락였다. 제노가 후후 웃었다.

“귀여워 울 막둥이.”

평상마루에 앉은 채 아이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은 제노가 길게 하품을 했다. 겨우 동이 트기 시작했다. 눈을 내리깔자 눈 밑으로 그림자가 짙게 졌다. 몇 숟갈 더 깨작이다 말고 마당을 직직 쓸며 제 옆을 지나던 동혁을 불러세웠다.

“동혁아 아버님은 아직 기침 전이시니.”

“예 도련님. 어젯밤부터 몸이 안 좋으시다 그러던데요.”

“그래 깨우지 말라시더냐.”

“예.”

제노가 고마워, 하고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도로 밥그릇에 시선을 두었다. 반찬 가리지 말고 싹 다 집어 드시요, 생선가시 조심하시고. 훌떡 넘기지 말고 꼭꼭 잘 좀 씹어 드시고요. 부루퉁하니 이어지는 말들이 귀에 익숙하게 감겼다. 그제야 제노의 눈꼬리가 말랑하게 풀렸다. 아 왜 또 잔소리인 것이야. 제노가 짐짓 울상을 지어 보이자 동혁이 피식 웃었다. 다 드러난 팔다리가 건강하게 가무잡잡했다. 너두 위에 뭣 좀 입구 다녀. 저는 허구헌 날 이러고 다녀서 괜찮아요. 의미 없는 걱정들이 밥상을 넘어 오갔다.

“그리고 그 저.”

“응 왜.”

“감사합니다.”

동혁이 꾸벅 제노에게 허리를 숙였다. 도로 고개를 든 표정은 무뚝뚝했다. 뭘 또 새삼스럽게. 동혁에게 실없이 웃어준 제노가 숟가락을 밥에 푹 꽂았다. 그래 놓고 살짝 눈치를 봤다.

“내가 준 거니까.”

“예, 알어요.”

“애 혼내지 말어.”

동혁이 대답 없이 대비를 고쳐 들곤 힘을 줘 마당을 싹싹 쓸며 멀어져 갔다. 머릿속이 복잡해 보였다. 도련님 입으로 들어갔어야 할 생선살을 입안에 한가득 물고서 어쩔 줄 몰라하던 제 동생을 생각하고 있을 게 뻔했다. 맨날 투닥거리긴 해도 막둥이라면 죽고 못 사는 이동혁을 알기에 제노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이동혁은 이 목사 댁의 애기노비였다. 태어나기를 이 집에서 태어나 십팔 년을 길러졌다. 부엌에 딸린 여노였던 어미는 막둥이를 낳다 죽었고 아비는 막둥이가 두 살 되었을 무렵 팔려갔다. 부모가 옆에서 하나하나 떠나가는 동안 동혁은 내내 의연했다. 쪼그만 게 저보다 더 쪼그만 동생을 입히고 씻기고 재워야 해서였다. 그러나 동혁은 부모의 빈자리를 완벽히 채워 주는 형은 못 되었다. 막둥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제노의 몸종으로 짝붙여진 탓에 내내 제노를 챙기느라 바빴던 탓이다. 도련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팔 번쩍 드셔요. 저고리 고름 혼자 맬 수 있으세요? 네에 발 끼우시고요. 도련님 조반 자시게 나오세요. 도련님 세숫물 온도 괜찮아요? 도련님 도련님 도련님. 그 점이 서러웠던 막둥이는 어려서부터 종종 제노를 질투했었다. 여섯 살쯤 되었을 무렵, 제노 저녁을 챙기려 부엌으로 향하던 동혁을 붙들고 와앙 발을 구르며 울어버린 적도 있었다.

 

- 형아 미워.

 

나는 형아 동생 아니지. 형아는 맨날 도련님만 챙기구. 미워어어엉. 마당에 드러누웠다. 떼쟁이 어린아이들이 늘상 그렇듯 숨넘어가게 울었다. 제노는 당황해서 그 자리에 굳었다. 자신을 향한 노골적인 원망을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본 탓이었다.

 

- 도, 도련님 죄송해요 잠시만요.

 

새하얗게 낯빛이 질린 열네 살의 동혁은 제노의 눈치를 보며 막둥이를 번쩍 안아들고서 행랑채로 다다다 달렸다. 잠시 뒤에 제 형에게 따끔하게 혼이 났는지 눈물자국이 엉망으로 번진 얼굴로 나온 막둥이는 제노를 보자마자 결국 또 소심하게 이잉 눈물을 터뜨렸다. 평상에 앉아 입술을 뜯으며 초조하게 기다리던 제노는 앞뒤 일 다 제치고 막둥이부터 끌어안아 달랬다.

 

- 막둥아아.

 

왜 울어어. 울지 마. 도련님이 미안해. 막둥이는 잉잉 징징 울다가 지쳐 제노의 품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한참 뒤에 울음을 참느라 새빨개진 눈으로 행랑채에서 나온 동혁은 그 꼴을 보고 기함했다. 아이고 세상에 도련님. 애 이리 주세요. 졸린 눈을 하고서 제노 품에 파고들어 있던 막둥이가 부시시 고개를 들더니 알아듣지 못할 말로 투정 부리며 동혁을 향해 팔을 벌렸고, 아직 어렸던 동혁은 제 동생을 가뿐하게 받아 안았다.

 

- 도련니임 죄송해요. 저녁 드셔야 되는데.

 

제노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그만 입맛이 떨어졌다. 나 안 먹어두 돼. 배 안 고팠어 사실. 너 오늘은 막둥이 데리구 행랑채서 자구 와. 진짜야. 헤실헤실 웃으며 그렇게 안심시켜 두 형제를 보냈다. 불안해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편안해진 표정으로 막둥이를 고쳐 안는 동혁과, 그 품에 안겨 세상 편하게 잠드는 막둥이를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한결 편했다. 그 둘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해 줬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때부터였다. 제노는 풍족하고 따뜻한 삶이 미안했다. 저와 같은 나이임에도 철저히 다른 삶을 사는 동혁에게 미안했다. 잘못된 신앙이 뿌리박혀 저와 제 아비를 구세주처럼 떠받드는 섬사람들이 가여웠다. 고란도는 철저히 그 연민을 먹고 자라 이제노를 품었다. 누에고치 같다. 단단하고 안락해서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었다. 저를 키워 준 아비는 제가 나비가 되지 않길 바랐다. 제노는 아무래도 싫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동혁이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헌신하는 삶. 무언가를 보듬어 주는 삶. 받기만 하는 인생에서 탈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나마 이제노의 존재가 쓸모 있게 느껴지는 순간은 섬사람들의 애정 어린 시선을 온몸으로 느낄 때였다. 저와 제 아비를 믿고 살아가는 섬사람들을 두고 달아날 순 없었다. 매정하게 젖먹이를 떼 놓고 도망친 제 부모 같은 인간이 되긴 싫었다.

제노가 숟가락을 암 문 채 동혁의 동그란 뒤통수를 물끄럼 쳐다보다가 시선을 옮겨 제 등 뒤로 닫힌 현관을 흘끗 돌아봤다. 이층 양옥집은 새벽빛을 받을 때면 푸르고 차갑게 빛났다. 문득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제 살 집은 이리 으리으리하게 지으면서 딸려 있는 행랑채는 여즉 개화 전의 조선만 같았다. 제노가 김이 폴폴 올라오는 소고기 무국 국물에 밥을 말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얀 손등이 쌀쌀한 새벽 공기에 발갛게 텄다. 숟가락질이 힘없었다.

 

“동혁아.”

 

나 절에 가고 싶다.

 

제노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미 멀어진 동혁이 들었을 리 만무했다. 제노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날짜를 가늠했다. 어제가 토요일이었구나. 그럼 벌써 오늘이 일요일이네. 미간을 찌푸린 제노가 부러 밥을 한 숟갈 가득히 퍼 입에 우겨넣었다. 국물 때문에 입안에서 밥알이 온통 미끄러졌다. 후루룩 삼키려던 걸, 꼭꼭 잘 좀 씹어넘기라는 동혁이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리는 바람에 급하게 멈추고 턱에 힘을 줘 밥을 씹었다. 수십 번을 반복해 우물거리다가 제노는 문득 울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일요일, 저녁예배가 있는 날이었다.

 

 

-

 

“조반은.”

“먼저 들었습니다.”

“앉거라. 밤에 통 잠을 못 자서 머리가 깨지겄구나 야.”

오전 열 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제노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족히 작은 문덕이 쿵쿵거리며 부엌으로 들어와 거칠게 의자를 뺐다. 동혁이 희끗희끗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문덕의 정수리를 곁눈질하며 식탁 위에 놓인 찬 그릇을 가지런히 정렬했다.

 

이제 막 개화가 시작된 조선에서 서양식 식탁과 의자는 보기 드문 종류의 것이었다. 촛대, 액자, 소파 전부 그랬다. 조선의 땅끝 섬에 황실에도 없을 법한 물건들이 즐비하단 소문은 돈 많은 작자들의 입맛을 자극했고, 제노가 열다섯이 될 때쯤엔 양장에 단발을 한 신사들이 심심찮게 고란도에 들러 문덕의 집을 방문하고는 했다. 이문덕은 그걸 즐겼다. 십여 년 전에 세례를 받구서 목사가 됐지요. 그때 연이 닿았던 양이 선교사 나으리들 통해서 이리저리 물건들을 들여오곤 하고요. 집에 잘 어울릴 것 같으다며 헐값에 넘기십디다. 보시다시피, 주택도 신식이라 크흠 큼. 몸에 딱 맞는 양장을 하고서 신사들을 이끌고 집안을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는 작은 체구는 자부심과 과시욕에 꽉 차 있었다. 자랑스러운 표정, 치켜든 턱. 괴랄한 종류의 취미였다. 동혁은 들뜬 문덕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저 망할 영감탱이, 저걸 갖다 전시하는 데 돈 한두 푼 쓴 것처럼 씨부려 쌓네. 실제로 집안의 서양식 물건들은 값이 꽤나 나갔으므로, 섬사람들이 낸 헌금의 대부분이 그리로 지출되었다는 사실은 동혁도 제노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동혁이 손에 한아름 들고 있던 책들을 식탁 위에 올려놓곤 한 걸음 물러서자 제노가 문덕의 맞은편에 의자를 빼 앉았다. 문덕이 큼, 하고 목을 가다듬으며 퉁퉁한 손가락으로 팔락팔락 성경 책장을 넘기다 말고 제노의 책들을 넌지시 넘겨다봤다.

“요즘은 뭐 보고 있냐.”

“그냥저냥 하던 거 계속합니다.”

“늘기는 좀 느는 것 같어야?”

“많이 모자랍니다.”

“너가 잘혀야지. 양학도 잘하고 국학도 잘하고…. 육지 것들은 경험치도 못헌 것을 해보고 살어야지. 큰 사람이 되어야 혀. 그려야 애비 맘이 놓인다.”

큰 사람이라. 아버님이 되라 하시는 큰 사람이라 함은 대체 일본놈입니까 양놈입니까, 혹은 둘 다입니까. 제노가 떠오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채 대답 없이 고개를 한 번 가볍게 숙였다가 들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짙은 속눈썹이 광대 아래에 그늘을 만들었다. 조용히 오늘 공부할 내용을 찾아 책을 펴는 제 양아들의 수려한 얼굴을 끈덕진 시선으로 면밀히 들여다본 문덕이 곧 만족스런 눈빛이 되어 수저를 들었다. 부엌 문가에 서 있던 동혁이 잔뜩 불만스런 표정으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바람도 없는데 밥그릇 옆에 놓인 성경이 얇은 책장을 바르르 떨었다. 해는 벌써 중천이었다.

 

제노의 일과는 단순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조반을 먹고 나면 곧 아비가 깨어났다. 문덕은 느지막이 일어나 조반과 중반을 겸한 식사를 하며 성경을 읽었다. 신실한 신앙의 힘이라기보단 습관이었다. 제노는 아비 앞에 앉아 공부를 했다. 문덕과 친한 양이들에게 받은, 외국 책들을 언문으로 번역해 엮은 책자를 외울 듯이 읽어댔다. 서학과 동학, 천문학과 양학이 뒤섞인 사이언스라는 학문, 아라비아 숫자가 적힌 온갖 수식이 빼곡한 매쓰라는 학문 따위를 외우듯 배웠다. 우리말 우리글 꼬부랑말 할 것 없이 언어를 익혔다. 그러다 지겨워지면 제 아비마냥 성경을 펼쳤다. 십팔 년째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답습하듯 읽어내렸다. 순한 한 마리 양처럼 가끔 건네는 아비의 당부에 예, 예, 대답했다. 목사 이문덕을 이루는 것은 팔 할이 허세와 권력욕이었고, 제노는 자신 또한 그 욕망을 채워 주기 위한 수단 중 하나임을 알고 있었다. 귀에 거슬리는 당부들은 흘리듯 잊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물론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저보다 더 열불을 내는 게 이동혁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제노는 문덕의 그늘 아래 살면서 세상을 경험한 적이 많이 없었으나, 제 아비가 비위를 맞출수록 까는 패가 많아지는 인간이란 사실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해서 양아비의 눈치를 살살 봐 가며 바깥세상을 알음알음 훔쳐배웠다. 따지자면 문덕은 조금 초점이 엇나간 안경알이었으나, 다행히 금 간 곳은 없는 덕분에 보일 것은 그럭저럭 잘 비쳐 보이는 편이었다. 오늘도 다를 바는 없었다.

 

-!

 

뭔가가 깨부서지는 소리가 부엌에 날카롭게 울렸다. 목사가 주먹으로 상을 쾅 내려친 덕분이었다. 식탁이 미약한 진동으로 흔들렸다. 깜짝 놀란 제노의 어깨가 튀었고, 동혁이 곧바로 손을 뻗어 찬장 옆에 걸려 있던 행주를 움켜쥐었다. 부엌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 깨진 조각들 앞에 곧장 무릎을 꿇고 앉았다. 바닥에 널브러진 그릇 조각을 주워담는데 등판에 못마땅한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껴졌다.

“……,”

무시했다. 어차피 이제노가 나선다고 해서 나아질 신세는 아니다. 동혁이는 노비 새끼니까. 이 집 사람들 중 그걸 맘에 안 들어하는 건 이동혁이 수발 드는 이제노 도련님밖에 없었다. 까만 팔뚝이 거침없이 휙휙 움직이며 도자기 조각을 치우고 바닥에 흐른 부추김치 국물을 행주로 훔쳐낸다. 익숙해 보이는 품이 맘에 안 든다. 제노가 시선을 박았던 동혁에게서 애써 눈을 들어, 앉을 때부터 뭔가에 화난 듯 씩씩거리더니 결국 제 분에 못 이겨 상을 내리친 제 아비를 가만히 쳐다봤다. 잇새로 씹어뱉듯이 나오는 말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였다.

“예선사 주지가 또 여우새끼를 들였댄다.”

“또요.”

“역적의 아들인 것 같던데, 미친 게지. 부처 등 뒤에 숨어 염불만 외면 다 용서되는 줄 아는 놈들이여 그건. 더러운 꼴은 우리만 다 보는구나 야. 치가 떨린다.”

아드득 이 가는 소리에 제노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아버님을 밤새 괴롭힌 두통과 악몽의 원인이 저것이었구나. 대답 없이 눈을 내리깔자 문덕은 엄한 이동혁에게 패악을 부렸다. 너 이눔 시끼, 빨리빨리 치우지 뭐하고 자빠진겨! 예 예 목사님 죄송해요 잠시만요. 제노는 익숙하게 문덕의 지랄발광을 받아 삼키는 동혁의 동그란 뒤통수를 내려다봤다. 미안해. 아비를 대신한 사과는 속으로나 건넸다.

문덕은 절을 미워했다. 동혁을 데리고 뻔질나게 절 앞마당에 드나들던 제노에게 자주 매를 들었다. 서럽게 훌쩍이는 어린 제노를 무릎꿇려 앉혀 놓고 십계명 중 첫째를 입이 닳도록 반복했다. 하나님이 말이여, 자기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혔어. 순 우상 숭배란 말여, 불상에 대고 절하는 거 그거! 그럼 아버님 우리가 십자가에 대고 절 하는 건요. 것두 따지고 보면 불상이나 진배없습니다. 어느 정도 머리가 굵고 나서 제노는 늘 그렇게 반박하고 싶었다. 제 양아비가 거품 물고 쓰러지는 꼴을 보기는 싫었기에 입을 다물었을 따름이다. 어쨌든 문덕은 부처 찾다 지옥 간다는 말을 염불 외듯 달달 외고 다녔다. 일단은 섬에 하나뿐인 사찰이 사람들에게서 꼬박꼬박 받아가는 시주 때문에 예배당 헌금이 줄어든다는 게 증오의 표면적인 이유였다. 제노는 크면서 그 미움이 단순한 금전의 문제가 아님을 눈치로 배웠다. 예선사는 빈방이 꽤나 많은 절이었고, 주지는 조선의 사람을 사랑했다. 놈이든 년이든 역적이든 밀정이든 가리지 않고 예선사의 뒷방으로 숨어들어 목숨을 보전했다. 이문덕 목사는 육지에서 배 타고 들어오는 높은 나으리들과 종종 겸상했고, 술을 대접했고, 가끔 전송길에 용도 모를 금전을 보탰다. 머리를 자르고 양장을 한 그들은 보통 일어에 능하거나 영어나 노국어에 능했다. 문덕은 기우는 조선의 흐름을 대담하게 거스르는 중이었고, 예선사 주지는 남은 물살을 끌어모아 전진하는 중이었다. 사찰과 교회가 한 섬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하기엔 문덕의 뒷배와 척을 진 자가 그 절간 안에 너무 많았다.

“……,”

제노가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었다. 국화차의 쌉싸름한 향이 입안에 퍼졌다. 제노는 이 이야기에서 절에도, 주지스님에도 딱히 관심 없었다. 거기 숨어든 여우새끼에 관심 있었다. 이번엔 대체 누굴까. 역적의 아들. 아들이라면 아마도 나만큼 어릴까. 지금 시대에 역적이라면……, 강대국의 뜻을 거슬렀던 것인가. 외세의 압박에 맞섰다가 처형당한 부모를 둔 아이. 그렇다면 의인의 핏줄이 아닌가. 절 안의 사람들에 대한 공상은 늘 엉망으로 시작돼 아름답게 끝났다. 늘 붙들고 사는 책은 제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고, 이 작은 섬에서 깨달을 수 없는 많은 것을 알게 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나라 돌아가는 꼴을 뻔히 알아버린 이제노는, 아비가 죽도록 미워하는 얼굴 모를 인물들을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었다.

“야 이놈아 상 물려라. 에이 거 씨부럴 것, 속이 답답해서 원.”

문덕이 씩씩대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부엌을 나가는 짧둥한 등판에 대고 예에 목사님, 하고 길게 대답한 동혁이 슬쩍 고개를 들어 제노의 눈치를 살폈다. 저가 사랑해 마지않는 도련님 낯빛이 심각해진 것을 본 동혁이 부러 식탁 밑까지 행주를 디밀었다. 따라 들어간 머리통으로 강아지 새끼마냥 제노의 무릎을 부볐다. 순간 푹 터지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씹어 삼킨 제노가 식탁 아래로 슬쩍 손을 내렸다. 둥실하고 복슬한 머리칼을 재빨리 살살 쓰다듬자 손 아래에서 동혁이 쿡쿡 웃는 게 느껴졌다.

“동혁아 고만하고 올라와.”

“어차피 냅둬도 이따 제가 치울 건데요.”

“응 그래…,”

 

움찔.

반사적으로 뒤로 빼려던 제노의 손을 동혁이 잡아챘다. 하얀 귓바퀴가 순식간에 발갛게 달아올랐다. 야아 너 뭐해. 말끝이 길고 축축하게 늘어졌다. 동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입에 문 제노의 검지손가락을 좀 더 조심스레 핥아올렸을 뿐이다. 제노가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남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손으로 누르고 있던 책장이 차라락 넘어갔다. 저릿한 감각이 손부터 뻗어나와 온몸으로 번져 갔다. 식탁 아래, 제노의 발치에 아예 자리를 잡고 무릎을 꿇은 동혁이 뼈가 도드라진 도련님의 손목을 쥐고서 머리를 움직였다. 정성스레 혀로 핥았다. 제노가 다급하게 중지 손가락으로 동혁의 턱을 밀었다. 그만해애. 칭얼대는 목소리에 열감이 가득 찼다. 동혁은 손쉽게 그걸 낚아채 제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아. 탄성이 터졌다. 제노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도련님의 두 손가락을 문 채 식탁 아래 발치에 무릎을 꿇은 노비. 의자에 등을 기댄 도련님 등 뒤로 비치는 한낮의 햇살. 부유하는 먼지. 고조되는 제노의 숨소리. 그걸 따라 허공을 유영하는 동혁의 의식. 아득했다. 동혁아아. 의미 없는 호출이 머리 위에서 길게 늘어졌다. 동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도련님을 어떡하면 좋지 정말. 죄스러운 욕구가 아랫배에서 들끓었다. 제노의 손끝에 쪽 입을 맞춘 동혁이 식탁 밑에서 기어나왔다. 제노의 눈꼬리에 고인 눈물을 무심한 손길로 훔쳐주고는 물컵을 집어든다. 허리춤에 걸려 있던 깨끗한 손수건을 빼들어 물에 적셨다. 제노가 앉은 의자 옆 발치에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은 동혁이 손수건 걸친 손바닥을 내밀었다.

“손 주세요.”

“으응.”

하얀 손수건 위에 제노의 손이 올라온다. 민망하게도 검지와 중지만 발개져 있다. 동혁은 뼈마디 도드라진 손을 온통 꼼꼼히 닦아냈다. 제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아주 박박. 제노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동혁의 정수리를 묵묵히 내려다보다 시선을 돌렸다.

 

동혁아.

 

나지막한 호출에 동혁이 재깍 고개를 들었다. 왜요 도련님. 제노가 하릴없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나 절에 가고 싶어.”

“……,”

“갑자기 그러는 거 아냐 아까부터 그랬어어.”

아이가 투정 부리듯 하는 말투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느슨해졌다. 동혁이 안 돼요, 하고 엄하게 대답하며 입바람을 후 불어 제노의 손에 남은 물기를 말렸다. 제노가 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도로 척척 책을 펼치더니 글자에 고개를 박는다. 동혁은 손수건을 겹쳐 접으며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 한켠의 빨래 바구니에 행주와 같이 던져 넣으며 상념에 빠진다. 절. 안 가본 지 일 년이 넘었던가. 아니 족히 이 년은 되었던가. 제노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칼을 잡아 나뭇가지를 쳐내며 지름길을 트던 일이 까마득했다.

 어린 날의 기억이었다.


 

 

 

가끔, 이제노는 파랬다.

 

꼭 햇살을 받지 않아도 느껴지는 빛깔이 있다. 이제노는 새벽의 여명 같은 푸른색이었다. 문득 제노를 바라보던 시선 끝에 이채가 툭 걸릴 때면 어김없이 그런 순간이었다. 하얀 도화지 같은 피부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푸른색으로 물들곤 했다. 덕분에 동혁은 새벽 닭울음을 듣고 부시시 일어나 창밖을 볼 때, 어스름을 뚫고 마당 구석 우물로 걸어가 물을 긷고 허리를 펼 때, 찬 새벽 공기가 옷자락을 파고들어 몸이 부르르 떨릴 때 문득문득 제노를 떠올렸다. 차갑고 위태한 빛깔. 하얗고 희미한 도련님. 동혁은 아침마다 제노와 닮은 공기를 마시며 물지게가 어깨에 파고드는 감각과 함께 짚신을 직직 끌고 부엌으로 향한다. 팔뚝에 오른 소름을 쓸어내리고 솥에 양동이째 물을 들이붓는다. 쭈그려 앉아 아궁이에 장작을 쑤신다. 지푸라기에 불을 옮겨 붙여 바닥을 달궈 올린다. 수면이 떨리고 열기가 올라올 때쯤이면 늘 종소리가 울렸다. 그러면 세숫물을 대야에 옮겨 담아 집 안에 들여놓고 종종걸음쳐 예배당으로 향한다. 어슴푸레한 새벽빛을 뚫고 예배당 문을 열면 늘 저만치서 파랗게 물든 도련님이 젖은 얼굴로 저를 말끄러미 돌아보며 앉아 있었다.

 

- 동혁아 너는 예수님을 믿니.

- 믿어야죠, 명색이 목사 댁 노빈데요.

- 거짓말인 거 다 알어.

- 근데 왜 물어보셔요.

 

툴툴대는 동혁에게 제노는 비밀 얘기 하듯이 그랬다. 나도 명색이 목사 댁 도련님인데, 난 내가 예수님 믿는지 잘 모르겠어. 동혁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제노라면 용서할 수 있었다.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애가 무슨 짓을 했건 간에, 그 누구라도 이제노를 벌할 순 없었다. 조물주는 그 애에게 이미 큰 죄를 지었고 이제노는 그걸 여덟 살 무렵에 깨우쳤다. 부모의 온정을 그리워한 시간보다 낳아 준 이를 원망한 시간이 더 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죄 지은 듯이 살아가는 건. 남이 지은 죄를 제 것처럼 끌어안고 사는 이제노 인생은 정말.

 

 

정말, 그건 정말.

 

인간의 역사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이제노 도련님의 생의 배경은 태어나기 전, 꽤나 오랜 옛날로 거슬러 가야만 설명이 가능했다. 1832년 덕국에서 건너왔다던 선교사란 작자는 조선 땅 서해안 끝자락에 박혀 있는 두 섬 고란도와 고대도 일대를 한동안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바닷가에 거처를 정하고, 금단추가 달린 까만 옷을 입은 양이에 대해 마을 사람들은 모여 떠들었다.

 

- 육지서 군수랑 목사까지 만나고 들어온 자래유.

- 아유 그래봤자 그치도 맹 똑같은 양놈이여. 가까이하믄 못써.

- 아니 성님 보소, 돈이 많다잖여요, 돈이. 계순이가 그 집 청소 봐준당키로 이틀인감만 들갔다가 봤다 안 하요.

- 뭐를 또.

- 지폐가, 지폐 뭉치가 아주 딸라로 있더랍니더. 카이네 적당히 사귀고 사리고 하시이소. 아무한테나 친절하긴 하대 글쎄.

 

그 소문을 섬겨들은 게 이가 문덕이었다. 타고나길 집안이 나름 뼈대 있어 좁은 섬에서도 양반 행세 깨나 해먹던 이문덕은 꽤나 머리가 좋았다. 곧장 칼인가 도끼인가 하는 그치의 집으로 찾아가 문을 두들겼다. 야소인가 천주인가 하는 하늘님의 교리를 알려달라 청했다. 푸른 눈의 양이 선교사는 저가 모시는 이는 천주 말고 예수라고 일러주며 그를 받아들였다. 성경 편 지 삼 일만에 세례받았다. 눈물 짜고 회개한 척 연기했다. 대번에 목사 칭호가 붙었다. 전도의 씨앗이 잘못 뿌리내려진 거였다. 삼 년 후, 선교사가 고란도를 떠나 그 옆 고대도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을 때 이문덕은 비로소 고란도 유일의 기독교 목사가 되었다. 허울이 좋아 목사였지, 창고를 보수해 창문을 갈고 의자를 놓아 만든 예배당 말고는 번듯한 교회도 장로회도 없었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선망했다. 개중 더러는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문덕은 근엄하게 그들을 받아들였고,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내는 헌금을 야금야금 받아먹었다. 예수라는 작자가 진짜 있다면 경을 치고도 남았을 노릇이었다.

 

아들 이제노는 1848년, 이문덕 목사의 신식 양옥 건축 공사가 끝난 날 대문 앞에서 주워졌다. 백일도 안 된 어린아이를 누가 강보에다 싸매 버린 거였다. 좁은 섬임에도 끝내 부모가 누군지 알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문덕은 배냇짓하는 갓난아기를 들어올려 거두며 큰소리를 땅땅 쳤다. 죄받은 부모가 버린 자식이니께 곧 내 자식이여. 니들 시방 하나님께서 무어라고 가르치시는지 알어? 이웃을 사랑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여. 이제부터 이놈은 내 아들이여. 즉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여 알어? 모르겠으면 예배당 나와가 회개하고 천국 가라니까잉. 서민들은 양반이자 목사인 이문덕 앞에서 그저 머리나 조아렸다. 그리고 순진하고 멍청하게도 그 말을 믿었다. 하나님이 제 아들이라 하셨응께 도련님은 귀하신 분이여. 근디 그런 도련님을 거두신 거이 문덕 나으리니까네 그분도 귀하신 분이여. 그래서 이문덕과 이제노는 딱히 손쓰지 않고도 그냥저냥 평이하던 마을의 서열계층 맨 위에 우뚝 군림하게 됐다.

 

그러니까,

 

아들도 그냥 아들이 아닌 거였다. 이문덕에게는 멍청한 섬놈들이 제 말을 듣게 만들 구실로, 섬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사자 정도로 취급받던 이제노 도련님은 무려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를 대롱대롱 달고 자랐다. 도련님 도련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램서요. 멋져요. 동네 어린애들은 이제노가 열여덟 먹으며 클 동안 길거리에서 노상 놀리듯이 종알거렸다. 얘들아 그건 율법대루 하면 예수님이야. 내가 아니구. 아무리 일러 봤자 먹힐 리 만무했다. 덕분에 코찔찔이 시절부터 이제노를 챙기던 이동혁은 매년 속이 뒤집어졌다. 잡것들아 꺼져. 꺼져 꺼져 꺼져. 괜히 동네 꼬맹이들에게 발길질하며 분풀이나 해댔다. 동혁아 그러지 말어. 제노가 말리면 그제서야 진정했다.

 

그래.

그러니까.

 

이 높이가 짜증난다는 거였다. 높이 있는 감일수록 떨어졌을 때 제일 흉하게 깨지는 거니까. 어린 동혁이 보기에도 이제노가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곳의 높이는 터무니없이 높았다. 제노는, 이 꼬맹이는, 고란도 섬사람들에게 있어 이미 예수 이상의 존재였다. 그 무게를 버텨낸다는 건 미치지 않고서야 버거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하얗고 예쁜 울 도련님을 어따 대고 지금.

이동혁은 이제노를 뭉개진 감 따위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네나 제노나 요즘은 절에 안 가지야?”

 

땅딸막한 체구가 턱 아래에서 부산스럽게 왔다갔다했다. 하나도 위협적이지 않은 외양을 가진 주제에 묻는 어투가 꽤나 딱딱하다. 동혁은 문덕이 건네는 먼지 앉은 도자기 그릇들을 고쳐 들며 마찬가지로 딱딱하게 대꾸했다. 예, 목사님. 일절 없습죠. 문덕이 장식장 문을 탕 닫고는 동혁을 돌아봤다. 동혁은 자연스레 시선을 문덕의 발끝으로 내렸다. 똑바로 쳐다보는 눈깔이 건방지다고 몇 차례 욕을 들어먹은 역사가 있어서였다. 가는 은테 안경 너머로 욕심에 뒤룩뒤룩 살찐 눈이 의심의 빛을 담았다.

“네가 알아서 잘 하겄지만서도.”

“……,”

“늘 기억해야 할 것이야.”

지옥불에 떨어지기 싫으믄 혼자서든 둘이서든 절간 출입하지 말어 알겄냐. 동혁이 대답 없이 꾸벅 인사하고는 몸을 돌렸다. 불쾌함이 발끝부터 타고 올라와 머리를 덮쳤다. 문을 닫고 나오자 여전히 식탁 의자에 앉은 채 불안한 표정으로 이쪽을 돌아보는 제노가 보였다. 극노한 제 아비 방에 갑자기 불려갔다 나온 몸종이 걱정되긴 할 터였다. 눈이 마주쳤다.

“……,”

동혁은 대뜸 콧구멍 평수를 늘렸다. 잠시간 멍하던 제노가 곧 푹 웃음을 터뜨렸다. 동혁이 씨익 웃어 보이며 부엌으로 걸음했다. 부엌 한켠 설거지 바구니에 그릇들을 담그고는 제노 옆에 붙어선다. 익숙한 위치였다. 그제야 안심이 된 듯 제노가 동혁의 배에 옆통수를 기댔다. 동혁이 손을 들어 제노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살살 쓸어넘겼다. 눈을 감은 제노가 웅얼거렸다. 동혁아 아버님이 뭐라시니. 또 너한테 괜히 성질 냈지.

“아니요, 별 얘기 안 했어요. 그냥 깨먹은 그릇 새 거 주셨고 그리고.”

“그리고 뭐.”

“또 절간 가믄 지옥불에 떨어질 거라던데요.”

푸시시 하고 제노의 입술 사이로 한숨 새는 소리가 들렸다. 동혁이 흐흐 웃으며 머리칼을 가지고 손장난을 쳤다. 어디 하루 이틀입니까. 저는 괜찮아요. 차피 예수도 안 믿는 거. 능청스레 덧붙이자 휘적휘적 팔을 휘둘렀다. 가슴팍을 퍽 얻어맞은 동혁이 어억 하고 과장되게 아픈 척을 하자 제노가 부러 엄한 목소리로 그런다. 동혁이 너 이놈. 예수님을 믿어야지. 동혁은 샐샐 웃으면서 맞장구쳤다. 예 예 그래야죠. 아우 제가 신앙이 모자라 갖고. 회개합시다 주님께 돌아갑시다 아아멘 아메엔. 제노가 결국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두 신실하지 못한 어린양들에게 예수가 농담거리에 불과한다는 사실을 문덕이 안다면 거품 물고 기절할지도 몰랐다.

 

아비가 절을 미워하는 만큼 도련님은 절을 사랑했다. 집에서 큰길을 따라 내려가 뒷산을 타고 조금만 올라가면 예선사가 있었다. 여덟 살, 처음 짝지어진 그날 제노는 동혁의 손을 잡고 뒷문으로 살그머니 빠져나와 절로 달렸다. 8월 중순, 한여름이었다. 동혁은 뼈대 얇은 도련님의 손에 붙들려 뛰던 어린 날의 일탈을 생생히 기억한다. 궁금해서 못 참겠어. 아버님이 맨날 욕하시던 데. 우리, 절에 가 보자 동혁아. 잔뜩 상기된 그런 말들이 설렜다. 갓 꼬아 매무새가 덜 된 얇은 짚신 탓에 발바닥이 쓸려 아팠다. 한낮의 햇살로 달궈진 길바닥이 뜨거워 걸음을 멈칫거렸다. 속도가 더디자 답답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 제노는 발을 동동 구르며 스읍 습 침을 먹던 저를 보고서 단박에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선 망설임 없이 등을 대고 쭈그려 앉았었지. 동혁아 업힐래? 업혀 업혀 얼릉. 아뇨 아뇨 도련님 제가 어뜨케 도련님 등에. 아냐 업혀어 나 힘세. 안돼요 도련니임 진짜. 이동혁 너어 혼날래. 순하기 그지없는 얼굴에 부러 엄한 표정을 짓던 꼬맹이. 거기에 또 더럭 겁을 집어먹어 도련님 등판을 냅다 붙잡고 매달린 어린 몸종. 제노는 그대로 끙차 일어서더니 걸었다. 몇 발짝 걷더니 뛰었다. 기실 어렸을 땐 동혁보다 키도 덩치도 컸었다. 맹랑하기 이를 데 없는 도련님은 팔랑대는 제 몸종을 업고서도 별로 힘들이지 않고 다다다 내달렸다. 어린 이동혁은 입을 다물었다. 멍하니 달랑달랑 매달려 가다가 제노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정수리를 스쳐지나는 바람을 느끼며 살내음을 들이맡았다. 어린애 특유의 분내와 땀내가 섞여 훅 끼치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뇌리에 각인된 도련님의 향.

 

절 마당에선 큰스님께 시원한 차를 얻어마시고, 아기동자들과 어울려 소꿉놀이며 법경 구절맞추기 따위로 노닥거렸다. 그렇게 반나절을 보내고는 도로 집으로 뛰었다. 발이 여즉 욱신거려 꼭 같은 모양으로 도련님 등에 업혔다. 되돌아가는 길에 부는 바람은 올 때마냥 향긋했다. 나중에 절에 다녀온 것을 안 목사님은 불같이 화를 냈다. 도련님을 잘 보살피지 못한 동혁이 놈을 불렀다. 마당 한가운데 데려다 놓고 혼쭐을 냈다.

 

- 이 돼먹지 못한 놈의 새끼가 감히 어딜 데려가. 아무리 앞뒤가 없어도 그렇지 불상 갖다놓고 절하는 델 겁도 없이. 목사 집 노비새끼가 잉? 느 새끼는 지옥 갈 거여. 죽어서 지옥불에 떨어질 거여잉.

그때 제노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겁에 질려 흙바닥에 납작 엎드린 애기 이동혁을 가로막고 섰다. 아버니임 동혁이는 잘못 없어요. 오늘 저랑 첫날이잖아요. 얘 발두 다쳤단 말예요. 이미 한 번 제 아비에게 크게 혼나고 난 터라 잔뜩 눈물 번졌던 얼굴에 또다시 물기가 번졌다. 이잉 울었다. 맹하니 순한 얼굴이 다시금 눈물로 범벅되자 목사님은 저도 모르게 성질을 죽였다. 둘 다 들어가 디비 자라며 문 쾅 닫고 들어갔다. 이제노의 눈물은 원인이 무엇이었건 간에 옆에 있던 사람을 잔뜩 미안하게 만들곤 했다. 그래서 동혁이는 도련님을 냅다 끌어안고 달랬다. 거리낌없이 제 품으로 파고드는 몸을 받아 안으며 아기 달래듯 몸을 가만가만 흔들거렸다. 먼저 일탈하자 제안한 제노는 울면서도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았고, 되려 도련님이 하잔 대로 했다가 역풍 맞은 동혁은 잔뜩 죄진 듯 굴었다. 우습게도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도련님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만 뚝. 뚜욱.

동혁아아 나 매 맞은 데 아퍼.

어뜩해. 얼른 들어가요 약 바르게.

 

그게 이동혁과 이제노가 기억하는 첫 탈주의 기억이다. 아름답다기엔 꼬질하고 서러웠지만 꽤 달콤했다. 한데, 동혁은 가끔 궁금했다. 문덕의 말을 꼼꼼히 되새겨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었다. 지옥불에 떨어질 죄를 졌나 내가. 지옥 가려면 사람을 죽이거나 나쁜 짓을 하거나 누굴 때리거나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 내가 여태 살면서 누굴 때린 거는 말 안 듣는 막둥이 궁댕이 후드려 팬 것밖에 없는데. 도련님이랑 절에 가는 게 지옥불에 떨어지란 저주를 들을 만한 죄였던가. 해서, 십 년이 지나도록 꼬박꼬박 달아났다. 더러 들켰고 더러 감쪽같았다. 제노는 더 이상 문덕의 회초리를 겁내지 않았고 동혁은 밥 세 끼 굶는 것쯤이야 일도 아닌 놈이 되었다. 자라온 시간만큼 쌓이는 것은 객기였고, 그걸 터뜨리는 기폭제는 오기였다. 목사님요. 저는 지옥 안 갈 건데요. 울 도련님이랑 천국 갈 건데요. 천사가 빵빠레 울리고 하나님이 짱 큰 구름의자에 앉아서 수염 쓰다듬는 천국요. 그거 안 되면 천당으로 갈 거예요. 거기는 하나님 아니고 하느님이라든데 비슷하겠죠 뭐. 이도 저도 안 되면 해탈하고 성불할랍니다. 속세의 더러움을 버리고 이승의 역사를 잊은 후에 열반의 경지에 도달할라고요.

 

그러니까, 조까쇼.

함부로 지옥불 운운하지 말란 말입니다.

 

-

 

아까 식탁머리 앞에서 시무룩하니 딴청피울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다. 동혁이 한숨을 푸욱 내쉬며 제노의 돌아누운 등판을 물끄럼 쳐다봤다. 도련님 늦었어요 얼른 일어나셔요. 나직하게 달래면서도 알고 있다 절대 협조 안 할 거라는 걸. 툭 돌아오는 대답은 거진 십 분째 똑같았다.

“싫어.”

“도련니임.”

“머리 아퍼서 오늘은 못 가겠어. 바깥바람 쐬고 싶단 말야.”

“아니 글쎄, 안 됩니다. 목사님이 아시면 어뜩해요. 예배 빠진 거 아시면 경을 칠 텐데.”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기도 한 번 하고 가면 되잖아!”

“아놔 진짜 울 도련님……, 무슨 그런 말씀을. 세상천지 야소도 아는 일을 목사님이 어떻게 모르십니까.”

“예끼 동혁이 너 이놈. 그럼 예수님이 아버님 밑이란 말이냐?”

예수님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분이시라구 내가 알려줬었잖아. 꾸짖듯 하는 제노의 어투에 순식간에 동혁의 표정이 바뀌었다. 자세를 고쳐 앉은 동혁이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저한텐 도련님이 세상서 제일루 높으신 분이신데요.”

“……,”

“진짜루요.”

“되었다! 내가 너랑 무슨 말을 더 하겠니.”

진심이란 얼굴로 저를 쳐다보는 동혁에게 어이없다는 듯 쏘아붙인 제노가 팽 돌아누웠다. 온몸으로 서운함을 뿜어내는 제노에 동혁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이제노는 세상에서 제일 유순한 도련님이었지만, 이 세상 모든 유순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한 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끝도 없었다. 그럼 따악 반 시진만요. 아시었지요, 반 시진만입니다. 아니면 제가 경을 칩니다, 목사님께. 아셨어요? 도련니임! 빽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제노가 꾸물꾸물 몸을 일으켰다. 잠깐 당황했던 동혁이 무릎걸음으로 제노에게 다가가 등을 받쳤다.

“에구, 울 도련님. 많이 나가고 싶으셨는가 보네.”

제가 잘못했네요. 나가십시다. 안 들키면 되지요, 뭐. 울기는 또 왜 우신대 아이구. 등을 토닥이자 제노가 훌쩍였다. 절에 갈래애. 늘어지는 말투는 드물게 투정이었다. 예예 가요. 갑시다. 자아, 나가셔요 얼른. 늦기 전에. 나가자는 말을 듣자마자 제노가 킁 울음을 그쳤다.

“진짜지? 물리기 없기다.”

“아 예예 그럼요.”

제노의 방 벽장을 열어 호롱을 내리며 동혁이 작게 혀를 찼다. 이 고집불통 도련님을 달래 집으로 끌고 들어올 일이 벌써 까마득했다. 동혁이 흘끗 밖을 내다봤다. 벌써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네요 도련님.”

“……, 못 나가?”

아뇨, 아뇨. 그냥 뒷문으로 가요. 위에 두루마기라도 하나 더 걸치쇼, 밖에 추우니까. 익숙하게 호롱을 켠 동혁이 재빠른 손길로 제노의 채비를 도왔다. 이문덕 성격에 지금 이 시각에 제노를 탈출시킨 것을 들키면 이틀을 굶기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혁은 주인 나으리 목사님께 뺨싸다구를 후려맞는 것보다 울 도련님이 우는 게 더 싫었다. 밤공기 한 번 쐬어 주는 것도 필요하지. 나이가 열여덟인데 맨날 집안에 갇혀 있을 수야 있나. 애써 합리화하며 한숨을 켜켜이 내쉰 동혁이 그새 얼굴이 상기된 제노의 손목을 꼭 붙들었다.

“제 뒤 꼭꼭 따라오셔요. 예?”

“응!”

목소리가 들떴다. 제 손을 꾹 쥐어 오는 제노의 손길을 느낀 동혁이 또다시 치미는 한숨을 삼키며 다시 한 번 바깥 눈치를 살피곤 방문을 열었다. 장장 몇 주 만에 시도하는 탈출이다.

 

일요일 저녁마다 문덕의 집 예배당에서 예배가 있었다. 서른 명 남짓 되는 신도들이 예배당에 모여들어 다같이 주기도문을 외고 성경을 봉독한 후 각자의 기도를 중얼거렸다. 제노는 매주 일요일만 되면 도망치고 싶어했지만, 모순적이게도 일단 예배당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가장 열렬히 기도했다.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 빌었다. 주님, 저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이 땅 고란도에서 저는 무엇입니까. 백성들의 희망입니까, 힘센 자의 도구입니까. 저를 붙들고 버티는 이 섬의 순박한 이들을 어찌합니까. 제 뒤에 당신을 향해 조아린 저 수많은 고개들을 어찌합니까. 어깨가 지나치게 무겁습니다. 살고 싶으나 살아 있지 않은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살려주세요. 종내에는 숨을 죽이고 울었다. 강단을 붙들고 십자가 앞에 엎어져서 온몸을 들썩였다. 신도들은 그런 제노의 뒷모습을 보고서 나지막이 전율하며 감탄했다. 도련님은 특별한 분이시니 필시 하나님이 말하는 것을 두 귀로 듣는 중일 거라고 그랬다. 똥같은 소리였다. 세뇌의 결과였다. 무속 신앙과 교묘히 섞여 버린 기독교. 살아 걸어다니는 불상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도련님. 제노는 그 점이 서러워 더 울었다. 동혁이 매달려 한참 붙들고 등을 두드려 달래고서야 겨우 지쳐 잠에 들곤 했다. 그 시간을 버거워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예수도, 문덕도 아닌 태곳적으로 달고 태어난 꼬리표가 제노를 괴롭혔다. 이제노는 특별한 애가 아니었다. 그저 열여덟 소년이었다. 그 사실은 다른 누구보다 이동혁이 잘 알았다. 그지 같은 인간들. 동혁은 일요일 밤마다 제노를 부축해 예배당을 나오며 문 앞에다 걸게 침을 뱉곤 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러니까 제노가 처음 기도하다 울었던 십이 세 가량부터의 습관이었다.

“도련님 발 조심!”

“악!”

“아놔.”

제풀에 놀라 소리를 지른 제노가 담장 아래에서 놀란 눈을 뜨고 동혁을 올려다봤다. 두 손으로 입을 텁 막은 얼굴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매사에 서투신 분 같으니라고. 다친 데 없죠? 응 없어……. 동혁아 혹시 사람들 들었니. 조용한 대화가 빠르게 오갔다. 담벼락에 걸터앉은 동혁이 몸을 잔뜩 낮추고 근방을 면밀히 살폈다. 아뇨 들은 사람 없는 것 같아요 하고 대답하려는 순간, 익숙한 쪼그만 그림자가 저만치서부터 척척 걸어와 제 앞에 선다. 동혁은 앓는소릴 내며 이마를 짚었다. 성가시게 됐다. 팔짱을 턱하니 끼고 득의양양한 얼굴로 제 앞에 선 막둥이의 동글동글한 얼굴이 오늘따라 밉상이었다. 그래 봤자 저랑 똑같이 생겼지만.

“3전.”

“많다.”

“2전 5푼. 더는 못 물러.”

“너 오늘 아침에 도련님 생선 뺏어 먹었지.”

“……, 2전. 형아 진짜 치사하다.”

“2전, 끝. 네가 더 치사해 꼬맹아.”

아나 엿이나 사먹어라. 동혁이 주머니를 끌러 동전 두 개를 셌다. 짤랑 하고 던지자 어둠 속에서도 용케 턱턱 잘 잡아낸다. 다녀와, 하더니 미련 없이 몸을 돌리는 작은 뒤통수에 괜히 주먹질을 한 동혁이 소리 없이 몸을 돌려 담장 밖으로 착지했다. 누구야 누구야 누구야. 아는 사람? 아뇨 사람 아니고 금숩니다 금수. 해결했어요. 곧장 팔뚝을 잡아 오는 제노에게 심드렁하니 대답하며 동혁이 호롱을 받아 들었다. 목격자가 누구였는지 알아챈 제노가 피식 웃었다. 막둥이구나. 예, 이놈 쌔끼 쬐그만 게 돈 맛을 알아 가지구요 콱 그냥. 애기한테 그러지 말어. 애기는 무슨……, 예.

“착하네.”

제노가 샐쭉 웃음지었다. 앞머리를 장난스레 쓰다듬는 손길이 가볍다. 오랜만의 탈주에 못내 신나하는 얼굴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울 도련님…, 몰랐는데 완전 불량한 도련님이네. 중얼거리자 팔뚝을 퍽 친다. 그 손길에까지 장난기가 진하게 묻어나 동혁이 픽 웃었다. 괜히 애 울리지 말고 그냥 좀 나올걸. 후회는 늘 한 박자 뒤에 찾아온다. 으슥한 밤거리에 두 소년의 자박이는 발걸음 소리만 울렸다. 산길로 접어들자 동혁이 허리춤에 차고 온 밀랍초를 빼 호롱 안에 하나 더 세웠다. 불을 옮겨 붙이자 한층 밝아진다. 발조심하세요, 이슬 땜에 미끄러워요. 걱정을 던져 놓고서도 안심이 안 돼 결국 도련님 손을 붙잡는다. 덜 썩은 낙엽을 자그락자그락 밟으며 산을 오른다. 당연하다는 듯 접어든 길은 일반 등산로가 아니라 두 소년이 어린 날 공들여 만들어 둔 지름길이었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제노의 손에 곧장 힘이 들어간다. 오늘의 밤외출은 눈치빠른 막둥이가 행랑채 안팎에 알아서 잘 공사쳐줄 거였다. 이제 남들이 잠들었을 때쯤 조용히 돌아가기만 하면 됐다.

동혁이 읏차, 하고 제노를 바위 위로 끌어당기고는 이끼에 미끌하는 몸을 가볍게 받쳤다. 저 먼빛으로 절간 지붕이 보였다. 으와 오랜만이다. 제노가 개운한 얼굴로 웃으며 쭉 기지개를 켰다. 동혁이 제노의 옆얼굴을 돌아봤다.

 

“도련님.”

“응.”

 

우리 여덟 살 때 여기 처음 왔던 날 기억나요?

툭 던진 물음에 제노는 웃었다. 너 나한테 업혀서 왔다 갔던 날? 동혁은 그 장난스런 문장 어드메에서 익숙한 한여름의 분내와 땀내를 맡았다. 어느새 굳은살이 박인 발바닥이 꿉꿉하고 달콤하게 품고 있는 기억이었다. 동혁이 추억처럼 코끝을 스치는 향기에 씨익 미소지었다. 나뭇가지 같은 투박한 엄지손가락이 제노의 손등을 쓱쓱 쓰다듬는다.

“담에는 꼭 제가 한 번 도련님 업구서 올게요.”

“에이 동혁아. 너 힘들걸.”

“진짜루요. 저 힘 세요.”

“약속 지켜 너.”

제노가 장난스레 말꼬리를 늘렸다. 버릇이었다. 동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롱을 고쳐 들었다. 가요 얼른. 더 늦으면 우리 시간 맞춰 못 내려올걸요. 내딛는 발걸음들 끝으로 다시금 자그락자그락 소리가 울렸다.

 

 

-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건 큰스님의 고요한 환대였다. 두 손 공손히 모아 합장한 동혁과 제노가 당연한 수순처럼 큰스님의 품에 달려들었다. 훌쩍 커 버린 두 소년을 받아 안느라 잠시 휘청한 큰스님이 곧 자기보다 넓어져 버린 등판들을 토닥였다. 스니이임. 애교있게 말꼬리를 늘린 동혁이 장삼 걸친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동혁이 요 녀석 못 본 새 응석이 늘었구나. 인자하게 웃는 얼굴을 올려다본 제노가 마음이 순식간에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종놈이고 양반댁 자제고, 이 절 안 큰스님의 품 안에서는 다 똑같은 사람일 뿐이었다. 비로소 위태롭게 버티던 장대끝에서 내려온 듯한 기분에 제노가 허리를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다 안다는 듯 스님의 손이 작은 머리통을 조용하고 단단히 쓰다듬었다.

 

이제노에게 절은 피난처였다.

 

삶에 가중된 무게를 버티기 힘겨웠다. 해서 도망쳤다. 어렸던 날도, 그리고 지금도.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두 손 모아 합장하고 큰스님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사랑받았다. 위로받았다. 보통의 아이처럼 대우받았다. 그 느낌이 좋았다. 구원받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제노는 가끔 생각하곤 했다. 내 인생과 가는 길을 주관하시는 게 예수님이라면, 예수님은 분명 큰스님의 얼굴을 하고 계실 거라고.

“도련님, 어째 오랜만에 걸음하셨습니다.”

“죄송해요, 아버님이…….”

“그렇지요. 잘 오셨어요. 안으로 드실까요. 동혁아 호롱 이리 주거라.”

“넵. 큰스님 덕수 잡니까?”

“안 잔다. 불러 주랴?”

동혁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렸다는 듯 본채 뒤편에서 요란한 헛기침 소리가 울렸다. 큰스님이 뒤를 돌아보며 점잖지 못한 놈 하고 끌끌 혀를 찼다. 곧장 기둥을 돌아 꼬질한 얼굴을 빼꼼 내민 덕수가 제노를 향해 꾸벅 인사하더니 동혁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했다. 장난스러운 표정에 제노와 동혁이 동시에 풉 웃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였다.

“도련님 얼굴 꼬라지가 완전 메롱인데.”

“애비 땜에 그러지 뭐. 쟤가 집에서 속 편할 날이 있간.”

“하긴. 속은 썩어나두 곱게 자라셔서 다행이네…. 에구 울 도련님.”

“내가 업어키워서 그래.”

“지랄두 염병이다 동혁아.”

덕수가 손을 뻗어 동혁의 뒤통수를 툭 쳤다. 동혁이 씩 웃으며 맑은 밤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볏짚으로 엮은 지붕마루 위에 나란히 걸터앉은 두 소년의 머리 위로 바람이 불었다. 옅은 향내가 코끝에 훅 끼쳤다.

절 마당 한켠에 붙어 있는 행랑채 초가지붕에 동혁과 덕수는 종종 올라갔다. 높은 언덕배기가 뒤쪽에 붙어 있어 사다리 따위도 필요 없었다. 숨 한 번 고르고 뛰어오르면 그만이었다. 대문을 왼쪽 옆에, 절간을 오른쪽 옆에 낀 채 높은 곳에 기어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기분이 좋았다. 아무것도 없는 마당일지언정 제 세상 같았다. 앞으로 몸을 기울여 흘긋대면 저만치 아래 창호지 뒤로 호롱불에 일렁이는 제노의 그림자가 비쳐 보였다. 오랜만에 평화로웠다. 맑게 울리는 풍경 소리를 멍하니 듣던 동혁이 코를 킁 먹더니 뒷통수를 긁적였다. 사악 사악. 숫돌과 칼날이 부드럽게 마찰하는 소리가 절 마당을 고요히 울렸다. 동혁이 고개를 돌려 덕수의 손을 내려다봤다. 가죽이 다 해어진 칼자루를 쥔 손가락에 군데군데 진 흉터가 선명했다. 야 덕수야. 동혁이 조용히 불렀다.

“뭐 왜.”

“얘도 좀 봐 주라.”

품속에서 나온 것은 덕수의 것과 꼭 닮은 단도였다. 동혁이 칼날을 감고 있던 가죽 주머니를 끌렀다. 무뎌진 칼날이 드러나자 덕수가 혀를 끌끌 찼다. 내놔 봐. 흉터 자잘한 손들끼리 맞닿으며 칼자루가 덕수에게 넘어갔다. 덕수가 칼자루와 칼끝을 조심히 잡고 들어 달빛에 비추었다. 이것 봐라, 이가 다 빠졌잖아. 내가 이렇게 관리하지 말랬지 새캬. 냅다 타박한 덕수가 제 칼을 지붕마루 한켠에 던져 두고 동혁의 칼을 숫돌에다 대고 눌렀다. 힘주어 눌러 밀자 사악, 하고 갈리는 소리가 났다. 동혁이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삭 삭 이어지는 칼 가는 소리가 소름 돋았다.

“이 형님 손이 닿아야 말끔해지지, 또.”

여전히 칼날에 시선을 박은 채 덕수가 씨익 웃었다. 뼈대 뚜렷한 얼굴이 시원스레 호선을 그렸다. 고단새 뺨 옆에 땀방울이 송글 맺혀 있었다. 동혁이 눈을 끔벅이다 밤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너는 또 누굴 죽이고 싶어서 칼을 갈어 달래냐.”

문득 날아온 덕수의 물음에 발장난을 치던 동혁이 피식 웃었다.

“얌마. 누가 들으면 내가 칼루 사람 죽이고 다니는 줄 알겠네.”

“아니었냐?”

“큰일 날 소릴 하네 얘가? 장작 잔가시 치고 빨랫줄 끊느라 쓴다. 꼭 누구 죽일 때만 그걸 쓰냐.”

“나는 그런데.”

동혁이 덕수를 돌아봤다. 덕수는 웃고 있었으나, 얼굴엔 장난기가 없다. 덕수가 어느새 말끔하게 갈린 칼날을 들어 보였다. 달빛이 섬뜩하게 빛나는 짧은 칼날에 반사되어 부서졌다. 이거 봐라, 동혁아. 칼을 제대루 벼리잖아? 그러면 상상 이상으로 예리해져. 갖다 대기만 해도 찢길 정도루 날카로워지지. 그리구 봐봐라. 곧장 손잡이를 고쳐 든 덕수가 배를 깔고 길게 엎드렸다. 한쪽 눈을 지그시 감는다. 손목을 세우더니 팔을 든다. 공들여 갈던 칼을 마당 쪽으로 휙 던진다. 휭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간 칼은 마당 한쪽 구석에 쌓아 둔 장작더미 한가운데 콱 박혔다. 깜짝 놀란 동혁이 한 엉덩이 물러 앉자 덕수가 아 쫄보 새끼, 하고 비실비실 놀렸다.

“그냥 던진 거냐?”

“어. 이거 이대로 사람한테 꽂히면 즉사겠지.”

어 완전……. 얼빠진 표정으로 대답하는 동혁에 덕수가 잔뜩 뿌듯한 표정으로 말을 보탰다. 여기 위에서 보면 마당이 훤히 보이잖어.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야. 와아 덕수야 너 뭐냐. 이걸 어뜨케 했냐. 놀라움이 담긴 동혁의 목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덕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 쌔빠지게 연습했지, 언젠가를 위해서.

“내가 죽이고 싶은 인간이 한두 명이간.”

“그건 그렇지만은.”

“언젠가는 그놈들 중 한 명만이라도 내 손으로 멱 따는 게 꿈이다야.”

“와, 큰스님. 절간 노비가 살생을 계획하는데 이걸 어찌할까요.”

“너 큰스님한테 이르면 죽어 진짜.”

덕수가 금방 허옇게 질린 얼굴로 을렀다. 동혁이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안 일러 임마. 난 찬성이다, 다 죽여 버려라. 그제서야 덕수가 동혁을 흘기며 도로 볏짚 위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누운 채 옆으로 손을 쭉 뻗더니 볏짚 사이를 뒤적거려 새 단검을 꺼낸다. 짜식, 지붕 위에 아주 무기고를 만들었구나. 동혁이 덕수의 손끝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칼날을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 덕수 녀석은 본래 육지 어드메 대장간의 아들이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부모님이 어디 높으신 분의 개인 군대에 몰래 무기를 대 주다 걸렸댔다. 그때 네 살이었다고 했다. 어느 날 막 잠에 들려던 찰나에 제 입을 틀어막은 큰누나 품에 안겨 마루 아래에 숨었다고. 일가족이 맞아 죽는 걸 거기서 두 눈으로 죄다 봐 버렸다고. 사위가 고요해지고 나서 누나 손을 잡고 아무 배에나 숨어 탔다가 닿은 곳이 여기 고란도였다고도 했다.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지쳐 죽은 누나의 장례를 맡아 치러 준 게 바로 예선사의 주지였다. 그길로 거둬졌다. 육지 사람이 들어왔단 소문만 돌면 덕수는 절간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한숨도 안 나올 만큼 기구한 운명이었다. 동혁은 덕수처럼 끔찍한 생의 잔상을 짊어지고 겨우겨우 살아가던 사람들이 이 절 안에 얼마나 많이 모여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절 안팎으로 드나드는 아기동자들, 향을 피우며 고요히 기도하는 보살님들, 머리를 깎은 지 얼마 안 되어 무 뿌리처럼 새파란 뒤통수를 한 스님들. 까놓고 보면 심장이 썩어 문드러질 만큼 어두운 사연을 가진 자가 대부분이었다. 예선사는 그게 누구든 조선인이라면 기꺼이 그들을 가족으로 품었다. 그게 동혁이 예선사 주지를 존경하는 이유였고, 이 절을 사랑하는 이유였다. 이 섬 안에서 이제노와 유일하게 닮은 사람들. 사랑스러운 내 도련님과 같은 농도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

“덕수야, 동혁아.”

“앗 큰스님.”

저만치서 주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풀에 깜짝 놀라 몸이 튄 덕수가 아오 씨! 하고 나직하게 성질을 부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낄낄 웃으며 덕수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장난스레 찌른 동혁이 몸을 돌려 지붕 뒤쪽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경사진 언덕배기에 가볍게 착지한 동혁이 곧장 절 뒷문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야 이동혁 같이 가! 들고 있던 칼을 다급하게 볏짚 사이에 쑤셔 박은 덕수가 꽥 소리를 지르며 동혁을 따라 익숙하게 지붕에서 뛰어내려 달렸다. 달빛이 볏짚 사이로 드러난 칼날에 부딪혀 부서졌다.

투닥거리며 마당에 들어서자 멀리서 두 명의 인영이 비쳤다. 어슴푸레한 달빛을 뚫고 다가온 큰스님이 비켜서자 뒤에서 따라오던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뜻밖에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

인물이 훤한, 저와 제노 또래의 남자아이다. 달빛에 비친 얼굴에 긴장이 뒤섞인 다정한 웃음이 어려 있었다. 동혁이 흠칫 놀랐다. 단정한 복색이다. 동자들이 입는 쥐색 승복 차림이었으나 머리는 깎지 않았고, 두 손으론 다과상을 들었으나 눈빛은 전쟁터 같았다. 물론 그것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따로 있었다. 허리춤에 매인 화살통, 가죽끈으로 어깨에 단단히 고정한 활신. 고요한 표정 위로 어딘지 모르게 살기어린 입매. 무장을 한 아기동자라니. 그 미묘한 이질감에 동혁이 티나지 않게 입술 안쪽을 짓씹자, 큰스님이 소년의 어깨를 다정히 토닥였다. 덕수가 급히 소년에게서 다과상을 받아들었다.

“아이고, 동자님 상 이리 주십쇼. 큰스님 안으로 들일까요?”

“오냐. 동혁아 인사하거라, 절간에 새로 들인 식구란다.”

덕수에게 다과상을 넘겨준 소년이 승복 소매를 탁탁 털었다. 무의식적으로 왼손은 활신 위에, 오른손은 화살통 위에 놓인다. 세상에게 버려진 지 얼마 안 된 이답게 경계가 날카로웠다. 소년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놓은 큰스님이 동혁에게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육지에서 오신 동자님이다. 도련님과 너와 나이가 같으니 좋은 친구가 되겠구나.”

 

 

해서, 당신이.

 

 

“나가家 재민이다.”

“목사 댁 도련님 모시는 이가家 동혁입니다.”

 

 

예선사의 새 여우새끼로군요.


 

 

훔쳐들은 대로라면 반역자의 아들. 불구덩이 가운데서 살아 나온 자. 조선에 몸 바쳤던 애국자 부모가 외세의 눈 밖에 났다던가. 종교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잡혀 죽었다고. 정황상 모함일 수밖에 없는 개죽음이었다고 했다. 심문 한번 없이 반역자라 낙인찍힌 집안. 누가 봐도 몸 안에 진한 조선의 피가 흐르는 자였다. 동혁의 눈에 언뜻 애틋한 감정이 스쳐 지났다. 재민이 그것을 느꼈는지 잠시간 머뭇거리다 시선을 피했다. 만만한 인상은 아니었으나 처진 눈꼬리가 순했다. 동혁이 살갑게 눈웃음치며 깊게 허리를 숙였다가 들었다. 아유 동자님 인물이 훤하시네요, 울 도련님두 한 인물 하시는데. 거리낌없이 말을 붙여 오는 동혁에 잠시 눈이 커졌던 재민이 곧 입꼬리를 찢어 씩 웃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의 도련님이었을 동자님은 동혁의 유순한 태도에 마음을 놓은 듯 보였다. 두 소년의 시선이 잠시간 맞물렸다.

 

“……,”

명백히 호의로 맞닿은 시선이었으나 왜인지 뜨거웠다. 검은동자보다 흰 동자가 더 많은 깨끗한 눈들. 아무 감정 없이도 얽혀들어 진하게 서로를 옭아매는 타고난 눈빛들. 웃고 있던 동혁의 눈에 점점 열감이 차올랐다. 제 앞의 고아한 도련님이 미묘하게 자꾸만 눈 밖으로 어긋났다. 날카로운 눈. 동그랗고 맑고 깨끗한, 눈동자. 그 눈동자에 스친 빛깔이 익숙했다. 동혁이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재민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볼수록 왜인지 자꾸만 가슴 한켠이 울컥했다. 하얀 얼굴, 뚜렷한 쌍꺼풀, 길고 촘촘한 속눈썹, 얇고 부드러운 입술. 익숙한 색의 감정이 스치는 눈동자가 당황으로 일렁인다. 눈을 뗄 수 없어 그 얄쌍하고 고고한 얼굴에 시선을 박은 채 눈을 깜빡이자 시야가 흐려졌다. 큰스님이 부드럽게 두 소년 사이를 갈라 놓았다.

“도련님, 안으로 드실까요.”

“……, 예.”

“동혁이도 덕수랑 별채에서 다과나 들거라.”

어느새 방에서 나온 덕수가 동혁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파득 정신을 차린 동혁이 휙 뒤돌았다. 등 뒤에서 재민이 머뭇거리다 마루로 올라서는 소리가 들렸다. 너 갑자기 왜 그래? 덕수가 동혁의 안색을 살폈다. 동혁이 묵묵히 덕수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아무것도 아녀. 얼른 가자. 그렇게 말하면서도 목이 메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나자, 동혁이 고개를 돌려 방문을 쳐다봤다. 어른어른 비치는 두 그림자가 왠지 가슴 아렸다. 저만치서 큰스님이 동혁을 말없이 쳐다봤다. 제 마음을 꿰뚫는 듯한 그 시선을 애써 피한 동혁이 입술을 물었다.

“좋은 친구가 될 거다. 서로에게 기댈 수 있을 테고.”

나직한 타이름이 동혁에게 가 닿았다. 동혁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빌어먹게도 맞는 말이었다.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사랑하는 이들의 인생을 제 어깨에 죄다 짊어지고 산다는 점에서, 예선사 애기동자 나재민은.

 

 

사랑하는 도련님 이제노와 많이 닮아 있었다.

지나치달 만큼.

 

 

-

 

 

“……,”

다과상 앞에 정좌하고 앉은 제노는 인기척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뺨 옆으로 차가운 겨울의 밤공기가 와 닿았음에도 미동 없이 손에 쥔 찻잔 테두리만 손끝으로 무료히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표정이 시무룩했다. 재민이 가만가만 걸어 제노의 앞에 섰다. 하얀 발끝이 시야를 침범하자 제노가 고개를 들었다. 올려다보는 시선이 깨끗하고 말갰다.

“이가家 제노 도련님이시지요.”

“앉으시오. 말 편하게 하고. 며칠 전까진 나와 별다를 바 없는 양반댁 자제였을 것 아니오.”

이미 제 앞에 선 이의 정체를 꿰뚫고 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 초연한 태도, 조곤조곤한 말투. 어른스러운 언어를 쓰는데도 목소리 어드메에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었다. 재민은 군말없이 활을 벗고 화살통을 끌렀다. 제 수족같이 소중히 여기는 무기를 상 옆에 조심히 내려두고 제노의 맞은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두 소년이 마주 앉은 방 안에 고요가 흘렀다. 저 멀리서 바람에 풍경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

제노가 다관(茶罐) 손잡이를 쥐고 들어올려 재민 앞에 놓여진 잔에 차를 따랐다. 다기 뚜껑을 눌러내린 손끝이 하얬다.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을 두 손에 감싼 재민이 습관처럼 입술 아래까지 잔을 들어올렸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자 축축한 온기와 함께 누긋하고 쌉싸름한 향이 코끝에 맴돌았다. 순간 손을 멈칫한 재민이 티나지 않게 입술 안쪽을 씹었다. 신분을 숨겨야 하는 몸이 된 후에도 다도의 예를 익힌 양반의 버릇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감았던 눈을 떠 보니 제노가 살짝 웃음기가 감도는 얼굴을 하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재민이 수려한 이마를 잠시간 찌푸렸다. 저와 나이가 같다던 목사 댁 도련님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은 진짜 감정의 표현이라기보다 어딘지 모르게 습관 같았다. 고개를 살짝 숙여 국화차를 한 모금 머금은 뒤 찻잔을 내려놓았다. 순한 강아지 같은 요 도련님이 왜 제 앞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을 숨기려 노력하는지 궁금했다.

“만나보고 싶었소. 동갑이라 들었는데.”

“응, 올해로 열아홉. 듣기론 도련님도 마찬가지라며.”

순식간에 재민의 말투가 가벼워졌다. 잔뜩 어른인 척 하는 눈앞의 도련님을 한 번 도발해볼 심산이었다. 제노가 당황해 눈살을 찌푸렸다. 어음, 음. 나무라진 못하고 잔뜩 곤란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는 얼굴이 너무나도 순진했다. 재민의 입가가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너무 쉬운데. 좀 귀엽고. 그런 생각은 물론 속으로만 했다. 여유로웠던 제노의 눈동자가 정신 산만하게 굴러다니자 마음이 놓였다.

“나재민이야.”

“어어……, 우와.”

“왜?”

“태어나서 나씨 처음 보, 봐.”

섬이 좁아서……

기대했던 것보다 배는 어리버리한 대답에 재민이 결국 이마를 짚으며 푹 웃음을 터뜨렸다. 한 번 터진 웃음은 긴장감을 와르르 무너뜨렸고, 해서 쉽게 멈추지 않았다. 제노가 큭큭큭 웃는 재민을 미친놈 보듯이 쳐다봤다. 제노는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속이 좀 편했다. 이제노의 주위를 둘러싸며 저를 경계하던 무언가가 팍 깨져나간 느낌이었다.

“왜 웃어.”

“너 너무 귀여워서.”

“뭐?”

아, 이 도련님 말로 듣던 것보다 훨씬 귀여운데 어떡하지? 재민이 여즉 활짝 웃는 얼굴로 팔을 뻗어 제노의 머리칼을 헝클었다. 깜짝 놀라 어깨가 튄 제노가 그 자리에 굳었다. 동혁을 제외하곤 저를 감히 이렇게 대하는 이를 태어나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음이었다. 제노의 귓바퀴가 빨갛게 달아오를 무렵 재민이 손을 뗐다. 한 박자 늦게 제노가 허공에 손을 맥없이 휘적였다. 자존심은 있다 이건가. 재민이 나무그릇에 예쁘게 담긴 유과에 거리낌없이 손을 뻗으며 제노의 달아오른 얼굴을 구경했다. 너 왜 만져어. 얇고 선 고운 입술이 오물거리더니 불쑥 내뱉는다. 따지려 한 것이겠지만 말꼬리가 억울하게 늘어나 어린애의 투정보다 더 귀엽게만 들렸다. 재민이 대답 없이 유과를 한 입 베어물었다. 하얗고 달디단 과자. 바닥에 떨어진 유과 가루를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주워담다 말고 재민이 또다시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눈앞의 고고하고 순진한 도련님이 갈수록 마음에 들었다.

 

어느새 다관이 비었고, 찻잔에 찻물이 말라붙었으며, 가루만 남기고 유과도 없다.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나눴다기엔 사실상 재민이 제노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은 거였지만. 재민이 정갈한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막 말을 마친 제노의 얼굴을 지그시 쳐다봤다. 목사 댁 도련님의 가면을 벗어던진 제노는 순하기 그지없는 아이였다. 그리고 뜻밖에도 꽤나 쉽게 우울해하는 아이였다. 딱 그 나이 또래답게, 열여덟 소년의 감수성으로. 순한 입술이 움직여 무거운 말들을 쏟아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제 인생의 궤도에 대해 사실은 얼마나 회의감을 느끼는지, 타인의 생을 책임지며 걷는 걸음이 얼마나 뿌리치고 싶은 짐 같은지, 곱게만 자란 도련님이란 사실이 가끔씩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한지가 제노의 말 한 마디마디에서 가감 없이 느껴졌다.

“미안, 너무 내 얘기만 했지.”

“아냐아냐. 나는 이야기 듣는 거 좋아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재민을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던 제노가 손등으로 콧잔등을 문질렀다. 저도 모르게 킁 하고 코 먹는 소리를 내자 재민이 씩 웃어 준다. 흠칫 놀란 제노가 시선을 다과상으로 돌렸다. 제노는 제노대로 당황스러웠다. 동혁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던 모습이 자꾸 재민의 앞에서 튀어나왔다. 우울에 잠식된 삶. 살고 싶지 않음에도 살아가야 하는 삶. 재민이 그걸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저 또한 그랬기 때문이리라. 그걸 알기에 오히려 더 입을 열기가 쉬웠는지도 모른다. 동혁은 한없는 연민과 동정과 사랑으로 저를 끌어안아 다독이고 그 품 안에서만큼은 편히 잠에 들게 하지만, 사실 그래서 동혁에게 털어놓는 속마음은 너무 쉽게 응석이 되곤 했다. 재민이 어떤 삶을 살다가 이 자리까지 왔는지는 몰라도, 어쩌면 그에겐 이제노라는 인간의 역사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불구덩이에서 구른 사람이 모닥불에 손가락 데인 사람을 동정할 리는 없었으니까. 그런 마음이 자꾸만 말을 보태게 만들었다. 저를 꺼내 보여주게 만들었다. 목에 건 십자가 목걸이를 재민이 보는 앞에서 끊어 버리고 싶게 만들었다.

“언제쯤 집에 돌아가 봐야 돼?”

“곧. 항상 동 틀 때쯤 되면 가. 아버님 주무실 때.”

“그럼 내일 피곤하지 않아?”

“밤새 악몽 꿔서 못 잤다고 하면 돼. 동혁이가 알아서 잘 말해줄 거야.”

제노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자신 없는 말투가 귀여워 하하 웃은 재민이 무심코 제노를 따라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회색 승복 자락이 흘러내려 하얀 팔목이 드러났다.

“……?”

나무로 된 묵주 팔찌. 작고 동그란 묵주알들 사이로 손가락 반 마디만한 십자가가 엮여 있다. 재민의 팔목에서 흔들리는 그것에 눈길을 고정한 채 제노가 눈을 깜빡였다. 시선을 느낀 재민이 급하게 옷소매를 끌어내렸다. 그거 뭐야 재민아. 아무것도 아냐. 딱 끊기는 대답이 단호했다. 더 묻는 건 실례일 것 같아 제노가 말을 줄였다. 잠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재민이 곧 얼굴에 다시 어색하게나마 미소를 띄웠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새벽닭이 울었다. 벌써, 하고 놀란 제노가 문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호지를 뚫고 새벽 여명이 어슴푸레 밝았다. 이제 가야겠다, 너. 재민이 중얼거렸다. 제노가 다급하게 다과상 너머로 손을 뻗어 재민의 팔뚝을 쥐었다. 당황한 재민이 뭐라 물을 새도 없이 말이 이어진다.

“종종 올게.”

“……,”

“나랑 얘기하자. 올 때마다. 계속.”

우리, 친구 된 거 맞지? 재민아 그치?

절박하다시피 한 물음에 재민의 얼굴에 서서히 웃음이 번졌다. 손을 뻗어 제 옷자락을 쥐어잡은 하얀 손등을 다정히 다독인다. 당연하지. 도련님, 다음 번에 올 때는 얘 쏘는 것도 구경시켜 줄게. 우린 친구니까. 활을 가리키며 꽤나 진지한 얼굴로 하는 약속에 제노의 얼굴도 풀어졌다. 아 다행이다……, 중얼거리며 손을 놓는 제노에 재민이 큭큭 웃었다. 귀여워. 재밌다. 예쁜 도련님이라고 말만 들었지, 이렇게 하는 짓이 하나하나 다 예쁠 줄은 몰랐다.

“제노야.”

“어어.”

“너 웃지 마라.”

“응?”

억지로 웃고 다니지 말어. 그게 힘들면 내 앞에서라도 편하게 좀 있어. 오늘처럼 정색해. 그게 훨씬 잘생겼어.

눈을 찡긋한 재민이 읏차, 하고 무릎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도련님 슬슬 가야 해요. 때마침 문 밖에서 똑똑 문살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동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민이 문밖으로 나가고 나서도 제노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괜히 입술을 매만졌다. 동혁이 도련님 하고 한 번 더 보채고 나서야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눈을 접었다. 얼굴 근육이 당겼다. 늘상 짓고 다니던 웃음이 이상하게도 어색했다. 재민과 함께 있었던 시간 내내 웃지 않았던 것이 기억났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반문하며 문을 열고 나갔다. 잠이 덜 깬 듯한 얼굴로 제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는 동혁에게 뜬금없이 물었다.

“동혁아.”

“예?”

“내가 웃는 게 더 잘생겼어, 아님 안 웃는 게 더 잘생겼어?”

“둘 다 죽여주게 잘생겼죠.”

“내가 너한테 뭘 묻니. 됐다.”

자기 얼굴에 자신감을 좀, 가져요…. 면경 보면 감이 안 오나. 중얼거리며 하품을 눌러참은 동혁이 켜지 않아도 될 호롱을 옆구리에 끼고 제노가 신을 신는 걸 도왔다. 도련님 아예 안 주무셨어요? 오늘 완전 아프신 걸루 해야 되겠네 우짠대. 제노가 푸시시 웃으며 제 앞에 쭈그리고 앉은 동혁의 머리칼을 쓱쓱 쓰다듬었다. 그래두 좋았어 오늘.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다리를 두어 번 달랑거린 제노가 걸터앉았던 마루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쭉 켰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뼈를 찔렀지만 기분은 이상하게도 좋았다. 제노를 따라 몸을 일으키며 동혁이 한 박자 느릿하게 대답했다. 도련님 좋으셨으면 저두 됐어요. 마침 해가 뜨는 바람에 절간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앞서 걷던 제노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

붉은 햇살이 깔린 마당을 걸어 제게 걸어오는 이동혁. 온통 붉은 이동혁. 따뜻한 이동혁. 세상에서 이제노밖에 모르는 것처럼 구는 귀엽고 든든한 몸종. 제노가 사르르 눈을 접어 웃었다. 얼른 가자. 나 오늘 조반 거를래. 투정 같은 보챔이 동혁의 발걸음을 재게 했다. 예 얼른 내려가요. 울 도련님 피곤하시겄다. 방에 불 댕겨야 되는데. 두 소년의 자박거리는 발걸음이 산길을 울렸다. 여명은 아직도 타오르듯 붉었다.

 

 

제노의 밤마실이 잦아졌다. 죽어나는 건 동혁이었다. 매주 빠질 수가 없어 그 뒤로 주일예배는 꼬박꼬박 다녔으나, 예배가 파하자마자 뒷문으로 빠져나가 절에 가는 것이 일상이 됐다. 월요일마다 아프다는 핑계로 못다 잔 잠을 자면 조반은 거르기 일쑤였고, 동혁은 가끔 제노의 발치에서 쭈그려 앉아 잠들었다가 해가 중천에 떴을 때에야 허둥지둥 일어나 제노를 씻기곤 했다. 도련님 눈 감으세요 눈. 동혁이 우당탕탕 뛰쳐나가 세숫대야에 물을 떠다 침대맡에 내려놓으면 제노는 여즉 잠에 취한 얼굴로 동혁의 손에 얼굴을 내맡겼고, 따뜻한 물로 눈두덩을 꾹꾹 닦아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막둥이는 종종걸음을 치며 깨끗한 버선을 꺼내고 저고리를 털며 동혁을 거들었고, 그러는 내내 종알종알 잔소리를 해댔다. 아휴 그러게 누가 밤에 도련님 데꼬 돌아댕기래. 형아 진짜 바보야. 어뜨케 여기서 잠이 들어어! 언젠가는 목사님한테 걸릴걸. 경을 칠 거다 진짜루. 그럼 동혁은 이를 악물고 손만 뒤로 뻗어 쪼그만 머리통에 꽁 꿀밤을 먹였다. 아 왜 때려! 입 안 다물래 너 진짜. 말이 많어. 수건으로 얼굴을 닦던 제노는 입이 댓 발은 나온 막둥이의 통통한 손목을 끌어당겨 복실한 머리칼을 살살 쓸며 웃었다. 막둥아 미안해. 어제는 진짜루 내가 가자구 그랬어. 괜찮은데요 도련님 형아 쫌 혼내 주세요 자꾸 저 때려요. 야 동혁아 왜 애를 때려 혼날래. 아익 그게 아니구 죄송해요 도련님. 한숨을 푹 내쉰 동혁은 제노 품에 안긴 채 저를 향해 메롱 혀를 내미는 막둥이를 팍 째리고서는 읏차 하고 몸을 일으켜 물을 버리러 갔다. 매주 이러니 환장하고도 남을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저녁이면 제노는 늘 절에 걸음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재민에게로 갔다. 재민은 늘 한결같이 제노를 기다렸다. 다과상을 들고서 제노가 앉은 방문을 두드렸다. 제노는 점점 티가 나도록 그 시간을 기다렸다. 일요일이 다가올수록 설레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따금씩은 그 일주일의 시간을 참지 못해 문덕과의 겸상이 끝난 오후에도 동혁을 끌고서 뒷산으로 통하는 길을 달렸다. 밤이 아닌 밝은 낮 시간에 만나면 재민은 늘 절 뒤쪽 공터로 손목을 잡아끌었다. 제노를 평평한 바위 위에 앉히고선 화살 자국이 너절하게 난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제노는 늘 웃지 않는 얼굴로 그 모습을 잠잠히 지켜봤다. 붉은 깃을 단 재민의 화살이 과녁의 한가운데를 뚫으면 와, 하고 작게 감탄사를 질렀다. 가끔 조금 웃었다. 입이 먼저 벌어지고, 나중에야 눈이 아주 약간 접히는 웃음. 재민은 그걸 진짜 웃음이라고 불렀다. 야 제노야 진짜로 웃어. 가짜로 웃지 말구. 그런 타박을 들은 날이면 제노는 늘 저도 모르게 표정을 지웠다. 멍하다 싶을 만큼 표정 없는 얼굴이 되고 나면 재민은 늘 만족스럽게 제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훨씬 낫다. 그 다정한 목소리를 듣고 나면 늘 저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진짜 웃음’이 새어나오곤 했다. 묵은 무언가가 씻겨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평생 동안 억지로 꾸덕하니 쌓아 온 가짜 웃음의 찌꺼기가 수챗구멍 너머로 조금씩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쾌감이었다.

“……,”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제노가 잠시 멈칫했다. 고개를 돌린 시선 끝에 멀찍이 떨어져 있는 동혁이 걸렸다. 까만 얼굴. 까만 팔다리. 사시사철 변함이 없는, 걷어올린 소매에 때가 앉은 하얀 모시누빔. 나무그루터기에 걸터앉은 채로 나뭇가지의 잔가시를 탁탁 쳐내더니, 지게 위에 손질이 끝난 장작들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 눈이 마주치기 직전에 도로 고개를 돌렸다. 가슴이 이상한 방향으로 두근거렸다. 집주인이 뻔히 보고 있는 앞에서 남의 집 감을 따먹는 기분이었다.

재민에게서 느껴지는 안락함은 동혁에게서 느끼는 편안함과는 확실히 달랐다. 제노는 그 차이가 늘 헷갈렸다. 나름의 결론을 내고서 동혁을 붙들어 앉혀 보기도 했다.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비장하게 얘기했다. 동혁아 있잖아, 재민이는 너랑은 약간 다른 색깔 같아. 뭐랄까 너는…, 붉은색? 그 애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쫌 달라. 고심 끝에 한 말이었는데, 동혁은 김샌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며 피식 웃었다. 알구 있어요 도련님. 왠지 그 대답의 온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제노가 미간을 구겼다. 순식간에 가슴 속 어딘가가 싸해졌다. 왜? 왜 그렇게 씁쓸하게 인정하는 거야 동혁아. 나는 붉은색도 좋아해. 너도 좋다구. 속으로 그렇게 칭얼대면서도 제노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나재민과 함께 있을 때 마음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느껴지는 이유는 이 아이가 신경쓰여서라는 걸. 정작 동혁은 그때 말고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재민과도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워진 듯했다. 재민과 동혁이 각각 화살과 지게작대기를 쥐고서 칼싸움하듯 장난치며 낄낄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볼 때면 마음이 묘해지곤 했다.

 

무슨 감정인지도 모른 채로 그냥 그렇게. 내내 울렁였다.

 

 

 


 

 

 

가끔 이제노는 궁금해했다.

나재민은 어디서 뭐 하던 아이였을까.

 

큰스님도 입 한 번 뻥끗 안 하시고 절간의 다른 사람들도 약속한 듯이 말이 없었으나 어쨌든, 제노는 겨울이 다 가고 봄을 지나 여름까지의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동안 절로 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재민의 목숨이 제 목숨처럼 느껴져서였다. 재민 역시도 여전히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제노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재민 몫까지 열심히 조곤조곤 얘기했다. 언제든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재민에게 재깍 알렸다.

 

재민아, 홍주 목사가 바뀌었대. 너 모르지, 우리 섬 고란도가 홍주목 관할이거든. 조정에서 그전 사람을 잡아올렸대. 아마 죽었겠지. 아무튼. 보통 높으신 분들은 육지에서 잘 안 건네오는데, 사람이 바뀌었으니 여기도 둘러볼 겸 들를 건가 봐.

 

 

재민아. 저번에 얘기했던 홍주 목사 있잖아. 아버님이 한 번 줄이라도 잡아 보려고 벼르고 있는 걸로 봐서는 분명 나쁜 사람이야. 왜 웃어, 알면서. 그 사람 되게 잔인하대. 부임한 지 얼마 안 돼서 벌써 사람을 몇 명씩이나 잡어 죽였대.

 

 

재민아 그 사람 왔대. 지금 고란도에 있다네. 근데 듣기로는 천주박해 때 공을 세워 관직을 받은 자래. 천주쟁이들이 모이는 데를 몇 곳이나 알아내 불을 질렀대. 생각했던 것보다 배는 무서운 사람이었어. 진짜.

 

……

 

재민아 있잖아. 내 기도에는 이상한 힘이 있어.

 

(무슨.)

 

아아니, 보통 사람들은 기도한 게 이뤄진다 그러잖어. 근데 나는 빌면 빌수록 그게 멀리 달아나는 느낌인 거야. 팔뚝을 붙잡으면 한 걸음 물러나고, 옷자락을 잡아채면 찢어내고 도망가는. 나는 그 내쳐지는 순간이 너무 두려워. 두려워서 자꾸 눈물이 나. 누군가에게 간절하게 기도하다 보면 허상을 좇는 기분이거든. 그래서 눈을 감기가 싫어. 기도하기 싫어.

 

그런 고백을 들은 저녁, 재민은 처음으로 제노의 손을 잡았다. 바위 위에 나란히 앉아 저무는 노을을 바라보며 하얀 손등을 쓰다듬고 쓰다듬었다. 제노는 눈두덩을 파르르 떨면서도 그 손길을 내치지 않았다.

 

제노야.

 

그래도 기도해. 계속해. 나두 그럴게. 간절하게 뭔가를 빌면……, 누가 됐든 이뤄주시지 않을까. 조곤조곤 이르는 재민의 다정한 목소리가 귀에 웅웅 울렸다. 제노는 고개를 돌렸다. 파르스름한 얼굴 어드메가 붉은 노을로 물들었다. 홧김에 그 선 고운 옆얼굴에 입술을 부닥쳤다. 쪽 소리와 함께 입술에 닿았다 떨어진 볼이 잠시간의 정적 끝에 붉게 달아올랐다. 정작 저질러 놓고 저 자신도 부끄러워 제노가 먼 하늘로 시선을 돌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재민과 이제노는 그렇게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귀뚜라미가 이르게 울던 늦여름이었다.

 

 

-

 

일요일이 돌아왔다.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은 제노가 예배당에 들어서자 기다렸단 듯이 여기저기서 인사를 붙여 왔다. 아이구 도련님 오셨어요 시상에 좋은 일 있으시당가, 얼굴이 고와지셨어요. 도련님 오랜만입니다 지가 인수 할빈디 기억하시려능가. 제가 그동안 풍을 맞아 예배를 못 왔었으요. 다시 예배당 나와가 도련님 얼굴을 뵈니까 아이구야 이렇게 맴이 편하네이. 죽어두 맘 편히 천국 가겄어요이. 제노는 복도를 지나 예배당 앞쪽까지 가는 내내 손을 붙들렸고, 지나치게 공손한 인사를 받았고, 울먹이는 노인의 마른 등을 안아 토닥였다. 실로 예수 같은 행보였다. 말간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모든 말에 일일이 다정하게 대답한다. 안녕하셨어요 아주머니. 아유 감사합니다. 할아버님 제가 어떻게 기억을 못 하겠어요. 나아지셨다니 다행이에요. 동혁은 늘 그래왔듯이 성경책과 수건과 물그릇을 받쳐 들고 조용히 제노의 뒤를 따랐다. 가끔 제게 붙여 오는 말에 적당히 살갑게 대답을 한다. 아이고 혁아 막둥이 고뿔은 괜찮아졌능가. 예, 다 나아서 아주 망아지처럼 뛰어댕깁니다. 동혁아 내일도 도련님 새벽기도 못 나오시나. 예 아마두요, 요즘 기가 허하셔요. 동혁아 네가 도련님 보필을 잘혀야 한다 알긋제잉. 아이구 택상 어른 매주 같은 말씀이셔요 저두 알죠. 겸허히 대답하고 얼른 나서서 몰려드는 사람들을 갈라 길을 텄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를 모시는 베드로나 세례요한 정도의 역할이 아닐 수 없었다.

“예배 시작 쪼끔 남었습니다! 다들 앉어 주시요!”

강단 위로 날래게 뛰어올라온 막둥이가 까랑까랑하게 악질렀다. 뛰어내려가는 길에 제 형 옆구리를 괜히 한 번 푹 찌른다. 억, 하고 과장되게 아픈 척을 해준 동혁이 제노의 푸스스 하는 웃음소리에 민망하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제노가 예배당 맨 앞자리에 놓인 장의자 한쪽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도련님.”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동네 꼬맹이들 몇이 쪼르르 달려왔다.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는 아이들에게 제노는 눈이 휘어지도록 웃으며 마주 고개를 숙였다. 세희 화인이 현민이 안녕. 지호는 왜 안 보여. 다정하게 묻자 아이들의 얼굴에 쑥스러운 미소가 피었다. 지호 오늘 열 나 가지구 안 온대요, 지호네 아줌마 아저씨두 안 왔어요. 종알종알 떠드는 세 아이들에게 그렇구나, 으응, 어떡하니 지호 아파서, 하고 장단을 맞춰 주던 제노가 할 말을 우다다 끝내고서는 주춤주춤 눈치를 보는 아이들에게 씩 웃으며 자연스레 팔을 벌렸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제노의 품에 우당탕탕 달려들어 안긴 아이들이 으헤헤 웃으며 도망친다. 동혁이 세 꼬맹이의 뒤통수를 마뜩찮게 노려봤다. 제노가 그러지 말라는 듯이 동혁의 소매를 슬쩍 당기며 올려다봤다. 여전히 은은하게 웃는 낯이었다. 동혁이 툭 뱉었다.

“뭐 좋다고 웃으세요.”

“지호가 아프다네 동혁아. 어뜩해.”

“도련님. 저두 쫌 아픈 것 같애요. 마음이.”

“어쩐지. 울 사총사가 한 명을 떼놓구 다닐 리가 없는데.”

“아 진짜아……”

제노가 헤헤 웃자 동혁이 장난스레 두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고 탄식했다. 울 도련님 진짜 예수님 저리가라야.. 나두 좀 사랑해 주셨음 좋겠네. 어쩐지 뼈 있는 말처럼 들려 움찔한 제노가 애써 표정을 관리하고는 동혁에게서 성경책을 건네받아 무릎 위에 펼쳤다. 뒤쪽에서 사람들이 웅성대며 앞자리부터 채워 앉는 것이 느껴졌다.

“동혁이 잘 지냈나.”

도련님두 안녕하셨는가요. 아기를 아기띠로 품에 고정해 안은 화인댁이 살갑게 인사를 건네며 제노의 뒤쪽 의자에 앉았다. 그 뒤로 화인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은 그녀의 남편이 따라 들어왔다. 아유 아주머니 안녕하셨어요. 애기 안녕. 동혁이 아기의 보드라운 정수리를 손끝으로 살살 만지며 되바라지게 인사를 건넸다. 제노가 뒤를 돌아보며 가족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들 안녕하셨나요. 오늘두 온 가정 다 예배의 자리에 나오셨네요. 축복합니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안부인사가 제법 의젓했다. 온 가족이 엄숙하게 아멘, 하고 대답했다. 제노가 히히 웃더니 손을 뻗어 잠든 아기의 귀를 만지작댔다. 비로소 아이의 말투다. 아기 많이 컸네요. 아주머니, 오늘 지호네는 왜 안 왔어요? 지호 많이 아픈가요.

“아유 아녜요. 지호네는 오늘 절에 갔지야.”

“절에요?”

“그믄요. 절 예배 돕고 성경책 나눠주는 날이래요.”

제노가 미간을 좁혔다.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절 예배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동혁이 불안한 시선으로 제노를 흘끗거렸다.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세요, 아주머니. 절에서 예배를요? 나직하고 빠르게 묻는 제노의 당황한 표정을 본 화인댁이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도련님 모르셨어요? 하고 되물었다.

“절에서 하는 거. 그거 모르세요? 거기 동자님들두 예수님 믿습니다. 아마 예배는 큰스님 몰래 하겄지요?”

“……아, 정말요.”

“예. 은혜받고 믿기 시작해서, 자기들끼리 모여서 알음알음 성경공부 하시더라구요. 도련님은 아실 거라 생각했는디.”

근데 이게, 또 예수님 믿는 모임이 끝이 아니구. 나랏님이 금한 모임두 있어서리. 다들 쉬쉬하면서 모여서 딱 말씀만 읽고 손 잡고 기도하고 파한답니다. 가끔 교회 사람들이 몰래 예배 도와주러 가요. 비밀 얘기를 하듯이 속삭인 화인댁이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제노가 도로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쿵쿵 뛰어 입 밖으로 토해져 나올 것 같았다. 절에서 성경 공부를 한다면, 그 동자님들이 진짜 동자님들이 아니어서 그럴 테지요. 큰스님은 당연히 알고 계실 테고요. 입속말로 불퉁히 중얼거리던 제노의 머릿속에 재민의 손목에 달렸던 묵주팔찌가 불현듯 스쳐지났다.

“……!”

나랏님이 금한 모임. 박해받는 종교. 작금의 조선에선 단 하나,

 

천주교.

 

순식간에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에 제노가 짧게 몸을 떨었다. 도련님 괜찮으세요, 걱정스레 묻는 동혁의 손을 찾아 꽉 쥐었다. 손끝이 덜덜 떨렸다. 만약 절 안에서 천주교도들이 비밀스레 회동한다면. 거기서 미사를 드리고 성서를 읽는다면. 조정에서 엄금한 서학을 배우고 묵주를 굴린다면. 거기에, 나재민이 있다면.

 

법대로 따지면 이것은 반역이었다.

 

 

-

 

동혁이 헉헉대며 제노를 쫓아 산길을 올라갔을 때, 제노는 이미 큰스님을 붙들고 뭔가를 묻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뜀박질이 빨랐던 도련님이다. 가끔 이렇게 작정하고 달리면 쫓아가기가 힘들었다. 동혁이 뻐근한 허리를 돌리며 아으으 하고 신음을 터뜨렸다. 등 뒤에 매달린 지게가 달리기를 두 배는 힘들게 만들었다. 먼빛으로 보기에도 큰스님은 고개를 내젓거나 끄덕이는 것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무릎에 손을 짚고 한참 헉헉대다 성큼성큼 걸어 가까이 다가가니 비로소 대화가 제대로 들렸다. 절 내의 모임에 대해 물은 모양이었다. 어제 오늘 하루 종일 신경 쓰여 하시더니만 결국. 동혁이 나직하게 혀를 찼다.

“……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모두 모시는 종교가 다릅니다.”

“그래서, 그래서요.”

“부처를 모시는 자들, 예수를 모시는 자들, 천주를 모시는 자들. 모두 그들끼리 모여 위안을 얻지요.”

“……그럼 재민이도, 설마.”

“……,”

큰스님이 어두워진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노가 희뜩해지려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았다. 어디, 지금 어디 있어요 재민이. 겨우 묻자 큰스님의 눈길이 본채 뒤 어드메를 향한다. 분명 공터에 있을 것이다. 분신처럼 여기는 활을 들고 과녁을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 이제노는 알고 있었다. 나재민은 그 모임에 제 목숨줄이 걸렸단 걸 알게 돼도, 빌어먹게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제노가 곧장 다시 뛰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새로 맞춘 태사혜에 온통 모래가 튄다. 오 보쯤 뒤에 서 있던 동혁이 제노의 뒷모습을 망연히 쳐다봤다. 또 곧장 따라가려 했으나, 답지 않게 허우적거리는 뜀걸음이 동혁을 단념하게 만들었다. 동혁이 허리를 숙여 작대기를 빼고 빈 지게를 도로 졌다. 안녕하셔요 스님, 저는 온 김에 뒷산에서 나무나 좀 해 갈게요. 가벼운 어조에 큰스님이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동혁아. 나직이 부른다.

“예.”

“뭐 하나만 묻자.”

“예, 뭐.”

“도련님이……, 믿으시는 게. 부처냐, 예수냐, 천주냐.”

동혁이 곧장 고개를 내저었다. 대답은 금방 튀어나왔다. 도련님은 아무것도 안 믿으세요. 자기는 예수라고 말씀하시지만. 그 어떤 신한테도 진심으로 의지하지 않아요. 담담하게 흘러나온 대답이 예상했던 대로라는 듯 큰스님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동혁아.

“네가 믿는 것은.”

부처냐, 예수냐, 천주냐. 동혁이 고개를 돌려 큰스님을 쳐다봤다. 늘 인자하고 여유롭기만 하던 얼굴이 어둡다. 마찬가지로, 늘 실실 웃고 다니던 동혁은 웃지 않았다. 진지하게 몸을 돌려 대답했다.

“저는 울 도련님을 믿는데요.”

그분이 가라는 대로 가고 하라는 거 할 겁니다. 그냥 평생을요.

동혁이 곧장 몸을 돌렸다. 작대기를 쿡쿡 짚으며 본채를 지나쳐 제노가 간 방향 그대로 산길을 올랐다. 큰스님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곧 두 손을 천천히 모으더니 동혁의 뒷모습을 향해 허리 숙여 합장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부처님, 저 어린 영혼들을 굽어살피셔서 행복하게. 행복하게. 현세의 불행에서부터 부디 자유롭도록.

 

산길을 성큼성큼 걸어오르는 까만 팔다리가 씩씩하다.

 

-

 

너 천주교 모임에 나간다구? 미쳤어 나재민? 드물게 화난 제노의 목소리가 재민의 뒷덜미를 잡았다. 재민이 미동 없이 한쪽 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당긴 활시위를 천천히 비틀어 돌린 재민이 탕, 하고 손을 놨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화살이 공터의 반대쪽 끝에 놓인 과녁의 중앙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팍 꽂혔다. 성큼성큼 다가온 제노가 재민의 옆에 멈춰섰다. 저를 돌아봐주지 않음에 적잖이 상처받은 얼굴이다.

“홍주목사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이야기해 줬잖아. 공을 세우는 데 혈안이 된 일본의 개야. 조선 사람 목숨을 가벼이 여긴다니까. 그 모임, 덜미 잡히면. 그거 나가는 거 걸리면. 너 죽어 재민아, 어?”

답답해하는 제노의 목소리가 공터를 왕왕 울렸다. 재민이 숨을 고르며 발 뒤축을 움직여 자세를 고쳤다. 발밑에서 풀이 짓이겨지는 느낌이 생경하다. 재민은 두 번째 활시위를 매길 때까지 부러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사실 제노가 포기하고 다그치기를 멈춘다면 아예 돌아보지 않을 심산이었다. 조금 토라지겠지만, 어쩌겠는가.

 

나재미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눈치 없는 이제노는 아예 이름을 불러가며 보챘다. 말꼬리 길게 끄는 버릇은 언제쯤 고쳐지려나. 활시위를 당기려 팔을 들어올렸는데, 등 뒤로 쿵쿵대며 다가온 제노가 어깨를 잡아쥐었다.

 

- !

 

순간 재민이 확 뒤돌았다. 시위에 매겨졌던 화살은 어느새 다시 분리되어 손에 단단히 들렸다. 그 화살촉 끝이 정확히 제 목젖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제노의 턱이 파르르 떨렸다. 너…, 뭐해. 속삭이듯 물어도 재민은 촉을 거두지 않았다. 무섭도록 단호한 눈빛이었다.

“내가 거기 안 나가면.”

“……,”

“그러면 안 죽어?”

진짜 그래, 제노야? 어쩐지 그 물음이 가슴 아파서, 그리고 섣불리 그렇다는 대답을 줄 수가 없어서 제노가 침묵했다. 재민이 입을 다물더니 화살을 아래위로 뒤집었다. 거꾸로 들고는 제노 눈 앞에 가져다 댄다. 늘상 재민의 손을 타던 얼룩덜룩한 붉은색 화살깃이 제노의 시야에 어지러이 들어찼다.

“이게 뭘로 물들인 건지 알아, 도련님?”

“……,”

“우리 부모님의 피야.”

제노의 눈이 커졌다. 한치 흔들림 없는 재민의 시선이 제노를 마주했다. 그 안에서 뭔가가 불타올랐다. 부서져 내렸다. 화염이 모든 걸 집어삼켰다. 형체 없는 것에 약탈당한 뒤 불바다가 된 재민의 삶이 그 눈동자를 통해 그대로 내비쳐 보였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매주 나가는 미사가 싫었어. 뒷문으로 몰래 나가서, 남의 집 창고를 전전하면서까지 천주님을 모셔야 할까 싶었어. 그래서 여기서도 그랬어. 매주마다 미사 나가기 싫어. 싫은데, 나가야만 해. 우리 부모님 유언이었거든. 재민아, 아들아, 너는 우리 대신 천주님을 모시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성결하고 고귀한 신도로 자라거라. 그러면서 죽었지. 그깟 천주님이 뭐라고. 그 천주님 때문에 처참하게 죽었으면서. 아들 두고 먼저 가도 남은 한이 없을 만큼 귀히 여겼나 봐. 나보다 더 사랑했나 봐 그분을. 그래서 미웠어. 우리 부모님 잡아먹은 게 천주님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이상한 게 뭔지 알아? 일단 미사만 가면,

“모순적이게도 그 천주님한테 가장 열렬히 기도하게 돼.”

나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 빌어. 제발 좀 어디 한 군데라도 나아지게 해 달라고. 엉망이 된 심장, 홀로된 몸, 내가 가졌지만 지키지 못한 모든 것들 중 하나라도. 뭐라도 좀 괜찮아지게 해 달라고. 사실 도망치는 내내 그랬어. 어머니 아버지 따라 천주님께도 빌어 보고, 여기 와선 큰스님 따라 부처님께도 빌어 봤어. 이제 널 만났으니 예수님 하나님께도 빌 수 있겠다 그치. 누군들 어때. 어차피 내 기도는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걸.

 

…… 듣기로는 천주박해 때 공을 세워 관직을 받은 자래. 천주쟁이들이 모이는 데를 몇 곳이나 알아내 불을 질렀대. 생각했던 것보다 배는 무서운 사람이었어……

 

몰랐다.

얘기를 안 해서, 정말 몰랐다.

제노가 입을 다물었다. 입술을 조금만 벌려도 울음이 쏟아질 것만 같아서였다. 나재민 인생의 궤도는 이제노의 그것과 완벽히 똑같았다. 재민이 제노의 손을 잡아 올렸다. 꽉 쥐어 새하얘진 주먹을 억지로 풀더니 그 손 안에 묵주팔찌를 쥐어 준다. 제노가 제 손 안에 들어온 것을 황망한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재민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기분이었다. 제노야 너도 싫지. 너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게 끔찍하지. 그렇잖아, 가족이란 이름에 얽매여서 살아가잖아.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을 책임져야 하니까. 그러니까 믿지 않는 신에게 눈물로 기도하게 되는 거잖아. 내 말 좀 들어 달라고 애원하게 되는 거잖아 그렇지. 절박한 재민의 어조에 제노는 단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재민이 다시금 제노의 손을 고쳐 쥐었다. 뜨거운 손길이었다.

 

그러니까, 제노야.

 

“우리 추운 곳으로 떠나자.”

 

제노가 입술을 앙물었다. 순식간에 두 눈에 뜨겁게 눈물이 고였다. 재민이 화살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구었다. 빈 손으로 제노의 두 손을 맞잡았다. 제노만큼이나 젖은 눈이었다.

 

“아주 멀리멀리 떠나서, 세상의 가여운 것들을 보듬으면서 살자. 그러려면 우린 서로를 먼저 보듬어야 할 거야. 내게 그럴 기회를 줘.”

 

재민의 목소리가 기어이 파르르 떨렸다.

 

 

“너를 사랑하게 해 줘.”

 

 

 


 

 

 

 

 

여덟 살, 제노와 동혁이 짝지어진 지 얼마 안 된 여름날. 동혁은 등 뒤에 쬐매난 바소쿠리를 지고 불쏘시개를 주우러 다니는 데 제노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순전히 제노가 박박 우겨 가며 졸라서였다. 동혁은 익숙한 산길을 타며 제노의 손을 잡아끌어 줬고, 본디 몸이 날랬던 제노는 폴짝폴짝 잘도 따라왔다. 마른 나뭇가지가 보이면 쭈그려 앉아 주웠고, 솔방울이나 도토리 깍정이를 보면 여지없이 긁어모았다. 제노는 숲을 구경하고, 다람쥐를 쫓고, 길다란 나뭇잎을 주워 개미들의 대열을 흩트려 놓으며 놀다가 동혁이 일어섰다 싶으면 곧장 따라붙었다.

앗 따거.

  

지난겨울에 다람쥐가 모아 뒀을 도토리 깍정이 무더기를 발견해 신나게 주워모으는데 돌연 손이 따끔했다. 나뭇잎 아래 숨어 있던 밤송이에 검지손가락을 찔린 거였다. 떨어진 지 꽤 되어 딱딱해진 가시는 어린 살갗을 너무도 손쉽게 뚫었다. 피가 퐁퐁 나기 시작하자, 더럭 겁이 난 동혁은 바소쿠리를 옆에 얌전히 내려둔 채 옷자락을 조금 찢었다. 서툰 손놀림으로 검지손가락을 감쌌다. 낑낑대며 묶어 놓고 나자 한시름 놓여 다시 바소쿠리를 짊어졌다. 도련님 저짝으루 가요. 이쪽 손 더러워졌으니까 이쪽 잡아요. 어느샌가 달려온 제노를 향해 왼손을 내밀자 제노는 뚫어져라 동혁의 붕대 감긴 오른손을 쳐다봤다. 괜시리 부끄러워 손을 뒤로 감추자 굳이 잡아 끌어다 들여다봤다. 손 더럽다니까요오. 기어들어가는 동혁의 목소리를 무시한 제노가 고개를 반짝 들었다.

 

안 아파?

이거요? 이거는 금방 낫지 싶은데… 피 쪼끔밖에 안 났어요.

아아니, 이거 말구. 맨손으로 막 만져서.

 

여기 다 긁혔잖아.

 

동혁은 그제서야 제 손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나뭇가지며 돌멩이 따위에 엉망으로 긁힌 잔생채기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라면 신경도 안 썼을 자잘한 상처들이다. 그런데 이제노가 물어보니까. 도련님이 잔뜩 걱정되는 눈망울로 안 아프냐 물으시니까. 그만 눈에 눈물이 핑 고이고야 말았다. 쪼금 아픈 것 같애요… 그치. 아프지. 얼른 집 가자 응? 울먹이는 동혁을 냅다 달랜 제노가 동혁의 다친 손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살짝 쥐고서 산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동혁은 바소쿠리를 고쳐 메며 생각했다. 정말 어이없다고. 정말 어이없고 이상한데, 기분이 이상했다. 똑 울고 싶었다. 아프다고 잉잉 떼쓰며 투정 부리고 싶었다. 어쩌면 저는 이제노로 인해 아이이기를 배웠을지도 모른다고, 지금의 이동혁은 종종 생각한다. 여덟 살 꼬맹이답게 사는 법.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줄 아는 아이로 살아가는 법. 노비 새끼가 아니라 사람 새끼로 살아가는 법을.

 

 

-

 

제노가 뛰쳐내려간 길을 따라 몇 걸음 걸으니 동혁이 보였다. 나무 그루터기에 앉은 동혁은 손에서 단도를 휙휙 굴리며 이쪽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거리상 분명히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들었을 것이다. 인간 나재민의 삶이 어땠는지부터, 이제노를 향한 절절한 고백까지. 딱히 기분 좋을 일은 아니었기에 재민은 인사 대신 인상을 찡그렸다.

“칼은 왜 뽑아들고 있는지 물어도 되니.”

잔잔한 어조로 물으며, 재민은 망설임 없이 화살통에서 화살을 뽑아 들어 활에 시위를 매겼다. 당기지는 않은 채로 동혁을 매섭게 노려봤다. 동혁이 피식 웃더니 허리를 숙였다. 바닥에서 주워 든 건 팔뚝 굵기의 굵은 나뭇가지였다. 손에 들었던 단도로 장작의 잔가시를 탁탁 쳐내며 동혁이 무심히 물었다.

“쏘시려구요?”

“……,”

“어디다 입 안 텁니다, 걱정 마셔요 동자님.”

그러고 보니 뒤쪽에 세워진 지게에 잔가시가 손질된 굵은 나뭇가지가 수북했다. 무안해진 재민이 화살을 도로 화살통에 집어넣었다. 여름바람이 불어와 숲을 온통 흔들었다. 싸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후텁지근한 기운이 코끝을 싸고 돌았다. 재민이 동혁의 옆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울 도련님 걱정은 안 하셔두 돼요. 아마 집으로 가셨을 겁니다. 단단히 토라지신 것 같던데, 뒷감당을 어찌 하시려는지 모르겠네. 동혁이 노래부르듯 가벼운 어조로 일렀다.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재민이 대충 굴러다니는 포대 자루를 끌어다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았다. 묻고 싶은 게 있었다. 턱을 괸 재민이 고민 없이 입을 열었다.

“동혁아.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예 말씀하세요.”

“내가 너한테서 제노를…, 뺏어 갔잖아.”

나름 신중히 생각한 문장이었는데 그 대목에서 동혁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도련님두 여즉 어리시네요. 놀리듯 가벼운 말투가 은근히 성질을 긁었다. 대답해. 왈칵 성질을 낸 재민을 흘끗 쳐다본 동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찌 보면 그렇죠. 대답은 한 박자 늦게 튀어나왔다.

“그런데 너는 나를 왜 미워하지 않아?”

티없이 맑은 물음이었다. 미움받기 두려워하는 이의 어투였다. 거침없이 칼로 가지를 쳐내던 동혁의 손이 멈췄다. 왼손으로 칼을 바꿔 들자 엄지손가락에서 언뜻 피가 비쳤다. 놀란 재민이 뭐라 한 마디 할 새도 없이 손가락 마디 살이 갈라져 피가 솟았다. 쫌 베었네요. 손이 미끄러져서. 아무렇지 않게 동혁이 왼손을 뒤로 넘겨 머리둘레를 질끈 동여맸던 하얀 끈을 칼로 잘라 풀어냈다. 동시에 올려 넘겼던 앞머리칼이 이마로 쏟아져 내려왔다. 끈을 적당한 길이만큼 이로 죽 물어 뜯더니 익숙한 손놀림으로 엄지손가락에 친친 감아맨다. 재민이 조심스런 눈길로 동혁의 손가락을 더듬다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그랬다가, 여태껏 저를 쳐다보고 있던 동혁과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뜻밖에도 동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 있다. 왜 미워하지 않았냐구요? 반문하는 목소리가 잔잔하게 즐겁다.

“제가 파란 것을 연민하는 버릇이 있어서요.”

“……,”

울 도련님이랑 너무 닮았는데 제가 어찌 미워합니까. 동자님을. 동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오른손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피는 더 이상 배어나오지 않았다. 대신 붉은 것이 번져 손바닥이 온통 끈적해졌다. 쯧, 하고 혀를 찬 동혁이 칼을 품 속에 갈무리해 넣었다. 두어 개 정도 남았던 장작들을 단념하고, 다듬던 것을 왼손으로 들어 지게 위에 얹었다. 쳐냈던 잔가지들도 한 손으로 싹싹 긁어모아 챙겼다. 불쏘시개로 쓰일 놈들이었다.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던 재민이 툭 던지듯 물었다.

“너 손 안 아파?”

“여기 베인 거요? 금방 낫,”

“아니, 그런 거 맨손으로 막 만지면.”

 

긁힐 거 같은데…

 

동혁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작게 시작한 웃음은 곧 크게 번졌다. 아하하하, 하고 허탈한 웃음소리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여덟 살의 이제노가 당황한 재민의 얼굴 위에 진하게 겹쳐 보였다. 어찌 그리 닮으셨습니까. 어찌 그리 똑같아요. 이러니 어찌 당신을 미워합니까. 분명 처음엔 원망스러웠는데, 이제는 당신이 살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나랑 이제노랑 함께 있어 줬으면 좋겠어요. 한 손으로 마른세수하듯 얼굴을 감싸자 눈가로 열이 몰렸다. 잇새가 달달 떨렸다. 가슴속 어딘가에 애틋한 감정이 싹텄다. 맹랑하고 심지 굳은 동자님, 억지로 밀어내기에는 마음이 너무 맑고 파란 나재민아.

 

당신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 만나셨다구요. 홍주 목사 나으리를요.”

“그래 이 녀석아. 우리 팔자 폈다.”

문덕은 묘하게 들떠 있었다. 제노가 티나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권력의 냄새라면 귀신같이 맡고 찾아가는 제 아비가 이럴 거라고 진작 예상했다. 곧 홍주 목사는 이문덕 목사와 둘도 없는 친우가 될 것이고, 같은 목표물을 조준할 것이며, 힘을 합쳐 공격할 것이다. 그 목표물이라 함은 분명 예선사이리라. 이문덕에게는 눈엣가시였던 절을 없애 좋고, 홍주 목사에게는 절 뒷방들을 털어 떨어지는 반역의 찌꺼기들을 그대로 받아 삼킬 수 있어 좋은 구도였다. 정의를 위하는 척하면서 가슴은 제 잇속 챙기느라 썩어문드러진 위선자들. 제노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찻잔 두 개와 찻주전자를 들고 온 동혁이 몰래 문덕을 팍 째리며 제노 앞에 잔을 내려놓았다. 문덕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나서 말을 이었다. 땅딸막한 몸이 거실을 온통 산만하게 휘젓고 돌아다녔다.

“이번에야말로 저 썩어빠진 절간을 주저앉히고 말 거여. 목사 나으리 뜻이 곧 우리 뜻 아니겄냐. 그분이 보시기에도 저짝 돌아가는 꼬라지가 개같은 거여, 누군들 안 그렇겠냐만은.”

들어 보니까는 아주 대놓구 절간에서 천주놀이를 한다던데. 에이그 쯧쯧 멍청한 놈들. 숨기지도 못할 걸 뭣하러. 덕분에 잘됐어, 조정에서 공문만 내려오면 아주 싸악 뒤집어 엎을 것이여.

제노가 비명이 나오는 걸 참느라 소파 시트를 엄지손톱으로 꾸욱 눌렀다. 동혁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옆얼굴에 느껴졌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절망스러웠다. 이러다간 정말 제 손으로 재민의 목을 죄는 형국이 되고 말 것이다. 권력의 맛은 곧 재물의 맛이었다. 그 어떤 마약보다도 중독성이 강한 맛. 문덕은 거기 푹 잠식돼 이십 년을 살았고, 이제 다시는 평범한 백성의 삶을 살지 못할 터였다. 한 번 따뜻한 물을 만져 본 이는 다시는 찬물로 못 씻는다 하더니, 꼭 맞는 말이었다. 저를 키운 이는 찬물로 씻는 게 문제가 아니라 데워진 것이 아니면 손에도 대지 않을 심산인가 보았다. 누군가가 뜨끈한 온돌에 등판을 지질 때 누군가는 손발에 동상이 들어 마디가 잘려나갑니다, 아버지. 조선은, 조선의 겨울은 그러합니다. 잘린 손가락 발가락들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물론 속으로만 곱씹은 말들이었지, 입밖으로는 원망의 끝자락도 꺼내지 않았다. 욱할 때면 재민의 고백을 되뇌었다. 아직 대답을 해주지 못한 고백. 제노야. 우리 추운 곳으로 떠나자. 아주 멀리멀리 떠나서, 세상의 가여운 것들을 보듬으면서 살자.

“……해서, 그 여우새끼 하나만 족치면 줄줄이 엮인다고 혔어.”

공상에 빠졌던 제노를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 것은 문덕의 만족스러운 중얼거림이었다. 여우새끼. 익숙한 호칭에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예? 하고 반문하며 고개를 든 제노에게 문덕이 쐐기를 박았다. 제일 최근에 육지서 도망쳐 왔다던 여우새끼. 몰래 천주놀이 하는 것들을 반역죄루다가 한번 싸악 쓸어 잡아 죽인 모양인디, 거서 도망친 놈이랴. 그놈 흔적을 아직두 조정에서 찾구 있단다. 목사 나으리두 그놈 하나만 살리든 죽이든 위로 올려 보내면 음청난 공신이 되는 거여. 근데 그놈이 의심의 여지 없이 예선사 절간에 있다 이 말이여. 잘 됐지, 이참에 그놈 잡어 죽이고 주지도 잡아다가 반역죄루 목을 치고…

 

제노야. 우리 추운 곳으로 떠나자. 아주 멀리멀리 떠나서, 세상의 가여운 것들을 보듬으면서 살자. 그러려면 우린 서로를 먼저 보듬어야 할 거야. 내게 그럴 기회를 줘.

 

너를 사랑하게 해 줘.

 

 

“도련님!”

당황한 동혁의 부름을 무시하고 제노가 달렸다. 현관문을 박차고 나와 미친 듯이 마당을 가로질러 사이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젖히고선 예배당으로 달렸다. 육중한 문에 매달려 힘껏 당겨 열었다. 좁은 예배당 복도를 넘어질 듯이 뛰어가며 태사혜를 벗어던졌다. 휘청거리던 몸이 결국 십자가상 앞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강단 위에 엎드린 채 앞뒤 잴 것 없이 두 손 모아 잡았다. 눈을 질끈 감자 입에서 저절로 울음 터지듯 기도가 터져 나왔다. 사랑하시는 주님 아버지.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그 아이가 주님이 품은 아이는 아니더라도 구원해주세요.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살아온 애란 말이에요. 재민이는 살아야 할 애란 말이에요. 주님. 주님. 듣고 계시죠. 제 기도는 들으시잖아요. 그러셔야 하잖아요 주님. 제발요 제발요 제발요.

“도련님. 도련니임,”

“허으, 흐, 윽, 끅, 흐.”

“숨 쉬어요. 옳지. 다시 크게 들이쉬고. 뱉고, 들이쉬고 천천히.”

동혁의 손이 강단있게 등짝을 팡팡 내리쳤다. 그 덕에 겨우 숨통이 트인 제노가 맞잡았던 손을 풀어 동혁을 부여잡았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저를 편안하게 품어 주는 가슴팍에 엉망으로 얼굴을 부볐다. 동혁이 제 옷깃을 붙들고 늘어진 제노의 팔을 잡아 목에 둘렀다. 소리 없이 들썩이는 몸을 익숙하게 추슬러 끌어안았다. 아름답고 하얀 몸에서 숨소리가 쌕쌕대며 잦아들 때까지 팔에 힘을 풀지 않았다. 목사가 저와 제노를 소리쳐 불렀고, 아마 그 덕에 돌아가는 즉시 온갖 지청구를 다 들어먹을 것이고, 제노를 따라 뛰어오느라 벗겨진 짚신이 예배당 앞에 엉망으로 뒹굴고 있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동혁아. 아버님은 분명히 죽일 거야. 재민이를 죽일 거야. 어떡해. 어떡하면 좋니. 그 애 살려야 하는데 어쩌면 좋니… 두서없는 중얼거림이 가슴팍에서 웅웅 울렸다. 제노가 다급히 동혁의 옷자락을 고쳐 쥐고서 고개를 들었다. 젖은 얼굴에 눈물처럼 번진 표정이 절박하다.

“……,”

순간 동혁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안 돼요 도련님.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상상만으로 온몸이 덜덜 떨렸다. 허나 제노는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안 돼요 도련님, 안 돼요. 제발요. 애원조로 중얼거리는 동혁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제노가 눈을 꾹 감고는 결국 참던 한 마디를 토해냈다. 동혁아.

 

 

“절에 가자.”

 

 

시야가 어뜩해졌다.

 

동혁의 귀엔 그 말이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동혁아 어떡해.”

 

 

못 들어가겠어 나 어떡해?

 

투박한 손가락이 앳된 얼굴을 쉴새없이 닦아냈다. 열두어 살짜리 꼬맹이 주제에 눈물샘이 어찌 그리 깊은지 손등이 축축해진 지도 오래였다. 안 그래도 내려간 눈꼬리가 잔뜩 내려가서는 어깨를 떨며 울먹이는 도련님. 동혁이 엄지손가락으로 제노의 눈밑을 훔치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니임. 울지 마세요. 더 혼난다매요, 울면서 들어가면. 속살거리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너 이놈 언제까지 꾸물댈 참이여! 잔뜩 성난 제 양아비의 목소리에 어깨가 탁 튄 제노가 입술을 일자로 다물었다. 꾸욱 울음을 눌러참는 얼굴이 잔뜩 억울하고 서러워 동혁이 외려 울상이었다. 아이, 도련님. 나 진짜 미치겠네. 뚝 하세요오. 히이잉,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인 제노가 말릴 새도 없이 동혁의 어깨 위에 얼굴을 묻었다. 금세 어깻죽지가 축축해져 왔다. 동혁의 입술이 당황스러움에 벌어졌다. 곧장 제노의 몸을 둘러 안은 동혁이 다급하게 재잘댔다.

“도련님 뚝! 도련님 뚝.”

“안 그쳐져……,”

“얼른 들어갔다 나오면 내일 아침엔 오디 따먹게 해줄게요.”

한 움큼 따다가 계곡 들러서 헹궈 먹어요, 네? 잔뜩 겁먹어 들썩이는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정자 뒤 큰 나무에 열리는 게 알이 굵고 맛있다느니, 좀만 지나면 제철이 지나 뭉개져 버려서 못 딴다느니 하는 말들을 쏟아내는 동혁의 눈시울이 저도 모르게 살풋 붉어졌다. 속상하고 마음이 아파서, 혹은 저가 겁먹어서가 아니었다. 도련님이 자꾸 우니까 저도 시방 눈물이 나잖아요. 제노가 거의 다 그친 울음을 또 터뜨릴까 봐 그런 말은 꾹 눌러 참았다. 울어서인지 둘러 안은 몸에 열이 올라 따뜻했다. 포근한 땀 냄새, 젖내. 익숙한 체향. 품 안에 든 도련님. 내가 먹이고 입히고 재운 아이. 동혁이 자꾸만 이유 없이 흐르려는 눈물을 꾹 눌러 참으며 제노의 어깨에 턱을 얹었다. 더 어렸을 땐 분명 저보다 제노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컸던 것 같은데, 열두 살이 되면서 키가 비슷해졌다. 동혁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눈높이에서 울음을 달래줄 수 있는 게 좋아서 그랬다.

평소엔 손과 옷이 물든다고 못 따먹게 하던 오디로 꼬여낸 게 효과가 있었는지 흐느낌이 금방 잦아들었다. 울음 때문에 부은 얼굴로 고개를 든 제노가 웅얼거렸다.

“많이 안 혼나겠지…?”

“당연하죠! 새벽기도 하루 빼먹은 게 뭘 대수라구.”

그래두 도련님. 들어가면 그냥 잘못했습니다 하구 싹싹 빌다 나오쇼, 예? 대감마님 성정 아시잖아요. 조심스런 말에 제노가 시무룩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내일 나가면 꼭 오디 따먹는 거다. 마지막으로 눈물범벅인 얼굴을 한 번 야무지게 닦아 준 동혁이 제노의 엉덩이를 두어 번 통통 쳤다. 얼른 갔다 나오세요. 기다릴게요. 머뭇거리며 뒤돈 제노 옆에서 동혁이 미닫이문을 조심히 밀어 열었다. 들어와 앉어! 또 냅다 떨어진 불호령이 맵다.

문이 닫혔다. 동혁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동혁아, 얼른 와라잉. 삼 일 길다. 고봉으로 한 끼는 먹고 들가라. 행랑아범이 부엌께에서 저를 소리쳐 불렀다. 예에. 길게 대답한 동혁이 발걸음을 돌렸다. 희미하게 제노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오디는 따먹으러 가지 못했다. 동혁이 그길로 삼 일간 광에 갇힌 탓이었다. 제노가 벌을 받으면 동혁은 꼭 그 두 배로 받아야 했다. 제노는 순했으나 잠투정이 길고 종종 잠에서 깨다 눈물을 보여, 가끔 동혁은 새벽에 기도하러 죽어도 가기 싫다며 눈도 뜨지 못하고 울먹이는 제노를 더 이상 깨우지 못하고 옆에서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어야 했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제노는 굳게 잠긴 광 문앞에 쭈그려 앉아 눈물바람을 했다. 당장 꺼내라고 난리쳐도 할 말 없을 텐데, 그래봤자 소용없을 거란 걸 알아서인지 반항 없이 순했다. 도련님 뚝 하라구 했죠. 동혁은 나름대로 애가 타 문 아래 틈으로 손을 뻗어 연신 제노의 발등을 토닥였다. 얼굴을 보질 못하니 손만으로 반가운지 제노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까맣고 손가락 마디가 튀어나온, 그럼에도 불구하고 앳된 손등을 살살 매만졌다. 배 안 고파? 삼 일은 거뜬해요 도련님. 숭늉이랑 물 정돈 행랑아범이 몰래 챙겨주구요. 저 튼튼한 거 아시면서 왜 자꾸 울어요.

“미안해.”

“뭘 미안해요. 못 깨운 건 전데.”

“담부턴 한 번에 일어날게…….”

“저는 괜찮아요. 저 땜에 그러실 필요 없어요.”

도련님은 많이 혼났어요? 아니아니 종아리 세 대 맞았어. 헤엑. 근데 행랑아범이 고약 발라 줬어. 다행이네요, 그래두 많이 아프셨겠다. 사위가 어둑해지고 춘삼댁의 등쌀에 제노가 실내로 쫓겨 들어가고 나면 동혁은 아무렇게나 쌓인 볏짚 위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빨지 못한 옷에서는 콤콤한 냄새가 났고 뱃속에선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을 때쯤이 되면 동혁은 광 한켠 높다랗게 쌓인 쌀포대 중 가장 아래쪽에 있는 포대를 손톱으로 살살 찢었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만 찢겨도 한 움큼의 쌀알이 좌르르 밀려나왔다. 물그릇에다 그걸 담가 두고 어림으로 반 시진을 세고 나면 그것들은 제 덜 여문 어금니로도 꼬득꼬득 씹힐 만큼 불어 있곤 했다. 아쉬운 대로 입에 넣고 질겅이다 보면 좀 나았다. 동혁에게 고슬한 밥과 찬물에 불린 생쌀은 똑같은 정도로 익숙했다.

“……, 도련님?”

깜빡 잠이 들었다가 귀에 거슬리는 소리에 번뜩 깼다. 동혁아. 문을 콩콩 치는 소리와 나지막한 제노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동혁이 볏짚 위에서 한달음에 뛰어내려 문에 붙어 앉았다. 도련님 이 한밤중에 어찌 나오셨어요. 왜 안 주무셨어요. 쉿, 몰래 나왔어 걸리면 또 경을 칠 거야. 묻는 목소리만큼 대꾸하는 목소리도 다급하다.

“이거.”

문 밑으로 내밀어진 작은 두 주먹이 펴진다. 동혁이 눈을 게슴츠레 뜬 채 광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비추어 손에 들린 것의 형체를 알아보려 애썼다. 시큼하고 달큰한 냄새가 퍼진다. 한참 미간을 찌푸리며 들여다보고서야 제노의 손에 들린 것의 정체를 깨달은 동혁이 헛숨을 들이켰다.

“이걸 어떻게.”

“아까 하령이랑 춘삼이랑 다녀왔어.”

두 손에 한가득 담긴 것은 오디였다. 동혁이 제노의 손에서 군데군데 뭉크러지고 즙이 배어난 오디를 조심히 받아들었다. 끈적했고, 단내가 풍겼고, 알이 실했다. 제가 알려준 그 위치의 나무를 용케 잘 찾아 다녀온 듯했다. 고요히 숨소리가 울렸다. 어린애들 특유의 쌕쌕이는 호흡이 나뉜 공간을 가득 채웠다. 동혁아 화났어? 근데 네가 며칠만 지나두 못 먹는다길래. 맛보여 주고 싶어서, 너한테. 조심조심 속살거리는 목소리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동혁이 깨끗한 볏짚 몇 장을 골라 발끝으로 살살 끌어와서는 그 위에 손에 담긴 것을 조심스레 쏟았다.

“……, 아,”

달았다. 혀와 앞니에 닿는 감각은 부드럽고 끈적하며 촉촉하다. 무릎을 꿇은 채 가슴이 바닥에 닿을 만치 상체를 바짝 낮춘 동혁이 문틈으로 들어온 제노의 손목을 조심스레 그러잡고서 손가락 끝을 입에 담았다. 문 뒤에서 몸이 파득 튀었다. 사탕을 굴리듯 조심스럽게 손끝을 핥아낸 동혁이 그대로 쥔 것을 제 입으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생경한 감각에 제노가 두 손을 맡긴 채 끙끙 앓았다. 뭐 해, 뭐 해 동혁아. 뱉어. 손 더러워, 뱉어어 얼른. 동혁은 개의치 않고 턱을 움직였다. 실수로라도 깨물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운 채 척척한 소리가 나도록 작은 손을 꼼꼼히 핥아냈다. 동혁은 잡은 손목을 연신 어루만지며 열심히 고개를 꺾었고, 제노는 축축한 입술이 맞붙은 손금 사이를 지날 때마다 파르르 몸을 떨었다. 뱉으라고오. 결국 목소리에 물기가 서릴 때까지였다.

얼룩덜룩하게 남은 오디 물이 전부 지워졌다 싶어졌을 때에야 고개를 든 동혁이 손을 놔주었다. 제노의 숨소리가 가칠가칠해져 있었다. 도련님 잠시만요 죄송해요. 숨을 고르며 말을 쏟아 놓은 동혁이 무릎걸음으로 기어 제 물그릇을 끌어 왔다. 많이 놀랐는지 그새 손을 감춘 제노 앞에 아이를 달래듯 문틈으로 손바닥을 내밀어 펴니 쭈뼛거리면서도 순하게 도로 제 손을 쥐어 준다. 잡힌 손보다 잡은 손이 더 바들댔다. 어울리지 않게도 동혁은 허둥대고 있었다. 물그릇에 제 손을 담갔다 빼며 물을 묻혀, 제 타액으로 축축해진 도련님의 손을 몇 번이고 닦아내는 손길이 미끄러졌다 돌아오길 반복했다.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가 되어서야 두 손을 놔준 동혁이 입술을 물었다. 문 너머의 도련님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동혁아. 나.”

“……,”

“아래가 뜨거워.”

이쪽 사정도 다르지 않음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동혁이 문에 이마를 가만히 댔다. 숨을 죽이니 제노의 숨소리가 더 선명히 들려왔다. 듣고만 있어도 마음이 내려앉는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 제 형을 찾으며 온종일 울어댔을 막둥이 걱정도, 제가 없는 사이 장작 없이 떨고 있을 산 너머 뱃사공 할아버지 생각도 이 순간만큼은 머릿속에서 희게 옅어졌다. 도련님, 우리 도련님, 내가 많이 사랑하는 우리 도련님.

“들어가서 주무세요, 도련님.”

나직이 속삭인 동혁이 눈을 감았다. 그래야 내일 일어나서 기도 나가죠. 단호한 동혁의 말투에도 제노는 한참을 머뭇댔다. 부스럭거리는 옷자락의 소음이 몇 번이고 들리고서야 문 너머로 내일 봐, 하는 나직한 인사가 떨어졌다. 곧 희미하게 발소리가 멀어지고 사위가 고요해진다.

 

동혁이 그대로 몸을 돌려 광 문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숙이자 쓸어넘겼던 앞머리가 머리띠 위로 넘어와 쏟아졌다. 동시에 무릎 위로 후두두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왜 눈물이 나지? 당황한 동혁이 동그랗게 젖어든 자국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제 눈에서 방울져 떨어지는 것이 어색했다. 울어본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기에 그랬다. 하나둘씩 젖어들던 동그라미들이 점점 그 면적을 넓히더니 해어진 바지 위를 온통 적시고야 말았다. 입술을 깨물던 동혁이 결국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듯이 쥔 두 손이 달달 떨렸다. 뼈마디가 하얗다.

 

좋아한다. 연모한다. 많이 사랑한다.

 

그러나 이제노는.

 

 

“어떡하지.”

동혁아, 나 어떡하지. 제노가 멍하니 되뇌었다. 한 번 무언가가 무너져 내린 얼굴이다. 어둠이 옅게 깔린 절간은 고요하고 섬뜩했다. 동혁이 볼을 타고 흐르는 땀을 훔치며 인상을 찡그렸다. 초저녁부터 침상에 들었는지 재민의 사랑채는 등불 불빛이나 인기척도 없이 고요했다. 어떡하긴 어떡합니까. 그러게 여길 왜 오셨어요. 자기 목숨줄을 내놓고까지 지켜야 되는 거였냐구요. 그렇게나 연모하는 거냐구요, 동자님을. 다 큰 제노는 소리내지 않고 우는 법을 더 잘 알았다. 열 살배기 꼬맹이처럼 냅다 울음을 쏟지 않고 참고 참다가 뚝뚝 흘려 보내는 게 전부였다. 제노가 운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은 기도 새에 딸려나오는 거친 호흡과 젖은 목소리를 아는 동혁밖에 없었다.

“못 들어가겠어.”

어떡해. 나 재민이 얼굴 보면 울어버릴 것 같은데. 제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동혁을 쳐다보았다. 동혁이야 늘 제노를 보고 있었으니 자연스레 마주보게 됐다. 한숨을 푹 내쉰 동혁이 손을 뻗고 팔을 벌렸다. 입을 일자로 다문 제노가 두 걸음 걸어 그 품 안에 안겼다. 깨진 독의 아귀가 들어맞듯 꼭 들어맞는 모양이 밉고 좋았다. 나는 평생 누굴 지켜 본 적도 살려 본 적도 없어 동혁아. 어쩌지, 나는 너처럼 누굴 위해 살아 보지를 못해서…,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웅얼거리며 동혁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제노가 몸에 힘을 풀었다. 동혁이 제노의 몸을 단단히 끌어안고 등판을 살살 토닥였다.

“그런 말씀 마요.”

“……,”

“여태 나를 몇 번이고 살렸으면서.”

 

도련님 때문에 여태 살아 있는 내가 뭐가 돼요.

 

안긴 몸이 굳었다. 동혁은 짐짓 모른 체 팔에 꽉꽉 힘을 주었다. 제노는 헛숨을 먹어 가며 울음을 그쳤다. 더 이상은 안 된다. 그걸 직감한 동혁이 조심스럽게 팔에 힘을 풀고 제노를 놔줬다. 얼굴이 동혁의 어깨에서 떨어지자마자 제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방문으로 향한다. 인기척이 들려 그런 건지, 갑자기 방 안이 부스럭대더니 은은하게 호롱 불빛이 퍼졌다. 제노의 눈이 커졌다. 도련님, 도련님. 신발요. 금방이라도 뛰쳐올라가 방 안으로 뛰어들 것만 같은 제노를 붙잡은 동혁이 그 자리에 곧장 무릎을 꿇었다.

 

제노가 섬돌을 디디고 한 발을 들면, 아래 앉은 동혁이 조심스레 왼발의 태사혜를 벗기고 흐트러진 버선을 정리한다. 제노가 마루 기둥에 달린 걸개잡이를 붙들고 마루 위로 한 발을 딛고 올라서면 나머지 신발과 버선도 그렇게 했다. 두 손에 신발을 모아 든 동혁이 섬돌의 먼지를 툭툭 털고 그 위에 신발 두 짝을 가지런히 놓았다. 제노는 돌아보지 않았다. 달칵 하고 안쪽에서 잠근 문고리를 푸는 소리가 나자마자 문살을 두드려 기별을 보내지도 않고 곧장 사랑채 문을 밀어 연다.

 

 

무릎 꿇은 채 미동 없던 동혁이 눈을 끔벅이다 천천히 섬돌 아래로 손을 뻗었다. 마룻바닥 아래로 드리워져 눈에 띄지 않던 진보라색 꽃잎. 두둑, 따내자 생기있게 손끝을 타고 이슬이 흩뿌려졌다. 그렇죠, 이게 동자님이랑 내 위치인 거예요. 나는 늘 발치에, 동자님은 늘 눈앞에. 그런 동자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좋은 일인 거예요. 도련님은 그래야 해요. 저 같은 천것들한테는 눈도 주지 말고 살아야죠. 사랑하지 말고 사랑받으면서만 사세요. 존재 자체로 너무 오래 주고만 살았잖아요. 어른스럽되 아이 같은 사람을 만나야죠, 언제든 함께 시시콜콜한 것으로 웃고 떠들고 뒹굴 수 있게. 피가 고결하신 분을 만나야죠, 핏줄 하나하나에 바다 짠내가 배인 저 같은 것 말고요. 도련님은 지금 잘하고 있어요. 그러니 도련님이 아니라 제가 나쁘고 못된 거예요. 알고 있는데도 아파요. 도련님, 사실 저 많이많이 아파요. 뭘 잘했다고 아픈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말마따나 저는 도련님을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계속 죄만 지었는데요. 도련님. 도련님.

 

 

도련님을 사랑한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면 전 도대체 누구한테 용서를 구해야 할까요.

 

동혁이 천천히 제 허벅지를 짚고 일어서서 몸을 돌려 마루에 걸터앉았다. 결국 아무에게도 답을 듣지 못할 질문이다. 무릎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느새 여름이 한창이라 하늘이 맑고 달이 밝았다.

 

 

좋아한다. 연모한다. 많이 사랑한다.

 

그러나 이제노는,

 

 

내가 사랑하면 안 되는 우리 도련님.

 


 

 

제노는 저답게 푸른 빛깔의 꽃을 좋아했다. 산수국이 온통 파랗게 만개하기 시작하는 유월이면 동혁의 손을 잡고 뒷산 어귀를 쏘다니며 꽃구경을 다니곤 했다. 동혁은 반대였다. 안개처럼 깔린 산수국 옆에 작은 군락으로 드문드문 피어 있는 보라색 바람꽃을 좋아했다. 두어 포기씩 드문드문 얼굴을 내민 잡초 같은 꽃. 산수국과 비교하면 구경할 것도 없는 초라한 놈이었다. 열두어 살 먹었을 때는 그걸 가지고 다투기도 많이 다투었다. 동혁아 얘는 서양 꽃이잖아 왜 이런 앨 좋아하니. 도련님이 어뜨케 알아요 그리구 얘두 조선서 나고 자랐는데요. 아냐 봐봐라 꽃이 보라색이구 꽃잎이 크잖아 그럼 조선 바람꽃 아니야 토종은 하얘. 제노는 늘 동혁보다 아는 게 많았고, 동혁은 그런 제노와의 말싸움에 매번 어김없이 졌다. 심통이 난 티를 팍팍 내며 산수국 꽃무더기 사이로 풀썩 누우면 날리는 꽃가루 사이로 꿀벌이 애앵 날아올랐다. 울 도련님 벌침에 쏘이기라도 할세라 손을 휙휙 휘저어 쫓고 나면 제노가 까르륵 웃으며 동혁의 품으로 풀썩 엎어지곤 했다.

 

- 동혁아아.

 

내가 너 좋아해. 진짜 많이 좋아해. 너 어디 가면 안 돼, 평생 내 옆에 있어 응? 어리디어린 고백은 늘 다툼의 끝에 찾아왔다. 그 말을 비밀처럼 속삭이던 제노의 달뜬 숨은 늘 진심을 담고 있었다. 동혁은 아직도 어린 제노의 맑은 눈망울을 기억한다. 눈 옆에 예쁘게 찍혔던 눈물점을 기억한다. 사방으로 흐드러지던 파란 꽃에 파묻혀 저를 내려다보던 파란 이제노를, 그리고 그 배경이 되었던 초여름의 파란 하늘을 기억한다. 순간마다 눈이 부셔서 실눈을 떠야 했던 어린 날의 푸르른 잔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혁은 좋아한다는 제노의 말에 기뻤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제노는, 도련님은 산수국을 좋아했으니까. 그건 동혁은 물론이고 제노의 힘으로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사실 동혁도 제노처럼 당당하게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그 말을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다. 이동혁은 보라색 바람꽃을 좋아했으니까.

 

도련님 닮아 곱길래 좋아했던 건데.

 

이건

한 번도 말해주지 못했던 이야기다.

 

 

 

 

재민아.

도련님 뭐야. 이 시간에 여길,

나, 나, 지금 대답해도 돼?

뭐를, 아…….

좋아. 난, 나는, 좋아.

제노야.

떠나자, 어? 추운 곳으로. 나 데려가 재민아.

아, 도련님, 이제노 너 진짜……,

나 좀 사랑해줘……

 

진보라색 꽃잎이 바람에 파르르 떨렸다. 손가락 사이에서 흔들리는 꽃대를 무심히 내려다보던 동혁이 곧 여린 줄기를 소중히 고쳐 쥐었다.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야, 동혁아……”

자다 말고 부시시한 몰골로 뛰쳐나온 덕수가 말끝을 흐렸다. 창호지 문틈을 뚫고 나오는 외설스런 소리와 도련님의 울음 섞인 신음성이 적나라했다. 동혁은 그걸 고스란히 섬겨들으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마루에 걸터앉아 달을 보고 있었다. 다리를 달랑거리던 동혁이 방 안에서 간헐적으로 터지는 높은 한숨에 맞추어 꽃을 든 손의 반대 손가락을 마룻바닥에 두드렸다. 앉어, 거기 서서 뭐해. 외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게 타박하는 동혁에 덕수가 한숨을 삼켰다. 평소라면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 이제노 건드린 새끼가 양반이든 상놈이든 중놈이든 멱을 따 놓겠다고 길길이 날뛰었을 거다. 지금의 이동혁은 확실히 이상하다. 제 도련님이 남자와 격하게 정을 통하는 소리 대신 귀뚜라미나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 같았다. 너 괜찮냐. 나직하게 공기를 울린 물음에 동혁이 무감히 고개를 끄덕였다. 발끈한 덕수가 뭐라 쏘아붙이려던 걸 동혁의 가벼운 목소리가 막았다.

“되게 잘 어울리지 않냐. 동자님이랑 도련님.”

“너, 진짜.”

“높은 것은 높은 것끼리, 깨끗한 것은 깨끗한 것끼리.”

“야.”

“파란 것은 파란 것끼리 어울려야지.”

“……,”

“안 그러냐 덕수야.”

알아듣기 힘들게 불분명한 음조로 들리던 제노의 목소리가 울음기 사이로 좋다는 고백을 담아낸 순간, 동혁의 얼굴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입술을 꾹 문 동혁이 결국 두 무릎 사이로 머리통을 구겨 넣었다. 나 괜찮아. 웅얼웅얼 들리는 말이 어쩐지 젖어 있는 것만 같아 덕수가 미간을 구겼다. 동혁의 손가락 사이에서 꽃잎이 사정없이 짓이겨졌다. 꽃물이 손가락 사이에 진득하게 맺혔다. 손톱 밑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푸르게, 문득문득 붉게. 결코 깨끗하지 못한 빛깔로.

 

붉은 것과 푸른 것은 섞이면 안 된다.

이동혁과 이제노의 세상에서 보라색은 이기적인 색깔이었다.

 

 

-

 

 

“무거워?”

“하나도 안 무거워요.”

내가 잘 먹여 키운 거 같은데, 왜 이렇게 깃털 같지. 제노를 추슬러 업으며 동혁이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과 달리 발밑에서는 진흙이 평소의 두 배로 파였고, 잔나뭇가지가 사정없이 두둑거리며 부러졌다. 볼에 자꾸만 이슬 맺힌 나뭇잎이 스쳤다. 사람 하나를 업고 급히 내려가려니 훤히 아는 산길도 험했다. 멀리서 어슴푸레 새벽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다. 밤 내내 버티다 버티다 결국 까무룩 잠든 재민은 아직 깨지 못했고, 제노는 한시가 급해서 자지 못했다. 다리가 자꾸만 풀려 잘 걷지도 못하면서 그랬다.

동혁아 나 아퍼.

 

새벽이 지나 방문을 열고 동혁에게 건넨 제노의 첫마디였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온통 부었다. 동혁은 그제서야 눈이 돌아 이를 악물었다. 제노를 안아들었다. 방에서 데리고 나와 절 대청마루에 길게 눕혔다. 온몸을 주물렀다. 주무르며 뇌까렸다. 그럼은요, 아프죠. 여자애들두 첨 하면 잘 못 걷는데요. 홍화도 시집가서 첫날밤 보내구 담날 방 밖으루 못 나왔어요. 우리 도련님은 진짜 겁두 없으셔. 어떻게 이렇게 그냥. 도련님이 좋으셨음 저두 좋지만요 아프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이제부터 많이 걸어야 할 건데. 동혁은 엉망이 된 제노의 옷매무새를 하나하나 챙기고, 울음기가 여즉 남은 얼굴을 제 소매로 꾹꾹 눌러 닦아주고, 버선과 신을 신겨 들쳐업는 내내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정작 제노는 나 아퍼, 한 마디 해 놓고 끝이었다. 내내 조용했다.

집에 가면, 노잣돈 될 만큼만 돈을 챙기고 사철을 버틸 만큼만 옷을 챙겨서 몰래 나오자. 제노가 동혁의 귓가에 나직이 중얼거렸다. 도련님 진짜 동자님 데리구 고란도 뜨실 거예요? 동혁이 툭 묻자 잠잠하다. 어젯밤의 여파로 잔뜩 피곤에 지친 눈이 송아지 눈망울마냥 끔벅였다. 긍정의 뜻이었다. 동혁은 별말없이 발걸음을 재게 놀렸다. 업든 업히든 이 산길을 다닐 땐 늘 같은 향기를 맡았다. 땀내, 분내, 젖내. 지금 등짝에 업혀 목덜미에 더운 숨을 뿜어내는 우리 도련님의 향. 이제 끝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곳.

 

산길이 끝나고 익숙한 흙길로 접어들자 먼빛으로 집이 보였다. 거기까지 가는 내내 제노는 두 번 정도 걸을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고, 두 번 다 동혁에게 기각당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이 걸어야 되는데요. 말 쫌 들으세요 좀. 그냥 업혀 계셔요 앞으론 업어 달래도 안 업어 줄 거니까. 으름장을 놓은 동혁이 제노의 다리를 꽉 잡았다. 제노는 별말없이 동혁의 어깨에 옆얼굴을 묻었다. 곧 나직하게 풀린 목소리가 등을 타고 흘러나온다.

 

우리 이거 챙겨서 산을 넘어가야 해요.

왜?

산을 넘어가면 바닷가가 나오구, 그 바닷가에 배로 사람들 건네다 주는 할배가 살거든요 그 배 타구 나가야죠.

뱃삯두 챙겨야겠네.

네에.

 

제노가 다리를 하릴없이 달랑거렸다.

 

“동혁아.”

“예?”

“그, 저기, 저.”

미안해 너는 아무 생각 없었을 건데…… 말끝을 흐리는 제노의 목소리가 잔뜩 갈라진다. 그게 고란도를 떠남을 두고 하는 이야기란 걸 동혁은 알고 있었다. 됐습니다, 괜찮아요. 도련님 가는 데면 저두 가야죠. 짐짓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걷는 속도가 줄었다. 제노가 웅얼웅얼 물었다. 너 막둥이 땜에 그러지. 동혁은 잠깐 망설였다가 속 시원히 대답했다. 네에 저 집에 피붙이 그거 하나 남았는데…… 저 때문에 괜히 욕볼까 봐. 제노가 한참을 망설였다. 귓가에 쌕쌕거리는 숨이 울렸다.

“우리 막둥이는……, 형아 없어도 씩씩하게 잘 지낼 거야.”

“그렇겠죠?”

“사실 좀 미안해. 가족은 떨어뜨려 놓는 거 아닌데.”

근데 나는 너 없음 도저히 안 되겠어서. 제노의 나직한 고백이 귓가를 스쳐지났다. 동혁이 입술을 감쳐 물었다. 도련님 진짜 못돼먹은 거 알죠. 이제 좀 마음 비우고 동자님한테 넘겨주려고 했는데, 왜 또 나한테 이래요. 그런 말은 속으로만 했다. 멍청한 짓인 걸 알고 있었기에 그랬다.

“뒷문 잠겼을 거예요. 정문으로 가요.”

“응. 지금이면 행랑아범은 깼으려나.”

“아재는 더 일찍 깨죠. 저는 도련님 새벽기도 끝날 때쯤 깨고.”

“너두 맨날 피곤하겠다 나 땜에.”

“예, 주인 자알 만나서.”

“너무해……”

“농담인 거 알잖아요, 왜 이러세요.”

“모르겠는데.”

침묵하자 제노가 실실 웃었다. 바람빠지는 소리가 귀 옆에서 났다. 동혁이 따라 피식 웃고는 제노를 읏쌰 하고 내려놨다. 제노가 중심을 잡고 서는 찰나의 시간 동안 동혁의 얼굴 위에 그림자가 스쳐지났다. 괜찮은 척했으나 머릿속은 난장판이었다. 이제 겨우 열 살인 막둥이를 떼놓고 이곳에서 도망친다. 막둥이는 최악의 경우 제 형의 죗값을 대신 받거나, 최소한 평생을 눈칫밥 먹으며 살게 된다. 끔찍했다. 그럼 동자님 손에 도련님을 맡겨버리고 자신은 이곳 고란도에 남는다? 그것대로 끔찍했다. 이동혁이 이제노 없이 산다는 건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제노를 따라 재민과 도망치기에 성공한다면? 그러면, 평생 도련님을 모시면서. 동자님을 사랑하는 도련님을 모시면서. 이동혁이 아닌 나재민을 사랑하는 이제노를 모시면서. 동혁이 머리를 두어 번 탈탈 털었다.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분명 제정신이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에 집중하느라 가까이서 선명히 들리는 소음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때 조금만 정신을 차렸더라면, 적당히 눈치채고 집에서 멀리멀리 도망쳤더라면 조금은 다른 결말을 맞이했을까.

 

동혁이 옷을 두어 번 털고 대문을 끼익 열었다.

 

“……,”

 

잠시 멍해졌다. 눈앞에는 기대했던 고즈넉한 아침 풍경이 아닌 시커먼 군대가 빼곡했다. 마루 옆 한구석으로 몰려선 행랑채 식구들. 타다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횃불. 현관 앞 마당에 삼 열 횡대로 늘어선 군복 입은 군사들. 마당 복판에 놓인 평상에 걸터앉아 들고 있던 관채로 허벅지를 탁 탁 두드리는, 붉은 관복의 사내. 동혁의 눈동자가 바삐 돌아갔다.

“자네가 이 목사 아들인가.”

붉은 복색의 사내가 느릿하게 묻는다. 말끝을 길게 끌던 입꼬리가 서서히 말려올라간다. 아들놈 버릇을 잘못 들였군그래. 섬뜩한 음성이 마당을 울리자 뒤에서 제노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혁이 이를 악물고 팔을 뻗어 제노를 등 뒤로 꾹 밀었다. 한두 발자국 밀려난 제노가 몸에 힘을 딱 주고 버티는 게 느껴졌다. 혼자는 안 가겠다는 반항이었다. 좀, 가라면 갈 것이지. 눈물이 나오는 것을 눌러참으며 동혁이 빠드득 이를 갈았다. 해가 어슴푸레 뜨는 새벽이었음에도 온통 검은 옷들이 둘러싼 마당 안은 밤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밤하늘. 그리고 그 시커먼 어둠들을 헤치고 쿵쿵거리며 다가오는.

 

 

이문덕.

 

동혁이 본능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

 

미리 제노를 등에서 내려주길 잘했다. 온 힘을 다해서 내리치셨는지 머리가 어찔했다. 정신 차릴 틈조차 주지 않고 짝, 짜악, 똑같은 방향으로 두어 번 더 고개가 돌아갔다. 중심을 잡으려 비틀대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짜악. 몸이 기울더니 곧 옆통수가 흙바닥에 닿았다. 나 쓰러졌구나, 하고 인식하기도 전에 발이 옆구리를 즈려밟았다. 뼈를 부술 듯이 콱콱 밟아대는 통에 잔뜩 몸을 웅크렸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쿨럭 컥 하고 기침을 했더니 콧속에서 뭔가 팍 터졌다. 뜨뜻한 게 흐르는 걸 보니 코피였다. 목사님이 폭력이라니. 예수가 무덤에서 울면서 부활하겠다. 그 와중에 그런 실없는 생각을 했다. 저 멀리서 아득하게 제노의 새된 비명이 들렸다. 동혁이 입술을 혀로 축였다. 비릿한 피 맛이 났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동혁아아-!”

 

짝.

 

제노의 고개가 돌아갔다. 순간 온 집안 노복들이 작게 비명을 삼켰다. 소동에 무슨 일인가 보러 온 동네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도련님이. 우리 도련님이. 목사님이 도련님을. 사병들에게 둘러싸여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홍주 목사가 당황스런 낯빛으로 군중의 분위기를 살폈다.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마음 여린 목사 댁 도련님 이제노의 존재가 섬사람들에게 꽤나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군사 둘은 안절부절못하다가 비틀하는 도련님의 몸을 붙잡기보단 부축하기 시작했다. 돌아간 고개를 도로 돌릴 생각도 못 한 채 입술을 말아 문 제노의 빨갛게 부은 뺨을 타고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문덕은 제노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으르렁거렸다.

“아들로 키워 줬더니.”

“……,”

“이딴 식으로 뒤통수를 쳐?”

제노가 눈을 들어 문덕을 노려봤다. 젖은 눈에 핏발이 섰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옛날부터 해 주고 싶었던 말을 드디어 뱉었다.

 

“한 번도.”

“……,”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

 

“당신 편이었던 적이 없었는데요.”

 

 

짝!

 

제노의 다리가 탁 풀렸다. 덩달아 놀란 군사들이 얼른 제노의 허리를 잡아 부축했다. 두 번째에는 결국 입술이 터져 핏방울이 맺혔다. 이번에는 제대로 술렁임이 일었다. 어린 여노들은 놀란 맘을 감추지 못해 두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담벼락 밖에서는 문덕을 향한 욕설도 간간히 들렸다. 문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돌아간 제 양아들의 옆얼굴에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제노와 마찬가지로 군사들에게 양쪽 팔이 붙잡힌 동혁이 거칠게 몸부림을 치며 악을 질렀다. 놔! 놔 저기요 아오, 놓으시라구요 이거 쫌! 목사님 미쳤어요?! 왜 때려 씨발 왜! 도련님 도련니임-!

“내가 하도 여우새끼, 여우새끼랬더니 니가 홀렸구나야.”

“쓰으… 흐,”

문덕의 시선이 천천히 동혁에게로 옮겨 갔다. 코피가 온통 번진 얼굴로 저를 올려다보는 눈에 섬뜩하리만큼 날이 서 있어 문덕이 흠칫했다. 그것도 잠시, 곧 빙글빙글 웃으며 다가간다. 두 팔이 잡혀 움직이지 못하는 동혁의 가슴팍을 발로 밟아 눌러내린다. 동혁은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옆에서 제노가 울음을 참으려 이를 억지로 악물었다. 이제노는 늘 그랬다. 이동혁을 노비 새끼가 아닌 사람으로 봤다. 이동혁이 사람 취급을 받기를 원했다. 도련님 고개 돌려요. 나 말고 저쪽 봐요. 동혁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제노가 착하게도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우리 도련님 말두 잘 듣네. 속으로 중얼거린 동혁이 입 안에 남은 침을 싹싹 그러모았다. 육 년 동안 예배당 앞에 매주마다 침 뱉었던 짬밥을 살려 조준했다. 불시에 투 뱉자 문덕이 기겁하며 떨어져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빗나갔다. 바지에 무사히 안착했다. 동혁이 씨익 웃었다. 어디 더 할 테면 해 보라는 눈빛이었다. 이 새끼가! 소리치던 문덕이 홍주 목사의 제지에 의해 순식간에 꼬리를 내렸다.

“이 목사.”

“예, 예.”

“이제 그만. 그만해두고.”

더 급한 일이 있지 않나. 홍주 목사가 뒷산을 눈짓했다. 동혁이 고개를 돌려 홍주 목사를 똑바로 쳐다봤다. 말로만 듣던 그 인간 상판을 처음 마주한다. 살이 두둑한 목에 찢어진 눈. 얇은 입술. 교활한 낯짝이었다. 권력과 돈에 눈이 먼 낯짝이었다. 이문덕과 똑같이 생긴 낯짝이었다. 홍주 목사가 손짓하자 마당을 가득 메웠던 군사의 절반이 곧바로 뒷문으로 우르르 빠져나간다. 산길을 달린다. 절로 향하는 길이었다. 앞이 캄캄해지는 걸 느끼며 제노가 이를 악물어 울음을 참았다. 재민아아. 나오지 않는 이름이 입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동혁은 억울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억울했다. 그래서 와락 소리 질렀다.

“씨발 목사들끼리 아주 지랄지랄 지랄났다!”

하나는 섬사람들 등쳐먹는 사이비 기독교, 하나는 조선 땅 등쳐먹는 명예 일본놈. 니들은 부처 예수 천주한테 세 번 저주받아 영원히 지옥불에 갇힐 거야.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마을 사람들 다 듣게 패악 부렸다. 이상하게도 죽는 게 별로 두렵지 않아졌다. 팰 거면 패라. 죽일 거면 죽여라. 좆같은 새끼들아. 고작 열여덟짜리 애 인생을 엉망으로 망쳐 놓은 새끼들아. 지 좋자고 사람 이용해 먹은 새끼들아. 우리 도련님 눈에서 눈물 나게 한 새끼들아, 이 좆같은 새끼들아. 문덕은 무슨 일인지 쌍욕을 먹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이동혁. 동혁아. 부르는 음성이 은근했다.

 

너도 알지.

 

노비는 재산이지. 사람 취급을 받는 걸 당연히 여기면 안 돼. 그렇지 않니 동혁아. 느물느물 어르듯 물을 뿐이었다. 그제서야 동혁이 주변을 둘러봤다. 군사들에 밀려 한 구석에 몰려선 행랑채 식구들. 다들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동혁을 마주본다. 어른들은 여섯 명 다 있다. 애들은. 춘삼이도 있고 애희도 있고 시훈이도 있고 하령이도 있다. 근데 막둥이는. 내 동생은. 동혁의 눈이 느릿하게 문덕을 향했다. 옆에서 제노가 낮게 공포에 질린 비명을 내질렀다. 설마. 설마설마설마.

 

“평생 니 동생을 못 볼 거다.”

 

어젯밤에 섬 뜨신 나으리께 팔았거든.

 

 

뭐라고.

 

뭐라고 이 개새끼야.

 

 

 

동혁의 눈이 뒤집혔다. 미친 듯이 몸부림치는 동혁을 군사 네댓이 달려들어 찍어 눌렀다. 그중 하나가 문덕에게 뭔가를 묻는 듯하더니 곧 허리춤에서 장도를 빼 들었다.

  

 

아.

 

아아.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칼날이 내리꽂혔다. 붉은 것이 환상처럼 튀었다. 온 사방에서 터지는 비명소리가 제노의 정신을 어지럽혔다. 동혁아. 동혁아아. 애끓는 목소리는 누구의 것일까 담장 밖 혜상이의 것일까 안채 노비 동석이의 것일까 개덕이의 세형이의 점례댁의 대장간 아범의 것일까 아니면 비겁하게도 목구멍에서 터져나가지 못한 이제노의 것일까.

 

피를 한 방울 똑 떨어뜨린 것처럼 눈앞이 붉어졌다. 서서히 퍼지더니 온 시야를 좀먹어 든다. 눈이 먼다. 붉고, 붉고, 붉다가.

 

세상이 까매졌다.

 

 


 

 

 

혼자다.

문은 바깥에서 잠겼다.

 

잠깐 잠들었다가 비명을 지르며 깼다.

견딜 수가 없어서 조금 울었다.

혼자 있기 때문도, 악몽이 두려워서도 아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구하러 갈 수 없다.

사랑하는 이들의 생사를 모른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 단 한 가지. 내가 제일 잘 하는 것.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두 손을 모았다.

무릎을 꿇고 앉자마자 목울대에서 울음이 끓었다.

꾹 눌러참고 입을 열었다. 낭랑한 목소리가 예배당에 울렸다.

 

 

 

 

주님.

 

 

제 인생을 주관한다셨던 주님께서 제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마음껏 괴로워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셨다면 아마 오늘밤이겠지요. 지금 제 곁에는 눈물을 닦아 주고 울음을 달래 줄 동혁이가 없습니다. 재민이는 아직 살아 있을까요. 그들이 어디에선가 저와 같은 것을 위해 빌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믿는 신은 달랐으나 기도의 본질은 같았을 따름입니다. 저는 우유부단하며 미약한 자라 제 마음이 가는 길을 잘 모릅니다. 이동혁을 제 삶에 매어 두고 살아왔으나 덜컥 나재민을 사랑해 버린 까닭입니다.

 

주님. 제가요, 악몽을 꿨는데요. 막둥이가 제 옷자락을 잡고 서럽게 서럽게 울었어요. 도련님 저 좀 살려 달라구요. 형아랑 헤어지기 싫다구요. 생선살 못 얻어먹어두 좋으니까 형아랑 산다구요. 그리고 또 그 꿈속에서 절 마당에 쓰러지던 재민이를 봤어요. 부모님의 피로 적신 화살깃 위가 그 애 피로 더 붉게 물들었어요. 마지막 장면은 동혁이였어요. 어젯밤에 본, 발악하듯 몸을 비틀던, 배에 칼이 꽂혀 온통 붉게 물들던, 피투성이가 돼 대문 밖 흙바닥을 구르던, 동혁이요. 다 제 잘못일까요, 저 때문에 막둥이도……, 재민이도. 그렇다면 동혁이는요. 우리 동혁이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요. 주님, 우리 동혁이 살아 있죠? 그렇죠?

 

자비롭고 긍휼하시며 가장 낮은 곳을 굽어보셔 사랑하시는 주님. 지금껏 저를 살린 것은 팔 할이 동혁이예요. 태어나게 한 것은 주님의 뜻일진대 살린 것은 그 아이입니다. 다정한 음성이 저를 일으켰고 다시 십자가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제가 길을 잃었다가 당신 앞에 무릎 꿇고 돌아온 어린양 됨은 하나부터 열까지 그 아이의 사역입니다. 다시 일어나서 걷게 했어요. 멍든 무릎으로 기게 했어요. 이를 악물고 잠에 들게 했어요. 목구멍 안으로 끼니를 밀어넣게 만들었고 성경을 붙들게 만들었어요. 그렇게 저를 살렸습니다. 꾸역꾸역 살아가게 만들었어요.

그러니, 살려주세요.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주님 듣고 계시지요. 굳센 손을 뻗어 제가 아닌 동혁이 손을 잡아주세요. 눈물로 고해 올리는 기도의 방법을 그 아이는 알지 못합니다. 그저 우는 저를 달래는 법밖에 모르는 아이입니다. 저는 싫습니다. 동혁이 없인 죽기도 싫고 살기도 싫어요. 천국이든 열반이든 그 아일 버리고 갈 수 없습니다. 아시죠. 실은 당신이 아니라 그 아이를 붙들고 눈물 쏟아 기도해 온 걸 아시잖아요. 불온하고 맹랑한 제게 화를 내실진대 동혁인 안 됩니다. 그 아이는 제 전부요 제 힘이요, 감히 제 신입니다. 꺾인 무릎을 돕는 목발입니다. 저를 위해서 파랑을 기꺼이 감수하는 빨강입니다. 동혁이와 함께한 제 일생 동안의 하루하루는 평생을 바쳐 갚아야 할 빚입니다. 그 아이가 제게 준 것은 충성이었습니다. 애정이었습니다. 심장이 타들어가도록 애절한 보좌였습니다. 꼭 한 번은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아 줬어야 할 마음입니다. 제가 사랑해줬어야 할 사람입니다.

 

지금 동이 트니 아무래도 이것이 마지막 기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쥐었든 잡은 손 위를 겹쳐 지탱해 주시옵고 주께서 주관하사 악을 조준하실 것을 믿습니다. 저희를 향한 화살은 전부 과녁을 빗겨가게 도와주세요. 그래서 저희가, 저희를 버린 나라에서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보란 듯이 살게 해 주세요. 살아 있게 해 주세요.

 

어느새 오열이었다. 예배당 안이 서러운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제노의 몸이 결국 강단 위로 무너져 내렸다. 무릎에 닿는 나무계단이 골고다처럼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감람나무가 등을 짓눌렀다. 그게 막둥이와 절의 무고한 조선인들과 큰스님과 나재민과 이동혁의 목숨값이란 것 정도는 제노도 알고 있었다. 기도는 분명 이어지는데 목에서 터지는 소리는 흐어어어 하는 울음소리뿐이었다. 주님. 주님. 주님. 부르고 또 불렀다. 마음 깊숙이 믿지도 않는 신을 구세주 찾듯이 부르고 부르고 계속 불렀다.

 

 

주님.

 

오늘은 우리의 죽음이 예견된 날입니다.

저희 모두에게 용기를 주시사 살게 하시고,

혹여 죽는다면 함께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햇살이 스테인드글라스 창 사이로 천천히 비쳐 들었다. 익숙한 노랑, 파랑, 빨강의 빛살들. 제노가 힘겹게 눈꺼풀을 밀어올렸다. 눈물 자국 남은 볼에 예배당 바닥의 카펫이 부드럽게 쓸렸다. 손을 뻗자 계단이 만져진다. 제노가 엎어진 채로 쿨럭 하고 기침을 뱉었다. 목이 까끌까끌했다. 몇 시쯤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해가 왼쪽 창에서 비치는 걸 봐서는 오후일 것 같았다. 미친 듯이 울다 지쳐 잠들기를 반복한 탓에 눈도 뻐근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환청처럼 멀리서 예배당 문이 열린다. 도련님,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동혁이니. 동혁이야. 아닌 걸 알면서도 제노가 속으로 애끓게 물었다. 환상 속에서 동혁의 재바른 걸음이 다가온다. 복도를 걸어 이쪽으로 다가오다 말고 허리를 숙여 짚신 두 짝을 벗어든다. 맨발로 걸어 제게 다가와 등을 쓸어내리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남은 울음을 달랜다. 제노가 그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기어이 잇새로 흐느낌을 뱉었다. 아 도련님 또 우셨어요. 가볍고 장난스런 타박이 귓가를 스친다. 동혁아. 동혁아. 손을 휘저어도 잡히는 게 없다. 동혁아아. 목이 갈라졌다.

 

…… 아이고 도련님요! 쓰러지셨다잉 우짠대 ……

…… 물 물, 니 빨리 가서 물 떠와라 …

 

대신 저 멀리서부터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두어 명의 조심스런 손길이 몸을 뒤집는다. 시야가 흐릿했다. 낯선 향이다. 흙 냄새, 아궁이 냄새, 땀내. 동혁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냄새였다. 반평생을 동혁의 손만 타다가 다른 이의 품에 안기려니 기분이 이상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여즉 목구멍에 울음이 끓어 흐윽 흑 하고 숨을 몰아쉬던 와중에 입가에 물그릇이 닿는다. 본능적으로 받아 마셨다. 차가웠다. 입가에 고인 물이 흘러내린 목덜미를 훔쳐 주는 손길이 따스했다.

“도련님요, 정신이 좀 드십니까?”

“그, 누구, 춘삼, 댁.”

“예, 예. 저 춘삼댁 맞아요. 아이구 살려는 갑다, 우리 도련님은 살려는 갑다아. 퍼뜩 정신 차리시소 예?”

기절할 듯이 보채는 행랑채 춘삼댁의 목소리에 제노가 눈을 꾸욱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흐렸던 눈앞이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며 서서히 초점이 맞춰졌다. 목사님이 델꼬 나오라셨소. 아이고 입술 터진 거 봐라. 얼굴에 멍든 건 우짤 끼고 이거…… 우리 도련님 귀한 얼굴을. 몸도 안 좋은디 하루를 꼬박 갇혀가 지새셨으니 오죽해쓰까잉. 목사님도 그러시면 안 되지예. 절 가가 쉴 수도 있지 거 별거 아인 일에 너무 심하셨어요잉. 춘삼댁이 가시 돋친 목소리로 문덕을 욕하며 제노의 등짝을 쓸어내렸다. 행랑아범이 눈으로 춘삼댁을 나무라며 제노의 팔을 조심스레 잡았다.

“도련님요. 걸으실 수 있으까요.”

“걸을 수 있네. 좀 부축, 부축해 주면,”

“아이구 그럼요 그러믄요. 춘삼댁 그쪽 잡게.”

고맙네. 중얼거린 제노가 억지로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섰다. 감각이 없던 하체가 조금씩 저릿저릿해져 왔다.

“동혁이는.”

“……,”

툭 묻는 목소리엔 대답이 없었다. 제노가 고개를 떨궜다. 끌려가는 사람마냥 앞으로 쏟아진 까만 머리칼이 얼굴을 가렸다. 입술을 꾹 깨물자 입안에 비리게 피맛이 번졌다. 제노가 비척거리며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발끝에 노랗고 파랗고 붉은 햇살이 채였다. 쥐가 난 발끝을 억지로 쭉 뻗었다. 성큼 내디디자 몸이 휘청한다. 개의치 않고 발등이 물든 색깔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빨강. 또 한 걸음 걸으면 밟은 건 역시 빨강이다. 제노가 두 노복의 손에 의지한 채로 빨간색 햇살을 드문드문 눌러 밟으며 예배당 복도를 걸었다. 뜻없이 눈물이 후두두 쏟아져 내렸다. 카펫 위에 투둑 떨어져 스민 눈물이 동그랗게 젖어들었다. 빨간색은 더 짙은 빨간색으로, 파란색은 더 짙은 파란색으로.

 

예상했던 대로였다. 옷만 깔끔하게 갈아입혀져 곧바로 문덕의 앞에 세워졌다. 차갑게 따라오라 명한 목사는 하루를 꼬박 물도 음식도 없이 예배당에 가둬 둔 양아들을 기다려주지도 않고 산길을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제노는 뒤를 따르는 내내 십자가를 지고 걷듯 비척거렸다. 가파른 길을 올라갈 땐 다리에 힘이 풀려 두어 번 넘어지기도 했다. 뒤에서 따르던 홍주목사의 군사 몇이 무너질 때마다 얼른 일으켜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절에 닿을 때쯤엔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제노가 달달 떨리는 무릎을 짚었다. 하체에 감각이 없어질 지경이었다. 먼빛으로 절 마당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부터 심장이 요란스레 쾅쾅 뛰었다. 재민이는 무사할까. 큰스님은. 동자님들은. 보살님들은. 다른 많은 사람들은. 한 발자국이 천 걸음처럼 느껴졌다.

“……,”

절 앞마당에 들어서자마자 그 걱정이 연기처럼 까마득하게 흩어져 버린 건, 두 손발이 묶여 마당에 앉혀진 익숙한 뒤통수를 마주했기 때문이었을까. 동그랗게 웅크린 몸이 미약하게나마 오르락내리락했다. 제노가 희뜩해지는 시야에 순간 휘청였다. 재빨리 제노를 부축한 군사가 재민의 꼴을 봤는지 낮게 혀를 찼다. 나재민이 살아 있다. 아직 죽지 않았다. 그제야 숨통이 트인 듯 제노가 가파르게 호흡했다. 살아 있음에 우선 안도했고, 그곳에서 제때 도망치지 못했음을 확인하게 되어 절망했다. 사정없이 짓밟혀 구겨지고 까매진 승복 등판, 두 무릎 사이에 떨군 고개. 훤히 드러난 목선과 엉망으로 헝클어진 뒤통수, 거기 어드메에 말라붙은 검붉은 핏자국. 뒤로 묶인 탓에 피가 통하지 않아 새하얘진 두 손. 제노가 이를 악물었다. 당장 재민에게로 달려가 포승을 풀고, 죽은 듯이 뉘어진 저 머리를 끌어안아 다독여주고 싶었다. 허나 여기서 튀어나갔다간 정말 나재민을 죽이는 꼴이 된다. 참아야만 했다. 문덕이 제노를 돌아봤다. 재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제 양아들을 쳐다보며 비리게 웃었다. 제노는 눈에 힘을 주고 뚫어져라 재민만 쳐다봤다.

“어떠냐. 좀 고분고분해져야겠단 생각이 들간?”

“그딴 거 몰라요.”

이를 악물고 대답하자 문덕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뭐라고 한 마디 할 심산으로 입을 열다가 곧 재민을 곁눈질하고는 빙글빙글 웃으며 그만둔다. 제노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것이 목적이었음을 알고 있다. 저에게 한 가닥 남아 있던 희망을 제 눈 앞에서 꺾어 버리는 것. 이제노가 보는 앞에서 나재민을 죽여 버리는 것. 제 인생과 제 양아들의 인생을 망쳐 놓은 천주쟁이 여우 새끼를 반역의 이름으로 처단하는 것. 거기서 떨어지는 콩고물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몸집을 불리는 것, 이 작은 섬 안에서 다시 왕으로 군림하는 것, 그래서 다시는 제 양아들이 감히 불복종을 꿈꿀 수 없게 만드는 것. 기어이 제노가 눈을 질끈 감았다. 눈물이 볼을 타고 구르듯이 흘러내렸다.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예수님이든 천주님이든, 정말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어쩜 이렇게 잔인해요. 기도를 그렇게 했는데도 듣지 못하시네요. 살려달라고 그랬잖아요. 살아남게 해달라고 그랬잖아요. 그래야 되는 애라고 말했잖아요……

“그래, 이제 이놈을 죽이든 살리든 올려만 보내면 되는데.”

“예, 예.”

“이 목사는 어쩌고 싶은가?”

 

문덕이 곧장 허리를 굽실거렸다. 실실대는 꼴이 불안했다.

 

화근이 될 만한 것은 바로바로 뿌리를 뽑으시는 것이.

그래, 내 똑같이 생각했네.

 

순간 목울대에서 뭔가가 울컥했다. 제노는 못박인 듯이 그 자리에 선 채로 고개만 돌려 절 마당 한켠에 선 홍주 목사를 마주봤다. 눈물줄기가 선명히 남은 채로 저를 노려보는 맑은 얼굴에 홍주목사가 씨익 웃어보였다. 인간으로서의 연민이나 동정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얼굴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인간이 아닌 거야.

 

제노의 잇새로 빠드득 갈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시선은 도로 재민에게 닿았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등판이 끊어질 듯 말 듯한 썩은 동아줄 같았다.

 

 

동혁은

 

기다렸다.

 

 

홍주 목사가 차고 다니던 칼집에서 칼을 빼들었다. 캉,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온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두 팔이 단단히 붙들렸다. 한 박자 늦게 몸을 억세게 비틀며 몸부림쳤으나 소용이 없었다. 재민아. 재민아아. 목이 터져라 소리쳐 부르자 웅크린 몸이 꿈틀하더니 천천히 펴진다. 앞으로 쏠려 검붉은 피가 뭉친 머리칼이 흔들리며 얼굴이 드러난다. 빛을 잃은 눈동자가 천천히 제노를 향했다. 상처와 멍자국으로 엉망이 된 얼굴이었다. 시선이 얽히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온통 울음이 끓었다. 아무리 세상에게 짓눌리고 다쳤어도 아직 열여덟. 죽음을 목전에 두기에는 턱없이 어린 나이. 한 명은 죽기가 두려워 울었고, 다른 한 명은 죽음을 지켜보기가 두려워 울었다.

 

 

동혁은

 

여전히

 

기다렸다.

 

 

군사 두 명이 재민의 몸을 우악스레 일으켜 세우더니 어깨를 밀쳐 꿇어앉혔다. 묶인 몸이 하릴없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재민의 시선은 제노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햇살에 반짝 하고 칼날이 빛났다. 재민아 재민아 재민아 재민아. 안 돼 안 돼 안 돼애애. 제노가 혼절할 듯이 절규했다. 절 마당이 애타는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

 

이제노와 나재민이 처음 만난 날,

그 겨울 예선사의 행랑채.

 

아까 재민과 통성명한 이후로 곰곰 뭔가를 생각하던 동혁이 덕수를 향해 확 돌아앉았다. 뭐여. 찻잔을 들다 말고 흠칫 놀란 덕수가 얼굴을 뒤로 빼던 말던 동혁이 진지하게 물었다. 야 덕수야, 나 칼던지기 가르쳐 주면 안 되냐? 덕수가 잠시 당황했다가 피식 웃었다.

“왜, 너도 죽이고 싶은 인간 생겼냐.”

“생긴 건 아니고 원래 있어.”

나는 그냥 우리 도련님 눈에서 눈물 빼는 새끼들을 죄다 죽여 버리고 싶거든. 근데 너두 알잖아. 울 도련님 눈 옆에 떡하니 눈물점 있는 거. 울며 울며 살아갈 운명인 게지. 동혁이 장난스레 웃었다.

 

“근데 어차피 내가 평생 지켜드릴 거니까.”

 

울 도련님 눈물 흘리게 만드는 것들은

심장에 하나하나 칼을 꽂아주려구.

 

 

손에 땀이 차고 갈비뼈가 아플 만큼 눌렸다. 칼자루를 쥔 손이 저릿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몸부림치는 제노의 정수리가 보였다. 사실 준비는 애저녁에 끝났었다. 그저 저 울음소리를 오래 듣고 있기가 힘들었을 뿐이다. 재민아 재민아 재민아. 안 돼 안 돼 안 돼애애. 도련님의 절규가 심장에 쿡쿡 박혔다. 문득 십자가에 못박혀도 겸허한 태도로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예수가 떠올랐다. 모든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 그 결과 내 죄까지 씻김받게 사하여 주신 예수님. 아마 이제노는 자기 목 앞에 칼날을 마주했다면 저리 괴로워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자기가 아니라 죄인 하나가 그 자리에 대신 매달렸다면 예수는 그 아래서 눈물을 보였을까. 졸도할 듯이 울었을까. 저리 애끓게, 심장을 토해내진 않을까 두려울 정도로.

동혁이 손에 힘을 주었다. 덕수 녀석이 밤새 숫돌에다 잘 벼려 볏짚 사이사이에다 숨겨둔 단검이 왼팔 아래로 느껴졌다. 아마 스무 자루는 족히 넘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 쓰고 말 것이다. 그래야 이제노를, 나재민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엎드린 채 겨우 팔을 들어올리자 피로 척척해진 아랫배가 눌렸다. 익숙해질 때도 된 지지는 듯한 통증에 온몸에 드드득 경련이 일었다. 동혁이 눈을 들어 하늘을 봤다. 머리 위에 아무것도 없다. 세상에 저보다 높은 이가 없었다. 어차피 죽을 거 바득바득 우겨 살아 있었더니만 이런 꼴을 다 본다.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았다. 흰자가 검은자보다 많아 성깔 더럽게 생겼다는 소리를 듣곤 했던 눈이 목표물을 정확히 향했다. 들어올려진 칼이 망설임없이 던져졌다. 손끝에서 칼자루가 떠나는 순간 동혁은 남은 힘을 끌어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누구에게 기도했는지는 정해두지 않았다. 그저 빌었다. 이 칼끝이 닿고자 한 곳에 닿게 해 달라고. 살리고자 한 이를 살리게 해 달라고. 죗값은 언제가 됐든 톡톡히 치를 테니,

 

 

 

죽이고자 한 이를 죽이고 저 또한 지옥에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파란 산수국 꽃말 : 변하기 쉬운 마음

보라색 바람꽃 - 아네모네 - 꽃말 :

당신을 사랑하니까 저의 모든 것을 드릴게요.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거예요. 비록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더라도 전 당신을 사랑합니다. 제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웠어요.

 

 

 

문덕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예선사의 마당을 울렸다. 순식간에 온 절 마당이 혼비백산해졌다. 순간 굳은 홍주 목사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제 몸을 확인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단검이 쇄골 아래에 정확히 꽂혔다. 붉은 것이 옷깃을 물들이며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순간 문덕이 외마디비명을 내지르며 다리가 꺾여 주저앉았다. 핑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다리오금에 정확히 날아와 꽂힌 단검이 몸이 떨리는 대로 드드득 떨렸다. 군사들이 하나둘씩 장검을 빼들었으나, 명령을 내려야 할 홍주목사가 울컥 피를 토하며 주저앉는 바람에 또다시 혼돈이었다. 동시에 절 뒤편에서 웬 그림자가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사람들을 가르고 마당 안쪽까지 뛰어든 건 덕수였다. 어느새 팔이 풀려 자유로워진 제노가 넘어질 듯이 그쪽으로 달렸다. 손에 든 단검으로 재민의 팔다리를 묶었던 포승줄을 다급하게 잘라내는 덕수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덕수야 덕수야. 울음에 잠식된 제노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그저 줄 끊는 데 열심이던 덕수가 겨우 억눌린 목소리로 한 마디 툭 뱉었다.

“큰스님 돌아가셨어요.”

“……, 아,”

“보살님도, 동자님들도, 스님들도. 저는 왜 맨날, 왜 맨날 혼자 살아서. 다 봐야 하고. 혼자 죽고 싶어야 하고 염병. 애초에 부처는 믿지두 않았간디 도련님네 예수님은 대체 저한테 왜 그러신대요.”

“덕수야……”

“근데요. 동혁이가. 동혁이는 살아서. 씨발, 도련님 동혁이 좀.”

평생을 그냥. 도련님만 보고 산 앤데. 도련님 걔 좀 살려 줘요. 배에 칼 맞아서 빵꾸 뚫리고도 도련님 하나 살리자고 걔가. 그러니까 동혁이 좀 데리고 가세요. 섬 나가요. 제발요. 걔 좀 행복하게 해 줘요 좀. 덕수는 여전히 제노를 보고 있지 않았다. 미친 듯이 줄을 풀어 던지고 재민의 팔목과 발목을 잡아 문질렀다. 울음 때문에 가팔라진 숨을 꺽 꺼억 먹으면서도 그랬다. 곧 잡혀요. 최대한 버틸 테니까 뛰세요. 산길요. 제노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주위를 둘러봤다. 그랬다가 작게 터져나오는 비명을 겨우 삼켰다. 자루가 짧은 단검이 가슴께에 정확히 꽂혀 피투성이가 된 몸들이 수두룩히 나뒹굴었다. 그 덕분인지 나머지 군사들은 이쪽으로 다가오길 주저하고 있었다. 온통 검붉었다 피바다였다. 어디에선가 핑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재민의 등 뒤에서 장검을 들어올리던 군사가 어디선가 날아와 가슴팍에 꽂힌 칼을 부여잡고 뒤로 넘어갔다. 팍 피가 터지는 아찔한 광경에 제노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흐느꼈다. 덕수의 부축을 받고 일어난 재민이 앞뒤 가릴 것 없이 제노의 팔목을 쥐어 잡았다. 고단새 열대여섯이 죽었다. 살아남은 군사는 너댓이었다. 그중 하나가 뒷걸음질치더니 산길을 헐레벌떡 달려 내려갔다. 필시 제노의 집에 머물러 있을 나머지 군사들을 부르러 가는 것일 터다. 문덕이 뭐라 고래고래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덕수가 비척비척 일어서서는 손에 들린 단검을 고쳐 쥐었다. 하늘을 향해 소리 질렀다.

“야 이 개새끼들아 -!”

날 자알 잡았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 원수 좀 갚자아. 덕수가 씩 웃음지었다. 눈빛은 이미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재민이 제노의 팔목을 붙든 손에 힘을 주었다. 덕수의 등 뒤로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곧장 달리려던 재민이 멈칫하더니 손을 뻗어 마루 한켠에 기대 세워진 화살통과 활을 낚아챘다. 제노의 손을 놓자마자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화살 두 개를 동시에 뽑아 들고 시위를 매긴 재민이 곧장 돌아섰다.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화살들이 막 덕수에게 달려들려던 군사 둘의 허벅다리를 정확히 꿰뚫었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그들이 쓰러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잠시 당황해 행동을 멈췄던 덕수가 허리춤에 찼던 칼 두 자루를 냅다 뽑아 던져 남은 둘을 처리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함께 쓰러진 몸들이 꿈틀거렸다. 주인을 잘못 만난 것을 후회하듯 처절하게 마지막으로 경련했다.덕수가 휙 돌아봤다. 재민이 천천히 활을 내렸다. 손가락이 옅게 떨렸다. 죽이지 않았어. 죽이고 싶었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았어. 근데 쟤는 살려야겠어서. 사실 죽이려고 했는데 손이 말을 안 들어서. 사람에게 무기를 쓰는 게 처음이어서. 그래서. 초점 없는 눈동자로 중얼거리는 재민의 손을 잡아끈 제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재미인 하고 나직하게 불렀다. 말끝을 끄는, 이제노 특유의 말투. 재민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제노, 제노야, 도련님. 죽었다 살아온 사람을 보듯 제노의 손을 더듬어 잡은 재민이 눈을 세차게 깜박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덕수가 피 묻은 칼자루를 고쳐 쥐었다. 흐릿한 시야를 닦아내며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동자님이 동혁이 새끼보다 한참 못하다는 게 그거요. 동자님은 마냥 파랗기만 하거든. 온갖 파란을 다 겪었어도 결국 여전히 세상물정 모르는 도련님일 뿐이거든. 머리를 짓누르는 죄책감을 사랑으로 감당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를 못하거든.

 

“얼른 안 뛰고 뭐해요!”

바락 소리를 지른 덕수가 소매를 쭉 빼 얼굴에 엉망으로 번진 눈물을 벅벅 닦았다. 재민이 퍼뜩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들었다. 죽을 듯이 앓는 군사 둘의 신음소리가 마당에 온통 울렸다. 얼른 가라고요. 동혁이 챙겨서 튀라고요. 섬 뜨라구요 빨리. 피바다 속, 시체들 사이에 우뚝 서서 이쪽을 노려보는 덕수에 재민이 그제서야 숨을 고르고 제노의 손목을 쥐었다. 뛰어야 돼. 뛰어야 돼 제노야. 금방 더 올 거야 쫓길 거야 뛰지 않으면 잡힐 거야. 두어 발자국 끌려 뛰던 제노가 덕수를 돌아보며 외마디 비명처럼 당부했다. 덕수야.

“살어. 꼭 살아남어 알았지.”

“……,”

“우리 때문에 죽지 마.”

부탁이야. 알겠지. 어?

덕수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제노가 곧장 뒤돌아서 재민을 따라 달렸다. 몸이 휘청휘청 앞으로 쏠렸다. 시야를 온통 가린 눈물 탓에 마지막으로 본 덕수의 얼굴이 어떤 표정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급한 발자국 소리 옆으로 미친 듯이 모래가 튀었다. 발바닥에 차이는 땅이 못 견딜 만큼 끔찍하게 느껴졌다. 숨이 턱까지 몰아쳤다. 제노가 앞서 뛰는 재민의 등판을 보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저를 위해 목숨값을 치른 이들을 뒤에 남겨두고 도망쳤다. 그래서 살아야 했다. 살아남아야 했다. 제노가 재민을 붙든 손에 힘을 주었다. 우물 속에서 두레박 잡듯 서로의 손을 간절히 부여잡고, 두 소년은 넓은 절간을 돌고 돌아 빗장이 풀린 뒷문을 빠져나왔다.

“……, 아,”

나오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재민도 우뚝 멈춰섰다. 절 뒤편으로 이어지는 산길의 초입이었다. 절에 딸린 행랑채 뒤편과 연결된 곳. 동혁과 덕수가 종종 올라앉아 놀던 낮은 행랑채 초가지붕. 거기서부터 산길까지,

 

 

길게 이어진

 

핏자국.

 

 

-

 

산길을 따라 짓눌리듯 이어진 검붉은 자국을 따라 뛰었더니 그곳에 동혁이 있었다. 공터 입구, 재민이 늘 활로 과녁을 겨누던 그곳이었다. 거적때기 같은 두툼한 검정 승복 두루마기에 온몸이 덮이듯이 감싸인 채로 버려진 듯 쓰러져 있는 몸 위로 제노가 다급하게 달려들었다. 동혁아, 동혁아. 잠을 깨우듯 몸을 흔들자 쌕쌕거리며 숨을 몰아쉬던 몸이 들썩이며 쿨럭인다. 순간 등에 얹은 손이 뜨겁고 척척하게 젖어들어와 제노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거, 이거, 피……,”

얼굴이 식은땀투성이가 된 동혁이 몸을 들척이자 원래 검은색인 줄로만 알았던 승복 두루마기의 회색 옷자락이 드러났다. 그러니까, 온통 피였다. 피. 등판 한가운데에서 꿀럭거리며 쏟아지는 피. 이미 원래 빛깔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옷 위로 번져 말라붙은 검붉은 핏자국. 그 위로 또다시 솟구쳐 번지는 피, 피, 피.

충격으로 그 자리에 굳어 버린 제노를 대신해 재민이 동혁의 팔을 제 목에 둘렀다.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물을 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질질 끌듯이 부축해 제노를 앉히곤 했던 바위로 향했다. 큰 바위에 동혁의 몸을 기대 앉히고 두루마기를 벗겨낸다. 드러난 상처는 끔찍했다. 찢어진 옷 사이로 검붉게 피가 뭉쳐 굳은 것이 보였다. 벌어진 상처 한가운데에서는 여전히 시뻘건 핏덩이가 뭉쳐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런데도 살았다고. 기어코 살았다고. 이 모든 비극을 예상하고 있었다고. 칼 맞은 몸을 끌고 지붕 위로 기어올라 단검을 던졌다고, 동혁아. 이제노 목숨을 구하고, 내 목숨까지 지켜 주고 있었다고. 네가. 동혁아. 재민이 결국 이를 악물었다. 잇새로 괴로운 신음성이 흘렀다. 무기력했고 무능력했다. 이 아이가 생을 다하여 저와 이제노의 삶을 위할 동안 나는 대체 무얼 했던가. 이 아이의 사랑을 앗아간 주제에, 삶을 파국으로 이끈 주제에, 모든 화의 근원이 된 주제에 나약하게도 살아남기를 그리 일찍 포기했던가.

“동혁아.”

“……,”

“동혁아, 씨발 동혁아 눈 감지 마. 나 봐, 어? 나 보라고.”

재민이 이를 악물고 연신 동혁을 불렀다. 감기려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린 동혁이 허억 하고 뜨거운 숨을 내쉬며 뒤통수를 바위에 기댔다. 죽으면 안 돼. 이대로 죽으면 안 돼. 나 미안해서 따라 죽고 싶어질지도 몰라. 죽지 마. 재민이 미친 듯이 중얼거리며 동혁의 옷고름을 풀어헤쳤다. 눈물을 꾹 눌러 참으며 온 힘을 다해 두루마기를 길게 찢었다. 두툼한 천이 붕대처럼 찢기자 그걸로 동혁의 배를 둘러 꾹 감아낸다. 동혁이 욱 하고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떨궜다. 쿨럭 하고 기침하자 붉은 것이 뱉어져 나온다. 지혈한답시고 눌러 묶은 천 위로 또다시 피가 번졌다. 어느새 재민의 손 위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민은 상처를 눌러 고정하고 붕대를 감아 묶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열면, 무슨 말이라도 하면 괴로워서 그대로 쓰러져 버릴 것만 같았다. 관통했어. 긴 칼이라 배를 뚫고 등으로 나갔어.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살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어. 그런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울음을 터뜨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어야 했다.

“안 죽었지.”

어느새 일어난 제노가 비척비척 다가왔다. 깜짝 놀라 몸이 경직된 재민의 옆에 풀썩 무릎을 꿇었다. 그치 동혁아. 너 아직 안 죽었지. 쫌만 참아, 어? 우리 얼른 나가자. 이 섬 벗어나자. 네가 그랬잖아. 배 타고 나가면 된다고 했잖아. 침착한 듯 불안정하던 목소리에 차차 울음기가 섞였다. 제노가 한 손을 뻗었다. 피와 식은땀으로 쩔어 있는 동혁의 옷자락에 손가락이 닿자마자 파드득 경련했다. 곧 제노가 이성을 잃고 뜨거운 몸 위로 달려들었다. 온 생을 더듬듯이 동혁의 뜨거운 몸을 더듬었다. 동혁이 인상을 찡그리며 온 힘을 다해 팔을 들었다. 제노의 등에 툭 떨구듯이 얹는다. 파란 두루마기에 진득한 핏자국이 스며들었다. 이게 뭐야. 이게 다 뭐야 동혁아. 덜덜 떨리던 턱끝이 악 다물렸다. 서서히 일그러진 얼굴이 결국 와르르 무너졌다.

 

아아아악-!

 

짐승이 울부짖듯 목놓아 울음을 터뜨린 제노가 동혁의 가슴팍을 쥐어 잡고 매달렸다. 처절한 통곡이었다. 달랠 수 없는 감정의 범람이었다. 차마 동혁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오열하는 제노에 재민이 결국 돌아섰다. 울음소리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온 힘을 다해 제 입을 틀어막고 어깨만 엉망으로 들썩였다.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던 동혁이 흐, 하고 억지로 웃음을 흘렸다.

“왜, 울어요. 둘 다.”

나 아직 안 죽었어. 마지막 음절이 탁탁 튀며 엉망으로 떨렸다. 동혁이 제노의 등에 얹었던 손을 도로 거뒀다. 어쩔 수 없는 고통에 덜덜덜 떨리는 손끝이 필사적으로 움직여 피에 절은 저고리 안쪽으로 향했다.

“도련님. 이거요.”

동혁의 피딱지 엉겨붙은 손에 들린 걸 제노가 넘겨받았다. 저 때문에 엉엉 우는 도련님 앞에서 소년 노복은 내내 초연한 듯 굴었다. 꺽 꺼억 울음을 삼키며 제노가 제 손을 내려다봤다. 칼. 검붉은 피로 끈적하게 얼룩진 단도. 손잡이의 끝에 달린 피묻은 파란 술, 그리고 거기 같이 묶인 꽃. 말라비틀어진 꽃대. 몇 장 안 남아 있지만 색만은 선명한 보라색 꽃잎. 아직도 빳빳이 고개를 들고 있는 노란 꽃술. 뭐야 이게 동혁아. 축축하게 갈라지는 목소리 사이로 애틋한 물음이 비집고 나왔다. 제노는 구태여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절박한 손놀림으로 동혁의 두 뺨을 감쌌다. 답을 이미 알고 있어서였다. 보라색 바람꽃. 어린 날 다툼의 원인이었던, 동혁이 좋아하는 꽃. 이제노를 닮아서 좋아했던 꽃. 제노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본 동혁이 쿨럭, 하고 작게 기침을 했다. 제노의 하얀 얼굴에 빨간 핏방울이 군데군데 튀었다. 공포에 질린 제노와 다르게 동혁이 피식 웃었다. 도련님. 어 말해 말해 동혁아… 여기서 도련님 예쁘다고 그러면 더 울 거죠. 대답 없이 제노가 동혁의 뺨을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 아 근데 진짜 예쁘다 울 도련님… 뚝 그치면 더 예쁠 텐데. 흐어어엉. 힘없는 중얼거림에 겹쳐 울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안 돼 동혁아 안 돼. 안 돼 안 돼. 나 죽어 안 돼. 동혁아 정신 차려 제발, 제바알. 흐리멍텅해지려는 동혁의 눈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눈앞이 흐렸다. 공포가 뇌를 잠식했다. 하나님 예수님 제발요 저 착하게 살았잖아요 도와주세요 우리 동혁이 살려주세요. 부처님, 부처님도요. 아님 천주님도요. 누가 됐든 얘 좀 살려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다 잘못했어요…… 기도하듯 중얼대는 발음이 엉망으로 뭉개졌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실신할 듯이 울어대던 제노가 동혁의 가슴팍으로 무너졌다. 갈라진 배에서 울컥울컥 올라오는 핏물이 끔찍했다. 안 돼, 안 돼. 제노가 동혁의 얼굴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노력이 무색하게 자꾸 팔이 무너졌다. 동혁이 제노의 팔을 당겨 안았다. 얼른 그 품에 안긴 제노가 동혁의 어깨를 으스러져라 끌어안았다. 몸이 뜨거워 동혁아. 나 무서워, 너무 뜨거워 너. 동혁아 식으면 안 돼. 알았지, 어? 절대, 차가워지면, 흐으, 윽. 제노의 손에 들린 마른 꽃잎이 동혁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도련님.”

“어, 어 동혁아 어.”

“이 산 넘어서 쭉 내려가면요.”

“……,”

“할아버지, 한 분 사시는, 바닷가가 나와요.”

내가 어제, 얘기했죠. 묻는 숨이 탁탁 튀었다. 맑고 높은 특유의 목소리가 자꾸만 궤도를 잃었다. 지금 이게 대체, 나 진짜, 몰라 너 미워 나빠 이동혁. 제노가 숨이 넘어가라 흐느끼면서 동혁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핏기없는 까만 얼굴을 마주하니 또 다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동혁이 기운없이 웃었다. 아니, 내가 이걸 왜……, 얘기하겠어요. 도련님아. 생각을 좀. 이번엔 동혁이 타박했다. 타박하며 손을 뻗었다. 이제노는 또 거기에 냉큼 얼굴을 내맡겼다. 끝이 둥그렇고 투박한 이동혁의 손끝. 덜덜 떨리는 건 이제노 얼굴일까 이동혁 손일까. 동혁의 조심스런 손길을 따라 눈물로 잔뜩 얼룩진 제노의 얼굴 위로 핏자국이 번졌다. 도련님. 응. 그 할아버지가요. 응응.

“쬐매난, 배가. 한 척 있거든요.“

가서, 내 이름 대요. 앞으론 동혁이가 나무 못 해다 드릴 것 같다고. 그 소식이면 한 번 건네다주는 뱃삯으로 충분할 거예요. 그 배를 타면 아무 생각 말고 쭉 가야 해요. 여기가 멀어질 때까지, 새 땅이 나타날 때까지.

기억해야 돼요. 천천히 공들여 읊던 음성의 끝이 결국 형편없이 갈라졌다.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던 얼굴이 짧게 경련했다. 이동혁은 내내 이제노 얼굴을 어루만졌다. 다시는 못 만질 것처럼 조심스럽게. 이마를 쓰다듬고, 볼을 따라 내려와 코끝을 건드렸다. 잔뜩 무너진 감정과 단단한 감정이 불꽃을 튀기듯 충돌했다. 제노는 동혁이 첫 음절을 마칠 때부터 이미 이를 악물고 있었다.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계속 볼을 따라 흘렀다. 동혁이 제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봤다. 고집 더럽게 센 이마. 잘생긴 눈썹. 오뚝한 코. 진한 눈매. 눈물이 뭉쳐 갈라진 속눈썹. 하얀 피부에 튄 붉은 피. 붉다. 우리 도련님은 파란색, 아니 지금만큼은 빨간색. 도련님은, 이제노는, 언제나 그랬듯이 예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제노 등 뒤의 재민을 흘끗 넘겨봤다. 기특하게도 재민은 이를 악물고 오열을 참으면서 꿋꿋이 저를 지켜보고 있다. 동혁이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도련님 가세요.

 

“싫어.”

못 들을 말을 들은 것처럼 제노가 순간 파드득 몸서리쳤다. 싫어, 싫어, 싫어. 같이 가. 너랑 가. 동혁아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어떻게 니가 그럴 수가 있어 동혁아. 동혁의 잇새로 후두둑 숨이 끊겼다. 눈물 젖은 얼굴에,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이제노의 온기에. 머리 한 구석이 소용돌이쳤다. 잡고 버티던 걸 놓쳤다. 끊겼다 열렸다 터졌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해서 동혁은 폭발하듯이 고백했다.

“도련님을 사랑하니까.”

전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잖아요. 도련님은 나보다 동자님 더 사랑해도 나는 도련님한테 다 줄 수 있잖아요. 나는요, 살았든 죽었든 도련님 지켜요. 그니까 도련님은 동자님이랑 얼른 가요. 영원히 사랑할 거예요. 도련님이 저를 사랑하지 않아도 전 도련님을 사랑해요. 도련님이, 상상하는 거, 이상으로, 제가 도련님을. 동혁이 끝내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서럽고 아팠다. 사랑하고 싶었다, 이동혁이 이제노를. 나재민처럼 되고 싶었다. 한없이 파랗게 파랗게, 이제노와 어울리는 사람으로. 웃기만 하는 이제노를 울릴 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입가로 검붉은 선혈이 죽 흘렀다. 코끝에 피비린내가 훅 끼쳤다. 슬슬 숨이 찼다. 웃으려고 얼굴 근육을 있는 힘껏 끌어당겼으나 실패했다. 이 이상으로는 여유를 부릴 수 없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동혁은 다급해졌다. 나 더 비참해지기 전에, 떠나요. 도련님 부탁이에요 얼른 가세요. 울먹이며 끊어 뱉은 말에 제노가 기절하기 직전처럼 동혁을 붙들고 늘어졌다. 동혁아 나 죽어. 안 돼 너 죽으면 나도 죽어어.

 

“동자님.”

“어…,”

“얼른.”

하으 씨발! 하늘에다 대고 욕설을 악 내지르는 재민의 목소리도 온통 울음기였다. 소매로 거칠게 눈물을 훔친 재민이 제노의 팔뚝을 부드럽게 쥐었다. 발버둥치는 몸을 쉬이 달래며 동혁에게서 끌어내듯 떼어냈다. 도련님. 도련님, 제노야 정신 차려 우리 가야 돼. 뒤에서 쫓아와. 평소라면 다정하게 어르고 달랬을 목소리도 덜덜 떨리고 갈라져 있다. 제노가 재민의 팔을 붙들고 늘어졌다. 나 어떡해 재민아 재민아아…… 나 못 가 동혁이 두고 못 가. 동혁이 웃었다. 안 돼요 도련님 푸른 것은 푸른 것끼리 사랑해야죠. 섞이면 안 되는 거거든요 그게. 날 봐, 붉었던 게 벌써 도련님 때문에 파란 물 들어서 보라색 됐잖아. 실없는 생각 끝은 다시금 고통이었다. 복부에서 불붙듯 치미는 통증에 이를 악물고 허리를 숙였다. 제노를 겨우 일으켜 세운 재민이 애탄 눈길로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동혁아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외치듯 전하는 인사가 아득했다. 동자님이 미안하긴 뭘 미안해요. 울 도련님이나 잘 챙겨요. 타박 같은 당부가 끝내 목울대를 넘어오지 못하고 사그라졌다. 희뜩해지는 시야를 붙잡으며 동혁이 눈을 부릅떴다. 몸에 힘이 다 풀려버린 제노가 질질 끌려가듯이 멀어졌다. 동혁아아아. 길게 부르는 목소리가 처절하다. 이동혁은 눈을 들어 하늘을 봤다.

 

 

 

파랬다.

 

 

멀리멀리 가세요.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끝없이 가세요. 발 묶였던 곳은 뒤도 돌아보지 말고 걸으세요. 아니 뛰세요. 아니 날아가세요. 훨훨 날으세요 도련님. 추운 곳으로 떠나세요. 아주 멀리멀리 떠나서, 세상의 가여운 것들을 보듬으면서 사세요. 그러려면 서로를 먼저 보듬어야 할 테니, 옆에 계신 그분께 그럴 기회를 주세요. 그분과 함께 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하면서 살아요. 어제 일 오늘 일일랑은 얼른 잊어버리고, 하룻밤 자고 일어나 내일을 향해 가세요. 평생을 도련님 뒤에서 걷던 이동혁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 그러니까 얼른 책장을 덮고 다음 권으로 넘어가요. 늘상 도련님의 기도를 울음으로 끝맺게 만들었던 이곳 고란도의 심장에 칼을 꽂고 죽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도련님 울리는 사람 다 죽여버린다고 그랬는데, 정작 마지막엔 내가 울려서 미안해요. 평생을 다해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내 평생이 너무 일찍 끝나서 미안해요. 그러니까 이만 잊으세요. 비극적인 결말에 눈물 흘리는 건 하루면 충분해요. 바보처럼 지나간 줄거리에 얽매이지 말고 완전히 새로울 첫 문단을 음미하세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제대로 된 것을 배우세요. 곁에 있는 그분에게서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우세요. 쉬이 죽지 말고 파랗게 파랗게 살아가세요. 다음 생엔 저도 도련님 곁에서 걸을 겁니다. 파랗게 태어나서 살아갈 겁니다. 그래서 도련님을 도련님이라고 않고.

 

 

제노야.

 

 

제노야.

 

 

이제노.

 

 

그렇게, 불러줄 겁니다. 힘주어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매일 그렇게 입맞추듯 이름을 부르고 다정하게 안아줄 겁니다. 문 밖이 아니라 안에 있을 겁니다. 칼이 아니라 활을 쥘 겁니다. 익히기 어렵대도 상관없습니다. 손에 쥐어진 것이 무엇이든 그걸로 당신을 구하겠습니다.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지옥의 복판에서 걸어나올 때 손을 잡겠습니다. 그대로 뛸 겁니다. 날 겁니다. 세상 끝까지 같이 있을 겁니다. 사랑하게 해 달라고 당당하게 말할 겁니다. 이번 생을 다 바쳐 당신을 사랑한 탓에 내 몸이 온통 당신을 닮은 꽃의 빛깔이 되었으니, 내가 입맞췄던 붉은 흔적들을 지워 주기를. 이제 그만 당신과 닮은 색에게 물드시기를. 붉음을 소유하지 말고 푸르게 살아가시기를. 당신이 사랑했던 꽃의 색을 가지시기를. 내가 사랑했던 만큼 고스란히 행복하기를. 당신의 삶이 영원히 아득하게 아름답기를.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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