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우울한 오전 1시 28분의 독백

누군가의 한탄, 한숨, 지긋한 우울 그 사이 어딘가의 글 모음

오전 1시 28분.

어스름한 해도 뜨지 않고, 달만 반짝일 한밤 중.

더군다나 오늘은 구름이 끼어서 달마저도 보이지 않고 하늘에 그저 깜깜한 흑지를 깔아 놓은 것 같다.

1시 28분이라는 애매한 숫자에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그래서 우울하기 좋은 시간대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의 하루는 지극히 평범하고 맘에 안 드는 것 투성이었다.

하지만 구태여 적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사소한 것들이기었기에, 따로 회상할 필요도 없다.

어쨌든 요점은 지금 내가 가볍게 우울하다는 거니까.

먼저 말하겠지만, 난 지금 딱히 죽고 싶지 않다.

과거 또는 현재의 인연들을 살해하고 싶을정도로 원망하고 있지도 않고,

잊혀지지 않는 씁쓸한 흑역사를 되뇌이고 있지도 않다.

세상에서 사라져 다시는 눈을 뜨고 싶지 않은 기분.

딱 그정도로 우울하다.

나는 인간이니 따라서 내 두 발은 분명 땅을 딛고 삶을 살아갈 터인데, 어째 평생 하늘을 나는 듯이 멀미를 하는 것 같다. 평생을 멀미하며 살아가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여자다.

하지만 이렇게되면 나도 할 말이 있다. 내게 우울에서 벗어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홀로 바다를 전부 마실 수 있던가? 말도 안되는 소리일테다. 그것과 같다.

우울이란,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내팽겨 쳐져 말라 가는 것과 비슷하다.

거기에서 바다를 전부 마시고 돌아가, 다시 모두와 함께 살겠다는 둥 만용을 부려봤자 우스울 뿐이다.

아니, 우스운게 아니라..

토가 나온다. 주제 파악 못하는 꼬락서니가 상상만 해도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다.

싫다. 싫다. 싫다.


전부 내 탓이다.

사실 정말로 내 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진지하게 인과관계를 찾아보면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첫번째로, 나는 지쳤고.

두번째로는, 난 전부 내 탓이라고 하는 수 많은 '나' 중간에서 살아 가고 있기 때문에.

'내'가 '나'에게 손가락질한다. 전부 내 탓이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방법도 없이, 수긍할 수 밖에 없다.

"전부 네 탓이야."

''응, 그런 것 같네."


어릴 적 어른들은, 미디어매체는, 모든 이들이, 내게 정직하라고 말했다.

거짓말은 아주 나쁜 것이고, 옳지 못한 것이라, 거짓말을하는 사람도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거짓말이 그리도 무거운 죄라면

그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은 거짓을 겹쳐오며 살아 온 나는 대체 어느 정도의 악인인가?

내가 짓눌려 제대로 숨 쉬지 못하는 것은, 그저 내게 이 세상이 너무 버겁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살아오며 지어 온 죄에, 그 헛된 이상(理想)에 짓눌리고 있는 것인가?

어른들이 내게 가르친 '정직'은 이 몸에 씻을 수 없는 저주를 내렸다.

거짓말만하면-가시가 돋는 것 같다.

입 안에, 혀를 타고 내려가는 식도에, 위장에, 검은색의 뾰족뾰족한 가시가 온통 자라난다.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분명 느낄 수 있다.

가시에 내가 찔린다. 보이지 않는 피가 흐른다.

그렇지만 실체가 없는 가시를 아는체 할 수도 없어서, 나는 또 웃으면서 내 업보를 삼킬 뿐이다.


아아, 네, 그렇지요. 이것은 당신의 오랜 습관이지요.

당신은 또 누구 들으라는 양, 모른체하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중얼거립니다.

하기사, 당신 눈에 내가 인간으로나 보이겠어요? 나는 구색 맞추기에 필요한 소품에 지나지 않는 걸요.

물론 내가 "날 사람으로 보기나 하냐"고 물으면 당신은 그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놀라며, 당연하지 않냐고, 그것도 모자라서 날 아주 사랑한다고 하겠지만.. 그게 가증스런 거짓말이라는 건 모두 알지요.

당신이 하는 말들 중에서는 맞는 말을 찾는 것이 더 힘들지만 당신이 날 사랑한다는 소리만큼은, 그것들 중에서도 가장 허무맹랑한 소리인 걸요. 오직 당신만이 모릅니다. 당신만큼은 영영 모를겁니다.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아요. 당신은 아니라고 하겠지만-아니, 아니에요. 그거야말로 아닌 소리에요.

그대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던 순간부터 날 사랑했다고 했지요.

난 이제 당신이 나를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미워했다는 걸 모를 정도로 어리지 않은데 어찌 그런 허상을 입에 담으시나요. 당신은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고 했지만 아니요, 당신은 모르고 나는 알았습니다.

네에, 알고 있었습니다. 영영 나만이 알고 당신은 모릅니다.

그 숨이 멎어도.

이 숨이 멎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_

"왜 죽지 않는거야?"

누군가 나를 책망하며 그리 말합니다.

핏발 선 붉은 눈은 원망만 가득한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 사람은 그 말을 종종 반복하거나 할 뿐,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럼 나도 구태여 변명하거나 말을 덧붙이지 않기에 그 뒤는 쭉 침묵입니다.

"왜 죽지 않는거야?"

이렇게 그 사람이 다시 물으면, 그제서야 나는 그 사람을 지친듯이 바라봅니다.

실로 지겹고 지긋지긋한 소리입니다.

그야, 당신이 하지 않은 것일 뿐인데, 이 문제에서마저 나를 탓해야만 살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책망하고 원망하고 미워해야만 끝이 날까요?

"왜 죽지 않는거야?"

이번에는 그 사람이 침묵합니다.

내 두 눈은 원망으로 가득해 피눈물이 흐릅니다.

이 뒤는 가끔 들려오는 내 중얼거림을 제하면 영영 침묵이겠지요.

당신은 종종 나를 지겹다는 듯 볼 뿐이고 답은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모른체하고 있는 나에게 묻습니다.

"왜 죽지 않는거야?"

_

"네가 미워."

목 안 쪽에서 역한 혐오감이 밀려옵니다.

이성은 진정하고, 차라리 무시하고 가버리자고 했지만, 나의 명령을 듣지 않는 몸은 항상 그렇듯 또 저 맘대로 몸을 돌려 그이를 노래봅니다.

나는 갈 길이 멀어 이렇게 허비할 시간이 없는데 말이죠.

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해?

일이 이렇게 된게 누구 탓인데?

네가 나한테 그런 말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너는 나랑 다른 줄 아나 봐?

왜 항상 나만 이렇게 지독하게 괴롭히는데?

내가 너한테 대체 뭘 잘못했어?

묻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내 입은 하나라 결국 저 중 무엇 하나 물어보지 못하고 나는 그만 입을 꾹 다물어버렸습니다. 그이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눈을 부릅뜨며 그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다시 말합니다.

"네가 미워."

내가 밉다고 말하면서 내 쪽은 쳐다도 보지 않는 너.

너는 너와 내가 똑같은 모습이라는 걸 언제쯤 알아 차릴까?

그저 남 탓만 하기 급급한 과거의 나는, 탓하고 탓하다가 이제는 탓할 사람이나 물건도 없어져 나를 탓하기로 한 모양입니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 모르는 눈동자가 도르륵, 허공을 굴러 다닙니다. 내가 말합니다.

"나도 내가 정말 미워.."

_

눈을 감고 있노라면 익숙한 것이 내 귀에 간사한 말을 속삭입니다.

지독한 무기력이 날 누르고 앉고, 이 눈에서 떨어진 미적지근한 절망이 내 팔다리를 묶어도 구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그만두자. 이것도 저것도 그만둬버리자.

버려버리자. 필요 있는 것, 필요 없는 것 전부 놔버리고 버리자.

난 이제 그만 둘 것도, 버릴 것도 없는데 뭘 더 버리고 그만두라는건지.

의미 모를 말들을 지껄여 봤자 마음에 와닿지도 않고 피곤하기만 합니다. 매일 죽고 싶다고 떠들면서 몇십년이 지나도 죽지 못할 이 몸은, 일상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피곤한데 말이죠.

같잖은 희망을 말하는 것들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이해한 척 위선 부리는 것들도,

그냥 눈에 띄어서, 같은 하찮은 이유로 내게 돌을 던진 것들도,

전부 버리자. 그들이 밉지 않니? 그들이 다치고 힘들었으면 좋겠잖아.

우리라면 할 수 있어. 우리 그냥 그래버리자.

..하고 내 귀에 복수를 속닥거려도, 효과가 없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복수를 꿈꿔봤자 하등 변하는 것 없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체념했습니다.

죽기살기로 버둥거려 봤자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저 잡아 먹히는게 조금 늦춰질 뿐이죠.

그러나 점점 버둥거리는 것도 힘들어져서, 동작이 느릿느릿하니 시원스럽지 못하게 됩니다.

정말로 전부 귀찮고 지긋지긋하다면, 날 누르고 있는 이 무기력의 아가미가 기어코 내 생명까지 잡아먹을 때까지 기다리기만하면 될 것을.

아직도 실날 같은 희망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저는 오늘도 또 그 밑에서 나오려 버둥거리고 있습니다.


용서할 수 없어.

용서할수없어용서할수없어용서할수없다니까!!

목 깊은 곳에서 향할 곳 없는 원망이 차마 삼킬새도 없이 비집고 나온다.

-당신 때문에 내가 이렇게 비참해!

-당신 때문에 내 꼴이 이렇게 지독해!

-당신 때문에 내가, 내가 이렇게 사는거야!

하지만 여기서 칭하는 '당신'이란 누구란 말인가.

내 삶을 무너뜨린 것은 비단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내가 원망하는 그들 모두의 잘못인 동시에,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내 꼴이 비참하고 지독한 것에 대해, 난 무언가 항변이라도 하고 싶단 말인가?

이것을 생각하는 와중에도 어쩔 도리 없는 분노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온다.

상처 입히지 않으면 진정할 수 없었다.

상처 입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오늘도 내 몸에는 상처가 늘어가지만 이것 가지고는 만족할 수 없다.

나는 더 많은 피, 더 많은 고통을 필요로 한다.

내 분노를 얌전히 잠재울, 내 분노보다도 더 큰 고통! 더 많은 양의 선혈을!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상상을 한다. 칼로 심장을 찔러 피를 남김 없이 긁어내는 상상을 한다.

저주스런 몸에 흐르는 저주스런 피가 참을 수 없이 역겹고 화난다.

아아, 살아갈 수 없어, 살아갈 수 밖에 없어, 역시 살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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