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
아카기 시게루 드림
이 남자가 와시즈 이와오.
오이누마 아유카는 그를 마주하는 순간 깨달았다. 남자, 휠체어 위에 기대듯 앉아있는 와시즈의 시선이 따가웠다. 그는 도자기나 보석함, 실은 그보다 훨씬 몰가치한 잡동사니를 보는 듯한 눈으로 아유카를 살폈다. 곧 그의 번뜩이는 눈동자에 무료함과 실망감이 스쳤다. 아유카에겐 익숙한 것이었다. 그때 아유카의 마음속에는 엷은 긴장감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와시즈의 뒤로 둘리듯 선 흰 정장 차림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들 또한 아유카를 뜯고 해체하듯 살피고 있으리라. “형편없군. 형편없어. 이런 상대일 리가 없지!” 와시즈가 침묵 끝에 입을 열자 남자들이 몇 마디씩 동의의 뜻을 내비쳤다. 웅성거리는 소리로 머리가 아팠다. 아유카가 턱을 조금 들었다.
바람이 따뜻하고 하늘이 맑은 좋은 날이었다. 골목을 가득 채운 남자들을 마주하기란 뜻밖인지라, 아유카는 다소 멍청한 표정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아유카의 손에는 막 구매를 마친 담배가 몇 갑인가 들려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뒤로 맞잡아 그것들을 감추었다.
와시즈는 아카기 시게루를 찾고 있다. “그러니 모른다고 하면 돼.” 오오기가 넌지시 일러주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앞머리에서 아른거렸다.
아유카는 검은 눈동자를 와시즈의 낯에 고정했다. 그는 익히 들어온 상과는 사뭇 다른 자태였다. 그를 지칭하는 무수한 문장. 고아한 백발이나 우렁우렁한 목소리, 마치 잘 벼려진 일본도와 같다는 입매, 총알을 능가하는 눈동자……. 언젠가의 와시즈는 정말로 그런 모습이었을는지 모르지만, 아유카의 앞에 앉으면서 선 이 남자는……. “말을 하지 못하는 건가?” 와시즈가 비난했다. “아…….” 당황에 가까운 탄식이 아유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와시즈 님이 묻지 않느냐?” 백복의 남자가 한 발을 앞으로 빼며 다그쳤다. 그러나 무엇을? 와시즈는 아직 아무것도…. 아유카가 뺨을 붉혔다. 이 남자가 와시즈 이와오. 아유카는 와시즈의 낯 구석구석을 눈에 담았다. 아카기 시게루와 사활을 걸고 도박한 남자. 한때는 정계의 검은 손, 그러나 이제는 끊임없이 쫓기는 방랑자. 휠체어 위에서 쪼그라들고 있는 그의 몸……. 일순 오싹해진다. 아유카의 시선이 굴렀다.
“시게루 씨는….” 아유카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어제 떠나셨어요. 아니, 앗…… 몇 시간 전에.”
그래. 아유카는 그의 뒷모습을 기억했다. “나중에….” 하고 말하던 느긋한 목소리도, 만류하는 손을 밀어내던 힘도. “행선지? 몰라 그런 건….” 입술 끝에서 흩어지던 매캐한 연기. “이번엔 따라오지 않는 쪽이 좋아.” 발을 얼어붙게 만들던 단호함. 아유카는 찌푸리는 일에 미숙했으므로 어색한 웃음을 짓는 수밖엔 없었다. “보고 싶을 것 같은데…….”
아카기 시게루는 대답 대신 새로운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 옆모습에서 아유카는 기쁨을 느꼈다. 이상한 말이었지만…. 잠깐의 착란 뒤 손을 꼼지락거린 아유카가 와시즈와 가까스로 시선을 마주쳤다. 와시즈의 불 같은 염원이 아유카에게도 무언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몇 시간!” 와시즈가 두 손을 강하게 주먹쥔 채 몸을 떨었다. “또다! 몇 시간! 또 다시! 간발의 차로!” 그는 몸을 불태워가며 분노했고, 그에 못 이겨 쥐고 있던 지팡이를 아유카에게 내던졌다. 아유카는 피하지 못했다. 피하지 않았거나. 어쨌거나 아유카에겐 그런 식의 격발 또한 익숙했다. 노름꾼들이야 하나같이 모양만 다른 광증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손에 들려 있던 담배갑들이 바닥으로 흩어진다.
아유카의 이마를 맞고 떨어진 지팡이는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가 분명한 고급재였다. 손잡이 부분의 제비 모양 세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아유카의 이마에서 흘러나와 묻은 피가 엄청난 결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아유카는 찢어진 이마를 지혈하는 대신 몸을 구부려 지팡이를 들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통증은 첨예했지만 불쾌하지 않았다. 아. 나도 아카기 시게루를 찾고 싶었어요. 아유카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잡고 싶었어요.
“뭐야?” 아유카가 제게 다가오자 와시즈의 입에서 당혹감에 젖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남자들이 아유카를 저지하려는 듯 손을 뻗었지만, 아유카는 손에 든 지팡이를 손수 와시즈 이와오에게 건네기까지 멈추지 않았다. 핏물이 아유카의 광대와 뺨 아래, 그리고 턱까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턱에 모인 붉은 핏방울은 종래엔 바닥으로 떨어져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모양을 그려댔다. 와시즈의 시선이 아주 잠깐 바닥에 머물렀다. 그는 곧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아유카는 그것이 확실히 아카기 시게루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렇게 했다. 방아쇠에 검지를 걸었을 때, 오이누마 아유카의 멍청한 두 눈동자를 보고 무언가 깨달았었다…. 그러나 무엇을? 아유카는 확신하지 못한다.
“두려워하지 않는군! 그 눈… 두려워하지 않아!” 와시즈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말하자, 곧 백복의 남자 하나가 불쑥 팔을 내밀어 아유카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 “와시즈 님께 그런 표정은 뭐냐!” 남자가 거듭 다그쳤다. 아유카는 그때에서야 손등으로 이마를 닦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와시즈는 이제 허리를 숙여가며 알 수 없는 중얼거림과 웃음을 흘려대고 있었다……. 아유카는 그, 늙고 앙상해져만 가는 그 남자가 궁금했지만, 아마 무엇도 알아낼 수 없을 것이었다. 곧 노인과 남자들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존재하지 않으려는 목표를 향해 사라져버릴 테니까. 아유카가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 거였어….” 와시즈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휠체어 바퀴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 여러 남자가 한꺼번에 걷는 소리, 노인이 중얼거리는, 웃는, 그런 소리들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것들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아유카는 발끝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이마에서 피가 조금씩 흘러내렸다. 땅에는 붉은 무늬가 어지러웠다. 심장이 고전하여 뽑아올린 것이 이런 식으로 사용된다니 아까웠지만, 오이누마 아유카로선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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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예의바른 페가수스
좋은느낌을 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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