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KxS
누군가 급히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방에 무어라도 두고 간 모양이지, 싶어 방에서 책이나 읽던 차에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순간 잠에서 깨어나듯 상상의 나래에서 빠져나오고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던 공책이며 원고지들을 모아 서랍에 넣고는 자물쇠로 잠궈버렸다. 일종의 습관이었다. 열쇠를 숨겨놓고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상당히 급해 보였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모양이지. 요즈음에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많았기에, 방이 더러워서 문을 열고 틈 사이로 고개만 내밀었다.
"무슨 일이야?"
"게슈타포가 찾아."
"... 왜?"
"몰라, 빨리 나가 봐. 난 내 집에 게슈타포 들어오는거 질색이야."
이 집에는 세 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 1급 혼혈과, 유대인과, 게르만이지만 반나치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가 살고 있다. 때문에 저리 급한 것도 이해가 되는 노릇이라. 아무런 생각도 잇지 못하는 채 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날 잡으러 온 것인지, 조사하러 온 것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어느 쪽이건 위험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 집 안까지 들이는 것만큼 최악이 어디 있을까.
현관을 열어 문 틈 사이로 급하게 빠져나오자 제 사랑하는 연인이 눈에 보였다. 심지어는 제복도 아니었고 사복 차림이었다. 그제서야 동거인이 날 놀릴 의도가 가득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표정이 풀리고 웃음이 새었다. 그는 내 애인이 누군지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애인의 유무조차 알 수 없었지만.
어쩌면 모순이 아닌가. 반나치 기사를 대놓고 쓰면서- 게슈타포와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로 그의 품으로 폭 안겼다. 잠시 멈칫했다 품으로 살풋 끌어안아주는 모습이 퍽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반가워요."
"... 놀랐어?"
"조금?"
사실은 꽤 식겁했다. 혹여 나와 내 동거인들을 체포하러 온 사람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만 이것은 내 동거인의 장난 때문이었기에 괘념치 않았다. 만약 동거인이 내게 '누가 너를 찾는다' 정도로만 말했어도 꽤나 설레고 말았을 것을.
따뜻한 체온과 다가오는 체향에 기대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늘 평화를 바라지만 우리 둘은 어느 쪽이 이기건 간에 행복해질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나는 늘 연합이 이기길 바라면서도 그의 행복을 바란다. 모순이다.
원래는 이런 생각을 잘 하는 편이 아니었다. 언제나 결말은 우울이었고, 그에게는 우울을 티내고 싶지 않았으니까. 전부 동거인 때문이었다. 게슈타포라는 소리를 듣고 괜히 겁먹은 것은 사실이라 괜히 우울해진 것이다. 그래서 그의 품에 기대어 한참 숨을 내뱉었다.
"무슨 일 있었어?"
꽤 안절부절 못 하는 모습에 웃음이 새었다. 나는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사람을 앞에 두고 무슨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어차피 내 인생은 얼마 남지 않았고 오늘을 즐기면 되는 일이었다. 하루살이 같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시대니까,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반가워서요."
이 상냥한 사람. 전쟁이 끝나면 손잡고 멀리, 멀리 도망쳐 버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