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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레싱 X모듈 스토리 - 무거운 검날 묶음

231206


청년은 풀었던 벨트를 다시 감았다.

두껍게 겹겹이 싸인 벨트 너머로 무거운 검이 감춰져 있다—— 사실 감춰져 있다고 하기에 그 검은 너무 커서, 설령 꼼꼼히 감싼다 해도 검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딸려 있는 건틀릿은 대다수의 사람들의 팔보다도 넉넉하고, 검신은 대다수의 사람보다도 길다. 묶인 검은 날끝을 드러내지 않아서 살육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무기로서는 멀리서 바라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이게 바로 목적일수도 있고, 어쩌면 검을 든 청년은 사실 이 검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생각이라곤 추호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는 그저 검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을 뿐이다. 검이 존재하는 한 상대가 깨우치도록 만들 수 있고, 선혈과 죽음은 이미 코앞에 있다. 이 얇은 벨트를 넘기만 하면—— 이 얇은 벨트를 넘어서는 안 된다. 


청년은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일부러 이 검에 벨트를 감았다. 날끝을 가리고, 감추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겼다. 예리한 칼날에는 인내가 필요한 법이다. 인내는 닳아 없어지지 않는다. 인내로는 선혈과 죽음을 피할 수 있다. 대부분의 상황에 참더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더라도, 칼날은 제 몫을 다할 수 있다. 청년은 이 검을 이렇게 대했다. 청년이 제 스스로를 대하는 것처럼. 


그는 내가 검이라 했고, 칼날이라 했다. 하지만 나는 감추고 싶고,  숨기고 싶다. 그는 과거에 줄곧 이렇게 해 왔다. 그는 그 분노, 고난, 고통, 열락, 감격, 흥분 모두를 겹겹이 싸인 벨트 너머에 감췄고, 그의 육체와 정신도 이처럼 팽팽한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


허나 지금은, 지금은 모든 게 예전같지가 않은 것 같다. 


적이 사방에서 몰려온다—— 사실 몰려온다고는 할 수 없지만, 청년은 일찍이 그들이 엔와드의 깊은 숲에 스며들었다고 생각했다. 쉬톤령의 비구름 아래에, 바세르령의 커다란 호수와 강물 속에, 에르덴헬의 진흙과 돌 위에 도사리며, 그들의 그림자는 고탑 사이를 오가고, 대학과 관저를, 궁전을 드나든다. 이런 것들이 그에게 있어서 뜻밖의 일은 아니고, 그는 단지 오늘의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가 진정으로 자신을 파고들려는 것과 마주할 때면 그는 오히려 그것들의 모습을 더 이상 똑똑히 볼 수 없었다. 그것들은 어디에 있지? 적은 아직 그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사실 그들이 어디에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는 확실히 두툼하게 싸인 벨트 너머에 숨어 있었는데, 어째서 지금은 오히려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처럼 느껴질까? 그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결코 아니고, 오늘을 위해 준비하지 않았던 것도 결코 아니다. 그는 이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플레몬트는 예전에 그에게 경고했다. "이건 네 스스로가 선택한 싸움이다."

내 스스로가 선택한 싸움이다. 청년은 이리 생각하면서, 검을 거듭 다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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