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8월 17일 마감
“자네도 언젠가 자신보다 소중한 이를 만날 걸세.”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의미도 없는 폭력에 휘둘리며 휘두르고, 상처를 입거나 입히는 일들만 가득했던 전장속에서 겨우 살아남아, 자신일 수 있도록 벼티려고 힘을 갈망했던 내가. 솔직히 이제는 잘 모르겠다. 여기까지 오니 그저 열심히 달려왔던 모든 일이 허망하게만 느껴진다.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가시밭길을 간다고 생각했는데 남의 다리를 부수고 그 위를 달리고 있던 것은 아닐까.
담배가 말렸다. 마지막 남은 한 개비를 입에 물면서 불을 붙이려는 순간, 눈 앞의 도깨비불이 도와줬다. 처음 보는 존재의 불로 피는 담배는 평소보다 조금 특별한 것 같았다. 그런 담배의 연기가 이 울적한 기분까지 날려주길 바라면서 속으로 크게 삼키고 뱉었다. 가슴 속을 훑고 나가는 향이 전부 가져가주길. 물론 가능할 일은 아니었지만 조금이나마 가벼운 착각이 들었다.
“그런 날이 나한테도 올까?”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될 일이. 요괴를 볼 수 있게 된 지금처럼 보이게 된다면 나도 조금이나마 나은 사람이 됐다고 할 수 있을까. 타인을 소중히 할 수 있는, 남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다면 아내를 사랑하는 널 제대로 보지 못하고 실패한 인생이라며 비난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오고말고.”
하지만 그런 나를 아무런 고민 없이 믿어주었다. 욕심에 눈이 멀어 충고를 듣지 않고 마을에 들어온 내 첫인상이 좋지 않았을 텐데도 내 말에 귀를 기울어주고 있는 그를 부정적으로 본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내가 실패한 인생이 아니었을까.
“부인을 찾으면 좋겠군.”
그런 너에게 담배를 건넸다. 처음 너의 요구를 거절하고, 남몰래 비난했던 일에 대한 사죄와 진심으로 부인을 찾았으면 하는 의미에서 건넨 마지막 한 개비를 그는 한 모금 깊게 들이마셨다. 그 담배가 네 울적한 마음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길.
둘이서 늦게까지 요괴의 술을 마셨다. 술과 담배와 대화가 오가면서 신뢰 또한 오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우리를 달빛이 지켜봐주고 있었다. 다신 오지 않을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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