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하얀 나방

반밖에 없는 삶에도 빛은 있어

“와… 비 제대로 오네.”

“어머 릴리 씨, 우산 없으세요?”

“아, 네. 아침에 비 온다는 소식을 못 들어서…”

“하긴, 일기예보가 잘못 하긴 했어. 날개로 막고 가기도… 애매하겠네. 내꺼 우산 빌려줄까? 난 날개로 가리고 가면 돼.”

“아, 괜찮아요— 굳이 저 때문에 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어… 어차피 빗줄기 보니까 여우비 같기도 하고, 먼저 가세요. 저는 따로 방법을 구해볼 테니까요.”

“괜찮겠어? 최근에 몸 상태도 별로 안 좋았잖아.”

“괜찮아요~ 먼저 가세요! 가족들이 걱정하시겠다.”

“어유 그럼… 먼저 갈게요, 조심해서 가요! 비 얼른 그치길 기도할게!”

“네~ 안녕히 가세요~ ……이제 어쩐담.”

때는 어느 미지근한 날씨로 사람들의 옷 소매를 짧게 줄여주는 6월. 나는 현재 집과는 먼 어느 단골 가게에 나와있다가 갑작스런 비에 발이 묶여있다. 일기예보에선 분명 오늘 내내 화창할 거라더니만, 점점 일기예보의 신뢰성을 잃어간다.

아, 나는 누구냐고?

내 이름은 릴리아스 실리오 클라레온. 나는— 모두가 하늘을 날기 좋은 아름다운 한 쌍의 날개를 지니거나 바다를 헤엄치기 좋은 꼬리가 있는 세상에서 날개가 반쪽밖에 없는… 현재는 익명의 인터넷 보석 공예가와 신입 바리스타로 활동 중인 인조이다. 어릴 때 나를 지켜준 소중한 사람과의 약속을 위해서.

보통의 한 쌍의 날개를 가지는 인조들은 비가 왔는데 우산이 없어도 날개가 보통 몸만하거나 몸보다 커서 여차저차 날개로 몸을 가리고 가면 완전히 안 젖지는 못 해도 나름 대책으로써 비를 피할 수 있는데, 나는 내 몸만한 날개 반쪽이 전부라서 상당히… 애매하다. 가린다면 가릴 수야 있긴 한데, 보통의 날개를 가진 사람보다 젖는 게 더 많지.

솔직히 방금은 그 단골 가게에서 자주 마주치는 분이 나 때문에 본인 우산을 포기하시려고 해 ‘여우비겠죠’라며 괜찮을 거라 진정시키며 냅다 보내긴 했는데, 비가 내리는 소리를 봐선 여우비로 끝나진 않을 예감이 매우 크게 든다. 이렇게 되면… 택시 부르기는 애매하니, 방법은 단 두 개 뿐….

“…얘 지금 바쁘려나?”

[뚜루루루—— 뚜루루루——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 후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갑니다. 띠링-]

“…얘는 꼭 나 이럴 때 핸드폰 꺼져있다니까. 날 항상 지켜주겠다고 지하철에서 고백했으면서. …어쩔 수 있나.”

나에겐 현재 아르오스라는, 긴 시간 동안 알고 지낸 인어 친구… 지금은 애인이 얘가 한 명 있는데, 얘는 나와 달리 매일같이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큰 사람이어가지고 일하는 날에는 꼭 내가 필요로 할 때 핸드폰이 꺼져있어 영 큰 도움이 되질 못 한다. 내 주변 사람은 왤케 다 거물이 많이 생기는 거람. 뭐 아무튼… 두 개의 방법 중 하나가 사라졌으니— 남은 하나를 하는 수밖에.

“…여기 건물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거 같은데.”

거의 모든 인조가 한 쌍의 아름다운 날개를 가지고 태어나는 세상에서, 반쪽짜리밖에 안 되는 날개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다른 인조들에게 놀림받고 괴롭힘 당하며 차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인어들 사이에서도 안 좋게 보이기 마련이며, 이로 인해 어릴 때부터 여러…… 아픔에 노출되기가 매우 쉽다.

반쪽밖에 없는 한심한 녀석이랑 명칭은 거의 날 때부터 가진다 해도 무방하지.

허나 그렇게 차별을 받고 있다고… 가만히 주저앉아서 울고 있기만 할 수는 없다. 내가 반쪽짜리면 어때? 그걸로 자기들한테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니고, 날개가 반쪽만 있든 말든, 하고 싶은 게 있고 할 수 있는 게 있고 충분히 꿈을 가지고 앞으로 걸어갈 수 있다. 이걸 증명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긴 시간— 못해도 200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걸린다 해도 계속 날 핍박하는 세상과 싸워서 나라는 존재를 모두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통의 한 쌍 날개를 가진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우리 같은 이들이기에 도전하고, 우리 같은 이들에게 해낼 수 있는 것들을 하나 찾아서 익혀두면 많이 유용하다. 날개가 반쪽밖에 없어 제대로 날 수 없는 하얀 나방도 분명히 날 수 있다고, 똑같은 인조라고, 불가능은 없음을 알리기 위해서는 말이다.

빛은 스팩트럼이요, 무지개와 같이 여러 개의 색으로 빛날 수 있으니. 굳이 남들과 똑같은 색이 아니라고 좌절할 필요 없고, 나만의 색을 찾으면 되는 거니까. ‘나’는 ‘나’라는 특별한 색이 있으니까. ……난 그걸 깨닫기 위해 200년 정도를 소비했지만.

[탈칵, 틱]

“우산 말고 이걸 가져온 게 좋은 선택이려나? 모르겠네. …여기서 집까지 거리는— 이런 식으로 가면 15분 정도인가? 오랜만에 좀 특별하게 날아보겠네.”

[휘이익 탁 철컥]

날개가 반쪽밖에 없다고 해도, 바람의 기류를 타고 추진력을 얻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 새하얀 깃털과 바람에 잘 흩날리는 옷으로 최대한 나를 바람과 동일한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걸 돕기 위한 도구로는… 주문제작한 특수 보드가 최고지. 빠른 속도로 하늘을 타기 위해서는.

[차락!]

“……마침 기류도 날 따라주는 거 같네. 이러면 나중에 아르오스한테 혼나겠지만, 이러는 수밖에. 자- 가자—!”

[휘익— 탈칵! 휘이이이이—]

날개를 피고 바람에 몸을 맡기며 보드와 발을 구속시키고 빠르게 달려서 추진력을 얻은 다음, 난간에서 높게 점프하며 몸과 날개를 이리저리 휘젓고, 보드 타는 사람들과 같이 테크닉을 구사해주면— 완벽하진 않아도 날 수 있단 말씀. 날개 한 쌍을 가진 보통의 인조들은 굳이 할 필요가 없기에 안 하지만, 날개가 반쪽밖에 없는 인조에겐 익혀두면 아주 좋은 기술이지.

[차라락— 탁! 끼이익—]

그리고 이 방법을 이용해 건물과 건물 사이를 빠르게 날아다니면 최대한 비를 덜 맞으면서, 집까지 가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 나이기에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랄까.

[탈칵- 휘이이이——]

이게 반쪽짜리의 나는 방법이다.


[끼이이익—— 탁!]

“후… 좋아, 이제 이렇게 두 건물만 넘으면… 어?”

[툭… 툭…]

“비가… 그쳤네. 도착하기 직전에야 그치다니, 너무하네. 뭐— 이미 이렇게 된 거 마저 날—”

[뚜루루루— 뚜루루루-]

“…아르오스네. —여보세요?”

“어 릴리, 아까 전화했네? 무슨 일 있어?”

“으응— 비가 오는데, 우산은 없고 택시 부르긴 애매해서, 혹시 차 좀 운전해줄 수 있나 물어보려고 했어.”

“아 진짜? 그럼 지금 어디야? 바로 갈게.”

“아냐, 보드타고 날아서 집까지 거의 다 왔어. 비도 지금은 그쳤고.”

“뭐?! 그럼 너 지금 완전 비에 젖어 있는 거 아니야? …화상 통화 좀 켜봐.”

“…또 잔소리 하시려구.”

[삑]

뭐야, 쟤 아직 일하는 중이네. …오늘은 또 무슨 스튜디오에서 메이크업 해주고 있나보네. 아주 흐트림없이 묶은 하얀 머리와 지적이게 보이는 동그란 안경에 단정된 셔츠차림, 지금 나랑 눈색 빼고 완전 정반대네.

“…아직 일하는 중이네? 일하는 중인데 괜찮아?”

“나보다 네 걱정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아이고— 머리랑 옷이랑 다 젖었네. 날개도 다 젖었을 거 아니야, 괜찮은겨?”

“해봤자 감기 걸리는 거 말고 더 있겠어?”

“그게 걱정이지 임마.”

“너가 진작 전화 받았으면 이럴 일 없었지 모.”

“어휴… 뭐 집 다 왔다니까 내가 지금 나가긴 애매하긴 하네…. 얼른 집 들어가서 따뜻한 물로 씻고 닦아. 감기 걸리겠다.”

“네— 일 열심히 하시구, 이따 무지개 뜨면 사진 찍어서 보내줄게.”

“—하여간. 알았어, 있다가 끝나고 다시 걸게~”

“어이—”

[띠리링—]

그러면… 하늘도 맑게 개었으니, 원래 목적보다 좀 더 많이 날아볼까. 태양의 반대편, 무지개가 뜰 하늘을 향하여—

[차라락—!]


*주인공 릴리아스와 아르오스의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뒤를 보는 픽크루(https://picrew.me/ja/image_maker/947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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