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님 커미션 작업 완성본
파이널판타지14의 칠흑의 반역자 종료 시점까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파판14 자관 페어로 신청 주셨습니다. 샘플에 이름 공개해도 무관하다는 말씀 주셔서 전문을 공개합니다.
“망치 여기 있습니다.”
“아, 고마워.”
레제토에게 나무망치를 건네받은 스틱스가 발로 위치를 잡아두고 있던 나무 말뚝을 땅에 단단히 박아넣었다. 이어 천막의 줄이 팽팽하게 펼쳐지도록 못에 몇 번을 감아 맨 뒤, 돌까지 괴어두고 반대편으로 향했다. 그쪽에서는 넘버원이 줄이 풀려 천막이 무너지지 않도록 줄을 잡고 버티고 있었다.
“이쪽 빨리 좀 해 봐, 아저씨. 얼른 마무리하고 밥 준비해야지!”
“이것도 못 버티면서 도끼는 어떻게 드냐.”
“그거랑은 다른 문제라고 했다?”
넘버원은 투덜대며 힘껏 당겨서 잡고 있던 줄을 넘겨주었다. 넘겨받은 그는 반대쪽에 했던 대로 말뚝을 깊게 박아넣고 줄을 매었다. 이제 마무리 중인 큰 천막과 진작 다 세워둔, 적당한 크기의 천막 두 개가 나란히 간격을 두고 놓여있는 모습은 라노시아의 이름 없는 평지를 야영장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자리에 모인 세 사람이 머무를 거처가 없거나 여관방을 못 잡을 사람들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여기가 림사 로민사나 어디 작은 촌락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부득이하게 이래야 하는 것도 아녔다. 그러니까 이렇게 천막을 펼쳐두고 모닥불 피울 자리도 마련하며 야영 준비를 하는 것은 순전히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란 소리였다.
“알아서 할 테니까 몸만 오라고 할 때는 언제고 말이야……. 안 그래, 레제토?”
레제토는 대답 대신에 멋쩍은 웃음만 흘렸다. 이 야영 계획을 세우고, 넘버원과 레제토를 끌어들인 것은 스틱스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서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올드 샬레이안으로 떠나야 하니, 그 전에 모험가 일은 잠시 내려두고 재충전을 위해 푹 쉬어두는 게 좋지 않겠느냐 했던가?
상황이 상황이긴 해도 이유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이었다. 웬 야영이냐며 넌더리를 내던 넘버원도 그건 맞는 말이라고 동의했다. 다만 알차게 낚시에 바비큐까지 하자는 계획도 세우고, 자기가 준비하겠다며 사람까지 끌어들인 주제에 혼자 야영 준비를 하는 모양이 영 엉성한 게 문제일 뿐. 결국 보다 못한 두 사람이 함께 거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너희더러 뭘 사들고 오라 그랬냐, 뭘 만들어 오라 그랬냐?”
“물론 그러시진 않으셨지만…?”
“아니지, 레제토. 이럴 땐 제대로 말해야 해. 무책임한 바보라고 해 봐, 바-보-.”
세 사람이 붙어 한 덕분에 준비는 거의 다 마무리되었다. 물론 넘버원의 기분은 아직 풀리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스틱스를 건드려댔다. 유치한 시비고, 역시나 유치한 맞대응이 연신 이어졌다. 애매하게 레제토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정말 예의 없는 생각이지만, 레제토는 가끔 이들이 정말 용시전쟁과 해방전쟁의 중심에 있던 영웅이 맞는 건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들의 위용과 무력을 이슈가르드에서부터 보즈야의 최전선에서까지 수도 없이 보아 대단한 이들임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러고 있으니 꼭 사이가 좋은 의남매나 초짜 모험가들 같아 보인달까…….
“레제토, 뭐 해? 말해보래도.”
“예? …아. 바보 말입니까?”
“너, 그걸 하란다고 진짜 하냐?”
미간을 구긴 채 자신과 넘버원을 번갈아 쳐다보며 성질을 내는 스틱스와 그걸 보며 온 사방 떠나가라 웃어대는 넘버원의 모습. 레제토는 조금 전까지 하던 생각을 고치기로 했다. 그들의 출신-받아들였다곤 하나-만큼이나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한참을 티격태격하면서도 착실하게 손을 움직인 끝에, 야영할 자리를 전부 닦아두는 데 성공한 세 사람은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양철로 만든 잔에 따뜻한 커피와 코코아를 담아, 일찍이 피워둔 모닥불 근처에 앉아있자니 그제야 셋 모두 정말로 야영을 나온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아, 나 해보고 싶은 거 있었어! 마시멜로 구워서 먹자! 캠프파이어는 이런 거 꼭 한다며?”
그리 말하며 큼직한 가방을 뒤적인 넘버원은, 어디서 났는지 모를 희고 푹신푹신한 것을 꺼내 나무 꼬치에 끼워다 쥐여주었다.
“굽는 겁니까?”
“응. 모닥불에 대고 이렇게, 살살.”
넘버원의 시범을 따라 레제토는 마시멜로를 불가에 가져갔다. 몇 번 살살 돌려주니 금세 마시멜로의 겉면이 갈색빛을 띠며 구워졌다. 살짝 타들어 간 설탕 특유의 진한 단내가 세 사람의 코를 간지럽혔고, 처음 해보는 것일 텐데도 깔끔하게 구워낸 넘버원은 식혀서 먹으라는 말도 흘려들으며 마시멜로를 바로 한 입 깨물었다. 캠핑을 하러 갈 일이 없기도 했고, 집안 식구들은 이런 유행에 관심도 없어 해보고 싶다고만 생각했던 것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겉면은 약간 단단하게 바삭하고, 그을린 부분의 씁쓸함과 달콤함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속은 뜨겁게 데워져 말랑하고, 끈적거리며……
“맛있, 뜨거워…!”
“그럼 당연히 뜨겁지. 조심하라고 그랬잖냐.”
“그렇지만, 후, 하. 원래 음식은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단 말이야.”
한 입 크게 베어 문 마시멜로를 이번에는 얌전히 식히며 말했다. 그를 조금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레제토는, 먹던 마시멜로를 내려두고 옆에 놔두었던 물병을 집어 새 잔에 물을 따라 건넸다.
“……차가운 물이라도 좀 드십시오. 화상을 입으면 당장 치료할 수 없지 않나요.”
“으응. 괜찮아. 나 치료는 할 수 있어.”
태연하게 대꾸하는 넘버원을 보며, 약간 식은 마시멜로를 한입에 쑤셔 넣고 씹어 삼킨 스틱스는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밥 준비 내가 한다.”
“…요리, 할 줄 아셨습니까?”
“……나 여기 와서 배웠어.”
레제토의 직접적인 질문에 스틱스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물론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아니긴 했지만, 에오르제아에 떨어진 이후 요리사 길드에서 최소한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은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신뢰가 없을 일인가?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넘버원은 레제토에게 고갤 돌리고 입을 열었다.
“…레지, 불안하지 않아? 막 못 먹을 거 나올 것 같은데? 우리 비스마르크 갈까? 림사 로민사까지 텔레포 타면 금방인데. 아니면 포장이라도 해 오자. 아저씨 건 빼고.”
“…그럴까요?”
이번에만큼은 레제토도 넘버원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알아듣지 못할 이국의 외침-분명 욕이겠거니 짐작은 했다-은 무시하기로 하며.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실력이 나름 괜찮았던 건지. 스틱스가 만든 식사는 꽤 그럴듯했다. 물론 디저트는 그사이 정말로 비스마르크에 다녀온 넘버원이 사 온 것들로 채워지긴 했지만 말이다.
한창 그렇게 먹고 떠들고, 뒷정리도 하니 해가 저물어 멀찍이 보이는 라노시아의 바다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조용해진 김에 레제토는 적당한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트인 시야가 깔끔한데다, 주변엔 마물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근래엔 낯선 일이다.
“옆에 좀 앉는다?”
“예, 편하게.”
선명한 담배 냄새. 입에 거의 다 타들어 간 담배를 문 스틱스가 다가와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습관적으로 다리를 꼬고, 시선은 정면을 향해. 단단한 부츠를 신은 발끝만 까닥이던 스틱스가 입을 연 것은 한참 뒤에서였다.
“이슈가르드는 좀 어떻든?”
“커르다스와 더불어 검은장막 숲 북부 인근의 탑을 지속해서 경계 중인 모양입니다. 삼도시와 다른 종족들 간의 이야기도 이뤄지고 있는 것 같기야 했습니다만, 기실 이 점은 저보단 당신께서 더 잘 알겠죠.”
“……신도화 문제에 대한 대책은 아직 뭐가 없다. 잡혀가지 않도록 경계하고, 초기 단계는 치료하는 게 전부지. 진척이 없어, 진척이.”
한숨과 함께 담배 냄새가 퍼진다. 말을 마친 스틱스는 거의 끄트머리까지 탄 담배를 손으로 눌러 꺼버렸다. 남아있는 잘은 불티가 손가락 새에서 비벼져 사라졌다.
“올드 샬레이안에 가면 무언가 대책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느 쪽이든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잘 모른다. 말로는 뭐 의회인가, 라자한인가. 설득도 하고 양쪽에서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 같다마는.”
과연 잘 될까. 중얼거림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타고 사라졌다. 레제토는 저무는 해를 따라 검푸른색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그의 옆모습을 보다가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곧 밤이 올 것이다.
레제토는 에오르제아가, 세상이 처한 사태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어쨌든 현장을 뛰어다니는 모험가이기에 탑과 마물, 신도화 현상에 대해서야 알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것만이 전부인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완전한 새벽 소속이 아니기에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나, 근래에 들어 특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험가의 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막연하게 드는 생각이 있더군.”
“……무엇인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뭐든 간에, 바라던 끝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거.”
뜻 모를 말이다. 레제토는 돌렸던 시선을 다시 그에게 주었다. 그 사이 어둠이 완연해져 눈빛과 등 뒤 모닥불의 은은한 빛에 얼굴의 윤곽만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표정을 하고 있지? 함께 움직일 적이면 항상 그를 등 뒤에 두거나, 자신이 그의 등 뒤에 있었기 때문에 낯을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래서 레제토는 항상, 영웅 스틱스 아라츠가 도대체 무거운 문제를 직면할 때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가를 궁금해했다. 애석하게도 그 좋은 미코테족의 눈에도 어떤 감정에서 온 표정인지 제대로 비치지 않았다.
“…그러니 준비해야겠지.”
무게감 적은 그의 목소리는 때때로 이렇게 음울해지곤 했다. 레제토는 그런 목소릴 들을 때마다 신기하게도 낯선 공기를 느꼈다. 상쾌함과는 거리가 먼 텁텁하고 쓴, 축축하고 차가운 공기…….
‘왜 사라질 것만 같지?’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불안인지 예감인지 모를 생각에 레제토는 반사적으로 귀 끝의 털까지 세웠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정면을 향해 있어 보지는 못한 것 같았다. 한참 스쳐 지나간 생각을 곱씹던 레제토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때마침 천막 하나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는 발걸음 소리가 났다. 넘버원이 오는 모양이었다.
“잠깐 주변을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레제토는 자리에서 일어나 넘버원에게 그의 옆자리를 넘겨주었다. 조금은 잔잔해진 모닥불에 낮에 패 놓은 마른 장작 하나를 던져넣곤 천막을 지나 어두운 길 쪽을 향해 걸었다.
역시, 이상한 사람들이다. 레제토는 생각의 끝을 그렇게 맺었다.
“……아저씨. 역시 이 캠핑 그냥 온 거 아니지? 쉬고 싶으면 사실 아저씨만 혼자 가도 되는 거잖아.”
날카로운 지적에 스틱스는 멋쩍다는 듯 혀 차는 소리만을 냈다.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넘버원의 표정도 낮의 그 기세등등해 보이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레제토는 왜 데리고 온 거야?”
“느낀 게 있었거든.”
스틱스는 잠시 눈을 감았다. 기억력은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을 어림잡아 헤아려도 몇 년이었다. 옛일을 되짚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은 필요했다. 평정심을 가진 채 말하기 위해서도.
“내 일을 하면서도, 이곳에서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단 말이지.”
“뭘 위한 시간?”
“이별을 위한 시간.”
스틱스는 자신의 목소리가 최대한 무미건조했기를 바랐다. 그는 채 다 못 헬 만큼, 국가를 위해 죽어간 이들을 알고 있다. 정부의 요원, 특수부대. 세간에서 온갖 이름으로 칭해지며 모르는 사이 폭력과 탄환에 죽어 나간 이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조용히 처리되고, 자신 또한 그럴 운명이라는 것까지도 알고 있다.
동시에 이 세계에 와서 대의를 위해 죽어간 이들 또한 알고 있다. 위리앙제는 여전히 문브뤼다를 추모한다. 산크레드는 여전히 민필리아의 이름 아래에 산다. 에스티니앙은 이젤의 뜻을 기억한다. 리세는 파파리모의 이름이 나오면 눈물을 감추는 법을 잊어버린다. 넘버원은 오르슈팡의 위령비의 눈을 여전히 닦아주고 있다. 어쩌면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와 돌이켜보면 그럴 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이별할 수 없었다. 지금껏 있어온 일들은 이별이 아니라 비극이다. 그래서 이번에만은 그것이 없었으면 싶었다. 이 끝에 놓인 것이 제 죽음이든, 그토록 바라 마지않은 제 귀향이든 간에.
“유언이라도 남겨 두려고?”
“……유언보다는 덜 무겁고, 더 유용한 걸 남겨야지.”
그렇게 말하며 스틱스는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반짝이지 않는, 묵색의 수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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