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저녁 스파클
커미션
78-1번 버스 임시 운행 중단.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삭막한 텍스트가 시야 가득 들어찼다. 집까지 가는 노선은 이것뿐인데. B는 망연하게 중얼거렸다. 정류장 벽면에 빼곡히 붙은 안내문이 모든 버스의 운행 중단을 알리고 있었다. 저녁 무렵 예정된 불꽃놀이 탓에 인근의 교통을 전부 통제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조금만 더 빨리 끝내고 나올걸...
물론 해가 진 후에나 시작될 불꽃놀이를 위해 하교 직후부터 교통 통제가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모처럼 늦은 시간까지 도서관에서 자습하기로 마음먹은 B의 선택이 타이밍 나쁘게 행사 날짜와 겹쳤을 뿐. 길게 한숨을 내쉰 B는 하는 수 없이 조금 떨어진 지하철역으로 걸음을 돌렸다. 버스를 타는 것보다는 오래 걸리는 길이었지만 오늘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피곤한 눈을 꾹 누르며 지하철에 올라탄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어라, B?
번쩍 고개를 든 B의 눈에 비친 것은 다름 아닌 A의 모습이었다. 이제 막 부활동을 마치고 오는 길인지 아직 물기가 남은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아직 학교에 남아있었던 거야? 수업은 한참 전에 끝났을 텐데.
모처럼 진도가 잘 풀려서 자습이나 좀 하고 갈까 했거든. 그런데 하필 버스 운행이 줄줄이 중단되는 바람에...
뒷말을 생략한 B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각도에 따라 푸른색으로도 보이는 머리카락이 창백한 지하철 불빛 아래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무심코 시선을 빼앗겼던 A는 한발 늦게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나저나 B도 이쪽으로 하교하는구나. 평소에는 끝나는 시간이 다르니까 몰랐어.
응. 몇 정거장 뒤에 환승이지만.
그 순간 멈춰 선 지하철 안으로 수십명의 사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제 막 퇴근 시간을 맞은 지하철이 만원 상태를 이루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였다. 인파에 휩쓸려 안쪽으로 휩쓸려 들어갈 뻔한 B는 늦지 않게 팔을 뻗은 A 덕에 겨우 벽 쪽으로 몸을 빼낼 수 있었다. 깜짝 놀란 심장이 쿵쾅거렸다.
으아, 압사할 뻔했네.
너스레를 떠는 목소리에 괜한 웃음이 나왔다. 키득거리며 웃던 B는 문득 코끝을 스치는 향기에 멈칫 몸을 굳혔다. 약간의 물기를 머금은 과일 향기는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자 점점 그 존재를 불려만 갔다. 데오워터 향일까... 생각보다 좋은 냄새가 나네. 어디에서 산 제품인지 물어봐도 될까? 멍해진 머릿속으로 필터를 거치지 않은 일차원적 생각이 쏟아졌다. 한편 어지러운 B의 머릿속을 알 턱이 없는 A는 사방에서 밀려드는 사람들을 버티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나마 훌쩍 큰 키와 체격으로 견디고 있기에 망정이지, B가 혼자 있었다면 꼼짝없이 사람들 사이에 짓눌렸을지도 몰랐다.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내린 A는 새빨개진 얼굴의 B와 눈을 마주치고 움찔했다. 사람들에게 밀려나지 않으려 애쓰는 사이 조금씩 가까워진 거리는 마침내 포옹이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좁혀진 상태였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A가 조금이나마 자세를 바꿔보려 애썼지만, 이미 포화 상태가 된 전철 안에서는 무용한 일이었다.
B. 불편하면 말해줘.
...불편하지 않아.
애매한 침묵이 한참 이어졌다. 마침내 B의 홍조가 A의 뺨으로 옮겨 오기 시작할 무렵, 예고 없이 지하를 빠져나온 전철 안으로 진한 달빛이 스며들었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이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칠흑처럼 새카만 밤하늘 위로 때를 맞춰 날아오른 폭죽이 색색의 발자국을 아로새겼다.
불꽃놀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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