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 케이크 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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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도쿄 시내는 평소보다 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는데. A가 질린 낯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연말 시즌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B의 안색도 그리 좋지는 못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캐롤, 수십 미터 높이의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연말의 달콤한 분위기를 그대로 녹여낸 거리는 어느 때보다 반짝였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에게는 풍경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A, 나 대신 케이크 좀 픽업해 줘. 케이크는 잘 먹지도 않으면서 무슨 일로? ...신작 타이틀이 제과점이랑 콜라보 한다길래.
갑작스러운 케이크 픽업 레이드는 그렇게 막을 올렸다. 파티원은 A, 그리고 B. 때마침 동급생 사이에서 화제가 되던 마롱 케이크가 특전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B는 곧장 A를 따라나서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진짜 목적은 케이크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이야기는 B만이 아는 비밀로 남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간과한 사실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는 C가 즐겨 하던 게임이 수십만의 골수팬을 보유한 인기 시리즈라는 것, 둘째는 이벤트 기간이 하필 연말연시에 겹쳤다는 것. 별 생각 없이 방과 후 제과점을 향하려던 둘은 쉼 없이 밀려오는 인파에 갇혀 장장 한 시간을 헤매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C가 예약해 두지 않았으면 폐점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을지도... B가 중얼거린 말에 A가 섬뜩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거든.
길게 줄이 늘어선 외부와 달리 제과점 내부는 비교적 한산했다. 따뜻한 공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A는 곧장 카운터로 향했다. 예약해 둔 케이크를 찾으려고 하는데요... 이름은 C로 되어 있을 거예요. 네, 마롱 케이크... 그 옆에서 별 생각 없이 케이크 진열장을 바라보던 B는 마롱 케이크가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 놓인 안내판을 보고 얼어붙고 말았다. 단정한 글씨로 쓰인 안내문은 틀림없는 품절을 알리고 있었다. 내 마롱 케이크가...
때마침 케이크 박스를 건네받은 A가 B를 따라 진열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라. 마롱 케이크는 품절이야?
응... 이렇게 금방 품절될 줄 몰랐는데.
하지만 만약 재고가 있었더라도 줄이 저렇게 길다면 못 샀을 것 같아. 울상을 지은 B가 아쉬운 대로 다른 케이크를 고르려던 찰나, A가 반대편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너무 아쉬워하지 말고. 이건 선물. 장난기 어린 미소를 보고 의아해하기도 잠시, 박스에 적힌 글자를 본 B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설마 마롱 케이크야?
정답! 직원분께 말씀드려서 따로 받았답니다. 답을 맞췄으니 이건 선물로 줄게.
하지만 이건 C의 케이크...
뭐, C는 특전에만 관심이 있고. 원래도 케이크는 A씨 몫이었다는 사실.
그제야 눈에 띄게 상기된 얼굴로 케이크 박스를 받아 든 B가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 A. 별 말씀을.
집으로 가는 버스는 서로 다른 노선이었다.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만 같은 바람을 느끼며 목도리를 끌어올린 B가 가볍게 기침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A가 케이크 박스를 놓고 다가와 반쯤 풀어진 목도리를 넘겨받았다. 대신 매줘도 괜찮아? 응. 목도리를 둘러주는 손길이 다정했다. B는 따끈해진 얼굴을 느끼며 필사적으로 도로를 응시했다. 흰색, 검은색, 빨간색... 각양각색의 차들이 저마다 갈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B는 얼굴이 금방 붉어지는 편이지?
...응?!
예상을 벗어난 반응에 여전히 목도리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A가 고개를 들었다. 새빨개진 얼굴의 B가 뒤늦게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어... 내 말은 피부가 하얀 편이라 추위에 잘 붉어진다는 뜻이었는데,
그때 때마침 버스가 도착했다. 여전히 발그레한 얼굴빛으로 케이크 박스를 움켜쥔 B가 곧장 고개를 돌렸다.
오, 오늘 재미있었어. 내일 보자.
그 말을 끝으로 버스 문이 닫혔다. A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내려놓았던 다른 쪽의 케이크 박스를 들어 올렸다. 미묘하게 다른 무게중심. 딱 케이크 한조각, B에게 넘겨준 그 무게가 제법 신경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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