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출몰 주의보

커미션

살짝 열린 창문 틈새로 차가운 북풍이 스며든다. B는 불안한 얼굴로 창밖을 응시했다. 점심이 지날 무렵부터 흐리던 하늘은 이미 새카만 먹구름으로 물든 채였다. 우산 안 가져왔는데... 작은 중얼거림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오늘따라 길기만 한 종례가 야속했다.

가까스로 중앙 현관을 나섰을 때는 이미 차가운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울적한 시선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아도 날씨는 변하지 않는다. 오늘 비 언제까지 온대? 몰라, 서너 시간은 내린다던데. 결국 방도가 없이 메신저백을 머리 위로 뒤집어 올린 B는 눈을 질끈 감고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배구 강호라는 이유로 널찍하기만 한 학교 부지가 괜히 원망스러웠다. 정작 나 같은 일반 학생들은 체육관을 쓸 기회도 얼마 없는데! 그렇게 걷기를 서너 걸음, B의 시야에 낯선 검은색이 어른거렸다. 공교롭게도 방금까지 원망하고 있던 체육관 앞이었다.

누군가 버린 비닐봉지라 생각했던 검은 덩어리는 강풍에도 옴싹달싹 하지 않았다. 옷깃이 젖는 것도 잊은 채 그것을 바라보던 B는 기어이 들려오는 가냘픈 울음소리에 곧장 화단 앞으로 달려갔다. 평소였다면 눈에 띄지도 않았을 검은색은 비에 젖어 흐려진 세상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정말 고양이네... 

물리기라도 할까 선뜻 손을 내밀지는 못했지만, 작은 고양이는 무언가를 물 기력도 없다는 듯 품에 고개를 묻고 바들바들 떨었다. 곧장 고양이를 안아 올리려던 B는 순간 멈칫했다. 고양이가 사람 손을 탔다가는 본래 무리에게 외면당한다는 이야기가 떠오른 탓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빗속에 내버려 둔다고 해서 무리가 당장 데리러 올 것 같지도 않은데. 결국 B가 선택한 방법은 고양이에게 입고 있던 가디건을 덮어주는 것이었다. 밤하늘처럼 새카만 털 위로 밝은 색 가디건을 덮자 먼 거리에서도 제법 눈에 띌 법한 모습이 되었다. 빗소리 사이로 고양이의 조금 진정된 숨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무리로 잘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말갛게 미소지은 B는 직후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에 몸을 떨었다. 그나마 두께가 있던 가디건을 벗자 얇은 교복 셔츠가 순식간에 젖어든 모양이었다. 황급히 내려놓았던 메신저백을 다시 머리 위로 올려 보았지만, 이미 내용물까지 전부 젖어버린 가방은 가림막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울상을 짓던 B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진 것은 그때였다. 먹구름이 더 짙어졌나 싶어 울적해지기도 잠시, 머리 위로 줄기차게 떨어지던 빗방울이 그쳤다는 것을 깨달은 B가 시선을 위로 올렸다. ...조금 많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 얼굴은 낯설었지만, 유니폼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어, 배구부... 입 밖으로 새어나온 단어를 들었는지 우산을 든 남학생이 샐쭉 웃었다. 음, 맞아. 오늘은 러닝이 없어서 좀 일찍 끝났는데... 설마 체육관 앞에 누가 있을 줄은 몰랐네.

그것도 이 날씨에. 쭉 뻗은 손가락을 따라 저절로 하늘을 올려다 본 B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메신저백을 내려놓았다. 흠뻑 젖은 머리카락에서 쉴새없이 물이 떨어졌다. 잠깐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학생이 B의 손에 우산 손잡이를 넘겨주었다. 우산을 받아들기 전까지는 그 높이를 체감하지 못했지만 막상 우산을 씌워주는 입장이 되니 팔이 빠질 것만 같았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굽힌 모습을 보자 B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오케이, 찾았다!

그렇게 말한 남학생의 손에 들린 물건은 언뜻 보기에도 새것 같은 수건과 우산이었다. B가 들고 있던 우산을 다시 넘겨받은 그는 대신 흰 수건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운동부니까 말이야, 수건 정도는 늘 가지고 다니거든. 심지어 오늘 쓰려고 샀다가 날씨 때문에 못 쓰게 된 수건이라 깨끗해. 완전 신품.

내가 써도 괜찮아?

수건 정도야 얼마든지. 머리카락이 길면 말리는 시간도 한참이지? 괜히 집까지 가다 감기라도 걸리면 마음이 안 좋을 것 같거든.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허리를 굽힌 남학생은 다른 한쪽의 우산을 고양이에게 씌워주었다. 우산 밖으로 삐져나간 어깨가 조금씩 젖기 시작했음에도 신경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목에 둘러진 수건을 만지작거리던 B는 가방에 적힌 이름을 천천히 따라 읽었다. A. 

눅눅한 구름 사이로 햇빛 한조각이 굴러떨어졌다. 첫만남이었다.

카테고리
#기타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