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

[논컾] 꺼진 불도 다시 보자

크리스마스 에피소드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크리스마스이브의 평화로운 오후. 해결사 사무실엔 한 손님이 오랜만에 방문했다.

카부키쵸의 소방관 타츠미.

그는 소파 위에 앉아 맞은편의 신파치에게 열변을 토로하고 있었다.

 

신파치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대꾸하는 동안, 갑작스레 방문한 손님 탓에 미처 끄지 못한 뉴스에서는 아나운서가 한가지 사건을 알리고 있었다.

 

「최근 잇단 화재 사건으로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화재 사건의 피해자들은 모두 성냥이 터졌다는 공통된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 사건을 테러로 간주하고, 군부는 이것을 심중히 여겨 각 기관에 장교를 파견하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아나운서의 말에 신파치와 타츠미의 시선이 티비로 향하고, 신파치가 책상 의자에 앉아있는 긴토키에게 물었다.

 

“군부요? 군인이 온다는 말이에요? 장교가?”

긴토키는 뉴스를 듣고도 별로 놀라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등받이에 기댄 몸에 힘을 더 빼며 답했다.

“원래 전쟁 때는 군부가 권력을 장악해. 이번엔 그나마 소요 공주가 현명해서 이 정도로 끝난 거야. 군부도 애가 탔나 본데? 애들 불장난에 테러네 뭐네 하면서 얼씨구야 파견 나오는 거 보면.”

 

긴토키의 말에 타츠미는 멈추었던 말을 다시 버럭 지르며 소리쳤다.

“애들 불장난? 테러 맞다니까? 방화범이라고!”

 

신파치는 티비를 유심히 보다가 긴토키의 말을 듣고 물었다.

“하지만 전쟁은 끝났잖아요. 건물들도 대부분 재건되었는데….”

 

그리고…. 카부키쵸에서 싸울 땐 그쪽들은 다 도망가고 없었으면서.

신파치는 마지막 말을 물 흘리듯 중얼거렸다. 양이 전쟁 때도, 그때도 묵묵히 제 일을 했던 긴토키의 앞에서 차마 자신이 불만을 토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긴토키는 신파치를 향해 히죽 웃어주고는 답했다.

 

“권력이란 그런 거야. 손에 없는 것에 눈이 멀어버리지. 잡지 못한 것을 잡으려고 이미 잡은 것까지 놓아버리는 짓, 그런 짓을 하게 만드는 것이지. 그건 그렇고, 성냥 테러가 뭐냐. 길가는 사람 콧구멍에 찔러놓고 불이라도 붙였대?”

“그러게요. 차라리 폭죽 테러가 더 그럴싸하겠어요.”

 

느긋한 분위기를 풍기며 대화하는 긴토키와 신파치 사이에서, 타츠미는 분노를 담아 더 큰 소리로 외쳤다.

“글쎄. 테러 맞다고! 방화사건이라니까!”

 

귀를 찌르는 듯한 울림통에 긴토키와 신파치는 인상을 쓰며 손바닥으로 귀를 가렸다. 뒤늦은 방어 탓에 이명이 남는 것 같았다. 긴토키는 버럭 소리 지르며 대꾸했다.

 

“그걸 누가 믿어! 뭐? 성냥이 터져? 그게 터질만한 크기냐? 갑 안에 폭탄이 든 것도 아니고, 고작 한 개비가 그렇게 터지는 게 말이 돼? 단체로 미쳤나 보지! 거리만 나가면 저쪽은 징글벨에, 이쪽은 산타 텔미에. 텔미텔미 거리니까 단체로 돈 거라고. 밖에만 나가면 조명이 아주 번쩍번쩍거리는데, 눈이 돌 만도 하지! 난 저렇게 번쩍거리는 거 질색이야. 저렇게 정신 사나운 데서 돌아다녀 봐라. 성냥이 안 터지고 배겨?”

“그쪽이 안 믿으면 이게 없는 일이 돼? 내가 출동 나간 건수가 몇 갠데! 진짜 불도 났다니까? 어차피 크리스마스에 할 일 없잖아! 속는 셈 치고 도와주던가!”

“뭘 도와줘! 없는 범인을 어디서 찾아! 차라리 성냥팔이 소녀를 찾으라고 해라! 겨울 되면 화재 사건 많아지는 게 어디 한두 해야?”

 

타츠미와 긴토키가 서로 옥신각신 싸우고 있을 때, 밖에 나갔던 카구라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신나게 놀았는지 온몸에 눈송이가 붙어 사다하루만큼이나 하얗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손엔 알록달록하게 장식된 빨간 양초가 들려있었다.

“긴쨩 나왔어! 이거 불붙여달라, 해!”

 

신파치는 카구라에게 눈을 털고 들어오라고 말하며 수건을 건네주고 양초를 받았다. 어디서 난 것인가 물어보니, 친구에게 선물 받았다고 카구라가 답했다. 다소 투박한 솜씨를 보니 친구가 학교에서 만든 듯했다.

추워 빨개진 것인지, 설렘의 흥분에 빨개진 것인지, 얼굴에 홍조가 가득한 카구라가 신파치를 재촉했다. 책상 의자에서 말다툼하던 긴토키는 어느새 타츠미에게 다가가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었다. 신파치는 맞은 편에 서 있는 그들을 한심한 눈빛으로 일별한 후 품에서 성냥을 꺼냈다.

 

“웬 성냥이냐, 해?”

“길에서 받았어. 성냥을 나눠주더라고.”

신파치는 카구라의 질문에 답하며 성냥갑에서 성냥을 꺼내 들었다. 한창 서로에게 열변을 토하던 긴토키와 타츠미는 성냥이라는 말에 잠시 말을 멈추고 신파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신파치가 불을 켜는 순간, 폭음과 함께 눈앞에 섬광이 터졌다.

 

-쾅

 

* * *

 

“이 나쁜 테러범 자식아-!”

보름달 같은 탄 머리를 한 긴토키가 소리쳤다. 맞은편에는 산타복을 입은 한 여자가 애써 웃음 지으며 앉아있었다. 신파치에게 성냥을 나눠주었던 사람이다. 긴토키는 야쿠자의 말을 흉내 내며 자신의 머리털을 들이밀고 턱을 들이밀었다.

 

“이거 봐봐, 내 찰랑찰랑한 스트레이트 머리가 그쪽 때문에 이렇게 다 말려버렸다고. 보이냐? 아앙-? 어떻게 보상할 거야? 스트레이트 파마를 시켜 주라고. 아앙-?”

긴토키의 옆에 서 있던 카구라는 긴토키를 따라 하며 말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반쯤 녹은 양초를 들이밀었다.

“그래, 이 자식아-! 너 때문에 내 골드 바 양초가 반이나 사라졌다고. 보이냐? 아앙-? 산타 VIP 코스 요리로 보상해라! 아니다. 뷔페가 더 좋다! 아앙-?”

 

신파치는 두 사람에게 사기 치지 말라고 소리친 후 여자에게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

“당신이 준 성냥이 터져서 우리가 피해를 보았어요. 뉴스에 나온 것도 당신의 짓이죠? 군에서 찾고 있는 건 아세요? 왜 이런 일을 하시는 거죠?”

 

신파치의 옆에 앉아있던 타츠미도 한마디 거들었다.

“당신의 성냥으로 들어온 화재 사건이 한두 건이 아니야.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난 이대로 경찰에 넘기겠어.”

 

자신을 바라보는 네 쌍의 시선 앞에, 여자는 테이블에 머리를 쾅 박으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 성냥이 그렇게 터질 줄은 몰랐어요. 제가 능력이 없어서…. 다 테스트해 보면서 만든 건데…. 믿어주세요.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여자의 간절함에 해결사들과 타츠미는 잠자코 그의 말을 경청했다.

“제 이름은 김지우입니다.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과격양이로 살고 있었어요. 전쟁이 끝난 뒤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나마 가진 장기라고는 화약을 다루는 거라, 성냥을 만들어 팔면 어떨까 하고 시작했던 일입니다. 테러라니, 그 일은 그만두었어요.”

 

쉴 새 없이 말을 하던 그는 잠시 숨을 몰아쉬고 다소 망설이다 다시 말을 이었다.

“좋아하는 언니가 있습니다. 양이 지사라는 위험한 사람이었던 전 언니에게 고백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떳떳한 사람이 되면 그때 고백하자고….”

 

지우는 말을 하며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 듯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것을 지켜보던 카구라와 신파치는 감정이 동했는지 일렁이는 눈을 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랬는데…. 역시 재능이 부족한가 봅니다. 믿어주세요. 일부러 불을 내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지우의 말을 믿은 타츠미는 곤란하다는 듯 뒷머리를 거칠게 털었다. 경찰에 보내는 것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그때, 문 쪽에서 타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다면 우리가 도와드리면 됩니다. 성냥이 안 터지면 되는 것 아닙니까?”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타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타마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 분석과 데이터로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힘을 합쳐서 성냥을 완성해 보죠.”

 

타마의 등장에 당황한 사람들 가운데, 신파치가 먼저 타마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떻게 오신 거예요?”

“위에서 폭발음이 들리기에 오토세 님께서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부서진 것은 월세와 함께 받아내시겠다고…….”

 

허억.

해결사들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소리가 나고, 타마는 내부를 좌에서 우로 훑어보았다. 부서진 것은 없었지만 천장의 군데군데가 타서 그을려있었다.

타마는 그것을 유심히 쳐다보다 해결사들로 시선을 돌렸다. 딴청을 피우며 헛기침을 하는 그들을 가느다란 눈으로 응시한 타마는 말했다.

 

“지우 님을 도와주신다면 천장의 파손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뭘 도와주면 될까? 처음부터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래, 그래! 맡겨달라, 해!”

 

소방관 일을 쉴 수 없었던 타츠미는 돌아가고, 대신 의욕이 부쩍 늘어난 긴토키와 카구라의 주도로 지우의 성냥 고치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성냥을 분석하는 일이었다. 성냥갑의 모든 성냥이 터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타마가 먼저 성냥의 성분을 분석하고 남은 사람들이 일일이 성냥을 켜보아야 했다.

긴토키는 초록 불로 켜지는 성냥을 입으로 불어 끄며 못마땅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냥 남들이 만드는 대로 만들면 안 되냐? 굳이 성냥불에 색을 넣을 필요가 있어?”

 

지우는 그 질문에 난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가 켠 성냥도 터지지 않고 무사히 넘어갔다.

“하하…. 제 성냥에 특별한 게 있어야 팔리죠. 이거 덕분에 얼마나 잘 팔렸는데요.”

 

카구라도 지우의 말에 한마디 보태며 성냥을 켰다. 성냥의 노란 머리를 사포에 마찰시키니 노란 불이 피어났다.

“난 알록달록한 게 맘에 든다, 해. 그중에서 빨간색이 제일 좋다, 해!”

 

신파치는 카구라의 말을 듣고는 딴지를 걸며 타마에게 성냥을 받았다.

“불은 원래 빨간색이야, 카구라.”

 

그리고 신파치는 성냥의 불을 켰다. 앞선 사람들이 전부 폭발하지 않아 경계심이 풀어져 있었다.

그때, 신파치의 앞에서 크지 않은 폭발음이 들렸고, 신파치의 안경이 새카만 재로 선글라스가 되었다.

 

“으핳핳핳핳핳핳”

긴토키가 신파치의 얼굴을 가리키며 웃었고, 카구라는 신파치의 안경다리를 잡고 뺏으려 당겼다.

“이 자식! 너만 좋자고 혼자 안전 고글을 쓰고 있었냐! 나도 달라, 해! 이거 내놔! 나도 고글 쓸 거다, 해!”

“고글이라니! 안경이잖아! 1기 1화 때부터 쓰고 있었던 내 안경이거든?”

 

해결사들이 소란을 일으키고 타츠미와 지우가 한심한 눈빛으로 일별하곤 다시 조심스레 성냥 불을 켜는 동안, 타마는 분석이 끝났다며 사람들을 불렀다.

 

“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지우 님의 자료와 저의 데이터베이스의 자료를 통해 성냥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지금 당장 만들겠다는 타마의 태도에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라고 물으며 바라봤다. 타마는 테이블 위에 양손을 짚고 허리를 숙였다. 테이블을 내려다보는 타마는 입을 크게 벌리고 기괴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우워어거게어워우어어….”

지우가 그 모습을 창백한 안색으로 바라보았다. 곧 타마의 입에서 성냥 한 개비가 툭 떨어졌다. 샛노란 기름으로 질척하게 젖어있었다.

 

“후…. 완성입니다.”

“이걸 어떻게 쓰냐!”

 

입을 벌리고 아무런 말도 못 하던 긴토키가 타마의 말에 버럭 소리 질렀다. 신파치는 성냥을 난감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축축하게 젖었는데요.”

“기름이니 괜찮습니다.”

지우는 찝찝한 것을 만지는 것처럼 검지와 엄지로 성냥의 끝을 살짝 집어 들어 올렸다.

 

“이건 못 써요. 불 켜는 순간 손가락까지 타겠어요.”

“그렇군요. 그 부분을 간과했습니다.”

“그걸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아?”

“저는 손가락이 안 타니까요.”

 

아….;;

타마의 뻔뻔한 대답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고 각자의 생각에 빠졌다. 곧 지우는 성냥을 내려놓고 타마에게 말했다.

 

“조합식만 알려주신다면 제가 만들어보겠습니다. 어떻게 만드셨어요?”

“아. 그러면 되겠군요.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지난주에 주운 긴토키 님의 스쿠터 부품을 준비합니다.”

“뭐?”

“저거 브레이크 부품 아니에요? 저게 왜 성냥에 들어가?”

 

지우가 부품을 보며 물었고, 신파치가 그걸 어떻게 아는지 물었다. 양이 시절에 고장 내본 적 있으니까. 라고 지우는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 신파치가 경악할 때, 더 경악한 얼굴의 긴토키가 그게 중요하냐고 말했다.

 

“내가 고장 난 스쿠터를 타고 있었다는 거 아냐! 뭐? 브레이크?”

“지금 그게 중요해요? 성냥 레시피가 중요하죠!”

“그렇습니다. 다음으로는 신파치 님이 2주 전에 두고 가신 연애편지가 필요합니다.”

“으아악!”

 

신파치가 괴성을 지르며 타마의 말을 막으려 했다. 역부족이었지만. 카구라와 긴토키는 놀릴 거리를 잡았다는 듯 눈꼬리를 휘며 바라보았고, 타마는 계속 말을 이었다.

 

“신파치 님께 돌려드리려고 했습니다만, 신파치 님께서 절대로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하시며 폐기처분을 원하셔서 제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호오, 연애편지? 누구랑?”

“이야, 신파치! 겨울 같던 신파치의 연애 세상에 드디어 봄바람이 부냐, 해?”

“연애편지 아니야! 그냥 팬심이라고!”

“엑. 츠우 씨?”

 

긴토키와 카구라는 팍 식은 얼굴로 흥미가 사라졌다며 관심을 거두었다. 오타쿠는 크리스마스에도 오타쿠구나~ 라고 덧붙이며.

분위기가 진정된 것을 확인한 타마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 뒤로 나온 재료들도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카구라가 빼돌린 긴토키의 비상금. 겐가이가 아껴둔 계란밥 간장. 오토세가 깨트린 술병 조각 등이 들어갔다.

 

난처한 기분을 숨기며 잠자코 듣고 있던 지우는 타마의 제조법 시작에 항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그것들을 전부 먹고….”

“잠시만, 잠시만, 잠시만!”

지우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며 타마를 불러세웠다. 황당함 속에는 어느 정도의 허탈함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게 무슨 제조법이에요. 그리고 재료는 왜 그렇게 구체적이고요.”

“제 몸속에는 쓰레기를 분해해 재료로 이용하는 기능이 탑재되어있습니다. 유용한 재료들은 다 저장해두고 있으므로, 그것들을 기반으로 성냥을 만들었습니다. 재료가 구체적인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귀중한 브레이크 부품이 쓰레기라고?”

“제작은요?”

“제 안에서 연금술로 만들어집니다.”

 

엑. 갑자기 연금술?

뜬금없는 연금술 타령에 사람들은 말을 멈추었다. 타마는 몸을 고치면서 겐가이 님이 기능을 업그레이드시켜줬다고 말했다.

 

“재료를 삼키면 제 프로그램이 등가교환으로 연성을 합니다.”

“전 연금술을 못 하잖아요.”

“그것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지우 님을 삼켰다가 뱉으면 지우 님도 연성하실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한쪽 팔과 한 다리를 오토메일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아니. 제 멀쩡한 팔다리를 왜?!”

 

지우의 말에 긴토키는 진지하게 답변했다.

“그것이 진리에 도달하는 대가니까.”

“등가교환이죠.”

“안 해!”

 

해결사들의 반응에 지우는 질색하며 자신은 하지 않겠다는 것을 강조했다. 긴토키와 카구라가 ‘포기하지마, 에드워드. 동생의 몸을 찾아야지!’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했지만, 그는 끝끝내 거부했고, 성냥 제조의 목표는 다시 까마득히 멀어졌다.

 

그렇게 잠시 침체기가 왔을 때, 누군가가 해결사 사무실에 찾아왔다. 히지카타와 오키타였다. 긴토키는 의외의 손님에 반갑지 않음을 숨기지 않으며 물었다.

 

“세금도둑들이 여기는 웬일이야? 무고한 시민 삥뜯으러 왔냐?”

“공무원 모욕죄로 네 주둥아리 뜯으러 왔다.”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시비를 받아치며 지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진선조가 이곳에 온 이유는 오키타가 말했다.

“성냥 테러 용의자를 해결사가 데리고 있다는 증언을 받아서요. 잡아가러 왔는데요. 얌전히 동행하시죠?”

 

히지카타와 오키타는 해결사 사무실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사이좋게 성냥을 들고 있는 사람들과 새카만 꼴인 신파치. 누가 봐도 성냥을 제조 중인 현장이라, 두 사람은 긴토키의 팔부터 수갑을 채웠다.

 

“테러 공범으로 체포한다. 얌전히 투항해라.”

“야! 아니야! 경찰보다 빠르게 테러범 잡아 온 용감한 시민한테 무슨 짓이야!”

 

* * *

 

신파치와 타마가 설명한 사정을 들은 진선조 들은 성냥의 제조를 감시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해결사들의 마구잡이식 행동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들은 결국 성냥 제조에 함께 달려들어 도와주기 시작했다.

 

“화약은 저도 잘 다루죠. 여기서 조금만 더 넣으면 히지카타 씨의 바지까지 태울 수 있습니다.”

“너부터 테러 모의로 잡아가 주랴?”

“그럼 조금만 더 넣을까? 이참에 저 V자 앞머리까지 날려버리면 좋을 것 같은데.”

“둘 다 사이좋게 감옥까지 날아가라. 미친놈들.”

 

뱃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해결사에는 성냥을 만드는 것인지 폭탄을 만드는 것인지 모를 연구소가 차려졌다. 실질적으로 지우를 도와주는 것은 타마뿐이었다. 크게 도움이 되진 못했지만.

 

타마의 조합식을 최대한 해석해 만든 것도 결국 히지카타의 앞머리를 태우는 것으로 실패했다. 이쯤 되니 차라리 다른 사업을 하거나 취직을 알아보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포기하지 않고 성냥에 매달린 지우를 두고, 사람들은 둥글게 서서 자신의 의견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다.

 

“에레헴보더를 만들어서 팔자. 이거면 완전 대박 날 수 있을 것 같다.”

“에레헴보더? 긴쨩, 완전 그거다, 해!”

“뭔데 그게. 처음 듣는데.”

히지카타의 물음에 신파치가 진지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에레헴보더는, 성냥의 불타는 부분을 완전히 제거해서 사용해도 안전한 발명품이에요.”

“그냥 나뭇조각이잖아.”

“어, 그거 끝부분을 날카롭게 하면 구강을 청결하게 유지할 때 쓸 수 있겠는데요?”

“오, 오키타 군. 아이디어가 제법인데?”

“그거 그냥 이쑤시개잖아!”

 

6명의 머리를 맞대서 나온 의견은 도움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테러범인 신분을 세탁해서 새 신분으로 취업을 하자는 타마의 의견이 가장 가능성이 있었지만, 경찰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다며 혼만 났다.

그러다 곧 긴토키의 뒤편에서 지우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됐다! 성공했어요!!!”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지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우의 앞에는 알록달록한 성냥이 밝게 타고 있었다. 몇 초간 타던 성냥은 폭발하지 않고 픽 꺼졌다.

성공이었다. 폭발하지 않았고, 주변을 태우지도 않았다. 색은 예뻤다.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서 몇 시간을 씨름해도 되지 않았던 것이, 지우 혼자서 몇십 분 만에 해결했다.

 

히지카타는 바람 새는 웃음을 흘리며 까맣게 탄 성냥을 바라보았다. 조금 황당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다.

해결사들은 마냥 기뻐하며 축하해줬다. 믿고 있었다는 말을 하며 등을 두드리는 것이 조금 뻔뻔해 보였다.

 

멋진 성과를 이룬 지우는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해결사들과 진선조들, 그리고 타마를 식당으로 데려갔다. 타마와 야마자키의 맞선 자리 때 온 적 있었던, 적당히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돈도 별로 없을 녀석이, 상당히 고마움을 느낀 것 같았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앞에 놓인 차를 마시며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요리는 오랫동안 올 기미가 보이질 않았고, 어색한 자리에서 침묵을 지키다 보니 금방 긴토키와 히지카타의 사이에서 시비가 오고 갔다.

 

“세금도둑 나리들은 일하러 안 가시나? 이쪽 분께 얼마나 큰 도움이 됐다고 넙죽 따라와?”

“그러는 그쪽은 대단한 업적이라도 세운 것처럼 말한다? 결국, 만든 건 지우 씨 능력이잖냐.”

“아니지. 결국, 지우 씨가 성공할 수 있게 된 건, 다 여기 우리 타마가 도와준 덕분이라고. 그렇지, 응?”

“아니요, 저의 분석과 제조법은 지우 님께 도움이…….”

“그래, 그래! 큰 도움이 되었지?”

 

긴토키가 황급히 타마의 입을 막았다. 두 사람이 시끄럽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자. 열린 문밖으로 누군가가 지나가다 그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두 사람을 알아본 그는 긴토키를 불렀다.

 

“어? 긴상. 여기는 웬일이야?”

긴토키는 자신을 부르는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문밖에는 청소 카트를 끌고 가는 하세가와가 있었다.

 

“마다오? 왜 여기에 있냐?”

“여기서 일하고 있어. 직원 통로는 여기가 아니지만, 웬 진상이 난동을 부리고 있어서…. 그러니까 여기서 날 본 건 비밀이다?”

“진상? 그래서 요리가 늦는 건가.”

“군부에서 사람을 보낸다더니 여기서 회식을 하나 보더라고. 자기 이름이 뭔지 아냐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데. 그래서 나까지 이름을 다 외웠잖아. 이준식이라고.”

 

이준식.

그 이름을 들은 지우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는 것을 주변에 앉은 카구라와 신파치가 일별했다. 지우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화장실을 가는 지우의 발걸음은 어느 순간 틀어져서 다른 곳으로 향했다. 속력도 점점 빨라졌다. 지우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 숨에서 긴장감과 조금의 망설임과 분노가 느껴졌다. 멀리서 들리던 소란은 점점 가까워지며 소리가 커졌다. 벽 모서리 코너 뒤로 젊은 남자의 고함이 들렸다.

들은 적 있는 목소리다.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자신의 결심을 재고할 필요도 없었다.

지우는 떨리는 숨을 삼켜 멈추었다. 그리고 자신의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겉옷의 안주머니로.

 

술에 취한 준식은 직원들에게 삿대질하고 밀쳐대며 사장을 찾아댔다. 뒤늦게 사장이 허둥대며 뛰어오자, 준식은 숨을 고르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젠장. 라이터는 어디에 있는 거야. 이봐, 불 없어?”

준식은 지금 경계가 풀어져 있었다. 지금이 기회이다.

 

그때, 누군가가 그에게 바짝 다가섰다.

“불 여기 있습니다. 고객뉘임~!”

카구라가 준식의 코앞에서 성냥의 불을 켰다. 성냥은 곧바로 폭발음을 내며 터지고, 준식의 앞머리에 불을 붙였다.

 

“으아악! 아악!”

준식이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뜨거워 만지지도 못하고. 끄지도 못한 채 소리만 질렀다. 어떻게 해봐! 살려줘! 그때 신파치가 멀리서 달려오며 소리쳤다.

 

“불이야! 제가 도와드릴게요!”

신파치는 들고 달리던 양동이를 준식의 머리 위에 부었다. 역겨운 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 대걸레를 빨았던 물인 것 같았다.

 

“크억. 이게 무슨 냄새야! 이 새끼들, 내가 가만있을 것 같아?”

“죄송합니다, 고객님. 빠르게 대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엔 타마가 다가와 커다란 대걸레로 준식의 얼굴을 문질렀다. 위아래로 돌던 대걸레는 모터가 달린 듯 시계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준식의 욕설은 대걸레 속으로 사라졌다.

 

지우는 그 광경을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지켜보았다. 그때, 지우의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그만두고, 주머니에서 손 빼라. 칼은 이리 주고.”

 

긴토키였다. 어떻게 알았지? 지우가 놀라 뒤를 돌았을 때, 그의 뒤에 긴토키 말고도 진선조까지 있음을 깨달았다.

 

“계속하겠다면 체포하겠다. 포기한다면 넘어가지.”

히지카타는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진선조를 꺾고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지우는 절망했다. 손이 힘없이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떨어졌고, 그는 주저앉아 흐느꼈다.

 

* * *

 

*부부간의 가정 폭력, 가스라이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트리거에 주의하십시오.

 

 

준식을 살해하는 것을 실패한 지우는 해결사의 사무실에서 그의 사정을 고백했다.

 

지우는 그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이미 고백했다. 그리고 그 사람도 지우에게 마음이 있는 것을 알았다.

 

“서연 언니. 나 언니 좋아해요.”

자신의 고백을 받고 서연이 지었던 표정은 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이때껏 보았던 그의 모습 중에 가장 사랑스러웠다. 저 발갛게 달아오른 놀란 얼굴이 얼마나 달콤했던가.

 

하지만 그날 서연이 자신에게 준 답변은 거절이었다. 왜?

“내가 부족해서? 나, 언니를 위해서라면 취직도 할게. 번듯한 직장인이 되고, 언니에게 모자라지 않은 사람이 될게.”

 

서연에게 매달리는 지우는 매우 절박했다. 정말 그의 여자가 되고 싶었다. 서연이 있다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을 만큼.

서연은 지우의 양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넌 내 옆에 머물러 있을 인물이 아니야. 더 큰 뜻을 이뤄야지. 난 네가 나아가는 걸 바라보는 것이 제일 좋아.”

“언니.”

“오늘 말은 못 들은 거로 할게. 나한테 고백하지 마. 그리고 할 말이 있어.”

 

서연은 자신이 한 말을 무른 적이 없었다. 아마도 이 결정도 절대로 무르지 않겠지. 지우는 서연의 그런 강함을 사랑했다. 그래서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서연은 지우에게 말했다.

“나, 결혼해.”

지우는 자신의 속 어딘가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 고백 이후로 지우는 서연을 만나지 못했다. 서연은 이준식이라는 군 장교와 결혼했다. 고위 공무원과 결혼하다니 출세했다며 지인들은 축하해줬다.

결혼이 출세의 길인가? 서연이 행복을 느낀다면 축하할 일은 맞겠지. 하지만 그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본 지우의 느낌으로는 그러했다. 어딘가 잘못 돌아가는 것 같았다.

 

지우는 더욱 필사적으로 양이 지사의 길에 몰두했다. 서연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떠올리지 않으려 할수록 서연은 더욱 강하게 지우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런 지우는 자신을 가로막은 사회에게 응징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굴었다.

지우는 화약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서연의 결혼 이후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작년 크리스마스였다.

이준식은 가정폭력범이었다. 근거 없는 의처증을 앓고 있었고, 서연은 결혼 생활 동안 폭력에 노출되어 가스라이팅까지 겪어야 했다.

전쟁에 큰 활약을 하지 못한 군부는 강압적인 내부조정이 이루어졌고, 준식은 그 과정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그 화풀이를 전부 받아내야 했던 것은 서연이었다. 그리고 준식은 작년 크리스마스에 서연을 살해했다.

 

크리스마스였다.

준식은 그날도 무고한 서연을 말도 안 되는 근거로 트집을 잡으며 추궁했다. 서연은 기계적으로 잘못을 빌었다. 저 권위적인 작자가 허용하는 것은 한껏 자신을 낮추며 엎드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날 준식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서연의 머리채를 잡고 대문 밖으로 끌었다. 그는 서연을 맨발로 내쫓았다. 내 집에 네가 있을 자리는 없다.

 

서연은 옷조차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맨발로 눈 위를 걸었다. 그가 입은 것은 허름한 실내복이었다. 눈이 쏟아지는 이 산속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서연은 하염없이 걸었다. 억울함에, 서러움에, 자기혐오에 눈물이 흘렀다. 그럴수록 하염없이 빛나던 자신의 사랑이 떠올랐다.

지우야, 지우야.

 

서연은 멀리서 보이는 공중전화기를 발견했다. 그는 빨갛게 얼어붙은 발을 무겁게 끌며 전화 부스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전화번호를 눌렀다. 제발 바꾸지 않았기를 빌며.

 

“여보세요?”

그리운 목소리가 서연의 추위를 녹였다. 한순간에 잊히는 고통에 그는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소리에도 지우는 누군지 알아본 듯 다급히 서연을 불렀다.

 

“언니? 언니야? 언니!”

“지우야….”

서연의 볼 위로 다시금 눈물 줄기가 흘렀다. 얼어붙은 몸과 다르게 뜨거운 눈물은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

 

“보고 싶다. 너와 있으면 내가 멋진 사람이 되는 것 같았는데.”

“언니. 어디야? 내가 갈게.”

“있잖아, 네가 고백했던 날, 난 정말 폭죽이 터지는 줄 알았어. 파바바박 하고. 분명 본 것 같은데, 없더라.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받은 건가 했는데….”

“언니.”

“다음에 고백할 땐 정말 폭죽도 터뜨려주라. 알록달록한 거로. 눈도 다 녹일만한 거로….”

“강서연.”

“난 추운 게 싫더라.”

 

후으으.

서연의 힘없는 숨이 떨리면서 새어 나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지우의 부름은 짜게 젖어있었다. 서연의 말은 점점 끊기고, 느려졌다.

 

“난……. 잘못한 게, 없어……. 그렇지?”

“응, 언니. 언니는 멋지기만 한 사람이야.”

“......고마워.”

 

지우야. 잘 지내야 해.

지우가 서연을 찾아갔을 때, 서연은 전화 부스에서 얼어붙은 채로 잠들어있었다. 수화기를 꼭 붙들며.

 

그 후 지우는 복수를 계획했다. 전국에 자신이 만든 성냥을 만들어서 뿌렸다. 무작위로 터지는 성냥은 테러의 분위기를 일으켰고, 군부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지우는 준식의 파견지를 수소문했다. 준식이 둔영에서 나오고 지우가 준식을 찾는 데까지 1년이 걸렸다.

 

이야기를 마친 지우는 입을 다물었다. 지우의 사정을 들은 사람들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섣불리 말을 꺼낼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지우였다.

 

“저는 그 자식을 죽여야 합니다. 복수해야만 언니에게 속죄할 수 있어요.”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 카구라가 대답했다.

“그 자식을 죽이면 너는 어떻게 되냐, 해? 그건 언니가 원하는 게 아니다, 해. 잘 지내야 한다고 했는걸.”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복수가 무엇이 있죠? 언니의 죽음은 고작 사고 사건으로 종결됐고, 그 자식은 재판조차 가지 않았어요. 언니의 몸에 그렇게 멍 자국과 상처 자국이 있었는데!”

 

화가 나도, 억울해도, 같은 짓은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너무나도 이상적일 뿐인 말이었다. 그것을 모두가 알았다. 하지만 이곳 모두가 이상을 지키던 사람들이 아닌가. 정의를 포기하란 말은 할 수 없었다.

잠시 정적이 길어지고, 히지카타가 말했다.

 

“그런 놈이라면 한 가지만 죄를 짓진 않았겠지. 네 언니에게 저지른 죄를 벌할 수는 없더라도, 다른 것으로 벌을 줄 순 있을 거다. 내가 돕겠다.”

 

긴토키와 오키타는 같은 생각을 했는지 다른 말을 얹지 않았다. 신파치와 카구라, 타마는 돕겠다고 말했다.

 

꺼질 것 같았던 지우의 복수가 다시금 타올랐다.

 

* * *

 

“그래서 잠입을 시도하는 거라고요?”

“그렇지.”

“그럼 저는 왜 부르신 거예요?”

 

야마자키가 가장 앞서서 환풍구를 기며 물었다. 야마자키의 뒤를 긴토키, 카구라, 신파치, 지우, 히지카타, 오키타가 잇고 있었다. 야마자키의 질문에는 바로 뒤를 따르고 있던 긴토키가 대답했다.

 

“네가 군부의 뒤를 캐고 있었다면서. 그럼, 여기도 잘 알 거 아냐?”

“아니거든요! 제가 잠입한 곳은 다른 데라고요. 군부를 견제할만한 범죄증거를 찾아서 오라고 했거든요.”

“그래. 그게 이거 아냐.”

“아니거든요…. 이런 간부 말단 같은 녀석 말고, 더 위쪽을 찾고 있다고요.”

“원래 그런 건 머리가 아니라 꼬리부터 잡히게 되어있는 거야.”

“예 그건 그렇죠…. 우리도 꼬리부터 잡히게 생겼거든요?”

 

야마자키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발치를 바라보았다. 긴토키부터 오키타까지 멀쩡하게 옷을 입은 사람이 없었다. 야마자키는 파란 수트를 입은 긴토키에게 물었다.

 

“그 차림은 뭐에요? 그게 잠입하는 사람의 꼴이에요?”

“군인처럼 입고 온 건데? 캡틴 긴타마다.”

“그게 어딜 봐서 군대에요?”

“얘가 원래 군인이었어. 그래도 내가 신파치보다는 낫지 않냐? 쟤는 츠우친위대 옷을 입고 왔잖아.”

“저는 원래부터 오츠우 쨩의 마음을 지키는 한 명의 군인이에요. 그럼 카구라는요? 실내 잠입인데 왜 길리 수트를 입어?”

“시끄럽다, 해! 저 망할 치와와가 이게 에도의 군복이라고 했다고!”

 

카구라의 고함에 야마자키가 사색이 되어 카구라를 말렸다.

누가 잠입 중에 큰소리를 내요!

그리고 카구라의 목소리를 들은 오키타는 비웃듯 키득였다. 히지카타는 오키타의 웃음을 듣고는 한심하다는 투로 물었다.

 

“네 꼴도 만만치 않은데. 네가 남 비웃을 처지냐?”

“내 꼴이 어때서요.”

“진선조 제복 바지에, 츠우 친위대 외투에, 캡틴 긴타마 투구 쓰고 있잖냐.”

“망할 차이나가 열 받아서 제 옷을 찢어버린 걸 어떡합니까? 그러는 히지카타 씨도, 왜 제복을 그냥 입고 옵니까? 진선조에서 군부 턴다는 걸 방송할 일 있어요?”

“네 녀석들 놀음에 나까지 놀아줘야겠냐? 그리고 신분이 드러날 만한 데는 잘 가려 뒀으니 괜찮다.”

“아, 마요네즈 스티커 붙여둔 거요?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합니까?”

“......”

 

야마자키는 눈앞이 깜깜했다. 환풍구 속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저 감당 불가능한 꼬리 6개를 달고 무사히 정보를 찾아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렇다.

야마자키는 알고 있었다. 지금 말없이 묵묵히 따라오는 지우라는 여성도 만만치 않은 옷을 입고 온 것을.

티비에서 본 적 있는 것 같다. 저건 X양의 후예다.

 

혹여 저들 때문에 들키게 된다면, 저 꼬리들은 다 자르고 혼자 튀리라. 야마자키는 다짐했다.

 

그렇게 환풍구를 지나 그들은 준식의 자리에 도착했다. 야마자키는 능숙하게 준식의 컴퓨터를 해킹하고, 남은 사람들은 서랍과 책장을 뒤졌다. 금고나 장부를 찾는 것이다.

증거는 금방 나왔다. 파견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그 짧은 기간 동안 상당한 뇌물을 받아먹었다. 멍청한 녀석답게 금고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다른 정보까지 발견했다. 컴퓨터에 깔린 메신저 앱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 자식, 재혼했나 본데?”

대화창을 건성으로 내리며 읽던 긴토키가 말했다. 그 말에 지우가 되물었다.

“네?”

“몰랐어? 집에 누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그 자식 소식은 건너 건너라도 계속 듣고 있었는데. 결혼했으면 제가 모를 리가 없어요.”

“근데 대화 보면 집에 누굴 거두어 키우고 있다고 계속….”

 

준식의 말을 소리 내 읽던 긴토키는 말을 멈추었다. 준식의 말에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긴토키의 말을 들은 사람들도 비슷한 것을 느꼈다. 신파치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집에 누가 갇혀있는 것 같아요.”

 

증거를 찾은 히지카타는 진선조 대원들에게 출동할 것을 무전으로 명령했다. 준식의 뇌물과 공금횡령 장부는 윗선들과도 연결되어있기에 야마자키의 임무도 성공한 셈이었다. 해결사들과 지우는 바로 준식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준식을 미행하던 타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긴토키 님, 증거는 찾으셨습니까? 이준식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증거는 진선조에게 넘겼다. 그리고 지금 그 자식의 집으로 가고 있어.”

“이준식도 집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런.

타마의 무전을 들은 긴토키와 카구라는 속력을 높였다. 준식이 도착하기 전에 그를 구해야 했다. 긴토키의 뒤에 탄 지우는 주먹에 힘을 주었다.

이미 늦은 거면 어떡하지. 서연 같은 피해자를 또 만들 수는 없었다.

 

* * *

 

준식은 급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진선조에서 자신의 사무실을 털었다는 연락을 받은 참이었다. 도망쳐야 한다. 그리고 집에 가둬둔 그것을…처리해야 한다.

 

죽여야겠지.

일이 복잡해졌다. 머리가 아파 왔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전 처와 결혼하고 나서부터는 제대로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이름이…뭐였더라.

기억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입으로는 잘못을 빌면서도 절대로 기죽지 않았던 그 사나운 눈빛. 그것이 저주를 건 것이 틀림없다. 죽어서도 자신을 괴롭혔다. 미칠 것 같았다. 여자라면 얌전히 바닥에 납작 엎드려야 할 것을, 감히 기어올라 앞길을 방해하는가.

준식은 서연을 생각하면 화가 가라앉질 않았다. 그를 닮은 여자를 데려와 마구 때리고 굴복시켜도 풀리지 않았다. 죽이면 나아질까.

 

집에 도착한 준식은 창고에서 굵은 노끈을 찾아 꺼냈다. 큰 발소리를 내며 한 방으로 걸어가자 방에서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희열이 느껴졌다. 통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는 붉은 노을빛이 마치 핏빛처럼 느껴졌다. 흥분감에 눈이 먼 그는 그 노을빛에 사람의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말았다.

 

그때,

-와장창!

지우가 마당에서 주운 묵직한 물건으로 유리창을 깨부쉈다. 유리 파편이 살갗을 할퀴어 상처가 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준식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엔 그를 죽여 복수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한 여자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방에 갇혀있던 피해자는 무사히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지우에게 감사 인사를 끊임없이 하던 그를, 지우는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받아주었다. 슬픔과 미안함, 그리움과 분노, 그리고 조금의 희망을 느꼈다.

 

준식은 그의 집에서 체포되었다. 지우가 때려눕힌 그를 해결사들이 꽁꽁 묶어두었다. 그를 시작으로 군부 내에서 은폐된 여성 혐오 범죄가 줄줄이 터져 나왔다. 비리부터 시작해서 폭력, 성범죄까지 나오니 군부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요는 이것을 무시하지 않았다.

지우의 복수는 성공했다. 서연의 희생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헛되게 만들지 않았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서연의 기일이기도 했다.

지우는 눈길을 밟으며 산을 올랐다. 해결사들이 데려다준 곳에서 조금만 걸어 올라가니 금방 서연의 무덤이 나왔다.

 

“잘 지냈어, 언니? 늦어서 미안. 추운 거 싫다고 했는데. 그래도 올해 겨울은 작년보다 덜 추운 것 같아.”

 

지우는 말 없이 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 무덤 주변 바닥에 성냥을 꽂았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열 갑을 다 꽂은 지우는 성냥 하나에 불을 붙였다.

불이 붙은 성냥은 작은 폭죽처럼 터지며 옆의 성냥에 불을 붙였다. 수많은 성냥은 각각 다른 색의 불을 일으켰다. 성냥의 불꽃은 마치 무지개구름이 내려온 것 같은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무지개구름은 다른 곳에 불을 옮기지 않고 눈만을 녹이고는 스스로 꺼졌다.

눈이 다 녹은 것을 확인한 지우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다음에 고백할 땐 폭죽을 터뜨려 달라고 했지? 눈을 다 녹일 만큼 강하고, 알록달록한 거로. 어때? 내가 만든 거야. 마음에 들어?”

 

나 고백하러 왔어, 언니.

심장이 다시 두근대며 뛰었다. 이젠 그의 앞에서 슬픔보단 설렘이 더 느껴지는 것을 깨달은 지우는 웃으며 말했다.

“언니가 거절해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어. 내 고백에 언니가 대답하지 않아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야. 이젠 알 것 같아.”

 

지우는 심호흡을 하고는 분명한 말투로,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멋지게 타올랐던 언니를 사랑했습니다. 언니는 항상 멋있었어. 초라하지 않았어. 그리고 앞으로도 언니는 내게 가장 멋지고, 빛나는 여자야. 거기 가서도 잊지 말아줘.”

 

그는 가슴을 펴고 말을 이었다. 나는 빛나는 언니 앞에서도 떳떳한 사람이 되었다고. 그렇게 되기 위해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이 있다고. 앞으로는 자신도 그 사람들처럼 살 것이라고. 자신처럼, 언니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는 삶을 살 거라고.

 

“지켜봐 줄 거지?”

지우는 서연에게 인사를 건네고 발걸음을 떼었다. 서연을 품은 지우의 삶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아라.

그의 성냥이라면 얼어붙은 불꽃도 다시 타오를 것이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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