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견] Hidden Mode - 잊혀진 태초의 신+
에필로그 | 잊혀진 신 나견 × 그 신의 유일한 신자 지우스 겜빙의물
문제. 망겜 속에 수년간 처박혀 있던 귀속 아이템의 주인이 되었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1번 캡슐 속에 들어가 현실 부정을 한다."
"2번 넓은 마음으로 아~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여 새로운 룸메이트 환영파티를 해준다."
지우스는 당당한 미친놈의 헛소리를 흘려들으며 자신이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벌을 받는 건지 곰곰이 생각했다.
'파티 플레이 할 때마다 루디카 막타 가져가 그런가? 아니 근데 파디얀도 내 막타 많이 뺏었는데. 아님 혹시 그거 때문인가? 아니 근데 그건 와론 자식이 먼저'
꼬르륵-
'?'
"뭐지? 몸에서 소리가 나는데?"
"...아이템도 배가 고픈가? 아니 그냥 인간으로 보는 게 맞을지도."
"배가 고픈가? 많이 본 건데. 배가...고프다. 배고..프다. '배고프다' ...라면! 라면이란 걸 먹는 거죠? 나도 해보고 싶었어요. 음..주인."
"그 주인이라는 말 좀. 하 그냥 이름으로 불러."
"그래 지우스. 당신도 나견이라고 불러요. ...라면도 주면 좋겠고요."
지우스는 지끈대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까지 쫄래쫄래 쫓아와 뒤에서 얼쩡거리는 나견을 방에 가둬두고 라면을 끓이는 5분 동안 짧은 정적을 음미한 그는 아주 잠시 고민하다 포크를 꺼냈다.
"나와."
"당신은 안 먹어?"
"어. 너 다 먹어."
"...!!"
라면 처음 먹어보는 어린애 마냥
'아 처음 먹는 게 맞구나.'
어쨌든 서툰 포크 질로 면발 하나를 건져 오물오물 먹더니 신기한지 눈을 반짝이며 조금 더 많이 먹어보는 나견을 보며 그는 정신 없어서 여태 미뤄뒀던 의문을 꺼내 들었다.
'쟤는 어떻게 게임 밖으로 나온 거지?'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줄래요?"
"뭐야, 왜 다시 차분해졌어?"
"....."
"아하 뭘 좀 먹으니까 다시 머리가 돌아가는 거구나?"
"...뭐 그런 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맞네."
"제가 어떻게 이곳, 현실로 나올 수 있었는지 이제서야 궁금하신 모양이군요."
본인도 몰랐던 허기가 가시고 들떴던 마음도 점차 가라앉자 게임 속에 두고 왔던 이성과 함께 수치심도 돌아와 말 돌리는 게 분명한 나견을 지우스는 인생 선배로서 너그럽게 이해해주기로 했다. 의문이었던 부분이기도 했고.
다 먹은 그릇을 치우며 말해보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견이 입을 열었다.
"일단 정보창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제가 있던 곳에서 저는 아무도 믿지 않는 말도 안 되는 거짓도 진실로 만들 수 있어요. 창조주 그러니까 개발자? 그 사람보다도 더 신 같은 존재라는 거죠. 하지만 그럼 뭐하나요 숨어지내는 신센데. 그래서 저는 그곳에서 벗어날 계획을 세웠죠. 이름하여 '거짓 99+진실 1=진실 100' 98개의 거짓말과 1개의 진실을 하나로 묶는 마지막 거짓말은 '나견을 믿는 인간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견은 그와 함께 현실 세계로 나갈 수 있다.'였고, 나의 유일한 신자 지우스 당신이 아주 작은 하나의 진실이 된 거죠."
"......"
"눈치챘겠지만 퀘스트, 시스템, 전쟁, 신전, 유일 등급, 귀속 아이템... 그러니까 히든 모드 그리고 그와 연관된 보상까지 전부 다 제가 만든 거짓말이었어요."
이미 충분히 머리가 아팠으나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자신이 만든 거짓들을 나열하는 나견에 의해 더 머리가 아파진 지우스였다.
"아 물론 얹혀사는 입장에서 돈은 드릴 예정입니다. 아이템을 현실의 돈으로도 거래할 수 있다죠?"
"허, 그런 건 어디서 알아낸 거야?"
"그야 당연히 대화창에서"
"그것도 볼 수 있다고?"
"대화창도 가상현실의 일부니까요. 거기서는 뭐든 할 수 있다니까요? 랭킹 1위부터 100위까지의 계정을 다 삭제해버리고 시작한 지 10분 된 뉴비에게 그 점수를 다 줘버릴 수도 있죠. 당신한테 한 것처럼 퀘스트를 조작할 수도 있고, 전설 등급 아이템을 한 200개 정도 카피해서 대충 아무렇게나 뿌릴 수도 있고, 아예 일반등급 아이템을 3개 정도만 빼고 전량 수거해서 레어템으로 만들 수도 있죠?"
"...너 진짜 사악하구나?"
지우스는 다시금 자신이 잘못 걸렸음을 깨달았다.
"에이 뭘 이 정도 가지고. 어쨌든 매달 희귀 등급 3개씩 드릴게요. 희귀도 기본 몇십씩은 하니까 괜찮죠?"
"어? 어. 그래."
그렇게 망겜 석유 플레이어 지우스(a.k.a 담청색 기린)와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는 신이었던 내가 현실에서는 무쓸모 신원불명 귀속 아이템?!' 나견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아아아아아 인벤토리에 집어넣지 말라고오오오!!!"
"그럼 네가 내 플레이를 방해하지 말던가! 너 내가 한 번만 더 조작질 하면 평생 인벤에서 썩혀버릴 거라고 했어, 안 했어? 애초에 넣자마자 나오면서 짜증 내는 이유가 뭐야?"
"인벤 개좁다고오오오!!!!"
"야! 너 누가 그런 말 쓰래?!! 너 또 나준인가 뭔가 하는 애 만났지! 걔 만나지 말라고 했잖아!! 걔 만나고 나서부터 이상한 말이나 배워오고, 찡찡대고, 처음 만났을 때 그 정중한 신 컨셉은 어디로 간 거야?"
"나진이야! 그리고 진이 욕 하지 마!!"
나견 어린이와 보호자 담기지, 이 둘이 이 지경까지 망가져 싸우게 된 건 동거를 하게 된 지 두어 달 후.
이 모든 일의 원흉, 나진을 만나게 된 몇 주 전 부터였다.
여느 때와 같이 솔플을 즐기는 지우스 탓에 무척이나 심심했던 나견은 아이템화 되어 들킬 일도 없겠다 (사실 망겜이 되어 개발자들이 신경을 끈 지 오래라는 게 더 크다) 서버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계정 생성일이 고작 3일밖에 안 된 따끈따끈한 뉴비를 발견했다. 곧장 달려간 그곳엔 나견 그 자신과 깨나, 아니 무척이나 닮은 얼굴의 사내가 기본 튜토리얼 템으로 무장하고 열심히 퀘스트를 수행 중이었다.
사람은 자신과 닮은 사람에게 운명적 끌림을 느낀다 했던가
아니 어쩌면 이건 개발 과정부터 함께한 석유를 넘어서 천연가스 수준의 0티어 탑고인물의 뉴비를 향한 두근거림일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나견은 저 금발의 잘생긴 미청년에게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한 자신의 심장도 바칠 수 있을 것 같다는 뜻 모를 확신까지 들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
{ 퀘스트 - ...... }
{ 퀘스트 - ...... 《성공!》 }
{ 보상으로 ...(희귀)이 증정됩니다. }
{ 퀘스트 - ...... }
{ 퀘스트 - ...... 《성공!》 }
{ 보상으로 ...(전설)이 증정됩니다. }
.
.
.
{ 보상으로 럭키박스 20개가 증정됩니다. }
{ [system] 과도한 부정ekrcu}
{ 보상으로 SSR 가챠 100회가 증정됩니다. }
{ [system] 이런 건 없- 강제종료. }
"어? 우와!"
필사적으로 소매 넣기 했다.
그 결과 나견은 나진 한정 팔불출 고인물 형아, 이젠 거의 나진의 친형이 되었고 뉴비 키우기에 중독되어 지우스따윈 나 몰라라 하더니 급기야 나진이 로그아웃할 때까지 지우스가 로그아웃을 못 하도록 그의 퀘스트 난이도를 급격히 올려버리기 시작했다.
" - 됐고, 나 이제 당분간 접속 안 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
"뭐? 그러는 게 어딨"
< '나진' 님께서 접속하셨습니다. >
"다 화냈니? 그럼 이제 할 일을 하자."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워온"
"쉿, 조용. 아기 고양이."
{ 퀘스트 - 쥐를 잡자 찍찍! (0/10000) }
{ 스킨 '삼색이'가 제공됩니다. }
"화이팅!"
"나겨어어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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