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훈련 - 03 with Devil.
흑과 백 그것은 순결한 악마의 상징.
여러 개의 훈련 봇이 반 즈음 관통당해 흐느적거리는 가운데 유독 멀쩡한 이 둘 서 있으니. 그것은 순결한 저의 계약자와 저 자신이다. 짐승은 그런 계약자의 뒤에서 보조역을 맡으며 그를 따르는 악마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동물 형상의 악마다. 그것은 제 계약자의 상징과도 같은 것인지라 짐승은 그 움직임을 유심히 바라보다 계약자의 훈련이 막바지에 이르고 나서야 움직여 물병을 하나 건넸다.
“ 수고했어, 유라. ”
어느덧 십 년은 넘은 계약. 이 계약자의 이름은 유라. 어느 국가의 왕녀였다 하던가. 그럼에도 제게는 그저 목숨을 건 처절한 싸움에서 가장 먼저 구해내야 할 별 그뿐. 그런 생각을 하며 사랑스러운 움직임을 쫓고 있으면 훅하고 작은 악마가 저도 칭찬해달라 말한다. 짐승은 호기롭게 눈을 흘기더니 그 역시도 수고했다고 말했다. 저도 중간마다 틈이 생기면 불을 던져 보조하기는 하였지만 역시 시타급의 능력자에게 비할 바는 안 되더라. 제 은빛 머리칼과 복장을 정리하고는 짐승은 한숨을 쉬었다.
“ 유라가 이 정도로 강하면 마야나 황녀는 얼마나 강하다는 이야기야 대체? ”
“ … ”
묻는다. 그 둘이 일제히 이능을 발휘하면 나라라도 날아간다고 했던가.. 제 손에서 일렁이는 붉은 이능을 줄기줄기 뻗어 근처에 널브러진 파편들을 녹여 없앤다. 다음 훈련할 자가 밟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말이지. 그러면 전면에서 계약자가 답한다. 이해한다. 아하. 그렇군.. 둘이 접전할 적에는 저와 유라의 협공도 하등 쓸모가 없겠군? 끼어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짐승이 몸을 돌렸다. 돌아가자 유라. 넌지시 말한다. 오늘 격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이유라면 분명 유라에게 틈이 없음도 분명하지만, 아직 제 상처들이 낫지 않았기 때문이다. 옷을 벗겨보면 온통 검붉은 피로 가득한 흰 천이 덧대어있을 테니… 짐승은 그때의 격전을 회상하다가 자랑스럽게 웃었다.
“ 돌아가면 창문도 고쳐야 하고. ”
“ … ”
수려한 외모의 둘이 길 위를 번듯하게 걷는다. 전장 위에서 두 쌍의 눈동자는 단 한 번도 적을 보며 동요한 적 없으니. 분명 우리의 코와 입에서 숨이 쉴 새 없이 흐른다면 반드시 루나델린의 승리이리라 생각한다. 특히 저희의 능력은 전장 위에서만 물 만난 고기처럼 빛을 바라며, 그동안의 여러 차례 전투에서 패배한 적 없으니. 정말로 신세계의 영웅으로서 부족함 없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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