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타치카와가 죽었다.

월드 트리거. 개그

비자림 by 비
3
0
0

타치카와가 죽었다.

안타깝게 되었다.

‘아직 안 죽었거든!?’ 하고 곧장 반박이 날아와야 평소겠으나 평소와 다르게 축 늘어져 겨우겨우 발을 떼는 그를 보며 니노미야는 예의상 붙였던 마지막 문장을 수정했다. 앞 문장이 아닌 마지막 문장을. 왜냐하면 죽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솔직히 말해서 그리 안타깝진 않았기 때문이다. 옆에서 나란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카코도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보면 안타깝다거나 유감스럽다거나 하는 감정은 딱히 없는 듯했다. 흥미로워 보이기는 했다. 곧 다가올 타치카와의 죽음이……. 그러나 니노미야에겐 딱히 생기지 않은 흥미였고, 솔직히 말해서 이 두 사람과 함께 연구실로 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도 그리 달갑지 않았다. ‘시험지 확인 좀 할 수 있겠습니까.’ 메일을 보낸 건 니노미야 혼자였다. 그러나, ‘3시에 연구실로 오렴.’ 답장을 훔쳐본 두 사람이 멋대로 그와 동행하여 이곳까지 왔다. 이곳, 연구실 앞으로. 왜 따라오냐는 질문에 카코는 ‘간만에 아즈마 씨랑 커피라도 마시려고?’ 대답하며 웃었고, 타치카와는.

“나랑 니노미야, 카코까지 이 셋이면 아즈마 씨를 쓰러뜨리고 성적표를 수정할 수 있지 않을까?”

“어머.”

“될 것 같냐고.”

듣기론 중간고사 이후 타치카와의 양친과 시노다 본부장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고, 이후 시노다와 아즈마 사이에 또한 어떤 대화가 오갔으며, 마지막으로 시노다와 타치카와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다고 했다. 마지막 대화가 어떤 건지는 알지 못하나 본부장실에서 나온 타치카와의 입에서 “난 곧 죽을 거야”라는 말이 흘러나왔다는 이즈미의 증언이 있었다. 그러곤 진지하게, “타치카와 부대는 여기까지다. 앞으로는 이즈미 부대를 잘 부탁한다.” 같은 말을 남겨서 이즈미가 걱정을…… 하지는 않고 새 부대복 디자인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원래 인생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든 말든 니노미야는 문을 두드렸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타치카와는 무시하고 문을 열면 연구실 안쪽, 파티션을 제치며 휘적휘적 걸어오는…….

“셋이 다 같이 왔구나.”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학부생들은 자주 잊는 사실로, 대학원생 역시 그들처럼 수업을 듣고 시험을 쳤으며, 학부생과는 다른 방향이긴 하지만 다른 방향에서 직접적으로 그 결과가 다가오기도 했다. 예를 들어 지나가던 교수님이 “아, 아즈마 군. 자네 왜 시험을 그렇게 쳤지?”라고 불러서 멈춰 세우거나 오밤중에 전화를 걸기도 하는 것이다.

“시험지 좀 보자고 했지. 셋 다 전부?”

그러면서 기존에 하던 연구는 그대로 계속하고 학부생 시험지도 채점한다. 질의응답도 한다. 지금처럼.

“……예.”

어쩌면, 지금이라면 정말로, 셋이라면 정말로 아즈마를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호기롭게 말을 꺼냈던 타치카와에게서도 말이 없었다.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쓰러뜨리지 못하면, 죽는다. 100% 죽는다. 신경 줄이 얼마 남지 않은 아즈마의 손으로, 직접, 죽는다.

“보자…….”

“아즈마 씨.”

“응?”

그리고 타치카와는 미친놈이다. 니노미야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공부 머리는 없어도 싸움 머리는 뛰어난 놈이라고…… 솔직히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이 그러하긴 한데, 제 목숨 구할 머리는 없는 듯하다고 그런 생각을 했을 때였다. 카코는 어느새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있었다. 찍을 생각인 거냐? 그러는 가운데.

“교수님을 쏘자. 우리 모두를 위해서.”

타치카와의 눈은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시험지를 넘기던 아즈마의 손이 잠시 멈췄고, 타치카와는 그에 더욱 희망을 품고 힘차게 말했다. 하극상을 일으키자! 아즈마 씨라면 할 수 있어! 아즈마 씨! 이윽고 아즈마의 손에 30cm 플라스틱 자가 들렸다. 아즈마 씨?

타치카와가 죽었다.

안타깝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아즈마 씨.”

“죄송해요. 보더에서 뵈어요.”

“그래.”

쓰러진 타치카와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나가며 다시 한번 깊이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많은 일이 있진 않았다. 다만 ‘지금 그런 헛소리를 하려고 연구실까지 찾아와 나를 방해한 것이냐’의 분노를 담은, 분노의 일격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뿐이었다. 니노미야? 왜. 돌아보는데 카코가 고개를 까딱여 맞은편 복도 벽을 가리켜 보였다. 언제까지 끌고 갈 거야? ……현명한 제안을 거부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잠시 후 니노미야와 카코는 가벼운 손이 되어 복도를 떠났다. 타치카와는, 기억에서 잊힌 뒤였다.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