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Rainy Day

월드 트리거. 고기 / 우산 / 택시 + 구 아즈마 부대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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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내린다고 하여 안심하였더니, 그보다 조금 더 일찍 내리기 시작한 비에 온 거리가 물에 푹 젖어 있었다. 늘 가던 고깃집에서의 회식을 마친 저녁, 처마 아래 옹기종기 모여 붙은 네 사람은 차양 밖으로 비스듬히 보이는 검은 하늘을 그만큼이나 흐린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는데, 마른자리 하나 남겨두지 않을 기세로 내리긋는 굵은 빗줄기는 약해질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 외 일기예보가 정확하다면 내일 아침까지도 그럴 예정이었다. 하필 또 전원 우산을 빠뜨리고 온 날, 한숨을 쉰 아즈마가 휴대전화를 들어 전화번호를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입을 열어 하는 말이, 안 되겠다. 너희들은 먼저 택시 타고 가렴. 아즈마 씨는요? 너희 먼저 보내고 타야지. 반대 방향이니까. 잠시 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가게 주소를 읊어주는 것으로 보아 그가 콜 택시에 전화를 걸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밤늦게까지 하는 음식점들이 밀집된 거리다 보니 근방에서 대기하고 있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앞에 멈춰 선 택시였다. 서둘러 문을 열고 택시에 올라타는 아이들의 옷이 그 잠깐 사이에도 젖어 들어 축축해졌으니, 마지막까지 잘 들어가는 걸 확인하느라 대로변으로 나온 아즈마의 꼴은 금세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좀 돌아가더라도 슈지 먼저 내려주는 거 잊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아즈마 씨. 얼른 처마로 돌아가요. 다 젖을라.”

“저는 괜찮습니다. 늦게 내려도…….”

“말 들으렴.”

“말 들어.”

“말 들어야지?”

비가 더 들이닥치기 전 문을 닫고 손을 흔들어 그들을 배웅한 아즈마는 다시 처마 밑으로 돌아갔다. 셔츠 아랫단을 꾹 눌러 짜 물을 짜내는데 겉옷 바깥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담뱃값에 시선이 닿았다. 아직은 실내 흡연이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은 시기였지만, 그럼에도 아이들 앞에서 피울 수는 없어 내내 넣어두기만 한 담뱃값에도 물방울이 후둑 떨어져 있었다. 설마, 다 젖은 건 아니겠지.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기에 가게 주인에게서 빌린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후. 깊게 빨아들였다가 내뱉으면 빗줄기 사이로 흐린 연기가 퍼져 나간다. 자, 이제 어떡한담.

사실 조금 전 아이들에게는 거짓말을 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카드는 죄다 집에다 두고 현금만 가지고 온 날이었는데, 그 현금마저 방금 택시비로 쓰라고 가장 마지막에 내릴 니노미야에게 쥐여주고 오는 길이었다. 우산을 빌리려고 해도 가게 안에 남은 우산은 없다 하고. 일기 예보대로라면 아침까진 내릴 비지만 중간에 약해질 때가 있긴 할 테니 그때를 노려 달리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꽁초는 쓰레기통에 쏙 던져넣고 세 번째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을 때였다. 이제 몇 개비가 남았지? 아마 오늘 다 피우고 집에 가리란 생각을 했을 때.

“아즈마 씨!”

외침이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병아리가 그려진 샛노란 우산. 그다음은 분홍색 삼단 우산, 마지막은 투명한 비닐우산이었다. 그리고 우산 밑으로 보이는 얼굴을 확인한 순간 아즈마는 입에 물었던 장초를 그대로 꺾어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니. 택시비가 부족했나?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제가 내어준 돈의 액수를 잠시 헤아려보는데, 샛노란 우산에 당첨된 니노미야가 고개를 저었다.

“편의점 앞에서 내렸습니다.”

“뭐?”

“아즈마 씨 오늘 카드 안 갖고 오셨잖아요. 모를 줄 알았죠?”

분홍색 우산을 쓴 카코가 손가락을 들어 어깨를 콕 찌르며 말했다. 누구 눈을 속이려고. 마지막으로 비닐우산을 쓴 미와가 제 우산을 높이 들어 올리며 말했다.

“같이 써요, 아즈마 씨. 같이 집으로 돌아가요.”

“…….”

그 잠깐 사이에 옷이 젖어 들 만큼, 내리꽂는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거센 데다 심지어 바람 때문에 거의 사선으로 떨어지고 있는 비였다. 걸어간다면 소매고 바지 밑단이고 신발이고 죄 젖어 들 게 뻔한데도 굳이 저와 함께 도보로 가겠다며 이리 온 아이들에 결국 작게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못 말린다, 진짜. 내일 다 운동화 빨래하려고? 그 말에 제 신발을 내려다보며 우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니노미야였지만 카코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 뿐이었다. 어차피 다 젖었는걸요. 이제 와 걱정하기엔 늦었어요. 슈지는. 저는……. 작은 니노미야가 되어 우울한 표정으로 운동화를 내려다보았지만 늦은 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아즈마 역시 신발 사정이 썩 다르지 않게 될 예정이라. 가자, 집으로. 빗줄기 속으로, 처마 밖으로 기어코 신발코를 내밀 수밖에 없었다. 다 같이.

끝으로, 미와에게서 우산을 받아 든 아즈마가 앞서가는 니노미야를 보다 물었다.

“저 우산은 누가 골랐니?”

“……남은 게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이 크기는요.”

사진 찍어 놔야지. 찍지 마. 웅덩이를 피해 조심히 걸어도 내딛는 발걸음마다 첨벙이며 튀는 물방울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 사이로 웃음소리도 함께 튀어 올랐다. 빗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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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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