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No Time

월드 트리거. 미즈카미 이야기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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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시간이 있다면 없는 것보다는 당연히 그게 낫다. 그러나 매사에 그런 여유를 가지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미즈카미 사토시는 주어진 시간 안에 결정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 이골이 났다고 표현할 만큼 이에 익숙하고 숙달된 사람이었고, 달리 말하면 그가 작정했을 때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극히 짧아 타인이 그 안에 간섭하기가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역시 그래야 할 때가 아닌 이상 그러지 않는 편이기는 했다. 간섭을 원치 않을 때는 그리 행동하지만, 그러지 않을 때는 스스로 문을 열어 마음껏 간섭이 오게 두는 편이기도 하였다. 어떻게 할까요? 그럴 때면 타인의 결정도 군소리 없이 수용했다. 오지 부대부터. 카이를 잃은 빚이 있으니까. 좋아요. 그렇게 해요. 그러면 정말로 그렇게 했다. 하기로 했으면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그만큼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어떻게든 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완벽할 수 없는 게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는 말을 참 잘했다. 언제 어느 순간이든. 뻔뻔하게. 얼굴에 철판을 까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라서 그럴까. 철판을 까는 데 걸리는 시간도 길지 않았다. 찰나면 충분했다.

보더 전투원의 포지션 중 시간에 민감히 반응하는 포지션 중 제일은 흔히들 건너로 뽑히곤 하였다. 자세를 잡고 방아쇠를 당기는 동작을 몸에 익히면 익힐수록 더욱 빨라지는 그들의 속사, 그리고 연사는 거기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면 줄일수록 대응하기가 여간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그다음은 역시 목표물이 실드로 반응할 시간을 주지 말아야 하는 스나이퍼일까. 호월을 사용하는 어태커도 고려될 수 있었다. 호월 사용자라면 선공의 발동 시간이 줄수록 사정거리가 길어진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어태커 No. 6인 이코마만큼 그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한 예가 없을 뿐이었다. 슈터는 그런 그들과 비교하면 시간에 쫓기는 포지션이라고는 볼 수 없는 편이었다. 트리온을 직접 조작한다는 특성상 그 과정에서 걸리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었다. 때에 따라 탄을 합성하고 탄도를 그려 쏘아 보내는 과정엔 건너보다 더 긴 시간이 소요되었고, 탄환의 속도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보단 적재적소에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기술과 화력에 좀 더 방점이 찍혔다. 공격 준비 시간이 줄면 줄수록 이득이란 것은 모든 포지션이 그러하니 새삼 말할 것이 없었다. 따라서 이, 슈터라는 포지션에선 미즈카미의 장기를 극적으로 드러내긴 어려운 편이었다. 물론, 상황에 맞춰 즉각적으로 대응책을 짜내는 지휘관의 역할을 도맡은 그는 자신의 역할을 퍽 잘 수행했지만, 앞서 말했듯 포지션상 행동으로 옮겨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늘 생각보다 늦었다. 그만해도 대응이 빠르고 머리 회전이 좋다는 평을 듣긴 하지만 그것으로는 늘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 건너가 될쏘냐. 또는 호월을 잡아 선공을 휘두를 테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티는 낸 적은 딱히 없지만 슈터라는 포지션에 어느 정도 애정도 있고 자신도 있고 적성도 있었다. 다만 그에게 딱, 정확히, 빈틈없이 맞물리는, 그런 포지션은 아니었다는 뜻이지. 그러한 포지션이 무엇인지도 이미 알고 있지만, 전투원의 포지션이 아니었을 뿐이지.

‘수를 주고받는 승부’에서 ‘주고받는다’라는 표현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상황’이다. 세상, 판, 곧 갱신과 조정이 연속되는 바탕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차례가 되면 말을 하나 움직인다. 말의 변경된 위치는 거미줄처럼 연결된 모든 말의 상황에 영향을 주었다. 기사는 상대에게서 그런 세상 자체를, 다시 말해 변화를 넘겨받는다. 다시 누군가의 손이 말에 닿을 때까지 시공간 모두가 정지하는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고 진전을 이뤄내는 것은 기사였다. 이미 결정된 결정은 무를 수 없다. 모든 것은 앞으로 흘러가며 판을 넘겨받은 기사는 전황을 파악하고 다음 수를, 변화를, 판에 놓일 세상을 결정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리곤 고르는 것이다. 더 나은 전선, 전장, 전개를. 그 속에서 싸움, 승부, 서사가 전개된다. 그의 또 다른 취미인 고전도 이와 어느 정도 관계성이 있을지도 몰랐다. 좋아하는 것들 사이에서 좋아하는 이유를 알게 되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다. 주어진 시간 안에 생각을 마치고 결정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 이골은 났어도 싫증을 낸 적은 아직 없다.

그리고 그, 생각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을 때.

그의 장기는 거기서 드러난다.

시간이 없으니 순간뿐이다. 즉각적인 ‘생각’이 행동으로 곧장 이어진다. 이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극히 짧은 것과는 또 다르다. 후자는 전파 지연을, 전자는 처리 지연을 말하고 있다. 처리에는 거의 시간을 두지 않고 손이 움직인다. 주어진 모든 시간은 말을 정확히 조작하는 것에만 투자되었다. 그렇지만, ‘시간에 쫓기느라 급급해서 생각 없이 두는 거 아냐?’ 그게 아니라는 점이 그의 장기 되시겠다. 누군가에겐 ‘남아있지 않다’라고 생각되는 그 시간을 잘게 잘게 아주 잘게 쪼갠 시간이 그사이에 숨어 있고 그는 그걸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세상 누군가는 자신의 옵션 트리거를 발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극한으로 줄였다. 그와 같이 그 역시 생각에 걸리는 시간을 극한으로 줄였을 뿐이다.

생각은 그사이에도 이뤄지고 있다.

노 타임으로 두면 되겠지.

그에게는 그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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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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