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찰귀 - 배반

이렇게 개운한 적이 있던가?

낯짝은 그대로지만 신체는 변했다.

굽은 어깨는 옆으로 폈으며 억지로 낮추던 등은 척추가 곧게 뻗었다.

근육이 붙었으며 그 나잇대 사내라 할법한 몸을 갖추게 되었다.

항주에 있는 이들이라면 황실에 큰 불이 났다는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란 속에서 첫째 황자, 화 류다가 실종되었다는 것도.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한마디로 화 류다가 죽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나 다름 없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류다의 어머니, 황비의 시신은 다음날 발견되었다.

질식사가 아닌 대각선으로 그은 긴 상처가 남았지만, 중요하던가?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애를 먹이던 것들이 모두 사라지니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류다는 죽었다. 그렇다 해서 '류호'로서 새로 태어났다고 하면 그것도 기묘하다. 그는 그저 죽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 뿐이었다. 꿈 속의 꿈을 꾸는 것이다. 연기를 많이 한 나머지 가면에 가면에 가면을 쓰고 제 얼굴을 되찾지 못하는 일은 사양이었다. 이런 화창한 날에 불행한 삶을 살고 살고 또 사는 것도 싫었으며, 억지로 숨을 이어가는 것만큼 괴로운 것이 없었다.

끝은 결국 살육이었다.

그는 되고 싶던 것의 얼굴을 쓰고, 되고 싶던 것의 이름을 썼다.

허나 어째서 지금도 슬픈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시점상 항주에 다시 온 건 1년이 흐른 뒤라는 설정입니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리지요.


...그렇습니까. 첫 친우인 주제에 그리 사라지다니, 정말 무책임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대로 된 이라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아마 제대로 된 선인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선인을 따라하고 있었다거나, 가면을 써가면서 제 눈을 가린다거나. 정 아니면 둘 다였겠지요. 그래서 이리 비슷한 사람을 마주하니 어떤 기분입니까?

친우라면 말을 얹을 수 있습니다. 그 정도 간섭은 할 수 있는 자리 아니덥니까. 아아, 저는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친우란 무엇인지 알기 어렵고, 가족의 정은 무엇인지 의심이 되며,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이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허나 의원님께서 울고 싶다는 말은 잘 이해를 하지 못하겠군요. 이것도 제 심정이 탁해진 탓이겠지요.

...그는 육백명의 사람이 있는 궁에 불을 질렀습니다. 있는 기름이란 기름은 전부 뿌리고 불을 질러서 막을 수도 없었답니다. 피해가 어마어마 했답니다. 결국 그정도의 사람이었던 겁니다. 차라리 한 마디라도 하면 좋았을 것을, 말의 무게를 저 혼자 저울질하고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 화마로서 결말을 맞은겁니다. 그 곳에서 시신도 찾지 못했으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결말까지 아주 속이 시원합니다. (시선을 깜박이다, 감았다.) 저는 그 치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의원님이 울길 바라지 않을겁니다. 아마 울고 싶어한다면 의원님이 슬픈 게 싫어요, 라며 억지라도 부렸을겁니다. 허나 이제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군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저도 울고 싶다는 말 뿐입니다. 어째서 이리도 슬픈걸까요? 분명 개운하고 훌륭한 결말이라며 웃을 줄 알았는데, 조금도 좋지 않습니다. 저는 슬퍼선 안될 사람이란 걸 알지만 이제와서 슬픕니다. 지독하게 괴로워 견딜 수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째서 이리 슬픈 것일까요. 아니면 슬픈 척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원님이 말한 치는 분명 제가 쓰는 가면 중 하나였을겁니다. 허나 제가 가진 가면들 중 무엇도 진실된 것은 없으며, 속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공허 뿐이니 더욱 슬퍼지는 것입니다. 실체가 없는 연기를 하며 했던 말이 진심이었을까요? 저는 너무도 어리석어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웃지 않는 것이 슬펐습니다. 가라앉는 게 싫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항상 행복하길 바랬지만 그 심정은 진실이었을까요? 거짓된 가면을 쓰고 한 말에 어떤 사람은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 치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아, 이제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예. 저는 그저 그와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낭인일 뿐입니다. 다시 그가 될 수 없습니다….


하얀 무명천에 얼굴을 박고 한참 울었다.

깨끗해질 수 없어.

다시는 용서받을 수 없어….

언젠가 검으로 수많은 사람을 지켜보이겠다고.

그럼 깨끗해지지 못하고 누덕누덕한 심정도 어떻게든, 어떻게든 볼만해지지 않겠냐고.

그럼 당신도 용서할 마음이 들지 않겠느냐고….

모든 일이 끝나면 용서를 받고 싶다.

저잣거리의 안 쪽에는 그 때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