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樂園)

내가 이룬 모든 것.

글방 by 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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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제파르가 집에서 탈출한 지 3년이 넘어갔다. 탈출. 누군가에게는 과장처럼 느껴질 수 있겠으나, 제파르에게는 조금의 과장도 없는 단어 선택이었다. 숨을 쉬고 있단 이유로 욕을 먹는다거나 당근을 골라 먹는다고 눈빛에 제 본심을 조각낼 필요도 없으며, 조금이라도 성적이 떨어지면 뺨이 불어 터질 정도로 맞지 않아도 되니까.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한 탈출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다만 그는 집을 가지고 싶었다. 혼자 살기엔 과도하게 넓고 아무것도 없는 집. 더럽지도 물건에 치여 살 필요도 없이 자기가 원할 때 일어나고 필요할 때 청소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을 그는 소망했다. 거기다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더 좋고. 그렇다고 마트나 백화점 같은 곳이랑 너무 멀면 곤란하고, 시골은 그런 인프라가 없으니 주변에 적당한 도심이 있고…….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제파르는 고시원의 단칸방에서 몸을 구긴 채 천천히 밀려오는 잠을 기다릴 뿐이었다. 관리되지 않은 고시원에선 눅눅한 곰팡내가 났다. 가끔은 그 집에 돌아간 것만 같은 익숙함이 들었다. 눈을 가물거리면서도 제파르는 올라오려는 역함을 참아야 했다. 커다란 부모의 얼굴 아래서 무한히 이어지는 문을 열며 도망가기 위해 발악하는 꿈을 꿨을 때, 제파르는 다시 탈출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강박이었다.

 

그 집을 본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트럭을 몰아 40분을 넘게 운전해 도착한 배달 지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주제에 그 집은 족히 60평은 넘어 보였고, 하얀색 페인트로 칠한 뒤 모서리를 검은색 철골로 마무리해 설계한 이층집이었다. 집을 둘러싼 낮은 담에 문과 초인종이 있었다. 제파르는 아주 드물게 존재에게서 거리감과 머뭇거림을 느꼈다. 너 같은 게 있어서 우리가 다 망한 거라는 부모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속하지 못한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해 초인종을 누르자 어른의 목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대화에 끼어들려 노력하는 소리가 들렸다. 평범하게 시끄러웠다. 제파르는 눈을 찌푸렸다.

 

“택배입니다. 물건이 커서 직접 받으셔야 돼요.”

“아, 그래요? 잠시만요.”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그저 집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기 위해 한 말이었다. 현관문이 열렸고, 제파르는 커다랗고 긴 물건을 온몸으로 들어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날씨가 덥지 않은데도 하얀 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너무 무거운 물건을 들어서인지, 식은땀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잘 관리된 화단이라든지 집 문을 벌컥 열고선 자신을 보며 예쁘다고 폴짝대는 아이들이 있었으나 제파르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안까지 들어오셨네요?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마이야, 모르는 사람한테 가까이 가면 안 된다고 했지.”

“무거워서. 물건 이거 맞나요.”

“네, 이 제품 맞아요. 배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른이 제파르를 보며 생긋 웃었다.

“……네.”

그의 눈에는 그 집만이 보였다.

 

제파르가 트럭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 집은 계속 따라붙었다. 밤 9시가 넘을 때까지 배달을 반복하고 그 오래된 고시원에 몸을 누일 때까지도 새하얗고 넓은 집의 기억이 제파르의 등 뒤에 들러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원한 탈출의 유일한 출구 같았다.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주면서도 결국 신기루처럼 다가갈 수 없는 절망이 되어버리겠지. 그걸 알면서도 제파르는 며칠 뒤 부동산으로 가는 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무슨 집 알아보시려고?”

“……이미 사람 사는 집도 확인할 수 있나.”

“이미 사는 데를? 가격만 확인해 보는 거면 되긴 하는데. 주소 한 번 불러주쇼.”

“제13구역에…….”

주소를 들은 공인중개사의 표정이 묘해졌다.

“아. 이 집 관심 있으셔?”

“그냥 확인만 해보려고요.”

“실평수는 1층 70평, 2층 50평이고요. 마당까지 포함하면 80평은 충분히 넘어요. 차고는 외부에 있고, 이것도 크기가 꽤 커서 창고로 겸해서 써도 문제없습니다. 자동차 있으면 마트나 시내랑은 5분 거리고, 걸어가면 20분 정도 걸리고.”

이미 그 집을 몇 번이고 가 멀찍이서 확인한 부분이었다.

“거래 가격은 어떻게 되는지.”

“매매요, 전세요, 월세요?”

“매매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 사는 분들은 어떤지.”

“그 집은 전세로 살고 있어요. 확인만 한다고 하셨으니까… 전세는 가격 이 정도고, 매매는 이렇게 됩니다. 이 정도면 되게 싼 거예요.”

생전 본 적도 없는 단위의 금액을 싸다고 말하는 이의 삶을 제파르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자신도 그런 삶에 익숙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중개업자에게 질문했다.

“하자라도 있나. 싼 데는 이유가 있던데.”

“아무래도 차 없으면 교통이 불편하고, 또…….”

중개업자가 머뭇거리며 도면의 구석을 볼펜으로 까맣게 칠했다.

“뭔데요.”

“이 집 주변에서 이상하게 크리쳐가 자주 나와요. 금속형은 아니고 생체형이긴 한데, 우리 같은 일반인한테는 그것도 위협이지. AOC에서 그거 때문에 몇 번 확인도 하러 왔는데 이유도 못 찾았고 말이야. 전에 살던 사람도 크리쳐한테 당해서 큰일 날 뻔했어요. 그래서 한동안 비어있다가 이 가족이 들어와서 산 거라. 이 사람들은 얼마나 오래 있을지 모르죠.”

“흐응.”

“아무튼 지금은 사는 사람이 있으니 이 정도밖엔 못 알려줘요. 근처에 다른 집이라도 알려줄까? 거기도 괜찮은데.”

“됐습니다. 나중에 뵙죠.”

어느덧 노을이 지고 어스름이 뜨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에서 자신이 본 집의 금액과 자동차를 구매하기 위한 금액, 그 외에 필요한 가구를 놓을 금액들이 핑핑 돌아갔다. 지금의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금액임에도 그는 눈앞의 신기루가 조금씩 뚜렷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아예 답답하지만은 않았다. 무언가 방법을 찾으면 온전히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방법을 알아내면. 제파르는 길게 숨을 쉬었다가 천천히 뱉었다. 그날 밤 제파르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6개월이 지난 후 제파르는 다시 부동산에 찾아왔다. 큰 표정 없이 파일을 뒤적이며 손님을 맞이하던 중개업자가 커다래진 눈으로 제파르를 바라봤다.

“아, 그 하얀 집 보러왔던 청년!”

“그 집 비었습니까?”

목소리엔 피로가 가득했으나 상대방은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여전히 그 집에 관심을 보이고 있음에 놀란 모습뿐이었다. 거 참, 특이한 청년이네.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제파르의 귀에 들렸다. 하나로 대충 묶은 흰 머리카락이 목덜미에 닿았다. 거슬릴 정도로 따가웠다.

“네, 최근에 비었어요. 담 둘러서 크리쳐 감지기 싹 달았는데도 그걸 어떻게 뚫고 집안으로 침입했나 봐요. 애들이 좀 다쳤더랍니다. 그 뒤로 위약금 다 물고 그냥 나가던데. …근데 진짜로 그 집 들어가게?”

“쓸데없는 거에 신경 쓰지 마시고 계약이나 하시죠.”

 

중개사의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서 위로 훑는 게 보였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 집에 들어갈 생각인지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단 표정이었다. 자신이 AOC에 들어간 게 6개월 전이라고, 매일 밤 머리맡에 자기 몸만 한 라이플을 둔 채로 고시원과 땅바닥과 설산에서 잠들며 살아왔단 걸 제파르는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코로 숨을 쉬자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부동산에 가기 전 터져서 겨우 멈춰놨던 코피가 또 안에서 고인 듯했다.

“거, 성격 까칠하긴. 아무튼 알겠습니다. 집 안 보고 계약하실 거요?”

“그냥 하죠. 옵션은 전부 다 넣어주시고. 돈은 가져왔으니.”

바로 저번 주에도 온갖 알바를 겸하며 이 돈을 모아왔다. 여기에서 옵션이라든지 세세한 하자까지 지금 신경 쓰기엔 너무도 피곤했다. 자신은 이미 저 집 하나를 위해 모든 걸 미루고 포기했으니까. 제파르는 평소와 달리 계약서도 설렁설렁 읽으며 사인을 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것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사실 고시원에 지내면서도 제파르는 짐을 거의 만들지 않았다. 이유를 묻는다 한들 단순했다. 자신이 오롯이 살지도 않을 곳에 물건을 많이 둘 생각은 조금도 없기 때문이었다. 기껏해야 덮고 있던 이불과 베개, 약간의 책, 옷가지 정도가 전부였다. 상자 두 개에 제파르의 삶이 전부 담겼다. 그것을 들고 제파르는 1시간 가까이 걸어 새하얀 집에 도착했다. 급하게 나갔다는 중개업자의 말이 틀리지는 않은 듯 집안엔 최근까지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과 느낌이 있었다.

제파르는 상자를 품에 안은 채 천천히 1층을 둘러봤다. 높은 층고, 옆으로 밀어 밖으로 갈 수 있는 통유리창, 가구 하나 없이 커다란 거실과 아일랜드 부엌, 기다란 복도와 방, 그리고 복도 끝 드레스룸이 딸린 안방까지. 그의 걸음은 안방에서 멈췄다. 혼자 살기엔 과도할 정도로 넓었다. 그리고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늦은 오후의 햇빛만이 하얀 바닥 위로 낮게 깔려있을 뿐이었다. 물건도, 사람도, 누군가의 흔적과 기억도 없이.

제파르는 상자를 던져놓고선 휴대폰으로 일정을 확인했다. 내일의 날짜에 ‘비번’이라는 단어가 크게 쓰여 있었다. 그제야 그는 쓰러지듯 안방 맨바닥에 누워버렸다. 얼굴과 몸에서 바닥의 냉기가 느껴졌다. 그의 눈이 감기고 호흡이 느려졌다. 그 상태로 그는 다음 날 오후가 될 때까지 미동이나 꿈도 없이 잠 속으로 고여갔다.

 

 

하얗고 넓은 집이 자기 것이 된 후에야 제파르의 삶은 남들과 비슷해졌다. 잡다한 부업이나 아르바이트를 본업과 겸해서 할 필요도 없었으며, 일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 마음껏 자고 밥을 먹을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AOC라는 직업은 특이할지라도 그 특이함이 고독에서 오는 안정감을 망치진 못했다.

집에 들이는 가구의 속도는 늦었다. 한동안 그는 안방의 한가운데에서 이불과 요를 깔고 자다 방을 전부 덮을 크기의 부드러운 카펫을 깔았고, 유명한 브랜드의 가장 커다란 침대를 방에 들였다. 그리고선 비싼 이불과 베개로 바꾸고 길이 조절이 되는 최신형 책상과 의자를 구매했다. AOC에서 버는 족족 전부 집을 위해 썼으나 그는 조금의 유감이나 고민도 없어 보였다. 집에 들어온 뒤 제파르는 매일 부모의 눈과 손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꿈을 꿨다. 마지막으로 차를 구매하고 집의 담장을 전부 높게 교체한 날, 제파르는 아무런 꿈을 꾸지 않았다.

 

그다음 날, 제파르는 맞춰둔 알람에 맞춰 제때 일어났다. 밤새 돌아간 보일러로 방안은 따뜻했고 두툼한 암막 커튼을 쳐 한 줌의 햇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동떨어진 집에선 새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 가운데에서 제파르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다시 자신했다. 자신은 절대 이 집에서 떠나지 않으리라고. 그리고 이곳에 그 누구도 들이지 않겠다고.


앤오님이 마크로 제파르의 집을 구현해주셔가지고 집 너무 예쁘다 짱이다 하면서 구경하다 적은 글입니다.

언제나 앤캐의 과거사를 날조하고 있지만 앤오님도 즐기시는 거 같으니 오케이 아닐까요?

아닐 시 죄송합니다. 협의는 010-푸하푸하-푸하하하로 연락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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