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욕(愛慾)을 위하여
천재는 불행하게도 xx받아 xx당했다.
쏘망님의 신곡인 살리에리를 듣고 적은 2차창작입니다. 정말 노래가 잘생겼고 살리에리가 맛있어요… 노래 한 번씩만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살리에리 많이 그려주세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성정이 얼마나 고약한지는 빈에 땅을 디딘 누구든 아는 사실이었다. 그의 언행에 상처받은 사람을 줄 세우면 아마데우스의 집을 한 바퀴 두르고도 남을 테며 그와 언쟁을 높여 싸운 사람을 꼽으라면 23개구에서 모두 손을 들고 걸어올 테니. 그렇기에 그와 협업하여 곡을 만든 사람은 흔치 않으며.
“여어, 살리에리. 이번에 모차르트랑 같이 곡 만들고 있다며?”
그 흔치 않은 사람 중에는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있었다. 그는 괜스레 쥐고 있던 악보와 만년필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 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네. 합이 잘 맞아서 곡 만들기도 수월했어. 완성이 끝나면 공연할 계획도 있으니 자네도 초대하도록 하지.”
“이야. ‘그’ 모차르트와 곡을 만들어? 자네도 참….”
그 뒤의 말을 듣지 않아도 들을 수 있었다. 대단하다, 사람 참 무르다, 착하다니까, 힘들었겠다, 혹은 배운 것이라도 있느냐. 어지러운 비교는 단물이 빠지다 못해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곧 형용할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미움으로 이어졌다. 스스로를 향한 역겨움을 호흡과 함께 삼키며 살리에리는 검은 단발을 귀 뒤로 넘겼다. 굴러다니던 작은 종이에 협업한 곡의 이름을 휘갈겨 적고서는 상대에게 떠넘겼다.
“‘오필리아의 건강을 위하여’(Per la Ricuperata Salute di Offelia). 이번 곡 제목이야. 자네에게만 특별히 말하는 거니 기억해 두고, 초대할 때 입을 옷 생각해 두라고.”
“아…… 기억해 두지. 그러니까….”
“이 곡에서 자네가 받을 감동을 기대하고 있겠네. 분명 깊은 울림을 줄 거야.”
“…….”
“그렇지 않겠나?”
살리에리는 그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기울이자 깔끔히 다듬어진 단발이 허공에 하늘거렸다. 다행히도 상대방은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주도로 갈무리된 대화를 억지로 이끌 사람은 아니란 뜻이었다.
“그래, 그러면… …기대하도록 하지. 일어나 보겠네.”
“내가 지금은 영감이 떠올라 배웅이 어렵겠군. 하녀에게 배웅을 부탁할 테니 결례를 용서하도록.”
영양가 없는 대화에서 영감 따위가 번뜩일 리 없었다. 그러나 무릇 창작자라면 영감과 아이디어를 핑계로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얼레벌레 무마하는 경험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잡상인이 기어코 자리를 비운 후에도 살리에리는 주먹을 쥐고 그 위에 이마를 올린 채 협탁의 무늬만을 바라봤다. 버려지는 시간을 낱낱이 흩뿌리며 그는 악상과, 제자들과, 동료들과, 모차르트와 함께 작업한 곡을 떠올렸다.
협업을 제안한 건 모차르트였다. 살리에리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둘은 교류가 꽤 많은 편이었고, 좋으나 싫으나 그는 천재임이 틀림없었으니까. 배운 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남의 입을 통해서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사실 살리에리는 지금 모차르트와 협동해 작곡 중이라는 말을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었다. 지금도 아마 코르네티, 그 입 가벼운 친구가 술김에 나불댄 거겠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생기는 그의 만성이었다. 그래도 기대할 거리를 하나 만들자면, 이번 노래를 통해 쓸모없는 가십거리를 조금은 풀 수 있으리란 예감이었다. 모차르트가 없는 모임에서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도, 뒤에서 자신들이 소문이라는 촌극의 주인공이 될 필요도 조금은 없어지겠지. 라이벌과 협업하는 멍청이는 세상에 없으니까.
생각의 끝을 기호로 마무리지은 후에야 살리에리는 고개를 들어 차가워진 손등에 볼을 문댔다. 집 바깥으로는 빈의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평화롭고 여전히 익숙했다. 문득 그는 피로감을 느꼈다.
‘조금 쉬어야겠군.’
음악 외에 쓸모없는 생각을 많이 하긴 했었다. 시간을 확인하자 오전 10시를 막 지나가고 있었다. 조금 쉰다고 한들 오후에 제자들을 만나 교육하러 가는 데 문제는 없을 터였다. 그러니 괜찮을 터였다. 모든 것이. 그가 바라는 대로.
“호외요, 호외!”
그러나 곡을 완성했다던 모차르트가 돌연 건강이 악화됐다는 이유로 연락이 끊기고, 몇 년 뒤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살리에리가 처음 느낀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협업한 곡은 모차르트의 손에 쥐어져 관에 묻히고 말았으며 자신은 동료 하나를 잃은 셈이었다. 모든 것이 틀어지고 불행해졌다. 그런데도 그는, 슬픔과 아쉬움과 뒤따라온 자기혐오보다도 안도감에 더 무게를 두고 말았다.
‘말도 안 되지.’
그래. 그럴 리가 없었다. 자신은 신의 눈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단 한 순간도 그를 미워하지 않았노라고. 그렇기에 살리에리는 장례식에서 입을 검은 옷을 집사에게 찾아오라 명령했다. 그의 성정은 워낙에 고약하니까. 자살 기도라던가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던 것의 소문이 와전된 걸지도 몰랐다. 자기가 좋아한다고 했던 음식도 돌연 싫어한다며 폭언을 날리는 이이니.
“그래도 말이야. 케이크 정도는 같이 먹어줬을 법도 한데.”
케케묵은 감정을 괜스레 끌어올리며 살리에리는 일어날 준비를 했다.
들었는가? 볼프강이 이유 모를 원인으로 죽었다네.
건너 건너 듣기로는 고통스런 표정으로 죽었다지.
날이 참으로 쾌청했다. 모차르트의 장례가 치러진 후로 지금까지 쭉. 살리에리는 응접실의 의자에 앉아 여느 때처럼 밖을 보고 있었다. 아니, 여느 때와 같지는 않았다. 그가 모임에 나가지 않은 지도, 제자들을 육성하는 일을 멈춘 지도 어느덧 한 달이 훌쩍 넘었으니. 이유라고 할 것이 있겠는가. 모차르트가 죽은 뒤로 우리는 더욱 살아있는 이야기로 빈의 골목골목을 누비고 있는데.
독이라도 먹은 건가? 그에게는 비난만이 가득하니.
촌극으로 만드는군! 그렇다면 어떤 이가 먹였을까?
궁정이나, 대주교나, 베토벤, 콘스탄체?
너무나도 뻔하잖나. 색다르고 흥미롭게!
살리에리, 그는 어때?
단 한 순간도 부끄럽게 산 적 없었다. 가난한 작곡가들을 제자로 받아들여 무료로 교육하고, 궁정에서도 명망 높은 음악로서 살아왔다. 자선 콘서트까지 매년 하고 있는데. 모차르트와 사이가 나빴던 건 살리에리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음악가가 그와 마찰을 빚었었다. 그런데도 그 흔한 불화 중 내가 튀어나온 이유가 무엇일까.
살리에리.
살리에리!
살리에리 독을 먹여 모차르트 살해하다!
살리에리 시기하던 모차르트 살해하다!
질투하는 범재, 비운해진 천재
우리에겐 익숙하군, 그렇기에 재밌구만.
굳이 더듬어 보자면, 자신이 그와 부딪치면서도 그와 꾸준히 교류했단 이유일까. 남들은 그런 살리에리의 위에 수많은 말을 얹었다. 자네가 착해서 그래, 볼프강의 그 고약한 성정을 자네 정도가 되어야 맞춰주겠지, 억지로 끌려다니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살리에리 자신이 모차르트를 선택한 것이었다. 외로운 그의 곁에 자신이 있어준 것이었다. 그의 곁엔 아무도 없으니까, 케이크 하나 같이 먹어줄 사람이 없고, 그 나쁜 성격과 농담을 받아줄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안토니오 살리에리 외에는?
참으로 완벽한 가십이군.
참으로 완벽한 서사야.
구역감이 치밀어 올랐다. 살리에리는 왼손으로 입을 막았으나 혀끝에서 올라오는 신물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눈 속 모차르트가 환영처럼 보였다. 높은 굽을 신어도 작은 키에 멋대로 뻗치는 금발, 하나로 묶어 한들거리는 뒷머리처럼 긴 속눈썹의 적안이 뒷짐을 진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즐거워 보였다. 허리를 숙인 자신을 보기 위해 쭈그려 앉아 눈을 맞추며 웃었다. 바닥에 흩어진 금발이 관에 누워있던 그의 마지막과도 겹쳐 보였다. 그렇기에 살리에리는 그를 볼 수가 없었다.
“어때, 내가 죽으니까 좋아?”
천재는 불행하게도
“나는, 아냐.”
“아냐?”
“너를 단 한 순간도 미워한 적 없었어.”
“그랬겠지.”
“너를 진심으로 동료로…….”
“거짓말.”
모차르트가 더욱 길게 웃었다.
“너 아니면 날 받아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겠지.”
미움받아 살해당했다.
“그렇게 생각….”
“했지. 멋대로 챙겨주고, 멋대로 함께하면서 사랑을 확인한 거 아니었어? 고약하고, 제멋대로고, 자랑거리는 그 재능 하나밖에 없는 나를 네가 돌보면서.”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의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깍지 껴 잡았다. 소름 돋을 정도로 그의 손엔 온전한 온기가 있었다.
“네 스스로를 사랑하고, 재능 외의 모든 게 나보다 더 뛰어남을 보여주려 욕망했잖아.”
살리에리는 감히 그 손을 맞잡지도 빼내지도 못했다.
“그래서 안도했구나. 내가 죽어서, 영원히 나를 동정할 수 있게 돼서.”
먼 곳에서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을 선고하는 소리가 그를 심판하고 있었다. 카펫의 무늬만을 보던 살리에리의 파란 눈이 조금씩 달아올랐다. 커다란 물방울이 맺혀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차르트는 그런 살리에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맞잡은 손을 가져가 살리에리의 손등에 볼을 댔다. 여전히도 온기가 느껴졌다. 그가 눈을 감았다. 연노랑색의 풍성한 속눈썹이 얇은 피부 위에 얹어졌다.
“그렇게 울지 마, 내 친구. 나는 너와 있어서 즐거웠어. 나를 시기질투하지 않은 사람은 네가 유일했는걸. 그래서 다 알았는데도 같이 있어 준 거고. 맨날 화만 내는데도 나를 늘 챙겨줘서 어찌나 고마웠는지-”
“뭘 말하고 싶은 건가.”
“응?”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노려봤다. 모차르트는 눈을 감은 채로 대답했다.
“나한테, 뭘 추궁하고 싶은 거냐고.”
“아아.”
그가 눈을 떴다. 처음으로 모차르트를 바라봤다. 그리고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그 눈빛을 바로 기억해 냈다.
“그렇게나 내가 미워?”
어쩔 수 없이, 아니면 약간의 권리로 생각하여, 그렇기에 아주 잠시 그들의 미움에 동조했던 것뿐인데.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 뒤로 네가 나와의 연을 끊었음을 알게 된 것이, 바로 오늘이었다.
모차르트가 손등에서 얼굴을 떼어냈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벌리고선 살리에리의 손등에 입술을 대려 했다. 그러나 살리에리가 무어라고 말하기도 전 그는 연기의 끝자락처럼 사라졌고, 마지막 종소리가 빈을 채우고 사라졌다.
살리에리는 허공과 맞잡은 손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동시에 방울방울 흐르는 눈물을 닦을 수도 없었다. 모차르트의 열기가 여전히 화상처럼 남아있었다. 가녀리게 떨리는 입술을 다물지 않고, 겨울처럼 언 손에 얼굴을 묻은 채 살리에리는 사용인을 불렀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으셨던 거 같은데….”
“아냐. 괜찮아. 그저…… …다음 음악가 모임이 언제라고 했지.”
“모임이요? 이번 주 금요일입니다만….”
“참여한다고 연락해 줘. 준비도 부탁하고.”
“네? 하지만 주인님. 당분간은 참여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텐데요.”
“아냐. 괜찮아. 제자들에게도 다음 주부터 레슨을 재개할 테니 준비해 두라고 편지 보내고.”
“주인님….”
“준비해 줘.”
“……네.”
사용인이 나갔다. 살리에리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눈물이 흘러 나갔다. 자신이 본 모차르트가 환영임을 그는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어떤 명의를 데려오더라도 모차르트의 사망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리라고 확신했다. 100년이 훌쩍 지난 미래가 되더라도. 그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선택당했으니. 그리고 그 이유는 안토니오 살리에리 자신이었다.
너를 동정하지 않았던 단 한 순간의 죗값이었다.
다시 종이 울렸다. 살리에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모차르트는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의 앞에서 보이지 않을 터였다. 자신에게 남은 것은 죗값이었다. 살리에리 스스로가 일궈낸 가십거리를 견디고, 모차르트의 죽음을 버텨내는 일. 자신이 이제 할 수 있는 건 그런 것뿐이었다. 종소리마저 잠잠해진 빈은 여전히 고요했고 평화로웠다. 그가 없음에도. 우리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천재는 불행하게도 동정받아 자살당했다.'라는 문장 하나를 적고 싶어서 이렇게 길게 적었습니다. 정작 이 문장은 제대로 들어가면 유치해질 거 같아서 다른 문장으로 변형했지만요.
시유 오리지널 버전으로도, 박범님의 커버를 들으면서도 저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인 범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댓글에서도 '그 당시에는 오히려 살리에리가 더 명망 있었기에 모차르트가 질투했었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함께 만든 곡이 있었다', '모차르트와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그를 미워한 적 없었다는 인터뷰가 있다' 등의 내용이 많았던 게 참 인상깊었습니다. 동시에 그 스트레스로 인해 말년에 치매가 온 뒤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는 글도 봤고요.
얕게나마 자료를 찾아보면서, 궁정에서도 성격 불화로 오래 일하지 못했던 모차르트와 달리 살리에리는 아주 오랫동안 궁정악사로 지내며 다양한 선행을 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성격이 좋지 않았던 거에 반해 살리에리는 원만한 성격으로 모두와 잘 지냈었단 내용도 확인했고요. 그래서 저는 모두가 시기질투하던 모차르트를 유일하게 동정한 사람이 살리에리가 아니었을까? 라는 망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의 동정을 오히려 거부하지 않았고요. 어쩌면 더 동정받고 싶어서,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불쌍하게 보는 살리에리에게 더 동정할 거리를 줬을지도 모르고요.
그러다 딱 한번, 분위기에 휩쓸려 살리에리가 사람들의 미움에 동조했을 때 모차르트가 실망하고 연을 끊은 뒤, 마지막까지 그에게 동정받기 위해 음독자살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게 이야기의 내용…이나, 이것마저 살리에리가 만든 환상일 수도 있죠.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살아있는 자만이 이야기를 조작할 수 있으니까요.
정말 말 그대로 제로부터 만들어낸 날조 2차창작입니다.
어렀을 적 제가 누군가를 보고 저 사람 불쌍하다고 했는데, 어머니께서 사람한테 불쌍하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사람을 함부로 동정하면 안 된다, 지금까지도 제 생각에 영향을 주는 말이에요. 이번 글을 적을 때 자주 그 말이 생각났습니다.
우리 모두 책임질 수 없다면 사람을 구원하지 맙시다. 구원했다면 끝까지 책임지는 얼은이 되도록 합시다. 헛소리입니다. 감사합니다.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