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일타브] stay with me.
사랑을 자각한 순간.
발더스 게이트 3의 게일 데카리오스 X 타브(여) 2차 창작입니다.
세계관 설정값을 잘 몰라요… 오직 3만 해본 초짜임에 유념해주세요.
*익숙한 느낌이 듭니다. 다정한 말과 손길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처럼, 따뜻하고 편안합니다.
아, 코를 간지럽히는 장미수의 향과 행복감이 느껴집니다. 위브의 한 조각이 혀끝에 달콤하게 녹아드는군요.*
풀밭에 앉아 나무에 등을 기댄 채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게일은 보는 사람이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자리에서 일어나 본인 몫의 텐트로 들어가는 타브를 놀란 눈으로 응시했다.
[게일X타브]
stay with me
씻으러 가기라도 하는 듯, 접힌 옷가지와 노란색의 비누를 얹은 단출한 짐을 품에 안은 그를 바라보며, 게일은 헛기침을 내뱉었다.
하필이면 어제 네가 열흘간 물가에도 가지 않은 걸 안다고 말할 건 뭐람. 그가 씻으러간다는 사실을 인지하니 낯이 뜨거워졌다.
괜한 소리를 했어. 씻지 않아도 좋은 향이 난다느니 어쩌니… 열 살 먹은 어린애도 제가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이런 말은 하지 않을 터였다.
게일은 그가 지나간 자리를 한참이고 응시하다가 이상하게 목이 타, 물병의 마개를 열고 안에 담긴 것을 훌쩍 들이켰다.
혓바닥이 미끈대는 기분이 들어 차가운 액체가 목을 타고 심장 부근을 거쳐 뱃속으로 내려가는 감각에 예민하게 촉을 세우고 있자니 명치가 갑갑하게 조여든다.
“…?”
그에게 걸어둔 주문이 지금 쓰일 일이 뭐가 있다고?
#
저는 게일을 좋아한다.
뭐,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어봐야- 야영지의 모든 이들이 그래서, 뭐 어쩌라고? 란 반응이나 할 문제겠다만- 아무튼 제가 느끼는 가장 중대한 문제는 그것의 방향성이었다.
아스타리온이나 섀도하트가 듣는다면 필시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 채로 입꼬리를 당겨 보일, 그런 방향이라는게 중대한 문제다. 일그러진 포털에서 그를 꺼낼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마음이 음습하진 않았을텐데.
그렇다면 언제부터지? 그가 제 거울상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댈 때? 아, 그것보다 조금 더 뒤에- 손 위에….
타브는 그의 곧고 긴, 매끄럽고 윤곽이 도드라지는 매력적인 손 위에서 빛나던 미스트라의 흉상을 떠올리며 제 밝게 빛나고 있는 손을 둥글게 휘저었다.
그래, 그 순간이다. 그의 길고 나폴대는 아름다운 속눈썹이 그리움을 잔뜩 머금은 눈동자를 감췄다가 드러냈을 때. 짙은 슬픔에 뒤엉킨 외로움, 그리움을 빚어낸 빛과 그가 보이는 조금은 산뜻한 언동.
*입맞춤에 대한 기대, 그리고 평화 속에 숨어드는 기쁨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위브가 그와 당신을 연결합니다. 너무도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군요.*
그가 제게 위브에 집중해보라고 했던 밤에….
타브는 붉어졌을 제 아랫입술을 감쳐물고 손끝을 위로 올려 주문을 맺었다. 제 앞에는 일전 그에게서 배웠던 그의 거울상이 서있었다. 타브는 잠시간 그의 거울상을 응시하다가 그를 끌어안았다. 미스트라가 선택할 정도로 뛰어난 본인만큼의 주문은 역시나 어려웠던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조금 흐리멍텅한 촉감과 제가 조금 더 훌륭한 위저드였으면 그의 거울상이 제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정도까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저 이대로 가만히… 그를 끌어안은 채로 이 밤을 느끼고 싶었으니까.
“게일….”
나지막히 흘러나오는 이름에 귀가 간지러웠다. 분명 제 목소리건만 어쩜 이렇게까지 제 것 같지가 않은지. 절로 뺨에 열이 돌고,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와 쥐었던 위브에서 느낀 장미수의 향이 가득해 숨이 찼다.
게일이 제게 가르쳐준 순간에서 멈추어 있는, 가만히 미소짓고 있는 게일의 거울상을 꼭 끌어안았다가- 그의 반투명한 입술에 제 입을 가져다 댄 타브는 손끝에서 흐트러지는 거울상의 흔적을 매만지며 가빠진 숨을 골랐다. 이름마저 기억 속에서 흐릿해진 첫 연인과 첫 입맞춤을 했을 때에도 이런 기분이 들진 않았는데.
“아니, 이건 도둑이 제 발 저린 거지.”
더는 주문에 집중하지 못한 타브가 잔 빛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거울상의 잔재를 몽롱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마에서 열이 나는 것 같다. 남의 거울상을 흉내내는 것이 쉬운 일이었다면 모든 위저드가 범죄에 가담해있을 것이라는 게일의 말을 떠올리며 풀밭에 주저앉아 더운 호흡을 추스르자니 가까이에서 풀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심장이 철렁해 황급히 고개를 숙인 타브는 찰나의 순간, 갖은 최악의 상상을 했다.
1. 아스타리온이 제 꼴을 보고 비웃는다.
2. 밤마실 나왔던 아스타리온이 제 꼬라지를 보고 비웃는다.
3. 피를 마셔 취한 채 야영지로 돌아오던 아스타리온이 제 음습한 헛짓거리를 보고 소리내어! 비웃는다.
4. 아스타리온이 큰소리로 비웃고 야영지에 소문낸다…!!!
“잠깐만, 아무 말 하지 말아봐…!!”
“오, 그걸… 네가 원한다면.”
“?!”
-훔쳐보는 시선, 갑자기 뛰는 심장… 그런 사소한 것들이 더 귀할 때도 있는 법이야.
타브가 놀란 눈을 크게 뜬 채 쉼없이 제 애를 태워오던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최악의 상상’ 목록에 들어가지도 않은 당사자의 등장이었다.
“이건 선택지 목록에 없었는데….”
“이거 말이야?”
게일이 양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대꾸했다.
“왜 여기 있는거야? 아니지. …봤어?”
“어떤 행동을 본 건지 묻는 게 맞는 것 같지만, 그래. 아마도.”
위브를 느껴보겠냐던 밤과 비슷하게 산뜻한 목소리의 그가 검지 손가락을 치켜올린 채로 대답해왔다.
남의 거울상으로 해서는 안 될 몇몇가지의 주의사항을 알려줄 것만 같은 포즈에 타브가 비어져나오는 떨리는 목소리를 참아내며 표정을 이상하게 구겼다.
“큼, 흠…그게. 선생님이 워낙에 출중해야 말이지? 거울상 연습을, 으음, 몰래. 해보려고.”
“내가 본 거랑은 조금 다른 것 같네. 참고로 한마디 더 하자면, 본인의 거울상을 남에게 가르쳐 줄 때는 약간의 주문이 동반되는 게 일반적이거든.”
“주문?”
“상대가 내 거울상을 만들어냈을 때 위브가 내게 감응하는… 일종의 알림 장치 같은 것 말이야.”
그의 말에 타브가 입을 벌리며 혀를 달싹였다. 그러니까 그 말은….
“오래가진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재능이 있는 편이네. 미스트라가 아닌 누군가가 내 거울상을 만들어내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어느 사이엔가 무릎을 꿇은 저자세가 된 타브가 허벅지 위에 양손을 그러모아 얹은 채로 눈을 질끈 감았다.
“잘못했어.”
“잘못? 세상에, 타브. 진심이야? 그게 잘못이라고? 다시 이야기 해봐.”
손을 감싸오는 온기에 눈을 뜬 타브가 제 앞에 저와 같은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은 게일을 시야에 담으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거울상을 매만지던 순간과는 전혀 다른, 단단하고 안정적인 감촉과 두근거리는 듯한 손바닥 안- 마음을 자각하게 만든 빛을 담은 눈이 제 눈앞에 있었다. 그는 그런 제 얼굴을 보고 무언갈 깨달았던지 아주 낮고 상냥하게 속삭였다.
“제대로 대답해줘.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정말 내게 사과하고 싶었어?”
타브는 그의 손에 쥐여진 제 손이 연신 움찔댄다는 것을 깨달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제 대답은 위브를 매개로 그와 동화되었던 순간부터 정해져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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