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유희

낭만배반

커미션 [활자유희] 타입 작업 샘플

새장 by 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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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다발 도시 도쿄의 풍경은 번잡하면서도 화려했다. A는 언제나 그 도시에 있었지만, 거미줄같이 뻗은 길을 제 발로 밟아본 적은 극히 드물었다. 그가 이 넓은 도시에서 누볐던 면적이란 사실은 한 집의 반경을 크게 벗어나지도 못할 것이다. 오버드가 득시글거렸던 저택은 언제나 레니게이드가 공기에 맴돌았다. 일반인들은 상상하지 못할 미세한 감각이 시시각각 몸을 죄이고 호흡에 턱 걸리는 기분을 아는가? 그런 감옥 같은 저택에서 A는 정성스레 사육되고 있었다. 잘 닦인 마룻바닥, 거실과 2층을 잇는 층계참, 발소리를 죽인 사용인들의 인기척과 창가에서 시드는 일 없이 숨이 멎은 꽃병 속 장미들. 이 정교한 온실에 가둬진 이유란, 아이러니하게도 밟아본 적 없는 도시를 두루 손에 넣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퓨어브리드 노이만으로 선별해 들인 가정교사는 철 지난 야만의 신봉자였다. 그는 시대에 한참 뒤떨어지는 제왕학을 교양이자 철학 삼으라며 주입했다. A는 그가 원문을 달달 외게 시킨 군주론의 120페이지를 아직도 기억했다. 사람들은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드는 자보다 사랑받는 존재로 만드는 자를 해칠 때 덜 주저합니다……

군주가 만약 사랑을 얻지 못한다면, 증오를 피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구닥다리 설교를 떠받들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 말만큼은 동의했다. 이 얼마나 강력한 진실이란 말인가. 사랑이라는 의무가 아니라면,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라도 결속시켜야 얻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사랑도 두려움도 사지 못한다면 사람 위에 설 수 없다.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타자란 그저 증오의 대상으로 전락할 뿐이라는 것. 적어도, 텐노 가의 가주는 A에게 두려움을 사지 못했다. 또한 사랑을 주고받지도 못하는 피붙이였기에 단지 인피를 뒤집어쓴 외압의 화신이었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 A는 그를 견딜 수가 없었다. 스트레스는 레니게이드의 발증을 불렀다. 가문 모두가 고대하던 일이었으나, 글쎄. A는 그 기대조차 경멸했으므로 가족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레니게이드를 덧쓰고 힘을 휘둘렀다.

A는 겁에 질린 친구를 달래주는 일과 겁에 질리게 한 것을 치워버리는 일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효과적 가치에 있어 두 행동은 동일한 선상에 있다. 위로하는 진실과 보호하는 거짓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윤리와 도덕에 선악이 있다면 그 이분면을 가르는 선을 넘는 일이 A에게는 너무도 가벼웠다. 둘의 차이는 단지 종잇장만큼 얇은 금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A는 텐노를 향한 전복적 시도로, 그들이 제일로 여기는 가치를 배반하기로 했다. 파괴와 모략으로 군림하려는 가족을 떠나, 사회에 스스로 찬 목줄을 쥐여주는 히어로에 투신함으로써. 빌런 출신이 이미지라도 세탁한단 말인가? 현존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속죄 없이, 껍데기뿐인 면죄부를 탐하는가? 그런 질타가 날아든다고 해도 A는 아무렇지 않았다. 감정도 명분도 윤리관도 모두 신파극의 연출적 장치 같았다. 흔해빠진 것들. 누구나 써먹는 클리셰 또 진부한 레퍼토리. 신파는 더한 신파를 덧씌우면 옅어지는 법이고 A는 아주 요란하고 격정적인 인물을 연기하기로 했다. 거짓 눈물을 흘리며 연기를 연기하는, 텐노와 세상을 속이는 배반자.

이전과 달라질 자신에게는 거짓말쟁이 괴도, 그런 익살맞고 경망스러운 이름이 어울렸다. 전혀 자신답지 않다는 점에서 가장 새로운 자신에 걸맞다. 이제 거울 앞에 설 때, 그는 무색의 소년이었다고는 상상할 수도 없이 화려한 차림새에 머리칼을 길게 늘어트린 사내이다. 눈동자는 가면 사이로 반짝이지만 눈썹과 이목구비를 가려 흐릿한 인상의 남자. 축하를 바라는 생일이란 만우절이라 모두를 의심과 거짓으로 희롱하는 사람. 그가 입에 올리는 진실이란 현란한 거짓과 뒤섞여 도무지 분간할 수 없다. 이 수수께끼 ‘팬텀’의 정체를 캐내려는 자들은 하나같이 실패했는데, 그들의 시도야말로 유령과 술래잡기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도쿄 시민의 거진이 그의 이름을 알지만 그들 중 누구의 부름도 A를 붙잡을 수는 없다. 이제는 텐노조차 A를 지배할 수 없었다. 어떤 존재도 결코 그를 기만하지 못할 터였다. A는 애초에 누구를 믿지도 않으므로. 믿음 없는 자에게 구원 없으리니 A는 구원을 믿지도 않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믿음이란 타인과 결속될 뿐인 거추장스러운 개념이다. 의심받는 히어로로서 응당 신비감을 지키며 호기심을 채워주는 것이다. A는, 즉각적인 흥미를 제공하는 대가로 쏟아지는 갈채를 탐하기로 했다. 이 화려한 영웅 노릇조차도 결국은 연기였다. 그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자신의 편조차도.

“하지만 저는 A 님의 편이에요.“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긴다. 흰 손가락은 곧 부러트릴 수도 있을 것처럼 연약하게만 보인다. 그런 무른 다정함을 한껏 머금은 음성으로, B는 말했다. 흔하게 희극적인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또는, 그저 헤픈 다정에 불과하리라고. 그건 그의 몸에 밴 부드러운 말씨, 타인의 몫을 먼저 챙기는 버릇과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오랜 시간 주입당한 학습의 여파일 것이다. 누가 천성부터가 선하겠는가? A는 성선설은 터무니없이 순진한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유토피아처럼. 이상이란 현실이 아닌 허구일 뿐이었고. 엷은 밀빛 머리칼처럼, 간악한 어둠에 오염되어 본 적 없는 순진한 남자가 지껄이는 말이리라고. 표면뿐인. 그야 가짜 유령의 거짓된 이름을 편들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건 실체 없는 것을 옹호하는 것으로 하등 무용하며 이조차 허울에 불과하다. 그래서 A는 쇼맨십을 한 조각 풀어 넣은 미소로 적당히 감사 인사를 했다. 비웃음은 그의 입꼬리를 오래도록 지탱했다.

그러나 소노가미가 진실로 밝혀진 날은 또 어땠던가. 린네였던 청년은 B로 탈피하나마, 제 허물만은 버리지 않았다. 그는 선하고 올곧은 B인 동시에, 언제나 더럽고 비열한 소노가미였다. 그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그 낙인을 언제나 증명처럼 내걸고서 살았다. 주홍 글씨와 다를 바가 없는데도. 소설 속 주인공과 달리 B는 그걸 부정하거나 외면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제 이름을 입에 올릴 때마다 원죄를 시인하는 셈인데도. 악인이 선하기 위해 노력하면 안 되나요?

“죄인도 선의를 꿈꿀 수 있잖아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보려는 시도 정도는요.”

“헤에, 그건 누구에게 나은 삶일까나~?”

단지 자기만족에 그칠 뿐이잖아. 단정하듯 덧붙이기 전에, B가 입술을 뗐다. 그의 눈꼬리가 접히면 웃음이 번지는 것처럼, 아주 당연한 것처럼 흘러나온 말.

“누구라도요.“

그만큼 결연함과 절박함이 공존하며 조화로운 문장은 없을 것이다. A는 그때 유리처럼 투명한 B의 눈동자에 반사된 자신을 보고 말았다. B의 그 시도가 누구에게라도 가 닿는다면, 자신의 삶이라도 낫게 만들 수 있다면…….

이상하게 그 말에, 그 이후로는 B의 모든 언행에도…… A는 조소할 수 없었다. 조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했다. 그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웃는다는 것은 모든 판단이 선행된 뒤의 평가와 같다. 그러면 파악할 수 없는 미지를 누가 섣부르게 단정하고 조롱할 수 있는가? 오직 바보와 멍청이들만이 그러하다. A는, A는 바보가 아니다. B 같은 존재가 되는 것. 그와 같은 태도로 삶과 세계를, 타인을 견지하는 것. 전부가 얼마나 아득하고 난삽한지만큼은 사무치게 이해해 버렸기 때문이다. 가짜인 그는 결단코 B와 같이 진실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토록 진지하게 세상을 마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그의 세계는 조금 비틀렸다. 다른 말로는, 팽창했다.

B를 품는 것이 결코 거짓을 내던지는 것과 등치 될 수는 없다. A는 자신의 이름을 쉬이 놓지 않는다. 편하게 여기는 것, 사랑을 느끼는 것, 그리고 진실한 것은 모두 별개로 성립한다. 유기적일 수 있지만 무엇 하나 불가결하지 않다. 그러므로 A는 B에게, 마치 플레잉 카드로 도둑잡기를 하는 듯한 태도를 이룬다. 조커가 없지는 않아도, 안전한 카드가 훨씬 많은 손 패를 내밀 듯이……. B는 차라리 바보라고 하는 게 신빙성 있을 정도로, A를 지독하게 믿었다. 정확하게는 받아들였다는, 수동적인 서술이 어울리겠으나 그 수용조차 B의 선택이고 자의임은 명백하다. A는 가끔 B가 제 모든 모습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선택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한다. 아니, 그게 맞으리라고도 여긴다. 프시케가 등불을 든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저 두려움을 밝히려는 행위였을까? 순수한 호기심일까? 남편을 우호적으로 여기는 데서 나온, 이끌림의 탐닉은 정녕 없었을까? 영혼의 작동 원리를 해체하면서 A는 자신을 깨닫는다. 어쩌면 B를 파고든 것은 절대적으로 보이는 선에 대한 혐오였나? 그저 무한한 이타성과 선의를 향한 탐구심이었나? 무던한 살가움에, 밀랍 칠 되어 굳어버린 것처럼, 붙박인 이끌림은 아니었을까. A는 이제 웃을 수 없다. 입가에 맴돌던 조소가 더는 없다. 그는 이제 과거 B를 비웃던 자신을 경멸할 뿐이다. 두려움을 잊으려.

B는 A를 받아들일 뿐이다. B는 A를 침범하지 않는다. B는 A를 붙잡지 않고 A와 결속될 수도 없다.

발밑에 괸 그림자가 전에 없이 짙게 검을 때, A는 깨닫는다. 그림자는 물체라는 매개 없이 빛과 잇닿을 수 없다. 그들을 맺는 꼭짓점은 거짓말이다. A라는. A는 그 이름 아닌 자신으로 B에게 매이고 싶지 않다. 매일 수도 없다. 그가 분간 없이 산란하는 어둠이며 유랑하는 혼돈이기에. 실존적인 개념 또 관계로 정의되고 싶지 않다. 그러다가는 또다시 배반하고 싶어질 것이므로. 그것이 더블크로스로 자라난 A의 삶의 방식이자 실현 가능한 최대의 자유의지다. A는 이 날카로운 제 천성을 B에게 겨누고 싶지 않다. 까닭에 B와 가까이 있고 싶지 않다. 가까워지고 싶은 제 마음이 세상 무엇보다도 간교하고 끔찍하게 느껴질 만큼이나. 혐오가 고이고 고여 발치 아래 웅덩이처럼 번져 있다. A는, 그런 자신이 조금은 이채롭다.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증오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B도 그렇다는 것 또한. 이제 그들은,

사랑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A도 그것이 낯모를 불가해라 여긴다. 감염되었다 한들 잠복으로 알아차리지도 못할 것처럼. B의 뺨은 언제나 장밋빛이고 A에게 유일을 내어주지 않는다. 무엇도 되지 못하는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결속은 없다. 펜촉과 종이가 맞닿은들 언제나 마침표를 찍고 떨어지는 것과 같다. 그것들은 묶이지 못한다. 펜을 내려놓고 편지지를 훑은 A는 마침내 일어선다. B는 곤히 잠들어 있다. A는 그의 꿈이 끝날 때 함께 사라진다. 로맨틱한 퇴장이지. 진정으로 자신답지 않으면서도 지독하게 A다운 일이다. 그러므로 B는.

자신을 붙잡아 구속하지는 않겠지. 다정하므로. 서운할지언정 절대로 선을 넘어오지 않을 것이다. 가해자도 공범자도 B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A는 도망하기로 한다. 그는 이기를 빌어서야 B와의 교류, 관계의 책임 따위에서 온전하게 자유로울 수 있다. B의 그 다정을 이용하겠다며. 그 선하고자 한 죄의 종자를 기어코 피해자의 자리에 올려둔 채로. A는 종잇장 하나를 허물처럼, 또 자백처럼 남겨두고 홀연히 떠났다.

새벽의 도쿄 거리를 배회하며, 하늘 아래 홀로된 청년은 또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드는 자보다 사랑받는 존재로 만드는 자를 해칠 때 덜 주저합니다…… 하지만 나는 어떤 B라도 해칠 때 두려워하지 않아. B도 두렵지도 증오스럽지도 않아. 그리고 우리에게는 사랑이 없으므로. 이율배반조차 성립지 못하는 밤 속에서, 청년은 텐노도 A도 아닌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비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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