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14] 키다리 아저씨
빛전에메 현대AU / 키다리 아저씨?
파이널판타지14 빛의전사X에메트셀크 드림 - 내용은 NCP에 가까움
드림주 이름, 외형 등 개인설정 언급 있음
현대AU + 키다리 아저씨 설정 (성애적 언급 없음)
키다리 아저씨
칼리타 루인은 고아였다.
특이하게도 4살쯤 되는 나이에 고아원에 버려졌는데, 부모에 대한 단서도 없고 기억도 없어 그대로 천애고아가 되고 말았다. 다행히 고아원은 국가 지원을 받는 제대로 된 곳이었고, 아이는 부족함 없이 쑥쑥 자랐다.
다만 아이는 어쩐지 독특한 점이 있었으니.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거의 없었다. 좋다 싫다 하는 것이 없고, 다른 아이처럼 울거나 투닥거리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이름— 고아원에서 붙여준—을 아무리 불러도 반응하지 않았다. 고작 4살(아마도) 먹은 아이가 이렇게 구니 선생님들은 한숨 덜면서도 기묘한 꺼림칙함을 느꼈다.
그렇게 아이가 고아원에 맡겨진지 꼬박 2년이 되는 날,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어찌 알았는지 이 기묘한 아이의 후원자가 되고싶다는 이는 자신에 대해 가타부타 설명하는 것 하나 없이 막대한 후원금을 보냈다. 정체불명의 후원자를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고아원같은 복지시설은 돈 잡아먹는 괴물이다. 나라의 지원과 선의만으로 운영되기엔 벅찼다.
많은 고민 끝에 고아원과 아이는 든든한, 그러나 수상한 후원자를 얻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후원은 계속됐다. 정확히 정해진 날에 정해진 금액이 고아원으로 들어왔다. 가끔은 아이를 위한 책이나 옷 같은 선물이 배달되기도 했다. 그가 ‘후원’한 것 중에는 아이의 이름과 생일도 있었다.
“지금 이름은 싫어요. 아저씨한테 정해달라고 해요. 그걸로 할래. ”
어른들은 난감해했지만 아이는 고집을 부렸다. 평소 이런 고집을 부리는 일이 흔치 않았다. 게다가 글을 제법 잘 읽고 쓰면서도 제 이름은 항상 틀리고, 부르는 것에도 한 박자씩 늦게 반응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정해진 것이 9월 1일에 태어난 칼리타 루인.
제 생일과 이름을 들은 아이의 반응은, 함께 지낸 5년간 본 적 없는 밝음이었다.
칼리타 루인은 언제고 제 하나뿐인 후원자를 만나고 싶어했다. 성별도 나이도 모르는 이를 동화 속 ‘키다리 아저씨’라 부르며 선생님을 졸랐다. 후원자는 칼리타와 직접적 연락을 취하진 않았으나, 선생님을 사이에 끼고 반년에 1번씩 편지를 주고받았다. 주 내용은 후원금의 사용 내역 등 어른의 이야기였다. 다만 한번씩 칼리타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 끼어들었다.
“키다리 아저씨라고 불러도 돼요? ”
— 마음대로 해라.
“왜 나한테 이렇게 돈을 많이 써요? ”
— 약속한게 있어서.
“나랑 만날 생각 없어요? ”
— 네가 좀 더 크면, 그때 생각해보지.
“내가 뭘 했으면 좋겠어요? 공부 열심히 하기, 착하게 크기, 뭐 이런 거? 원하는 거 하나도 없어요? ”
— … 네가 하고싶은 걸 마음껏 해. 하기 싫은 건 안 해도 괜찮아. 착하게 굴 필요도 없어. 그냥 그렇게, 자유롭게 살아라.
이 말이 결정적이었을까. 칼리타 루인은 정말 마음 가는 대로 살았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말하면 언제든지 필요한 만큼의 지원이 들어왔으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고아원 아이가 꿈꾸기 힘든 온갖 교육을 받고, 취미를 즐기고, 심심하면 여행을 떠났다. 어릴 적부터 이어져온 칼리타 특유의, 관심가는 것에 몰두하고 그 외에는 아무래도 좋은 성정은 나아지기는 커녕 점점 심해지기만 했지만, 어쨌든 그런 몇 가지 문제만 빼면 무난하게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다.
집을 떠날 때가 되었다.
“자. ”
독립을 앞둔 칼리타에게 선생님이 내민 건 어느 주소였다. 라노시아의 안갯빛 거주구. 아주 옛날, 7성력 시절 풍경 좋은 바닷가에 만들어진 모험가 거주 지. 현재는 있는 집 집안 사람들이 모여 살기로 유명한 동네였다.
“여기 누구 있어요? 내 친부모라도 찾았나. ”
“그러면 좋겠지만… 네 ‘키다리 아저씨’가 준 주소야. 네 집이라고 하더라. ”
고개를 확 드는 얼굴이 유독 환하다. 오랜지색 눈을 반짝이고 두 귀를 쫑긋거린다. 긴 흰색 꼬리가 위로 바짝 올라간다. 그 비싼 동네에 내 집이 있다느니 하는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저곳에 가면 아저씨를 만날 수 있나, 하는 생각 뿐. 그게 표정에 훤히 보여 선생님이 칼리타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칼리타. 네가 뭘 생각하는지는 알겠지만, 조심해라. 어린 여자 혼자 나가 사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하물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너보다 나이 많은 남자와 단 둘이 만나는 건 더더욱. 너는 하나에 꽂히면 주변을 전혀 못 보니까… ”
선생님과의 마지막 인사였다.
일주일 후, 칼리타는 평생을 지내온 시설을 떠났다. 모르도나에서 버스를 타고, 카르테노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림사 로민사에서 다시 1시간 가량 택시를 탔다. 이동에만 꼬박 한나절이 걸려, 주소에 도착했을 때에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모래사장 너머 넓게 펼쳐진 수평선 아래로 태양이 떨어진다. 붉게 타오르는 하늘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서늘하고 습한 바닷바람이 긴 흰색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하얀 벽돌 쌓인 길을 지나고 지나,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곳에 홀로 동떨어진 커다란 단독 주택. 발 밑에서 사박거리는 잔디. 연보라색 꽃잎을 흩뿌리는 등나무. 목적 모를 나무인형과 다 무너진 헛간. 자그마한 연못, 벤치와 테이블, 조명…
한 발짝씩 넘어 현관 손잡이를 잡고 돌린다. 이미 열려있던 듯, 찰랑이는 풍경 소리와 함께—
“어서 와. 영웅님. ”
어떤 기다림은 시대를 뛰어넘는다. 또 어떤 기다림은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다.
신과 영웅의 시대가 저물어, 동화로만 남게 된 때.
이제는 자신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세계를 구할 힘도 없는. 그저 갓 성인 된 그의 영웅.
먼 옛날 나눈 약속이 끝나는 이 순간을 오래도록 기다렸다고, 에메트셀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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