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이설] 사고가 갑자기 왜 곰이 된건데 저자야 제발

그렇게 되었다


유이설은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거대한 곰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청명의 입꼬리가 경악으로 인해 마구 떨렸다.

"그, 그러니까……."

"……."

"사고가 갑자기 왜 곰이 된거냐고오오오오!"

절규하는 청명의 눈 앞에 있는 것은 무복을 입은….

유이설, 아니 검은 곰이었다.

 

 

"청명아, 이설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 아까 같이 있었다던데."

"몰라.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그리고 언제 돌아올지도……."

"사매가 어디 떠나냐?"

"사숙이 뭘 알겠어."

"왜 또 지랄이야?"

그 때, 백천은 보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툴툴대기만 하는 청명의 뒷 편에 어떤 검은 물체가 튀어나오는 것을. 섬전처럼 튀어나온 곰의 검은 앞발이 청명의 정수리를 콩, 때렸다.

“……?”

야수궁에서 데려온 동물…?

아니, 저건 곰이다. 곰 잡는 것이 일인 녹림도들도 서로 앞다투어 도망칠 만큼 크고 우람한 곰. 그것도 화산의 도복을 입고 있는. 

“그엉 크릉.”

“지금 사고만 힘들어? 나도 심란해 죽겠는데 어떻게 말이 곱게 나와.”

“사고…? 저, 저 곰이…….”

그보다 지금 둘이 대화한건가?

“크릉. 컹.”

백천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곰이 자신이 입고 있는 소맷부리를 살짝 뒤집었다. 소매 안쪽에는 자수로 번듯하게 수놓인 '劉怡雪(유이설)'이 있었다. 

“사매…? 사매라고?”

“크응.”

“...곰인데?”

“크르릉...”

곰이 무언가를 증명하겠다는 듯이 제 허리춤에 있는 검을 들었다. 검은 술이 달린 매화검은 곰의 뭉툭한 손아귀를 벗어나 툭, 떨어졌다.

“…….”

“아이고, 검이 안 잡히네….”

곰이 아무 말(?)도 없이 풀썩 주저앉았다. 고개까지 떨구며 절망스러워하는 것을 보니 저것을 도저히 짐승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짐승의 몸에 갇힌 사람이지.

백천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청명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사매가 왜 곰이 된거냐…?"

“낸들 알아?”

 

 

“아미타불, 이설 시주가 어째서 곰이…….”

“사고가 곰이 되었다고요? 왜요?”

“사고가 왜 곰이 된 겁니까?”

얼마 가지 않아 나머지 오검과 혜연 또한 유이설에게 닥쳐온 비극을 알게 되었다. 살면서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광경에 이들 역시 비슷한 말을 내뱉었다.

“사고…! 왜…! 어째서!”

재빨리 달려 나온 당소소가 곰의 맥을 짚어보았다. 작은 손이 검은 털에 덮혀 보이지 않을 지경이지만, 맥은 어찌어찌 잡히는 듯 했다.

“사고 맞아요. 맥이 조용조용한게 딱 사고 맥이에요.”

“맥도 그런게 있냐?”

“있죠. 사형 맥은 조금 산만해요.”

“이익….”

혜연이 측은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서 그나마 가장 사람 같은 이가 하필이면 이런 봉변을….”

“스님…?”

“가혹한 운명입니다, 아미타불.”

“이런 경우엔 대체 어떻게 해야... 역시 장로님들과 장문인께 말해야 하는거 아닙니까?”

그때, 유이설의 앞발이 조걸의 얼굴을 후렸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입을 막으려 한 것이 힘조절에 실패한 것이었다.

“읍...!”

“끙끙킁.”

“사고가 그건 원하지 않나봐요. 아무래도 장문인께 곰이 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겠죠.”

“낑….”

유이설이 곰보단 상심한 강아지가 낼 것 같은 소리를 내었다.

“아까 내가 장문인께 간다 하니까 발톱 꺼내서 공격까지 했다고.”

“크르르르르릉…….”

“아, 안가 안가. 안 간다고!”

어째 곰이 되고 나서 말이 더 많아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동물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까…?”

“지금 눈 앞에 있잖아.”

“어떻게 돌려놓죠? 방법은 있는 걸까요.”

“이제부터 기록이라도 뒤져봐야지.”

 

“내가 동쪽에서 온 기록까지 다 뒤져봤어. 쑥과 마늘을 먹으면 곰도 사람이 되기도 한다던데?”

“정말요?”

“어. 근데 굴 속에서 참선하면서 먹어야 한대, 최고 백 주야 동안.”

“그거 그냥 면벽 수련 아니냐?”

“그런데 이대로도 괜찮지 않나? 몸은 곰이지만 단련 훈련도 잘 따라올 듯 하고.”

“끄릉크어어어엉.”

“죽고싶냐는데요?”

“하긴 곰인 채로는 검을 못 잡긴 하지. 말도 못하고.”

사람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될 소리이긴 했다.

“서양에서 넘어왔다는 기록을 보니 간혹 저주나 천벌을 받아 동물이 되었다는 전설은 있다.”

“그럼 뭐 그거 푸는 해결책은 없어?”

“…….”

“...세간이나 전설에는 간혹 이게 해결책이었다 도는 것이 있다긴 하나 이것이 도관에서 권장해도 될지는 잘...”

“됐고 말하기나 해봐.”

“접문.”

“접 뭐?”

“사랑하는 사람과의 것으로.”

“사고, 백 일만 참아. 내가 쑥이랑 마늘 구해올게. 일단 오늘은 주방에 있는거 좀 빌리고 나머지는 재경각에 말해서 사고 용돈으로….”

“크르르르릉!”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방법이라고 싫어하는 것 같아요.”

“아 사고 어쩔 수가 없어, 방법이 이것밖엔 없잖아! 애초에 도사가 뭔 사랑의 접문이야! 도사는 그런 거 없다고! 괜찮아. 말이 백일이지 이십일일만에 사람 되기도 한대.”

“크르르릉!”

“아악! 문 부수지마! 부수면 들킨다고!”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다들 각자의 업무와 수련이 있어 유이설의 상태를 숨겨가며 계속 그녀를 돌보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결국 유이설은 인적이 드문 봉우리에 은신(?)을 해야만 했다.

청명이 유이설을 찾은 때는 하늘이 완전히 새까매진 후였다.

“자 사고, 일단 삼일 치 구했어. 먹어봐.”

유이설 앞에 세 묶음의 마늘과 쑥이 떨어졌다.

“낑….”

“사고 은근 편식 많이 해. 이거라도 먹어야지!”

유이설이 쑥을 입에 물고는 잘근잘근 씹었다.

“퉤.”

청명은 자신이 본 동쪽의 기록을 떠올렸다. 곰과 함께 동굴에 들어간 호랑이는 결국 뛰쳐나가, 사람이 되지 못했다.

어쩌면 사고도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왜 자꾸 고집부려. 그렇다고 사숙이 말한 방법을 시도해볼 순 없잖아. 우린 도사인데! 사고가 어디 정인이라도, 하다 못해 남몰래 흠모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몰라! 내가 바로 콱 잡아와서라도 바로 시켜주지.”

“크릉.”

“그래. 근데 말도 안 되잖아? 사고가 누굴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그러니 받아들여.”

“크르릉.”

“아 또 왜... 어?”

손,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유이설의 발톱 중 길게 돋아난 두 번째가 마치 검지처럼 뻗어나와 어딘가를 가리켰다.

청명이었다.

“뭐야?”

“킁.”

청명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나? 나 뭐.”

“……끄릉킁…….”

“어?”

“나?”

유이설의 검은 눈이 청명을 쏘아보았다. ‘나도 이런 상황에서 말할 줄 꿈에나 알았겠냐? 내가 더 죽을 맛이다.’라고 하고 싶은 듯 했다.

“자... 잠깐, 이건 말이 안... 야!”

곰이 달려들었다. 한바탕 굴렀다. 지금 뒹굴고 있는 데다 땅 위인지 털 위인지도 모를만큼 제대로, 격렬하게 굴러버렸다.

그리고…….

“헉, 허억…….”

“……. ”

“어우, 이거 두 번은 못 하겠네.”

청명이 제 입가를 벅벅 닦았다. 짐승의 입가랑 닿았다. 진짜 닿았다고. 곰이랑 접문해본 이가 있을까? 사람 중에선 청명이 유일할 것이다.

“내가... 곰이랑...! 내가 곰이랑!”

한동안 충격에 휩싸여 있던 청명은 옆을 돌아보았다. 그의 곁에는 원래대로 돌아온 유이설이 쭈그려 앉아 뭐가 꼽냐는 듯이 청명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우 깜짝이야!”

“돌아왔어.”

“……진짜?”

이게 되네?

“…….”

“나랑, 닿아서……. 사고가 사람이 된거라고?”

“응.”

“그냥 아주 조금 스친 것같은데 그 정도로?”

“청명.”

“왜?”

“짜증나게 하지마.”

“네.”

유이설은 제 허리에 찬 검을 잡았다. 검병에 제 손바닥이 착 감기는 감각을 느끼고 나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곰 발바닥에서 사람 손으로 돌아오니 살 것 같은 기색이었다.

검신을 검집에 넣고 나서, 유이설이 차분히 말했다.

“들었어, 사랑이란 거. 설레임도 있지만 때론 충성이기도, 헌신이기도 하다고. 그리고 그게 되려 더 오래 간다고.”

“그런 얘기는 또 어디서…….”

“사저들이랑 있는 데서. 소소도.”

“그러니까, 그래서...”

청명이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유이설을 쳐다봤다. ‘사고가 나를 사랑……?’ 이라는 투였다.

“응.”

유이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이라고 생각해도 된다고, 그리 여겼어.”

“……그래?”

스스럼없는 건지 뭘 모르는 건지…….

청명도 이것이 그저 그런 변명은 아니었다는 것은 잘 알았다. 유이설이 얼마나 화산과 화산에 있는 이들 모두를 아끼는지는 그도 잘 아니까.

“그래서 사질에게 해본 거야.”

“그런데 왜 하필 내게…….”

“다른 사람들에겐 미안함.”

“나는 안 미안해?”

“미안.”

전혀 안 미안한 듯한 어조였다.

“덕분에 곰에서 탈출. 감사.”

그닥 안 고마운 듯한 어조였다.

“……오냐.”

유이설이 자신의 가벼워진 몸을 만끽하며 경공을 밟아 화산으로 돌아갔다.

 

 

“숨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대로면 정말 어떻... 어?”

“사고!”

“사고, 돌아오신 겁니까?”

“응, 이제 사람이야.”

“진짜 마늘이랑 쑥이라도 구해와야 하나 싶었다니까요.”

“슬슬 화산에 도복을 입은 짐승을 또 들여야 할 수도 있다는 각오도

했다니까……. 아야!”

“돌아와서 다행이다, 사매.”

“그런데 어떻게 돌아온 겁니까?”

“지금까지 말이 나온 방법들은 아닐테고. 그저 시간이 지났더니 해결된 걸까요?”

“…….”

유이설이 청명 쪽을 돌아보았다.

팔짱을 낀 청명이 오만상을 쓰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몰라. 그냥 저절로 돌아왔어.”

마침 두 사람의 시선이 일사분란하게 만났다가 흩어지는 것을 본 당소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두 사람……. 설마?”

당소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냐, 내가 무슨 생각을. 사고에게 부끄러운 생각은 말자.’

반성하는 당소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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