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이설/청명이설] 타생지연他生之緣

[청명이설/검존이설] 他生之緣(타생지연) - 2. 병불염사

구화산으로 트립한 유이설

*원작 파괴, 적폐, 무협알못, 개연성x

*각자 해석에 따라 논컾으로 봐도 상관x

*단행본 외전과 229화(운남 에피), 717~718, 84n화를 발췌/언급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兵不厭詐(병불염사) : 싸움에 있어서는 적을 속이는 비열한 수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너 거기 안 서!”

유이설은 갑자기 과거의 화산으로 떨어지게 된 기구한 처지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에 매화검존의 매서운 살초를 피해야 했다. 뒤로 솟구쳐 가까스로 검기를 피한 유이설은 힘껏 화산의 안쪽으로 경공을 펼쳤다.

‘진검이야.‘

이 상황에 처한 사람이 유이설이 아닌 백천, 조걸 등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명 매화검존에게 미친새끼라고 하는 기사멸조를 범했을 것이다. 유이설은 침착하게 도망치며 손에 닿는 대로 아무것이나 집어들어 청명의 검을 막아냈다. 판자, 의자, 접시... 보다 못한 원시천존이 유이설을 도운 건지, 다행히도 다섯 번째부터는 유이설의 손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검이 들어왔다. 휘두르며 보니 삼대제자의 훈련용 목검이었다.

매화검, 그리고 훗날 매화검존이 될 자의 검을 받아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유이설은 용케 매화검법을 쓰면 안 된다는 판단을 해냈다. 화산의 제자가 아닌데 매화를 피우는 순간 매화검존은 물론 화산의 공적이 될 판이었기 때문이다. 유이설은 가능한 한 어느 무학에나 있는 기본적인 초식을 사용하여 청명의 검을 흘리고 튕겨냈다.

‘사질이 맞아.‘

유이설이 식은 땀을 흘렸다. 검을 섞어보니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검로를 그리는 방식. 거침 없이 이어지는 환과 쾌의 운용.

다른 몇몇 명문 검가들과는 달리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던 화산의 검은 특성상 같은 문파라도 각자의 검에 지문처럼 고유한 특징을 가진다. 그리고 매화검존의 검에서는 정확히 그녀가 청명에게서 배우려 애쓰던 검의 기본기가 마치 그림처럼 담겨있었다.

과연 비급도해본을 작성한 매화검존의 검이었다. 그때, 유이설이 우뚝 멈춰섰다. 비급이 발견된 시점이…….

‘그럼... 그걸 작성한 것도 사질?‘

잠깐 정신이 팔린 사이, 쾅! 유이설의 바로 옆 기둥에 검기가 박혀 들어갔다. 유이설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경공을 펼쳤다.

“아오! 이 여자가 진짜! 왜 자꾸 안쪽으로 들어가? 검기를 마음껏 못 쓰잖아!”

“여자가 아니야!”

“그럼 뭔데?”

이 다음엔 분명 “사고야!”라는 말이 와야 했으나 그럴 순 없었다. 유이설에게는 지금 청명의 언행을 이를 장문인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기억해냈다.

“...여자 맞네.”

“진짜 미친 여자 아냐 이거…….”

“종남은 아니야.”

“대가리 깨지고 나서도 똑같이 얘기하나 어디 한번 보자고.”

나 네 사고인데.

유이설은 입술을 짓씹었다. 말이 도저히 통하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하든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유이설은 좋게 봐야 그냥 좀도둑, 아니 최악의 경우 종남 좀도둑이다. 마음 같아선 보란 듯이 매화를 피워 보이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는 순간 유이설은 빼도 박도 못할 무학 좀도둑이 될 판이다. 게다가 유이설은 현재 검도 없을 뿐더러, 제 모든 역량을 끌어올려 청명을 상대한다 해도 패배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유이설은 아직 부상으로부터 완전히 회복한 것도 아니었다. 유이설은 청명이 자신을 찾아 주변을 살피는 사이 재빨리 전각 뒤 편으로 숨어 들어가 벽에 기대어 숨을 돌렸다. 갑자기 쿡쿡 쑤시는 통증에 옷을 살짝 끌러 환부를 보니 배를 칭칭 감은 붕대에 피가 배어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깨어나고 나서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살필 틈이 없었다.

유이설이 자신의 상처에 놀랄 틈도 없이 다시 청명이 들이닥쳤다. 위를 올려다보는 유이설의 위에 매화검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디 갔나 했네. 아까부터 기척도 묘하게 흐릿하다 했더니 자객술까지 익혔... 으악! 이 여자가 신성한 도관에서 부정타게 뭐 하는 거야!”

“?”

“빨리 안 여며?”

기세 좋게 유이설을 향해 달려들려는 청명이 한 손으로 제 눈을 가리며 주춤거렸다. 유이설은 영문을 모른 채 굳었다가, 청명의 말을 듣고서야 겨누던 목검을 거두고 뻣뻣한 손으로 옷고름을 여몄다.

‘이상해.‘

유이설은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고개를 돌리고 서있는 청명을 힐끔 보았다. 나이는 사질 청명보다, 자신보다도 많아 보이는데, 유이설 앞에서 속곳 하나만 걸치고도 위풍당당했던 청명과 달리 이쪽은 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고 허둥대는 행태다.

‘분명 청명은...‘

 

- 입어.

- 오, 역시 사고야!

- 추하니까.

- ......고마워.

 

‘이런 애였는데.‘

떠오른 상황은 지금과 입장이 좀 다르긴 했지만, 어쨌든 유이설이 아는 청명 같진 않은 모습이었다. 죽일 듯이 쫓고 죽어라 도망다니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서먹해진 분위기에 양쪽이 위화감을 느끼던 찰나, 다행스럽게도 청명을 말리러 온 사람이 있었다.

“이 미친 사형 새끼가! 피떡 되어서 사흘 누워있던 사람 겨우 살려놨더니 다시 두들겨 패려고 하네!”

“뭐? 피떡? 사흘?”

“강호행 간다고 몇 번 나돌더니 아주 외인이 다 되셨습니다? 산문으로 가는 길목에 피칠갑으로 쓰러져있는 자를 거둔 게 벌써 며칠 전 일인데. 정말 몰랐습니까?”

“어. 아니 내가 갑자기 이러겠어? 저 여자가 먼저 수상하게 행동했다니까? 갑자기 죽어라 도망치잖아!”

“사형이 놀라게 한 거겠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형이 죽어라 쫓아오는데 누가 혼비백산을 안 합니까? 저러다가 저 분 상처 터지면, 사형이 다시 꿰매줄겁니까?”

이목구비가 뚜렷한 인상인 청명의 사제가 청명의 말에 신랄하게 반박했다. 고분고분 존댓말을 쓰고는 있었으나 그 기세만은 청명에 버금갔다. 그는 벽에 붙어 서있는 유이설을 참 안 됐다는 눈으로 일별하고는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사형이 뭔 걱정하는지 대충 알겠지만 그건 아닙니다. 심하게 훼손되어서 어디 건지 모르겠지만 도문의 것 같은 무복을 입고 있었고, 상처들도 사파들이나 쓰는 무기에 당한 것 같으니 일단은 두고 보기로 했거든요. 청문 사형한테 아무 말 없었습니까? 없을 리 없지. 듣고 또 한 귀로 흘렸죠?”

그 말을 들은 청명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사형. 그렇지. 사형이 내게 했던 말이 있었지.

 

- 비록 신분은 모르지만 이 소저도 화산의 손님이니, 무례를 범하면 죄를 물을 줄 알거라.

 

청문이 그러기로 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청명이 쫓고 있던 이 여자는 무고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망했다.”

유이설과 청명, 청명의 사제가 있는 전각 너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이설을 쫓으면서 피운 소란이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다. 오늘 하루만 친 사고가 몇 건이지? 몰래 술 먹고 자다가 걸린 것은 뭐 일상이라고 치더라도, 청문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는 진검을 들고 도관 곳곳을 부숴가며 ‘화산의 손님‘을 죽어라 쫓은 것은 보통 사건이 아니다.

만약 이 여자가 알고 보니 잘나가는 문파나 세가 소속이었기라도 하면... 화산의 절벽들을 보며 도망갈 경로를 탐색하는 청명을 가만히 바라보던 유이설이 입을 열었다.

“비무인 걸로 해.”

“비무?”

“비무. 내가 요청한 거야.”

“...뭐?“

유이설이 몸을 일으켜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화ㅅ... 유이설이 화산의 제자 청명에게 비무를 요청합니다.”

청명과 청명의 사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유이설을 바라보았다. 뭔가 결심한 듯한 청명이 고개를 꺾어 제 사제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이제 너만 장단 맞추면 된다.”

“이런다고 무사히 넘어갈진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엔 저 소저도 보통은 아닙니다.”

한숨을 푹 쉰 청명의 사제가 유이설에게 제 검을 건네고, 유이설에게서 삼대제자의 작은 목검을 받아들었다. 검수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검을 빌려주는 것은 상당한 호의였다.

“이걸 쓰십시오.”

“고마워요, 도장.”

“청진입니다.”

‘청진?’

청진이라는 이름을 듣자 유이설은 순간 멍한 표정으로 제 앞에 선 도사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떠올렸다. 청명이 멍한 얼굴로 산을 뒤지며 중얼거리던 이름을.

 

- ……청진아.

 

청명이 광인마냥 흙투성이가 되도록 땅을 파내다가, 겨우 찾아낸 동굴에서 발견한 글귀를.

 

비록 내 몸은 이곳에서 잠드나

 

내 마음만은 머나먼 화산과 함께한다.

 

대화산파 십삼대제자 청진.

 

참았던 그리움과 아픔을 이기지 못하여 끝내 소리내어 울었던 사질의 뒷모습을.

“…….”

“소저?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하마터면 비무가 시작했다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 유이설은 침착함을 되찾기 위해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검을 뽑았다. 그것을 보던 청진이 단호하게 조언했다.

“굳이 말리진 않겠지만 조심하십시오. 내 보아하니 소저라면 쉽게 지지는 않을 듯 합니다.”

유이설이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청명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약속 무르면 비무 한 번 더 할 줄 알아!”

감상에 젖어있을 여유는 없다. 비록 즉석에서 시작한 비무지만, 검을 들땐 오로지, 상대가 누구든, 상대의 검만을 생각해야한다.

그러나 이번만은 쉽지 않았다. 청명은 정말 백년 전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돌아온 매화검존인가? 유이설은 내면의 혼란을 잠시나마 잠재우기 위해 기합대신 익숙한 단어를 뱉었다.

“망둥이.”

“뭐라고?”

유이설은 금새 침착함을 되찾고 고요하게 검을 쥐었다. 옛 화산의 검을, 그것도 매화검존의 검을 견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유이설은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청명의 검을 기탄없이 쳐냈다. 첫 합인지라 진심을 다 하지 않은 것인지, 유이설이 버틸 수 있는 정도였다. 그 후 곧바로 청명의 빈틈을 찾아 달려들었다. 청명은 의외로 제법이라는 눈치로 유이설과 검을 맞부딪혀왔다.

유이설이 먼저 호기롭게 비무를 걸어왔으나, 일단 외부인인 유이설에게 과거의 화산 한복판에서 검을 펼치는 것은 작지 않은 도박이었다. 유이설은 무의식적으로라도 매화검법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 보니 검을 받아치거나 피하고, 뒤로 물러나 다시 빈틈을 찾고 베거나 찌르는 일차원적인 구성을 반복하게 되었다. 이 정도면 그저 강호에 흔한 검객처럼 보일 것이라는 심산이었다.

그때, 다시 유이설에게 정면으로 달려드는 청명이 가까이에 와서는 돌연 검을 거두고 유이설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역시 수상해. 너 이 정도 아니잖아. 왜 자기 검법을 숨기지?”

“!”

말을 마친 청명이 검을 고쳐 잡고 순식간에 유이설의 뒷편으로 이동해 급소를 노렸다. 고작 비무에서 이런 살수를 날리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지만, 유이설이 충분히 막아낼 걸 알고 날리는 것일 터이다. 과거의 유이설이 청명에게 숱하게 그래왔던 것처럼.

그러나 유이설은 몸을 숙여 피하는 것을 택했다. 청명이 살초를 날려도, 유이설은 제 쪽에서 좀처럼 먼저 공격해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이 빠르네?”

“안 보여줄 거면 내가 보여주게 만들면 되는거지?”

“잠...!”

청명은 검기를 뿌려 유이설의 퇴로를 막고 다시 일직선으로 유이설에게 달려들었다. 이제 유이설의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았다는 듯,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청명의 계산에 따르면, 유이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진심을 다해 받아치거나 그대로 맞거나 둘 중 하나였다.

유이설은 잠시 눈을 질끈 감고는 검기를 깨뜨리며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는 공중에서 청명을 향해 몇 개의 검기를 날렸다. 청명은 검기를 검 끝으로 해치자마자 눈 앞에서 자신을 노리는 유이설의 부드럽고 빠른 검을 마주해야 했다. 재빨리 검 등을 눕혀 가까스로 튕겨냈지만, 약간은 놀란 눈치였다.

청명은 살짝 커진 눈으로 땅에 내려와 발을 디디는 유이설을 바라봤다. 방금 유이설의 속도는 청명의 예상 그 이상이었으나 유이설은 그닥 무리하지 않았다는 눈치였다. 청명으로서는 거의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속도는 유이설이 월녀검법을 갈고 닦을 때부터 부단히 단련해온 장점이기도 했다.

“자꾸 위로 솟구치는 습관은 고치는 게 좋다고 한 마디 하려 했는데. 그게 어차피 나보다는 네가 더 빠르다는 자신감이었나?”

 

-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건 좋은 버릇이 아니야. 땅과는 달리 허공에서는 움직임이 제한되니까.

 

사질의 말을 떠올린 유이설의 무표정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거의 표정 변화가 없는 유이설에게는 드문 행동이었다.

“나를 가르칠거야?”

“뭐?”

처음 만난 청명은 열심히 쫓아다니며 부탁해도 겨우 가르쳐줄까말까였는데, 지금 눈앞의 청명은 묻지 않아도 자신을 가르치려 하는 상황이 유이설은 퍽 우스웠다. 항상 꾸밈 없는 듯 제 깊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질에게서 이런 치기 어린 모습을 보게 될 날이 오리라 누가 알았겠는가.

유이설은 점점 자신이 깨달은 사실들에 적응해갔다. 지금은 약 백년하고도 수십년 이전의 화산이고, 사질인줄 알았던 청명은 사실 전생에 천마의 목을 친 매화검존이었으며, 청명은 아마도 이 때의 기억을 갖고 유이설이 있던 화산에...

 

...사실 아직 적응은 좀 이른 것 같다.

 

어쨌든, 지금의 청명은 유이설이 겪어온 청명보다 한참은 어리고, 경험도 심계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질을 좀 따라해볼까.’

유이설은 자신이 배운 것을 돌려줄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아니, 저 여자 처음에 입고 있던 무복이 꼭 도문 같았다면서요! 그런데 건달도 아니고 어떻게 도관의 검수가 비무하다가 검으로 해도 되는 거 배를 발로 차고 몸으로 들이받고...! 검보다 주먹을 더 많이 쓰잖아요! 이따구로 할 거면 지검례 왜 했어! 왜 예의 차렸어!“

한편 청문은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억울하다는 듯이 서럽게 불만을 늘어놓는 사제 앞에서 입 새를 비집어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야단이었다.

“큽. 왜. 딱... 흡, 너와 어울리는 적수지 않느냐.”

그 곤란한 형편은 청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큭, 풉... 실전 제대로 겪으셨네요, 사형. 사형은 아직 이런 경험은 좀 부족... 으아아아아아악! 그거 맞으면 저 턱 돌아갑니다!”

청명과 유이설의 비무는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 화산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는 역대급 구경거리가 되어있었다.

비록 비무는 제대로 된 끝을 보지 못하고, 아직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던 유이설이 무리하게 검을 받아치다가 입에서 피를 뿜으며 주저앉아 급 중단되었으나, 마지막에 놀라며 다가와 자신을 살피려는 청명의 정수리를 검집으로 내려친 유이설의 활약은 화산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병불염사(兵不厭詐 : 싸움에 있어서는 적을 속이는 비열한 수법도 마다하지 않는다.)의 표본이었다.

문파의 거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외부인이 일대제자를 기만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 일을 당한 이가 하필이면 청명인지라 모두들 일단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난 인정 못해!”

“네가 이겼는데 뭘 인정 못한다는 거냐.”

“이건 진 거나 다름 없다고요! 걔 다 나으면 그땐 반드시 지근지근 밟아... 아이, 사형 왜 그렇게 봐요. 전 그냥 한번 더 비무하고 싶다는 이야기예요. 헤헤.”

“...확실히 유 소협의 검은 좀 더 지켜볼 가치가 있긴 합니다. 본 것은 비록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도 궁금한 점이 많거든요.”

“일단은 천천히 회복을 기다리자꾸나. 이번 같은 일이 한번 더 있어서는 안되니.”

청문의 마지막 말은 분명 뼈가 있는 문장이었다. 오늘 일으킨 소동은 유이설이 요청한 비무로 쳐주겠지만, 다음은 절대 봐주지 않겠다는 의미임이 분명하다.

청명은 결국 사형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초옥을 나섰다. 해는 어느새 기울어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청명은 슬쩍 유이설이 치료를 받고 있는 의약당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누가 들을까 속으로만 가만히 되뇌었다.

‘내가 절대 가만 안 둬. 유이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H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