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
부탁은 언제나 무릎을 꿇고.
"차이지 않으려면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언제나의 눈웃음. 미스티가 싫어하게 된 단정한 미소로 대답했다. 누군가와 닮기라도한걸까, 짧게 의문을 띄우곤 어깨에 얹은 발을 쥐어선 제 허벅다리 위로 얹었다. 미스티는 신장이 크니 다리를 계속 쥐고 있으면 불편할 것 같아서. 발목을 틀어 안쪽으로 부드러운 정강이가 제 쪽을 바라보도록 방향을 고쳤다. 핏기없이 쭉 뻗은 모습을 보니 꼭 하얗게 구운 도자기 화병같다. 장갑을 벗어선 코트 주머니 안으로 밀어넣는다.
"제 아내 얘길 궁금해하셨으니 말입니다. 그 얘길 드릴까하고요."
단단하니 곧은 뼈에 붙은 근육 사이의 틈을 짚듯이 엄지로 지압한다. 시선은 그 엄지가 미스티의 종아리에 깊은 골을 만드는 모양을 따라 움직였으며, 제 손길이 지나간 곳 주변으론 붉게, 엄지 모양대로는 하얀 자국이 남는 흔적이 마음에 들었다. 발자국이라도 남기는 심정으로 손을 놀렸다.
"메리는 종일 앉아서 작업하는 작가다 보니 다리가 곧잘 붓습니다. 그래서 종아리를 안마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무릎에서 시작해 발목으로, 발목에서 하나 내려가 볼록한 복사뼈 뒤를 가로로 누른다. 건반을 누르면 피아노의 헤머가 올라오고, 하프시코드의 플렉트럼이 상승하는 것처럼 미스티의 발목도 까딱거린다. 두어번 장난이라도 치듯이 손을 놀리다 단단한 뒤꿈치를 꼬집듯이 엄지와 검지 측면으로 안마했다. 고작 손바닥만 한 이것으로 온몸을 지탱한다 하면 그 누가 믿을까, 실 없는 생각을 했다.
"제일 처음 해주었을 때가 저와 메리가 견해차로 싸웠던 날입니다. 메리의 졸업을 앞두고 글쓰기를 그만두겠다 말했거든요."
제임스는 그 뒤로 계속해 이야기했다. 글쓰기를 멈추려는 메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괴로웠지만 저가 떠나면 진정 펜을 놓을까 떠날 수 없었다고. 부모님의 부양, 미래, 현실을 위해 취업하려는 그가 몹시도 미웠다고. 곁에서 응원하고 지지한 것은 자신이었는데, 그런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 괴로웠고 도울 수 없다 생각하니 또 다시 괴로웠다고.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미래를 뱉었다고.
"그래서 청혼한 겁니다. 결혼하면 제 돈이며 지위, 이름까지 메리의 것이 되니까요. 저와 결혼하면 메리는 글을 계속 쓸 수 있었습니다. 저와 결혼한다면, 말입니다."
발 가운데 오목한 곳을 지압하던 엄지가 종아리의 곡선을 따라 위로 올라간다. 그 손을 따라 줄곧 다리를 향했던 시선도 올라가고, 마침내 의자 위로 앉은 미스티를 향한다. 제 손도 찬 편인데 그보다 싸늘한 종아리라니,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제가 그런 선택지를 그냥 흘려보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싶으니까요."
언제나의 새까만 눈. 변함없이 다정한 눈. 그렇기에 소름끼치는 눈이 미스티를 담는다. 당신은 빛나고 있을까, 빛이란 재능이 아닌 재능에 이끌리는 눈빛. 빛나는 흥미를 향해 달려 나가는 또렷한 반사광. 그 사람이기에 담을 수 있는 고유한 빛. 혹 그 빛을 바라보다 눈이 멀었다면, 마찬가지로 눈 먼 나도 당신에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까. 미스티의 무릎에 입술을 묻으며 살 위로 단어를 미끄러뜨리듯 속삭인다.
"어떻습니까, 차일만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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