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창작자 시점
Marina Lind
작품을 감상하는 법은 작품을 만드는 법으로 배운다. 태초에 작품이 있었고, 그것을 해석하고자 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창작의 뒤를 잇는 일이기에 그러했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창작과 해석의 역사에서 청자이자 관객, 소비자는 대부분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쉬이 이야기한다. 이런 작품을 볼 때엔 이런 시선이 올바르고 저런 작품을 볼 때엔 저런 시선이 올바르다는 이야기다. 대상을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는 꼭 그 자질이 필요하다는 전제 하의 논의인 만큼 피사체에는 항상 본질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 담론의 핵심이다. 시선을 던지는 이는 대상을 이해할 이유가 있다. 그것이 그의 역할이므로.
그렇다면 피사체의 역할은 무엇일까? 다시 말해 피조물로 쉬이 환원되는 ‘대상’이란 스스로를 올바르게 표현하는 것이 그의 의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대상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표현의 책임이 있는가? 당신 마음 속에 떠오른 창작자라는 3 음절 단어가 있다면 부디 그것을 한 수 접어두길. 오늘날의 창작은 다시금 당신에게 시선을 돌리고 있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알고 싶어 모두가 당신과 같은 사람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다. 표현은 곧 해석, 해석은 관측하는 이의 몫이기에 대상은 해석당하기 위해 흥미를 끄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것만이 그의 의무이자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마리나 린드, 자유분방한 영혼의 박제사는 흥미를 끄는 피사체를 만드는 법을 짧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여 배웠다. 그것을 해석하는 이의 시선을 배웠고, 그들의 해석이 쉽고 명료하여 매력이 되게끔 대상을 설계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역할이므로.
바닥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인조 강바닥을 바라보는 수달의 앞 다리는 납작하게 지면과 수평을 이뤄야 하고, 엉덩이는 하늘을 향하도록 들어올려야 한다. 반짝이는 유리알로 만들어진 녹색의 눈동자가 일렁이는 달빛 아래 선잠을 자는 물고기를 노려보는 시선에는 생명이 없음에도 생동감이 필요했고, 마리나의 손을 탄 동물은 두 번째 삶을 부여받아 과거 삶에 내던져졌던 동물의 한 순간을 재현하는 데에 어떤 어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그저 그의 손길을 타면 그만이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앉아 관람객을 호기심 어린 몸짓으로 바라보는 검은이마직박구리도 당신의 눈이 깜빡이는 순간이 올바르지 않았을 뿐, 그는 여전히 특유의 총명스런 시선으로 인간을 관찰하고 있었다. 음주 운전 후 국도를 달리던 트럭에 치인 무스는 뒷 다리 둘을 잃었을지언정 여린 클로버 새순을 씹던 여유로움은 잃지 않았다. 관람객이 무심코 존재를 의식하지 못할 코너에서 머리를 빼꼼 내민 코요테는 그 하반신을 영원히 찾지 못한대도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었다.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설령 빼앗겼대도, 순간을 재현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모든 생명은 읽힐 수 있다. 여기 친절한 옮긴이가 당신만을 위해 친히 내주를 채울 테니까.
그러니 그가 말끝을 흐릴 때에야 비로소 다시금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 무슨 이미지를 그에게 전달하고자 했는가, 하는 의문을.
“… ….”
그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 순간*은 제 표현 의도와는 궤가 어긋나는 순간이었고, 오히려 스스로조차 그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고, 해석할 수 없었다. 곱아드는 손을 감추고 싶지만 그것으로 메이슨이 자신에게 부여할 이미지가 오염되는 것을 염려했다. 마리나는 그저 '좋은 이웃'이 되고 싶었다. 누구에게든.
그러니 메이슨이 고르고 고른 대답에서 무얼 내놓았을 때... 마리나는 당혹스러운 냉기를 느꼈다. 인간과 인간은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있다는 그런 멋진 말처럼, 그와 자신이 이어진 듯한 착각을 느끼며 그가 눈치채지 못할 뻣뻣한 손으로 잔을 받아 들었다. 진한 초코 셰이크는 차가웠다. 그 위로 쌓인 진흙색 눈송이와, 손바닥을 덮는 성에가 날카로이 피부를 파고든다. 그때처럼, 그 날처럼….
“하아….”
짧고 깊은 숨을 내쉬면 한여름, 주홍의 햇빛이 실내를 비추기가 무색하게 입김이 피어오른다. 보라색으로 물든 손톱과 코끝을 스치는 겨울의 차가운 온도, 그 계절의 바람 냄새며 통나무가 썩는 냄새, 덫을 흥건히 적신 피 냄새가 한 번에 섞인다. 한 때 의심할 나위 없이 자신의 것이었던 체온과 살이 점점 제게서 멀어졌다. 세상과 자신이 멀어지고, 자연과 자신은 가까워졌다. 감각이 멀어지니 정신은 또렷해졌다. 날카롭게 산란하는 주홍의 풀무와 같은 햇살이 설원을 비추기가 무색하게 가슴과 아랫배, 무릎이 아리도록 시렸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의식은 되려 몽롱한 기색 없이 혼란스러웠기에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시야가 울렁거렸다.
이것은 나의 기억이다. 믿어 의심치 않을 나의 파편이자 마리나 린드라는 한 시골 촌뜨기의 본질이었다. 이를 이해하지 않은 채 무엇을 이해할 수 있을까? 제 얄팍한 마음을 의심하기에 마리나는 이미 많은 것을 알아버렸고, 품어버렸고, 새로이 저로 받아들였고….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긍정해버렸다. 저조차 이해하지 못한 것을. 마리나는 언제나 이해하지 못할 것에 끌렸으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이란 것이 무엇인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그의 표정은 보기 좋았다. 나는 진심으로, 그것이면 충분했다. 잔을 받아 제 잔의 간을 보았다.
시원한 싸락눈이 제 혓바닥 위에서 녹아 사라졌다. 이번만큼은 눈보다 제 몸이 승리했고, 입 안으로 남은 진하고 텁텁한 다크 초콜릿의 값싼 풍미가 제게는 충분하게 느껴졌다. 묵직한 단맛이 냉기를 머금고 제 몸을 얼리려하지만 여전히 자신은 살아있었고, 그 사실에 미약하나마 안도감을 느꼈다. 입꼬리가 자연히 올라 퍽 진실된 미소가 얼굴 전체로 퍼졌다. 수줍게 호선을 그리던 입술이 벌어지고 나면 입김처럼 흩어지는 웃음소리가 잇새로 새어나왔다. 막을 틈도 없이, 제 온기가 허공에 퍼졌다. 지금은 얼음을 머금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 제 숨도 조금은 차가워졌을까? 알 방도는 없다.
"평소보다 진한데, 그게 마음에 들어요."
그러니 메이슨의 몫의 잔-제 것보다 연했다-에 시선을 보내며 다시 눈을 맞췄다. 이해 못할 당신의 숨에 어린 냉기는 무엇일까? 이 잔을 마시면, 그것을 내뱉기 쉬워질까? 당신이란 동물은 어떤 모습이 제일 아름다울까, 그런 창작자의 시점으로 대상을 대하게 되는 건, 어쩌면 저를 빚은 창작자의 의도가 서려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것을 즐기는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제 잔을 내려놓고, 그의 눈 앞에 선택지를 들어보였다.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좋다. 그것 또한 당신을 당신답게 만들어주는 파편 일테니. 다만 나의 의견이 궁금하다면….
"시럽, 우유?"
나는 진해도 좋아요.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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