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BSYcurious by BSYItz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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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에 꽤 괜찮은 곳이었다. 나를 위한 쉴 공간도 있었고, 그저 그가 일하러 갈 때 같이 가서 쉬거나 그의 손님들을 같이 맞아주면 그는 나에게 아무 런 해를 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잘 대해주었다고나 할까. 물론 내가 그러지 않아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나를 정말 아끼는 듯 했다. 부족한 것도 없었고, 나에게 위협이 되는 것 또한 없었다. 그들에게 적응하는 대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그의 가게는 하야면서도 어딘가 어두운 벽면과 달리 붉은 조명이 은은히 빛난다. 그리고 낮은 유리장 안에 손님들이 편히 볼 수 있도록 일렬로 정리되어 있는 상품들에게서 그의 깔끔한 성격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꽤 소소한 넓이의 가게. 가게의 카운터쪽엔 그가 항상 서서 상품을 정리하고 있었으며, 나는 그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 항상 카운터 뒤 벽면 모서리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나의 자리에 누워 쉴 뿐이었다. 우리의 일과는 간단했다. 손님이 없을 때에는 그가 상품을 정리하고 재고를 채워 넣었으며, 문의 종소리가 들리면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손님을 맞이한다. 그러면 그 또한 반가운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손님들은 유리장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말끔히 포장되어 있는 상품을 그에게 꺼내달라고 요청하거나, 또는 원하는 상품이 없다면 그에게 원하는 것을 부탁하기도 한다. 그럼 그는 금새 창고에서 손질되지 않은 덩어리를 가져와 여러 토막으로 나누고 잘라 유리장 안의 상품들처럼 포장해 손님들에게 전달한다. 토막으로 자르고 포장하는 과정에서 나는 상품의 냄새는 비릿하다. 그다지 좋아할만한 냄새는 아니다. 처음엔 역겨운 냄새에 적응하지 못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헛구역질도 하였지만, 나도 무뎌진 것인지 이제는 그저 비릿한 냄새라는 것 외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포장한 상품을 손님들에게 전달하면 손님들은 만족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카운터에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간다. 가끔 따라 나가보려고 하여도 그가 나를 제지해 다시 원래 내 자리로 돌려놓는다. 어느 순간부터는 밖으로 나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의 가게에는 항상 알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는 그 소리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들은 꽤 마음에 들어하는 듯 하다. 어린 손님들은 그에 맞추어 몸을 흔들기도 한다. 물론 그러면 보호자로 보이는 큰 손님들이 그들을 제지한다. 남의 가게에서 그러면 안돼, 라며.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면, 그처럼 손님들도 나를 꽤 예뻐한다. 나는 그들보다 몸집이 훨씬 작다. 그리고 그들보다 훨씬 느리고, 약하기도 하다. 아무리 그들처럼 커지고 싶어 음식을 많이 먹고, 그들처럼 빨라지고 싶어 노력하여도 나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런 내가 귀여워 보이는 것일까? 가끔 저런걸 왜 가게에 들여놓으냐며 가게에 들어와 진상을 부리는 녀석들도 있지만, 뭐 딱히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는 나를 좋아하니까. 그거면 된 거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똑같았다. 아, 그의 가게에는 포스터가 꽤 여러개 걸려 있었다. 나에겐 너무 높아 볼 수는 없었지만 거기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왜인지 여태껏 떨어진 적이 없던 포스터가 떨어졌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 포스터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정확한 글자는 읽을 수 없었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글자 몇 가지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포스터에는 나처럼 보이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 위의 문구 중 내가 아는 글자는 이 정도였다. ‘상품’,‘부위별’(사실 별 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지 모른다.) ‘명칭’ 그리고 그림 위에는 해부도처럼 점선과 각각 점선 안쪽 그림마다 이름이 적혀 있었다. 포스터에 그려져 있는 그림의 배와 머리에는 점선이 하나 더 밖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점선은 곧이어 나의 장기들의 이름을 빼곡이 적어놓은 그림과 글로 이어져 있었다. ‘눈’,‘뇌’,‘간’,‘심장’ 등등 말이다. 나는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잘못 이해한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으나 그럴 리가 없다. 이건 명확했다. 유리장에 진열되어있던 상품들은 나의 동족이었다. 그들이 왜 나와 생김새가 이토록 다른지, 어째서 나는 그들처럼 될 수 없는지 궁금했었다. 해답은, 나는 그들과 다른 종이고, 하찮은 한 마리의 가축에 불과한 종이기 때문이었다.

 

겁에 질린걸까,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를 피했다. 그러자 그도 내 달라진 분위기를 알아채었는지 내가 들을 수 있는 말로 천천히 말해주었다. 다정하게도 말이다. “괜찮아. 넌 내 애완동물이잖아. 죽이지 않아. 상품으로 만들어지는 가축들과 달라.” 죽이지 않는다니. 이걸 운이 좋다고 말해야 할까. 정말 죽이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안되나? 그가 칼로 썰어내던 덩어리들은 내 동족이었다. 포장되어 팔리던 것은 동족의 살덩이와 장기들이었다. 그와 계속 지내는 것이 맞는가? 그렇지만 그렇다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아아, 왜 그토록 비릿한 냄새가 역겨웠는지, 상품을 손질할 때 느껴지던 알 수 없을 불쾌감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했다. 나의 동족들, 어쩌면 내 가족들도 저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저렇게 되었을 수도 있는 운명이었다.

 

그래도. 이런 운명이어서 다행이다. 난 잘못한게 없으니까. 그들도 잘못한 것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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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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