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사랑하지 않아도 됩니다
너무 당연한데도 너무나 당연하게 외면해왔다
※가정 내 무시, 가정폭력 등의 묘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자주 혼자 울었다. 내가 없으면 내 가족은 완벽한데 내가 있어서 너무 거추장스럽게 되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를 좀 더 먹은 뒤에는 이런 가족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좀 더 달리 자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울과 자기연민이 폭주한 결과라고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지만, 그때의 나는 미숙했고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가족들의 애정이 오지 않는 상황을 슬퍼했고 가족이라는 틀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자신을 비난했다. 고행을 거듭하다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 고행승처럼 제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댔던 것이다.
가족만 철썩같이 믿고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이 글은 화목한 가정이나 우애 돈독한 형제자매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런 환경을 겪지 못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가정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피로 이어진 가족이라 할지라도 남보다 못할 때가 있으며, 그런 상황에 대한 개인적인 성찰을 정리한 글이라는 걸 이해해주면 좋겠다.
이전에 쓴 모성가정폭력 탈출기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엄마의 집착과 언니오빠의 외면, 그리고 아버지의 방임 속에서 자랐다. 엄마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 대다수 설명했으니 넘어간다. 그럼 다음 문제는 언니와 오빠다.
내가 삼 남매의, 그것도 나이 차 많이 나는 막내라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언니랑 오빠가 정말 예뻐하셨겠어요!" 물론 그들이 하는 말을 일일이 곧이곧대로 들을 필요는 없다. 그들도 별 생각 없이 가볍게 한 말일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입술을 당기고는 "사실 언니랑 오빠가 저한테 많이 엄했어요. 지금도 그렇다니까요."하면서 어깨를 으쓱인다. 당연하다. 그들이 나를 예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분명 억울함이 있으리라. 자신들은 반에서 1등을 하고서도 문제를 하나 틀렸다는 이유로 밤새도록 맞고 혼났는데 그보다 못한 등수를 받아오면서도 멀쩡하게 칭찬받는 막내동생을 보면 속이 뒤틀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하지만 그뿐이다. 그런 감정을 이해한다고 해서 초등학교 저학년 동생의 책상 유리를 주먹으로 깨부수고,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개돼지라 부르며 비하하고, 생일 축하 그림을 그려 온 동생에게 '넌 이것밖에 못 해?'라고 쏘아붙이는 것까지 포용하고 이해해줄 순 없다. (심지어 자기들은 나에게 번듯한 선물을 챙겨주지도 않았으면서)
그들은 나를 탓했고, 비난했고, 무시했으며, 폭력을 행사했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런 사이인데 언니에게 장난을 치거나 오빠랑 말싸움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언니와 오빠에게 비굴하게 굴복한 채로 오랜 세월을 살았다. 그건 내가 엄마의 집착에 굴복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결이었다.
(아버지는 딱히 말할 게 없다.)
(그는 많은 것의 방임자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우리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도무지 안도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보다는 ㅁㅁ아파트의 00호실에서 제공되는 온수와 냉방과 벽과 침대가 더 가족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내가 두들겨맞아도 그 자리에 있었고 내가 엉엉 울 때도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주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00호실을 포함한 모든 연결고리를 가족이라 여겼고 나를 무시하고 집착하는 가족들에게서 따뜻하고 인간적인 애정을 갈구했다.
물론 실패했다.
그들은 나를 전혀 사랑해주지 않았다.
어째서지, 어째서야. 왜 나는 다른 가족들처럼 살갑고 친근하게 지낼 피붙이가 없는 거야. 난 그냥 내가 말하면 들어주고 화가 나면 같이 화내주고 슬프면 달래주는 사람이 필요한 건데. 다른 가족들은 별 무리없이 그렇게 지낸다는데 왜 우리 언니랑 오빠는 그렇게 해주지 않는거지. 엄마는 내가 관련된 일이면 핀트가 나간 소리를 해대고 아빠는 뭘 해주는 것도 없고. 나도 언니랑 오빠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대체 뭐가 문제지? 역시 내가 문제인가? 하긴 내가 없으면 우리 집은 화목할거야…. 근데 대체 왜 그런 거냐고!
혼자 생각해서 답이 나올리가 없다. 애초에 내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걸 깨닫지 못한게 내가 가족을 사랑한다는 증거였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벌어진 불화가 내 잘못인가?
아니다.
그로 인해 엄마가 자식들의 성적에 과도하게 집착한게 내 잘못인가?
아니다.
언니와 오빠가 엄마에게서 가정폭력을 당한게 내 잘못인가?
아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게 내 잘못인가?
아니다.
나열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아니오'를 '예'로 바꾸어 떠넘기는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 사람들은 그저 가장 낮고 만만한 상대에게 울화와 감정을 밀어붙였을 뿐이다. 그 태도는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아서 그들은 요즘도 내가 한 행동을 평가하고 체크하려든다. 예전 버릇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이다. 나는 그러한 엄중한 감시에 숨을 크게 들이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2022년이 되자 갑자기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못된 가족들을 심판하고 나에게 활로를 열어…주지는 않았다.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나는 직장을 찾았다. 모욕당하고 비웃음을 사는 대신 내게 주어진 일을 하고 돈을 받았다. 그렇게 1년 정도 일을 했다. 여름휴가 때에는 짐을 싸서 나홀로 여행도 다녀왔다. 단지 나를 담담하게 받아주는 장소가 생겼을 뿐인데 불안정하던 내 정신이 콧물을 훌쩍이고는 자리에서 비칠비칠 일어나 쥐가 난 다리를 주물렀다.
그리고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오고 알게 된 것은 내가 원하는 '가족'이란 사람이 아니라 사물과 공간, 기능의 집합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명확히 나누어진 공간과 기능을 갖춘 가구, 그리고 그걸 사용할 수 있는 나 자신. 물론 9평 원룸과 32평 아파트가 같은 조건을 가질 수는 없겠으나 지금 나에게 계속해서 자취하는 것과 본가로 돌아가는 것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전자를 고를 것이다.
오랫동안 현혹되어왔다. 가족은 언젠가 나를 사랑해줄 것이란 환상이 있었고, 내가 불행한 것은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환상이 있었고, 내가 이들을 떠난다면 비참하게 죽을 것이라는 환상이 있었다. 그 환상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내 곁에 머물렀기에 그걸 흐트러뜨리거나 의심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나는 너무 불안정하고 외로웠다. 심하게 죽고 싶었다. 그 환상이라도 붙들고 있지 않으면 그냥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환상에 매달렸다.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는 가족에게 내 희망을 겹쳐보며 마냥 굴복했다.
사랑받는 일은 없었다.
슬퍼할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은 약 삼 십 년에 걸쳐 질릴 정도로 해왔다. 그러니까 충분하다. 나는 이제 가족들을 사랑하고 가족들에게서 사랑받는 아름다운 꿈을 포기했다. 대신에 내가 자신을 믿고 그만큼 사랑하고 격려하기로 결심한다. 이제 더는 그들을 위해 울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가끔은 그 환상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는 잡을 수 없다. 붙잡고 늘어질 이유도 없다.
최근 한 달간 국가지원을 통해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횡설수설 이어지는 내 이야기를 오래도록 듣던 상담사는 이제 가족을 사랑하지 않으려 한다는 내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래도 되죠. 성인이잖아요.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면 되는 거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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