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건 다니엘 카펠

사상

나의 비관은 언제나 더욱 먼 곳을 향했다. 이미 닥쳐온 순간은 미래를 망치지 않기 위해 정면에서 맞닥뜨렸다. 여지껏 좀먹히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또한 그렇기에 나는 사람이 비관으로써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잠식된 비관이 아닌, 동적인 비관으로 우리가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지나치듯이 [ ]을 듣고 평소와 같이 무시하지 않은 데에는 그러한 배경이 있었다. 내가 미처 볼 수 없던 것들이 그의 문학으로 서술되었고, 따라서 나는 더욱 나아갈 기회를 얻었다. 그래! 직접 들을 수는 없었으니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을 이해하려 했다! 그들은 보통 빈곤했고, 자유롭지 못했으나 휘둘리지만은 않았고, 그 때문에 매 순간이 불안정으로 가득했다. 많은 이들이 쓸모 있거나 쓸모 있으려고 노력했다. 결코 쉽게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부품이 아닌 사람으로서 존중해야함을 알았다.—

그들은 사람이었고 대체불가능했으며 매 순간을 삶으로서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이 의지대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등을 떠밀어주어야 했다. 이러한 부분을 호텔 경영에 반영했다. 나머지는 걱정 없게 해 줄테니 호텔에서는 일에나 집중하라는 의미에서 주급제를 시행하고, 다른 곳과 비교되지 않을만큼 많은 급여를 제공하고, 휴가 일수를 늘리고, 특수한 경우에는 추가 유급 휴가를 보장했다. 반면 대학에서 배운 경영은 어떠했는가? 고려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편의성을 위해 돈으로 환산했다. 그리고 인력은 그중에서도 가장 저렴했다. ‘인력은 소모되나 무한히 대체될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슬로건이었다. 나는 긴 시간 그것이 옳다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옳은듯 보였다.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었고, 그렇게 남은 자리는 성히 살아 있는 다른 사람이 들어와 메웠다. 셰필드의 공장에는 사람이 비는 법이 없었다. 인력은 결코 끊이지 않았다. 일자리만 있다면 생이 절박한 사람들이 끝없이 몰려왔다. 그리고 비관이 시작된다. ‘만약 인력이 무한하지 않다면? 이들이 모두 죽어 인력을 재생산할 수 없다면?’ [ ]이 내게 간섭하지 않았다면 제기되지도 않았을 문제. “런던에서 나는 악취의 근원은 쓰레기가 절반, 시체가 절반”이라는 서술. 이것이 바로 내가 문학을, [ ]을 사랑하는 이유였다. 그는 만연한 비관을 문장으로 드러내어 읽는 이의 사고에 동력을 제공했다. 그리고 나는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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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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