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ㅄㅎ 최면어플을 사용해도 순애가 하고 싶어!
글터디 6주차
각설. 세라비아 뉴트는 최근 최면 어플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이 뜬금없는 물건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가, 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그건 의외로 굉장히 무척이나 평범했는데, 계기는 어떤 유튜브 영상이었다. 세라비아는 평소에도 이것저것을 유튜브로 찾아보면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했으니까. 그가 특히나 좋아하는 영상은 천체학에 관한 영상이었다. 실제로 그는 군사학교를 입학하기 전까지는 여러가지 천체 현상을 관찰하거나 공부하곤 했으므로, 그가 유튜브로 그런 영상들을 찾아보는 건 그다지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그런 영상들이 시작되기 전, 유튜브가 랜덤으로 틀어주는 광고 영상들이 그 날따라 별났던 것이 계기였다.
- 사랑하는 이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나요? 혹은 자꾸만 쌓여가는 오해가, 반복되는 싸움이 지겹지는 않으신가요?
촌스러운 효과가 가득한 영상을 바탕으로 기묘한 목소리가 광고 문구를 줄줄 읊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5초 후 광고 넘기기를 누르려던 세라비아가 멈칫한 것은, 그 광고의 문구가 자신과 성한의 사이를 대변해주는 것 같은 말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이제는 고민하지 마세요! 이 어플리케이션 하나만 있다면, 그런 지겨운 언쟁과 싸움은 모두 끝이 날 테니까요! 사용법 역시도 간단합니다! 앱을 켜서, 그 이를 찍고, 그 이에게 나타나는 화면을 보이세요! 다운로드 링크는…….
기묘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자신들이 개발한 어플리케이션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는 동안, 세라비아는 어제 저녁에 있었던 말싸움에 대해 회상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정말이지, 세라비아는 최대한 성한을 배려해주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그의 연인은… 권력욕이 지독했고,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보다 다른 것을 우선 순위에 놓곤 했으니까. 그런 그의 성정을 모르고 만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세라비아가 불만을 가지는 것은 성한이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작은 부탁들 역시도 칼 같이 불가능하다며 쳐내는 부분이었다. 예를 들자면, 회식을 가질 때에 너무 늦게 들어오지 않는 것, 혹은 공식 석상에서 다른 이들과 - 특히 이성과 - 너무나 화목한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는 것. 그런 사소한 것들이 논쟁의 중심이었다. 사실, 논쟁이랄 것도 부끄럽게 세라비아가 우물쭈물 그런 것들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자면, 성한의 반응은 항상 다음과 같았다.
일단 한숨을 쉬면서 목을 죄는 넥타이를 풀고, 세라비아에겐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책상에 있는 태블릿 PC를 들여다보며 “아니, 그건 좀 어렵겠는데.” 하고.
평소에는 세라비아 역시 그런 성한의 반응에 일일이 발끈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만 그 날은… 지금까지 쌓여왔던 불만들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고, 성한을 노려보며 세라비아가 “다, 당신은 늘 그런 식이지?” 하고 날카롭게 말하는 순간, 성한이 슬쩍 시선을 들어 세라비아를 훑었다. 늘 날선 눈꼬리가 이 순간 유독 서늘했다. 성한은 늘 세라비아가 자신의 ‘일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무척이나 꺼려했으므로, 세라비아는 이 부분에서 약간 주눅이 들었지만, 어제는 유독 한 번 터진 불만을 다시 주워담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다시 회상하기도 부끄럽지만,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만 주고 받다가, 결국 제 화를 참지 못한 성한이 제 서재에 있는 램프 하나를 벽에 던져 박살낸 후에야 언쟁을 멈출 수 있었다. 물론 어제는 각방을 썼고, 줄곧 냉전 상태를 유지했으며, 심지어는 성한은 아침 일찍 출근하면서도 세라비아에게 인사 한 번 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세라비아는 어느새인가 광고가 보인 다운로드 링크에 들어가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고 있었다. 이상한 일은, 그 다운로드 링크는 어플리케이션이 전부 다운로드 되자마자 유효하지 않은 홈페이지 주소라는 알림만 띄우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세라비아는 다시 한 번 그 광고 영상을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싶었으나, 이 역시도 쉽지 않았다. 검색어를 어떻게 검색해봐도 도무지 그 광고 영상을 찾을 수 없었던 탓이다.
그렇게 세라비아는 자신의 휴대폰 바탕화면에 ‘최면 어플리케이션’ 하나만을 남기게 되었다.
“오늘도 늦어.”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매는 성한이 그렇게 이야기 했을 때, 세라비아는 저도 모르게 “또?” 하고 되물었다. 불과 며칠 전에 비슷한 주제로 한참을 다툰 것 같은데, 또 이 모양이다.
“맥케이브 위원의 따님이랑 볼 일이 있어. 그 아가씨는 나를 꽤 마음에 들어하니까 이참에 연을 맺어놓는 게 앞으로도 편하겠지.”
거울로 힐긋 세라비아를 본 성한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두 가지 짓을 동시에 해치우겠다는 무시무시한 성한의 통보를 들은 세라비아는 짜증과 분노로 잠시 머리가 멈추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별안간 벼락처럼 어떤 생각이 났다. 자신의 스마트폰에 다운로드 되어 있는 ‘최면 어플리케이션’이.
성한은 아무 대답 없이 갑작스럽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세라비아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해도, 별 다른 불만이 들려오지 않으니 대충 알아들었겠거니 했다. 며칠 전에 크게 싸운 것으로 아직까지 삐져있겠지, 겨우 그 정도의 가벼운 생각으로 성한은 대수롭지 않게 다시 한 번 정복을 확인한 후 방을 나섰다.
…그래도 말야, 지금까지 꽤나 불만이 쌓여있을테니 조만간 한 번 풀어주긴 해야겠군. 저번에 갔던 식당을 꽤 좋아했었던가, 근처에 호텔도 하나 예약해서…. 윤이 나는 구두까지 완벽하게 갖춰 신으며 그런 생각들을 떠올린 성한은 현관문 앞에서 평소처럼 세라비아에게 인사했다.
“…그럼 저녁에 보,”
“서, 성한아! 여기!”
찰칵.
뜬금 없는 카메라 셔터소리에 의아함을 느낀 성한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 세라비아는 재빨리 제 휴대폰 화면을 성한의 눈 앞에 갖다댔다.
뜬금없는 세라비아의 기행과 코 앞까지 들이밀어진 화면에 놀란 듯 커진 성한의 눈이 점점 생기를 잃고 혼탁해질 때까지…….
1분쯤 지났을까.
사실 세라비아는 이 어플리케이션의 사용법이 가물가물했다. 애초에 처음 봤던 광고 영상을 그렇게 주의깊게 본 것도 아니었고, 꽤 긴 시간이 지나기도 했으니까. 어쨌거나 생각나는 것… 사진을 찍고 즉시 휴대폰 화면을 보게 하는 것, 이 두 가지는 확실히 수행했다.
…사실 세라비아는 휴대폰 화면을 성한의 눈 앞에서 치우는 게 조금 겁이 났다. 당연했다. 만약 최면이고 뭐고 광고가 죄다 거짓말이라면, 성한은 이 사태에 대해 당연히 책임을 물을테고, 분명 화를 낼 테니까. 화면을 치우자마자 잔뜩 짜증이 난 성한의 얼굴이 바로 눈 앞에 보일까, 두 눈을 꼭 감고 스마트폰을 성한의 눈앞에 보이다가 조용한 시간이 꽤 오래 지나고 나서야 세라비아는 두 눈을 서서히 떴다. 동시에 스마트폰을 내렸다.
성한은 아까 침실에서 세라비아에게 일방적인 통보를 할 때와 아주 똑같은 모양새였다. 차려입은 군 정복은 주름 하나 없이 깔끔했고, 한 쪽으로 넘겨 정리한 머리 역시도 멀끔했다. 다만 다른 건… 왠지 혼탁해보이는 눈과 멍한 표정 정도였다.
“…다, 당신… 괜찮아…?”
“…….”
작게 벌린 입에서는 별 다른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계속 멍하니, 세라비아가 휴대폰 화면을 치운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세라비아는 성한의 눈 앞에 작게 손을 흔들어봤다. 아무 자극을 받지 못한 것처럼, 성한은 아주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뜰 뿐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 이제 어떡해야 하지. 세라비아는 아무 반응이 없는 성한이 덜컥 무서워졌다.
“우, 웃어 봐, 성한아.”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성한에게 ‘명령’을 내린 세라비아를 가만히 보던 성한이, 어느 순간 공식 석상 인터뷰에서 볼 법한 근사한 웃음을 띄우며 세라비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무표정이었던 얼굴에 갑자기 웃음이 피어나는 게 조금 소름끼치긴 했으나, 그래도 세라비아가 무척이나 보기 좋아하는 성한의 웃음이었다.
“내 이름 한 번 불러 볼래…?”
“세라비아. 세라비아 뉴트.”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간다며 좋아하는 미소를 지은 채로 성한이 세라비아의 이름을 불렀다. 성한이 진짜로 최면에 걸렸다는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아 아무 말 없이 작게 숨만 몰아쉬는 세라비아를 조금 의아한 듯 쳐다보던 성한이 아, 소리를 내며 덧붙였다.
“…세비?”
애칭을 입에 담을 때 성한의 미소가 조금 궤를 달리 했다. 조금 부끄러운 듯 작게 눈을 피하다가 달큰하게 지은 웃음이… 정말로 너무 사랑하는 연인에게 보일 법한 웃음이라, 세라비아의 가슴이 마구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너 괜찮은 거 맞아, 세비?”
“으, 응. 으응…. 괜찮지….”
그리고 세라비아는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덧붙였다.
“…사랑한다고 해 줘. 딱 방금처럼…….”
성한이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금 활짝 웃으며 덧붙였다.
“사랑해, 세비. 난 너밖에 없어.”
“어, 어떡해. 당신,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
와락, 세라비아가 성한을 끌어안았다. 성한이 지금 제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게끔 꽈악, 힘 주어 안으면서 세라비아가 성한의 귀에다가 속삭였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해 줘.”
“사랑해, 세비. 난 너밖에 없어.”
“…그럼, 오늘 늦게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럼, 당연하지.”
단 조금의 기다림도 없이 돌아오는 대답에, 세라비아는 팍, 하고 성한을 떼어내며 다시 물었다.
“정말로?”
“응, 정말로….”
여전히 생기 없는 눈으로 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는 성한을 보면서, 세라비아는 마치 무엇에 홀린 듯 계속해서 물었다.
“…그러면, 일도 그만 둘 수 있어?”
당신이 그렇게 나보다 사랑해 마지않는 일도 말이야……. 뒷말을 속으로 삼킨 세라비아가 땀이 차는 손을 만지작 거리면서 성한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 세라비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성한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도 그만두고… 저 멀리 아주 한족한 시골에서 우리 둘만, 그렇게 둘만 보면서 살 수도 있어?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성한이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말로? 당신의 모든 걸 포기하고? 일도, 명예도?”
세라비아가 몇 번을 되물어도, 성한은 똑같은 반응으로 여전히 미소를 띄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왜 불가능하겠냐고 되묻는 듯.
“세비, 네가 원한다면 뭐든.”
세라비아의 귀에 작게 대고 속삭인 성한의 말에, 세라비아는 말 그대로 심장이 멈출 뻔 했다. 허위광고가 아니었다. 이렇게 쉽게 모든 갈등이 풀리다니! 이렇게나 간편하게!
여전히 텅 빈 눈으로 마치 세라비아 밖에 없다는 듯 세라비아의 말만을 기다리고 있는 성한을 지켜보면서, 세라비아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지금 사직서 써. 그리고 오늘 출근해서 제출하고 와.”
“그래.”
세라비아의 말에 짧게 긍정한 성한은 자신의 서재에 들어갔다. 아마… 사직서 양식을 인쇄해서 수필로 작성하기 위해서겠지. 그 어떤 반항도, 싫은 기색도 없이, 오직 성한의 의지대로.
아까부터 두근거리는 심장은 좀처럼 진정될 것 같지 않았다. 말 그대로 배 안에 나비가 든 것 같았다. …토할 것만 같았다. 세라비아의 손이 덜덜 떨렸다. 자신을 바라보며 그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성한을 떠올리자면… 물론 설레고 두근거리기도 했으나, 긍정적인 감정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문득 제 작은 불안을 눈치 챈 세라비아는 잠시 제 두 눈을 홉떴다. 심어진 불안의 씨앗이 계속해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불가항력적으로 제 주인의 머리를 잡고, 떠오를 수 있는 모든 최악의 가능성이 마치 영화처럼 세라비아의 눈 앞에 펼쳐졌다.
만약에, 만약에…,
최면이 성한이 사직서를 낸 후에 풀리게 되면?
한적한 시골에서 두 사람이 함께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최면이 풀려서 한 여름밤의 꿈처럼 된다면?
그렇게 된 성한이… 자신을 엄청나게 미워하게 된다면?
버리게 되면?
어디선가 자꾸만 생각에 방해되는 쌕쌕거리는 소리가 자꾸만 들렸다.
그 소리가 공포에 질린 자신의 숨소리라는 걸 알아채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마침, 성한이 수필로 작성한 사직서를 들고 서재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깜빡.
성한이 왠지 모르게 빡빡한 것만 같은 눈을 깜빡였다. 마치 오랫동안 눈을 감지 않은 것 같이….
응?
조금 흐릿한 것만 같은 기억에 성한이 약간 인상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방금 막 세라비아가…
성한아, 여기, 하고 급하게 외친 것 같은데.
갑자기 엄습하는 두통에 성한이 고개를 기울이며 자신을 불러놓고 대답없는 세라비아에게 시선을 던졌다.
“…왜?”
“아, 아니…. 운전 조심히 하고 다녀오라고.”
크게 이름을 불러놓고 의외로 별 것 없는 말에 성한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뭔가를 말하려다가, 문득 손목시계에 시선을 준 성한이 의아하게 중얼거렸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다, 당신 늦겠다. 빨리 가.”
“…?”
조금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현관문을 나서는 성한을 재촉하듯 배웅해놓고선, 세라비아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화장실에 들어가 갈기갈기 찢어버린 성한의 사직서를 변기에 넣고 미련없이 흘려보냈다.
아까 전, 허겁지겁 삭제한 어플리케이션의 빈 자리를 검지로 톡톡 두드리면서, 아직까지도 두근거리고 있는 심장을 부여잡고 식탁에 엎어져 있자니, 화면에 메시지 알림이 떴다. 성한의 번호였다.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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