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ㄴㅌ 사나기군한테 닿고 싶지 않으니까 죽고 싶지 않아 1
글터디 7주차
장담하건대 니노미야 사나기와는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 빈말로도 친한 선후배 사이었다고 하기도 어려웠고, 굳이 따지자면 부활동을 하다가 마주쳐서 몇 번 아는 척 해봤다는 게 끝이었다. 그래서 그 애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에도 답지 않게 얼떨떨하게 되물었던 거다.
- …니노미야가?
- 그렇다는데. 뭐, 딱히 걔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냥 불행한 사고였대. 상대방 측이 음주운전이었다는 모양이고…. 그건 그렇고 넌 장례식 안 가냐? 꽤 친했었잖아.
친했다고? 우리가? …하고 되묻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남에게 보이기엔 우리가 그렇게 가까워보이기도 했나. 생각해보면 면식도 없는 다른 후배들보단 니노미야와 시간을 보낸 게 많긴 했다. 니노미야도 뻔뻔히 밥 사달라고 먼저 오곤 했고, 대부분은 영화와 관련된 일이긴 했으나 필요하면 비교적 부담없이 부르곤 했으니까. 그런데, 그게 그렇게 친해보이는 관계였던가. …정말로 우리가 친밀한 사이었다면, 니노미야의 부고 소식이 나에게 직통으로 왔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 별로 친하지도 않은 동급생에게 소문으로 그 애의 사망 소식을 들은 참인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검은 정장을 차려 입은 채로 니노미야의 분향소에 와있었다. 국화며 연기를 내며 타들어가는 향 냄새가 코 끝에 끈덕지게 남았다. 인망이 두터운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곁눈질로 배운 분향을 어설프게 따라하고, 상주와 인사를 했다. …니노미야의 어머니인가. 상당히 굳세 보이는 여인이었다. 열 여덟이나 되는 아들을 홀로 키운 사람 답지 않게.
-무슨 사이었나요?
대충 고개를 숙이고 분향소를 빠져나려는 순간, 니노미야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말을 붙였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대화에 나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기울이며 답을 고민했다. 정답이 없는 서술형 문제 같아 난감했다. 위로를 먼저 건네야 할지, 혹은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건네야 할지, 요령이 없는 나로선 무척이나 어려운 고민이었다. 말을 고르는 척, 힌트라도 참고할 수 있도록 재킷을 팔에 걸며 나는 니노미야의 어머니를 훑었다.
내게 말을 붙여놓고선 아들의 영정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는 모습. 이게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어머니의 얼굴을 천천히 클로즈업 하며 딱딱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니노미야의 영정사진 사진과 교차로 화면에 비추었을 것이다. 아들을 불우한 사고로 잃은 어머니의 슬픔이 잘 느껴질 수 있도록, 그리고 만약 촉이 좋은 관객이라면… 슬픔이라는 감정 이면에 있는 다른 것들까리 들여다볼 수 있도록.
철커덩. 가상의 슬레이트가 내려갔다. 이제는 현실로 돌아와 숙제와도 같은 대답을 해야하는 시간이다.
- …그냥, 아는 후배였습니다.
- 그런가요.
- 네.
괜스레 꼬투리를 잡힐까 일부러 무척이나 짧게 답한다.
- …….
그제서야 천천히 제 아들의 영정 사진에서 시선을 뗀 니노미야의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작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젠 지쳤다는 얼굴로, 약간 애수에 잠긴 미소. 보통 사람이라면 동정심이라도 들 만한 얼굴이지만, 어쩐지 기묘하다는 감상만이 남았다. 얇은 하얀 셔츠 아래로 오소소, 하는 작은 소름이 돋았다.
- 그래요…. 애써 혼자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그 애한테도 큰 위로가 됐을 거예요. 나한테 그랬듯이.
고마움을 전하는 인삿말보다 돌려 말하는 축객령이 더 반가웠다. 잠시 고개를 까닥 숙이고, 잠시 벗어놓은 검은 구두를 발에 꿰며 분향소를 나왔다. 니노미야의 시체는 조만간 화장될 것이다.
안타깝지만 자신과 니노미야 사나기는 딱 그런 정도의 인연인 것이다. 상대방의 죽음을 실감하게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거나, 후유증이 남는다거나, 하는 정도의 사이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올 때처럼 버스를 타기보다는 그냥 집까지 걸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초여름에 걸친 정장이 조금 덥긴 했지만 장례식장 특유의 숨이 턱 막히는 분위기가 싫었으므로, 이를 조금이라도 환기시키기 위해서였다. 벗은 재킷을 팔에 걸어 놓은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서히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이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강 위의 대교에 들어선다.
중학생 시절,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전 여자친구의 장례식장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때 이후로 장례식장은 아버지의 권유로 정말로 꼭 참석해야하는 것이 아니면 거의 가지 않았는데. 그 때와 지금의 장례식이 다른 점을 하나씩 꼽아가며 겨우 불안하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킨다. 그래, 그 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니노미야는 불우한 사고였지. 그리고 그 애는 모든 학급이 단체로 분향을 갔고, 이번은 내 의지로 혼자 찾아온 거야. 그 애의 상주는 아버지였고, 니노미야의 상주는 어머니셨지….
문득 번개처럼 찾아드는 깨달음이 있다. 죽음이란 건, 의외로 굉장히 억울한 것이군. 당하는 쪽에 있어서도, 그리고 남는 쪽에 있어서도….
한 번 붙잡기를 실패한 불안이 심하게 널을 뛴다. 아까까지만 해도 ‘조금 덥다’라고 생각된 온도가 참을 수 없이 뜨거워진다. 등에 식은 땀이 흘러 셔츠가 달라붙는 게 느껴진다. 평소 신는 운동화와 다른 소리를 내며 바닥을 긁는 구두의 소리가 불규칙해졌다. 그나마 차갑게 유지되는 머리가 더 이상 걷는 건 무리라는 신고를 내렸다. 그래, 잠시… 잠시만 쉬었다가 가자. 인적이 드문 대교 위에서 과호흡이라도 오면 최악이니까.
대교 난간에 기대어 가까스로 숨을 고른다. 푹 숙인 고개에서 투둑, 하고 땀방울이 쏟아진다. 충동으로 장례식장에 온 것부터가 잘못이었던 것이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면,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런 곳에 방문해서는 안 됐다. 커지는 숨 소리를 인식하며 최대한 숨을 아낀다. 질끈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가끔씩 스트레스를 단시간에 너무 받으면, 몸의 이곳저곳이 제멋대로 파업을 선언할 때가 있다. 다리 근육부터, 호흡 기관이라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처럼 귀에서 균형을 담당하는 기관이라던가….
…어?
이상함을 깨닫는 순간엔 이미 몸의 균형이 난간 너머로 넘어가 있었다. 낡은 난간의 나사라도 한 두개 빠져있던 모양이지. 철컹, 하고 다시 영사기가 내려가는 환청이 다시금 귀에 들렸다. 슬로우 모션으로 스크린에 잡히는 자신의 몸이 있다. 힘 없는 몇 번의 발걸음으로 자신은 아마 대교 아래로 추락할 것이다. 빠르게 구조를 받을 수 있을까. 인적은 커녕 차도 많이 다니질 않는 이 곳에서는 무리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길어봤자 몇 초 후, 자신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쉽게 상상되지 않아 이만 이쯤에서 상영을 종료하기로 한다.
- 우와아아, 선배!
귀에 들리는 저 익숙한 건들거리는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방금의 영화는 현실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 나는 살고 싶어도 억울하게 뒤졌는데, 선배는 무슨 상심할 거리가 있어서 혼자 자살을 해요?
- …….
깜짝 놀란 덕에 어떻게든 다시 몸의 균형을 잡는다. 비록 꼴사납게 엉덩이를 바닥에 찧긴 했지만, 그 것보다도 꼴사납게 대교 밖으로 몸을 던지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곳저곳 아픈 몸과, 서늘하게 흘러내리는 식은 땀에 이 일이 꿈이라고 우기고 싶어도 우길 수가 없게 된다. 나로서는 비극에 가까운 일이다.
뻣뻣하게 굳은 목줄기를 겨우 젖혀 난간 위를 쳐다본다. 야속할 정도로 익숙하고 뻔뻔한 얼굴이 시야에 비춘다. 방금까지 향 연기만 가득한 장례식장에서 딱딱한 표정이나 짓고 있었던 장본인이, 평소처럼 얄미운 표정으로 웃으면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교통 사고라고 해서 온 몸이 산산조각에 얼굴마저도 진창이 됐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멀끔한 모습이었다. 초여름 노을을 배경으로 강의 바람으로 흔들리는 가쿠란이 진짜같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난간 위에서 요령 좋게 서있던 니노미야 사나기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내 모습에 작게 미간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기울인다.
- 뭐야, 선배 눈 뜬 채로 기절했어?
하. 차마 길게 대답할 기운도 들지 않는다.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죽기 전하고 아주 똑같다. 내가 아주 그럴 듯하게 만든 환각이든, 혹은 진짜 니노미야의 유령이든, 기가 찰 노릇이다. 어처구니가 없어 터진 헛웃음에 입꼬리만이 비실비실 올라간다.
믿기지 않지만.
……유령 후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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