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ㄴ, ㄴㄴ, ㅇㄹㄴ ㅇㅈ ㅈㄷ

글터디 8주차

글터디 by 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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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보면 별 이유도 없이 계속해서 생각나는 말들이 있다. 그것들은 어떻게 해도 뿌리칠 수 없으며 아무리 애원하고 사정해 봐도 마치 누군가의 유언이나 저주인 마냥 계속해서 머릿속을 휘젓곤 하는데……. 그러니까 그 말을 들었을 때에 나는 이제 막 내 인생의 전성기가 시작될 줄 알았던 멍청한 스무 살이었고, 절대 어른이 될 수 없음에도 스스로 성인이 되었다 믿는 머저리였다. 교훈은 짧고 명확했다. 세상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개새끼들이 많다.

 

그러니까

 

벌어진 일은 이제 더 이상 어쩔 수 없고,

 

살 길을 찾아 봐야지.

 

유영은 제 자작곡들을 전부 도둑맞았다. 이 바닥에선 물 보듯 뻔한 일이지만 중소 엔터테이너 기업 대표는 내 항의를 전부 묵살했다. 어쨌거나 듣보아이돌에게 투자하는 비용 충당을 다른 엔터 가수들에게 곡을 주고, 받는 곡 로열티로 수거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 때문이었다. 더불어 대표는 유영에게 이 일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할 시 미성년자 시절 내 스캔들을 교묘하게 이용해 퇴출시킬 수 있음을 인지시켰다. 대표가 언급한 그 스캔들은 단지 부모님의 가게 일을 도왔을 뿐이며, 반반한 얼굴 때문에 서빙을 하러 갔다 진상 고객들이 담뱃불이나 한 번 붙여보라는 요구에 따랐을 뿐이라는 나의 해명 역시 묵살되었다.

 

시발. 아주 좆같기 그지없었다. 남들과는 다른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던 우리 부모님이 정오쯤 가계부를 계산하며 폭폭 한숨을 내쉬던 것도, 당장 테이블을 엎고 싶어도 참고 웃으면서 익살스럽게 – “누나도 참. 나 미잔건 알고 있어요? 누나 때문에 내가 담배도 안 피우는데 라이터 가지고 다닌다니까.” - 담뱃불을 붙여줬던 것도, 연습생 생활과 학교를 오가며 술에 쩐내를 풍겼던 것도, 나름 꿈이라고 정성껏 만든 곡들에 다른 가수들의 목소리가 입혀져 유명 차트 1위를 하는 걸 보는 것도.

 

그 중에서도 도화선에 불을 붙였던 건 꼴에 제일 연장자라며 리더를 맡아갔던 한 개새끼였다. 그 새끼는 엄밀히 따지자면 나랑 두 살도 채 차이나지 않았는데, 마치 인생의 선배처럼 굴었다. 스트리밍 사이트 차트 1위에 오른 가수의 곡을 들으면서 작곡‧작사가 란을 찾아보는 내게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벌어진 일은 이제 더 이상 어쩔 수 없고,

 

살 길을 찾아 봐야지.

 

하고.

 

나름 잘 관리해왔던 욱하는 성질을 참을 수가 없었던 건 바로 그 새끼가 지, 라고 문장을 끝내는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사람의 인중을 가격하는 오른손의 둘째 마디들이 아팠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자리로 짐을 챙겨 숙소를 이탈했다. 그 날 밤 나는 무작정 끌고 나온 캐리어 위에 앉아서 인생 처음으로 담배를 피웠다. 내가 피우기 위해 라이터 불을 켠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도망치듯이 군대에 입대했다. 어디에서 도망쳤느냐 하면, 고졸 주제에 이젠 뭘 하고 먹고 살거냐는 부모님의 눈치 등쌀에, 그리고 유영의 멤버 폭행과 무통보 잠적, 탈퇴를 알리는 기사와 그것에 달리는 무수한 댓글에, 또 계약 파기금 내 앞에 청구된 돈 앞에. 입대를 위해 들른 이발소에서 주인아저씨는 무슨 아이돌이냐며 내 머리색을 보고 기함을 토하며 농담을 건넸는데, 나는 억지로라도 웃을 수가 없었고, 그렇게 적막 속에서 금발 머리칼들이 투둑투둑 떨어졌다.

 

2년 남짓한 군대 생활 끝에 내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쥐꼬리만한 군인 월급 역시 계약 파기금을 갚는데 동원되었고, 부모님과는 내가 자의적으로 연락을 끊다시피 했다. 내가 운용할 수 있는 아주 조금의 생활비로 구한 원룸 월세방의 천장을 보며 잠들 때마다 절망스럽기 짝이 없었으나 후회는 없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 아까워서라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인생이란 멈출 수 없는 고속 열차에 강제로 탑승한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고, 그 열차의 최종도착지에 대한 생각을 가끔 했다. 그래,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은 어느 순간 귓가에 그 문장들이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벌어진 일들은 이제 더 이상 어쩔 수 없고, 살 길을 찾아봐야지.

 

그러니까,

 

벌어진 일들은 이제 더 이상 어쩔 수 없고,

 

살 길을 찾아봐야지.

 

맞는 말이었을지도 몰랐다.

 

그 후로도 나는 이 바닥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유는 좀 다양했는데, 먼저 나는 이 바닥 일밖에 할 수 없었으며, 또 좀처럼 계약 파기금을 갚을 수 있는 큰 돈을 운용할 수 있는 판이 극히 적었고, 아주 가끔씩 내가 터뜨린 사건 사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PD들 – 그러나 이 마저도 공중파나 지상파는 극히 드물었고, 대부분 웹 쪽었다. - 이 날 써주긴 써주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오면 사람들이 욕을 하기 위해서라도 관심을 가져준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럴 수도 있지.

 

전무후무한 사건이기는 했다. 무통보 잠적과 탈퇴만으로도 철새니 뭐니 하며 역적이 되는 시대에, 심지어는 멤버를 폭행하기까지 했으니까.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내가 일으킨 사건 때문에 내가 있었던 아이돌 그룹은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렸고, 어쨌거나 조금씩 인기가 부상하고 있긴 했으니까. 이제는 나와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파기금을 갚아야했고, 좆같은 이자는 조금씩 불어났고, 나는 닥치는대로 받은 일을 했고, 내 몸값이 조금이라도 오르려하면 인터넷에서는 나에 대한 찌라시를 퍼날랐다.

 

전 소속사가 가지고 협박한, 미성년자 시절 술을 따르거나 담뱃불을 붙이는 사진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연인으로 발전할 것 같은 주변의 여자 연예인들과 스캔들이 났다. 실제로도 연인이 자주 바뀌는 편이기는 했다. 가족과는 거의 의절 상태에, 제대로 된 매니저나 소속사 식구들도 없었으니, 가장 의존하게 되는 게 연인 관계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깊은 관계가 되기도 전에 끊기는 인연이 대다수였다. 구질구질하게 매달려본 적은 없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너희도 어쨌거나 살 길을 찾아봐야 할 테니까. 아무래도 이 쪽과 엮어서는, 안될 일들이 더 많을 테니까.

 

생각해보면 당시의 나는 아주 많이 지쳤고, 외로웠다.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감시를 당하는데도 마치 혼자인 양 외로울 수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신기하지 않은가. 매일 자기 전, 내 이름이 들어간 기사의 댓글들을 보며 마냥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사실이거나 사실이 아니거나는 중요하지 않던 게임 아니던가. 소속사가 딱히 없었기에 업계 사람들과 쉽게 연락할 수 있도록 반강제로 생성한 SNS는 간혹 올리는 홍보를 제외하면 글을 게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 대한 논란은 아주 간간히 사람들의 입에 올랐고, 이상한 ‘떡밥’이 터졌고, 증언과 증거가 나왔고…….

 

그러니까, 그들도 살아야겠지.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고.

 

앞으로의 살길을…………

 

습관과도 같은 말을 중얼거리면서 후, 하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폐 깊은 곳에서 얽혀있던 속담배가 시원하게 밀려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천장에 달려있는 전등에 눈이 부셔도, 좀처럼 일어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물고만 있던 담배에서 재가 후두둑 떨어졌다. 뜨거웠다. 그래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일어나지 않은 게 아니라, 일어날 수가 없었다.

마침 적막이 싫어 튼 텔레비전에서 요란한 CM송이 튀어나왔다.

- 대한민국에 숨어있는 스타들을 기다립니다! 베리드 스타즈 전국오디션 절찬 모집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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