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칙적애착궤도와 범우주적살별프로토콜

[아나오비] 변칙적 애착 궤도와 범우주적 살별 프로토콜_08

이럴 수는 없었다. 정말 이럴 수는 없었다! 베이더는 조종간을 주먹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조종간이 흔들리며 기체 또한 덜컹거리며 흔들렸지만, 베이더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찌나 힘을 주고 있는 건지 꽉 쥔 주먹이 덜덜 떨렸다. 또다시 오비완을 눈 앞에서 놓치고 말다니. 이번에는 확실하게 잡아서 다시는 자신에게서 도망칠 수 없도록 자신처럼 두 다리라도 끊어버릴 생각이었는데! 이건 자신의 계획이 아니었다. 이건, 자신이 바랐던 결말이 아니었다!

“제기랄….”

베이더의 분노에 그의 포스가 난폭하게 튀어다녔다. 스타파이터 바깥으로 흘러나온 그의 포스는 두 태양에 잡혀 공전하고 있던 소행성들을 펑펑 터트렸다. 깨진 돌멩이와 모래 먼지로 앞이 뿌옇게 변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포스는 무슨 생각으로 다른 차원에 있던 또 다른 자신을 데려온 것인가? 그쪽 차원에서 자신의 오비완과 서로 죽고 못 사는 듯이 굴 것이지! 왜 여기에 나타나 자신의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고, 자신의 오비완도 아닌 오비완을 성심성의껏 아끼다 못해 그를 데리고 도망치는 것인가? 그리고 왜 그들이 도망치려는 것을 막으려고 하면 자신의 포스가 통하지 않는 것인가?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실패작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베이더는 몹시도 불쾌했다. 마치 포스가 포스의 어두운 면에 빠져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저버린 선택받은 자를 버리고 다른 차원의 선택 받은 자를 빌려온 것 같았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가 자신을 점점 좀먹어 가고 있는 게 느껴졌지만, 베이더는 내버려 두었다. 만일 그가 아직도 제다이의 거짓말에 속고 있는 멍청이였다면 이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노력했겠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시스였다. 분노가 자신의 몸과 정신을 잠식할수록 그의 힘은 쉬지 않고 계속 팽창하는 우주처럼 끝없이 커질 것이었다. 그건 시스로서 환영할 일이었다.

베이더는 공허하고 조용하고 새까만 우주 공간 속에서 분노를 곱씹고, 되씹으며 오비완을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불쾌감과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고 점점 그 강도를 더했다.

황제가 처음 휴가라는 시간을 주겠다고 했을 때 베이더는 황제의 의도를 짐작했다. 근래 들어 그의 말을 안 듣기도 했고, 주체 못 할 화로 제국군의 인력을 소비시켰으며, 그의 명령을 수행하던 도중 오비완과 관련된 이야기가 들린 것 같으면 황제의 명이든 뭐든 다 내팽개치고 오비완의 흔적을 찾아 미친 듯이 찾아다녔으니 그 늙은이의 인내심이 다 떨어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행동이 황제에겐 그렇게 달갑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베이더는 황제가 준 시간 내에 오비완을 찾아낼 자신이 없었다. 무려 5년이었다. 5년 동안 베이더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오비완의 흔적을 찾아다녔는데 그의 단서를 조금이라도 찾아낼 수 없었다. 빌어먹을 은하계는 너무 넓었고,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행성과 위성이 너무 많았기에 황제가 아무리 년 단위의 휴가를 준다고 해도 그사이에 오비완을 찾아낼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니 포스가 보여준 꿈에서 타투인에 있는 오비완을 보았을 때 얼마나 기뻤겠는가! 정확한 꿈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잠에서 깨어난 베이더의 머리에는 오로지 하나만 남아 있었다. ‘오비완이 타투인에 있어!’ 그래서 바로 데바스테이터 호에 인력과 물자를 가득 싣고 이 빌어먹을 행성에 온 것이었다.

그 꿈을 꾸었을 때 포스는 자신이 오비완을 찾길 바란다고 생각했다. 비록 5년 동안 아무리 묻고 물어도 오비완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이제와서 알려주는 게 어디인가? 오비완을 찾기 위해 당도한 타투인에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리 생각했다.

이대로 가다 간 정말 분노밖에 남지 않은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무렵, 삑삑거리며 통신 알림이 시끄럽게 울려 댔다. 무신경하게 버튼을 누르자 아까 전 함교에서 자신에게 상자를 건네주었던 장교의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그는 베이더를 향해 짧게 경례하고 입을 열었다.

[경께서 맡겨 주셨던 배아 조직의 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지금, 보고드릴까요?]

“………아니. 직접 가서 듣겠다. 방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곧, 가지.”

베이더의 말에 장교는 다시금 경례하자, 홀로그램이 종료되었다. 베이더는 의자에 자신의 몸을 길게 기댔다. 무스타파의 용암처럼 끝없이 들끓었던 분노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당장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화산 같은 분노가 가라앉자 노곤함이 찾아왔다. 분노에는 어마어마한 체력이 필요했다.

“…인체 조직이라고?”

“네, 자세한 건 좀 더 분석해봐야 알겠지만, 6주 정도된 쌍둥이 배아로 확인되었습니다.”

노곤함에 젖은 의식 사이로 아까 전 함교에서 나눴던 대화가 비집고 올라왔다. 6주 정도된 쌍둥이 배아. 그 말을 듣자마자 얼마나 멍청한 표정을 지었던가. 다행스럽게도 검은 투구를 뒤집어쓰고 있는 덕에 그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는 걸 아는 이는 베이더, 본인밖에 없었다. 관심사가 도망친 오비완에서 6주밖에 안 된 쌍둥이 배아로 옮겨지자 아무 생각도,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저 추측일 뿐이라도 대체로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베이더는 자신의 머리가 마치 어떤 물감이나 크레파스도 묻지 않은 새하얀 스케치북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그 배아들의 정보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었다. 오비완의 거처에서 발견된 것을 토대로, 그의 아이들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다른 한쪽의 부모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의 DNA와 비교해보라는 명령을 덧붙인 것은 자신이 그 아이들의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록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오비완이 불임에 가까운 난임이기는 하나 그들은 주기적…은 무슨 매일 같이 몇 번의 관계를 가졌으니 아무리 난임이라 해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확률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떨어진 지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말은 자신이 아닌 다른 이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들일 수도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간신히 진정을 찾았던 속을 뒤집을 정도로 짜증이 솟구쳤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지워버렸다. 그가 살았던 동굴에서는 한 사람이 생활한 흔적만 발견되었을 뿐 다른 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또 다른 세계에서 온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마주한 오비완의 표정은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애틋한 상대를 마주했을 때의 표정이었다. 만일 그가 타투인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가졌다면, 아나킨의 얼굴을 보고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지 않은가.

쓸데없이 머리를 굴리고 괴로워할 바엔 다시 장교에게 통신을 걸어 자신의 DNA와 배아들의 DNA가 일치하는지 물어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베이더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경의 DNA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들을까 겁이 나고 무서웠다. 은하계의 악몽이라 여겨지는 그가 배아들의 아비가 아닐 까봐 두려워한다고? 만일 이 소식이 반란 연합까지 알려진다면 베이더의 약점을 잡았다고 좋아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뭐, 그걸 어떻게 써먹을지는 모르겠지만.

베이더는 왕복선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타이 시리즈에 하이퍼 드라이브 기능이 없다는 게 내심 아쉬웠지만, 광선검이 망가진 제다이가 향할 곳은 어차피 뻔하다. 특히 온 은하계에 있는 제다이 사원이 은하 제국 아래에 있는 지금이라면 더더욱. 제다이나 포스와 관련된 곳은 제국이 처음 세워질 때 은하 제국이 가장 먼저 점령했기에 베이더는 미련 없이 스타 파이터를 타투인 쪽으로 돌렸다.

경의 DNA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 * *

벤이 깨어난 건 하이퍼 드라이브 터널에 들어온 지 약 1시간이 지날 무렵이었다. 수면에 가라앉았던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면서 그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퍼석퍼석한 피부였다. 만약 이 느낌이 평범했다면 사막에서 고된 하루를 보내고 다면 타투인의 뜨거운 태양열에 혹사당한 피부가 피로를 호소하는 것에 불과했기에 그냥 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피부가 너무 뻑뻑했다. 마치 잠들기 전 펑펑 울어서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간, 그런 기분 나쁜 감각이었다.

벤은 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비완이었을 때는 제다이스럽지 못하다는 이유에서였고, 벤 때는 사막에서 우는 행동은 쓸데없는 체력 낭비이자 사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상에 있는 생물의 모든 수분을 앗아가겠다는 듯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는 마실 물을 구하는 것조차 제법 고된 일이다. 겨우겨우 물을 찾아 몸에 채웠는데 쓸모없는 감정에 휩쓸려 두 태양 아래에서 버텨야 할 체력과 애써 채운 수분을 토해내는 것은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벤이 자신이 지냈던 동굴에서, 자신이 겪은 현실이 너무 괴롭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하루를 머리가 띵할 정도로 울며 눈물과 함께했던 그 시기에 깨달은 인생의 진리였다. 진리라고 말하기엔 너무 작고 소박해서 거창할 정도지만.

그래서 이번에는 무엇 때문에 울었지, 벤 케노비?

쓸데없는 감정에 휩쓸려 체력과 수분을 낭비한 스스로에게 비아냥거렸다. 좀 더 자신을 비난하고 왜 울었는지 기억을 되짚고 싶었지만, 목이 너무 말라 물이 마시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자신을 타박하는 건 그 뒤에 해도 괜찮았다. 애초에 그는 쉽게 죽을 수 없었다. 수많은 죄와 죽음을 짊어진 주제에 아득바득 살아온 이유는 스스로에게 죽음이라는 안식을 내어줄 수 없었다. 죄인에게 죽음은 너무 호화롭지 않은가.

벤이 서서히 눈을 떴다. 그의 잿빛이 감도는 파란 눈동자에는 아직도 무의식에 사로잡혀 있어서 초점이 흐릿했다. 때문에 눈앞에 낯선 조종간이 있어도 그의 머리는 아직도 자신이 타투인 동굴에 있다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탓에 그의 머리는 시각이 받아들인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그런 그를 이끈 것은 시야 끝에 걸린 푸른 빛이었다. 마치 그 아이의 눈동자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 파란 빛을 멍하니 바라보며 고개를 틀었다.

수백, 수천, 수만 번은 더 보았을 하이퍼 드라이브의 푸른 터널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그에 놀란 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자신을 단단하게 고정하고 있는 안전벨트만 아니었다면 당장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의 의미 없는 덜컹거림은 무릎 위에 놓여있던 상자를 떨어트렸고, 뒤에 있던 두 인기척을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아, 마스터. 일어나셨어요?”

아나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안심했다는 미소를 지으며 물에 젖은 밀대를 든 채 벤에게 다가왔다. 그의 옆에 있던 R2-D2 역시 청소용 세제와 걸레를 짧고 가느다란 기계 팔에 걸고 있었다. 아나킨의 이마에는 땀이 제법 송골송골 나 있었는데 이 밀폐된 공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열심히 청소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나킨은 전혀 지쳤다는 기색 하나 없이 그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몸은 좀 괜찮아요? 많이 울어서 목마를 거 같은데 물이라도 드릴까요? 배고프지는 않으세요? 군용 식량이 창고에 있더라고요. 맛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점점 정신을 되찾은 벤은 자신이 기절하기 직전의 상황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렸다. 데바스테이터 호에 잠입했다가 발각되어 제국군과 싸운 일, R2-D2의 도움으로 격납고까지 도달했지만, 미리 기다리고 있던 베이더와 대면한 일, 그가 그 상자를 찾아냈다는 사실에 무너져 모든 일을 아나킨에게 떠넘긴 꼴사나운 모습까지. 해일처럼 몰려오는 착잡함과 수치심에 얼굴을 파묻으며 몸을 수그렸다. 그런 오비완의 행동에 아나킨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의 등을 부드럽고 천천히 쓸어주었다.

“마스터, 괜찮아요?”

“……미안하구나. 또, 내 뒤치다꺼리를 하게 만들었어. 참, 한심해. 너무 어이가 없어. 어떻게 스승 된 자가 제자에게 의존만 할 수 있는지. 네게 참, 면목이 없구나.”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마스터.”

아나킨은 벤을 달래 주기 위해 그 커다란 손으로 토닥거려줬다. 따스하고 커다란 손은 벤에게 안정감을 찾아주기에 충분했다. 벤이 어느 정도 진정하자 아나킨은 벤의 발치에 떨어져 있는 상자를 주워들었다. 그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벤은 살짝 고개를 들어 상자를 노려보았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상자는 잠금장치가 떨어졌기에 이번에도 한껏 열려 있었다. 벤은 그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까 안에 있는 걸 지키지 못한 거겠지. 그러니까 안에 있는 걸 쉽게 빼앗긴 거겠지.

상자를 향해 난폭한 생각을 퍼붓는 와중에도 무생물 따위에게 화를 내는 스스로의 모습을 참 한심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자신을 끊임없이 원망할 게 뻔했다. 알량한 죄악감에 상자를 사막 한 가운데에 버리지 못한 자신의 행동을, 얄팍한 동정심에 자신이 지내는 동굴 한구석에 묻어버렸던 지난날의 결정을. 현재 상황을 불러온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저주하기엔 이미 벤의 자기혐오는 한계치에 달하고 있었다.

“이거, 매우 중요한 거죠? 상자가 아니라 안에 들어있던 게 중요하겠지만….”

“…그래, 중요했었지. 너무 중요해서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그, 실례가 안 된다면 이 상자가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우물쭈물하는 아나킨의 모습에서 벤은 그가 정말로 궁금해하는 게 상자 따위가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그저 바로 물어보면 실례가 될까 최대한 예의 바르게, 정말로 궁금한 것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물어보고 있었다. 자신이 정말로 중요한 것을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 있도록, 또 벤이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아나킨의 말에 벤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뭐 이제 와서 숨기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이미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들키고 말았으니 더는 비밀이 아니었고, 마냥 숨겨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비밀을 알았다고 노심초사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 이제는 말해도 괜찮았다. 그저 아직, 벤이 이 비밀을 입에 담을 준비가 덜 됐을 뿐이었다.

벤은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눈을 꾹 감았다. 아나킨은 재촉하지 않고 그가 입을 열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주었다. 이내 벤이 눈을 느리게 뜨며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은은한 측은지심이 담겨 있었다.

“그건, 그냥 나무 상자가 아니라, 관이란다.”

“시체를 담을 때 쓰는 그 관이요?”

“그래.”

벤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인지 상자를 들고 있던 아나킨의 손이 굳었다. 그의 시원한 파란 눈에 약간의 경악이 서렸다. 예상했던 반응이고 당연한 반응이었기에 벤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평범한 나무 상자가 사실은 시체를 담는 관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대부분 아나킨처럼 반응할 게 뻔했다.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라 자신이 만약 아나킨이었다면 저것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멍한 눈으로 벤을 바라보던 아나킨은 고개를 떨구며 나무 상자, 아니 관을 바라보았다. 눈을 살짝 굴리다가 망설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 였는지도 물어봐도 되나요? 아, 말씀하시기 힘드시면 안 하셔도 괜찮아요.”

여전히 정중하고 조심스러운 자세였다. 더구나 이번 질문은 앞서 했던 질문과 달리 민감한 부분을 건들고 있었기에 더더욱. 물론 벤은 그의 질문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미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들켜버린 비밀이었고, 그 비밀은 지금 자신의 손을 떠나 가장 들키고 싶지 않았던 사람에게 있으니까. 아나킨의 질문 방법은 정말로 효과적이었다. 아까처럼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것과는 달리 속이 미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벤은 자신의 양팔을 감싸 안았다. 그의 잿빛이 섞인 푸른 눈동자에 얼핏설핏 공허함과 상실감이 자리 잡았다.

“…………아이들이었지. 뱃속에서 6주밖에 못 자랐던 아이들. 나와, …아나킨의 아이들.”

* * *

“오랜 시간 공기와 접촉하지 않아 손상은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닙니다. 덕분에 DNA를 추출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우선 배아들은 처음 보고드린 대로 체내에서 6주 동안 자란 상태이며 주변 환경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태어난 지는 대략 5년 정도 지난 것으로 추측됩니다. 성별은 각각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입니다. 그리고, 맡겨 주신 베이더 경의 DNA 데이터와 배아들의 DNA 데이터를 각각 비교한 결과 99.99%로 일치하였으며, 이는 경께서 아이들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사료됩니다.”

적막이 깔린 베이더의 방에는 보고를 전하는 장교의 덜덜 덜리는 목소리와, 베이더의 이질적인 숨소리, 그리고 작은 박타 캡슐에서 나오는 기포 소리가 들렸다. 장교의 보고가 끝나자 방에는 오로지 적막만이 깔렸으며, 수다쟁이 금빛 드로이드 또한 지금만큼은 말을 아꼈다.

“그 데이터에, 오류는 없나?”

“네. 보고드리기 전에 몇 번이나 검토한 데이터입니다. 오류가 있을 확률, 은 극히 희박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보고를 끝낸 장교는 슬며시 목을 움츠렸다. 자신의 보고를 들은 베이더 경이 화가나 냅다 목을 비틀어 버릴까 무서웠다. 물론 이런 알량한 방법으로 포스라는 미지의 힘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장교는 살기 위해 몸부림이라도 치고 싶었다.

제국의 2인자로 군림하고 있는 다스 베이더 경과 배신자 제다이 오비완 케노비의 아이들이라니!

그는 자신의 데이터 분석 같은 사무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제국 사관학교에서도 자신의 성적은 우위를 달리고 있었으며 그 성적 덕분에 제국의 2인자를 보좌하게 되지 않았는가! 물론 아무리 뛰어난 데이터 분석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워낙 괴팍하고 난폭한 성격을 가신 상사 앞에서는 빛을 잃곤 했다. 자신이 분석하는 건 데이터였지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자신의 뛰어난 분석 실력을 토대로 보았을 때 이번 보고의 정확도는 100%라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무 터무니없는 결과다. 어느 정도로 터무니없냐면 지금 당장 코러산트에 있는 3류 잡지사에 방문해 자신이 들고 있는 데이터와 보고서를 들이밀며 “제국 2인자 다스 베이더와 배신자 제다이 오비완 케노비 사이에는 아이가 있어요! 그것도 쌍둥이!”라고 소리쳐도 그게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냐며 퇴짜 맞을 정도였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라면 가짜 뉴스도 서슴없이 다루는 3류 잡지사도 거부할 진실. 그게 자신의 손으로 분석한 데이터였다.

제 3자인 자신도 너무 충격적이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 당사자인 베이더 경은 자신보다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후….”

숨 막히는 적막을 깬 건 베이더였다. 그는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무거운 한숨이 더욱 목을 조이는 기분이다. 처음에 베이더가 배아들의 DNA와 자신의 DNA를 대조해보라고 했을 때, 장교는 베이더의 명령의 의문을 가졌으나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럴 여지도, 그럴 확률도 없지만 배신자 제다이의 숨겨진 아이가 발각된 이상 쓸데없는 추문에 얽히기 전에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다스 베이더는 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제다이를 혐오했다. 그가 제다이를 고문하는 방식에는 일말의 인권조차 말살되었다. 그런 그가 제다이와 붙어먹었을 리 없지 않은가! 오류가 있을 확률을 물어본 것도 자신이 들은 내용을 도무지 믿을 수 없어서 가까스로 내뱉은 말이라 생각했다. 뭐, 그런 것치곤 그의 어조가 너무 평온하긴 했지만. 장교는 지금이라도 데이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다시 분석해오겠다고 말할까 말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래도 결과는 같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베이더는 자신의 뒤에 있던 장교를 향해 몸을 틀었다. 그 모습을 본 장교는 더욱 아연실색하며 몸을 움츠렸다.

‘이제 죽을 거야! 터무니없는 보고를 올렸다는 죄로 죽을 거라고! 엄마, 소파 아래쪽에 보면 흰 봉투가 있을 거예요. 그거 용돈이지만 제가 죽으면 평생에 걸쳐 쓰세요. 아빠, 제 책상 아래에 보면 어버이날 선물로 안마기를 사 놨어요, 부디 그거 쓰시면서 저를 생각해주세요. 그리고 여동생아! 지난 주에 냉장고에 있던 생크림 빵은 내가 먹었어! 맛있어라. 역시 3시간 동안 줄 서서 사온 보람이 있네. 물론 네가 줄 서서 사왔지만!’

장교는 속으로 닿을 리 없는 유서를 썼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목을 괴롭게 옥죄어오는 고통은 없었다. 베이더는 함교와 연결된 통신 버튼을 누르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마지막 정찰조가 귀환하면 일룸으로 향한다. 일룸에 인퀴지터리우스가 있는가?”

[그랜드 인퀴지터께서 죽음의 별 진척 상황 점검을 위해 현장에 나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습니다.]

사실 베이더는 그랜드 인퀴지터가 오비완을 생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이 은하계에 존재하긴 할까? 자신도 이렇게 애를 먹고 있는데. 불가능한 명령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랜드 인퀴지터를 이용하려는 이유는, 아마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조급함 때문이리라.

“그럼 일룸에 있는 분대와 함께 폐사원을 근처를 수색하고, 제다이가 나타나면 무조건 생포하라고 전달한 뒤에 지금 보내는 사진들을 토대로 수배지를 만들어 모든 스톰트루퍼들에게 배포하도록”

베이더는 명령과 함께 옛날에 쓰던 하드디스크에서 오비완과 자신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찾아내 이름과 함께 전송했다. 제다이 사원 인적 사항 등록용으로 썼던 지라 지금과는 달리 많이 앳된 얼굴이었지만 아예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네, 알겠습니다!]

통신을 쓴 베이더는 앞서 보고를 올린 장교에게 몸을 돌렸다. 장교는 베이더의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베이더는 으레 그렇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교는 떨리는 다리를 움직여 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문 앞에 도달할 때까지도 베이더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터무니없는 보고를 올렸음에도 자신이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이 달갑기 그지없었다.

‘그럼,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도착하면 반란군 포로나 고문’

장교의 생각은, 거기서 끊겼다. 생각뿐만 아니라 그의 몸 또한 베이더의 방에서 나가지 못한 채 고꾸라졌다. 목은 크게 꺾여 있었고 벌려진 입에서는 피가 섞인 빨간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오고 있었다. 하얀 흰자 위는 실핏줄이 다 터져서 시뻘겋게 물들었으며 그의 갈색 눈동자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베이더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있던 사람이 처참하게 무너진 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다가 문 옆에 달린 스위치를 조작했다. 방문이 열리며 스톰트루퍼 세 명이 들어와 목이 꺾인 채 죽어 있는 장교의 몸을 물건마냥 들었다.

그 몸은 지금껏 다른 이들이 그래왔듯 이 함선의 연료가 되리라. 베이더는 고귀하다 일컬어지는 생명이 한낱 연료가 되어가는 과정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보았다. 그들이 방을 나가자 베이더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작은 박타 캡슐로 시선을 돌렸다.

“주인님 장교는 왜 죽이신 건가요?”

C-3PO가 궁금함을 숨기지 않으며 물었다. 베이더는 질문에 답해주기 전에 투구를 벗었다. 땀에 젖은 곱슬머리가 축 늘어져 있었다. 그는 바로 데이터 패드를 켜서 이번 보고와 관련된 자료를 남김없이 지워버렸다.

“글쎄. 그냥 죽여야 할 거 같았어. 그뿐이야.”

C-3PO 쪽으로 투구를 들자 드로이드가 다가와 투구를 들었다. ‘이는 …경께서 아이들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사료 됩니다.’ 장교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베이더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건 눈앞의 장교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베이더는 이사 실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입이 가볍든 무겁든 상관없었다. 비밀이라는 것은 그 특성상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알아야 했으니까. 오비완 또한 그런 비극을 맘대로 떠벌리고 다닐 성정은 아니었다. 뭐, 그의 옆에 있을 또 다른 자신이 물어본다면 거리낌 없이 알려주겠지만.

베이더는 창백한 푸른 빛을 내뿜는 박타 캡슐 안에서 천천히 부유하는 갈색의 작은 덩어리들을 바라보다가 테이블 옆에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적막이 내려앉은 방안에서 베이더의 머릿속은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도대체 언제 임신을 한 거지?

베이더는 머리를 짚으며 기억을 톺아보았다. 제다이를 몰락시킨 뒤 납치하듯 데려왔을 때부터 그와는 하루도 빠짐없이 관계를 맺었다. 더구나 임신을 노리고 그와 관련된 기관을 억지로 달아줬으니 그의 임신은 이론적으로 봤을 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가 앞서 말한 대로 불임에 가까운 난임이라는 점이었다.

본디 남성체인 그에게 여성의 생식기를 달아주는 것은 높은 위험도와 심각한 부작용이 뒤따르는 수술이었다. 오비완에게 직접 수술하기 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부작용을 최대한 줄였다고 해도 완벽하게 안전한 수술은 아니었다. 그래서 오비완은 수술대 위에서 죽을 뻔했다. 그래도 포스의 아들이 그를 간절하게 원한 덕분인지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베이더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뭐, 그의 입장에서는 그대로 죽는 걸 바랬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오비완은 그 부작용으로 인해 불임에 가까운 난임을 얻게 되었다. 아무리 그에게 씨를 준다고 해도 오비완은 베이더가 바라는 것처럼 둘의 피를 잇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는 게 의료 드로이드의 소견이었다.

그 보고를 들으며 베이더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베이더가 그리는 ‘행복한 가족’의 피사체에는 오비완과 자신의 아이도 있었지만, 오비완만큼이나 필수불가결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비완만 자신의 곁에 있어준다면 아이들은 없어도 괜찮다고.

오비완은 수술 이후, 베이더의 뜻에 따라 한 달에 한 번 건강검진을 받았다. 수술 부작용이 난임 말고 다른 게 있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시행된 검진이었다. 베이더가 직접 지시한 만큼 건강검진은 언제나 베이더의 입회하에 진행되었고, 그 결과는 언제나 그에게 우선으로 보고되었기에 베이더는 오비완 보다도 그의 몸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그건 그가 한 달 동안 출장을 나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베이더는 한 달 동안 잡힌 출장으로 인해 건강검진에 입회할 순 없었지만, 결과는 베이더에게 우선으로 보고되었다. 비명이 튀는 전장 속에서도 베이더는 오비완의 건강검진 결과만큼은 꼼꼼하게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결과는 늘 그랬던 것처럼 어떠한 특이점조차 없음. 그 사실에 안심하며 베이더는 광선검에 피를 태워 나갔다. 무스타파로 귀환할 일주일 뒤를 고대하면서.

오비완을 잡아 온 뒤 그는 인형과도 같았다. 베이더가 요구하는 대로 움직였으며 자아가 거의 없다시피 굴었다. 베이더는 신랄한 입담을 자랑하는 오비완 케노비에게 반했지만,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그에게도 몸과 마음이 동했고, 앞으로도 인형처럼 군다면 적어도 자신에게서 벗어난다는 발칙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긴 출장을 끝내고 무스타파 대기권에 진입했을 때 격납고 구석에 처박아 둔 N-1 스타파이터가 드로이드도 없이 비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속이 뒤집혔는지, 오비완은 모를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잠들었던 제다이의 의지를 깨운 걸까? 베이더는 제 몸을 태우는 용암의 열기에 고통스러워하면서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정답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토록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만들었던 동기가 바로 임신이라니! 그것도 6주나 되었다니! 베이더는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도 자신의 팔 다리를 깔끔하게 잘라 낸 스승이 위대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래, 괜히 제다이 마스터가 된 게 아니지. 자신에게 보고될 건강검진 내용을 조작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 였을 것이다.

‘이는 …경께서 아이들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사료됩니다.’

머릿속에 다시금 떠오른 말에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오비완이 자신에게 임신 사실을 숨겼다는 배신감과는 별개로 오비완과 자신 사이에 아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기뻤고, 그 아이들이 세상의 빛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고 죽어버렸다는 사실에 비통함을 느꼈다.

박타 캡슐을 보고 있을수록 연민과 애틋함이 가슴을 채운다. 비록 이미 죽어버렸다고 해도.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다고 해도. 품에 안을 수 없다고 해도. 자신과 오비완의 아이들이라는 사실은 그들을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만약, 오비완의 뱃속에서 주를 다 채우고 태어났다면 자신은 아이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었을까? 그에게는 아버지가 없었기에 아버지가 가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몰랐다. 주변에 아버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물어볼 이도 없었다. 제다이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슬하에 아이를 두지 않았으니까. 한 때 오비완을 아버지라고 여기긴 했으나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공경의 마음은 빠르게 사그라들고 대신 연정이라는 감정이 싹을 틔웠기에 논외였다.

시스가 된 지금도 아버지라는 존재는 가까운 곳에 있지 않았다. 황제에게 자식이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으니 아버지는 아닐 것이다. 부하 중엔 결혼해 아이를 둔 이도 있었지만, 그들은 베이더에게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베이더에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게 상상조차 안 갈 것이다. 자신 역시 황제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만일 황제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뭐라고 할까? 어차피 죽어버려서 이용 가치도 없는 아이들에게 연민이나 가진다며 ‘언리미티드 빠와’를 날리지 않을까? 그래봤자 소용은 없겠지만.

베이더는 박타 캡슐의 표면을 더듬어보았다. 기계로 대체된 손은 애석하게도 촉감을 느낄 수 없었다. 이 상태로는 아이들이 무사히 태어났다고 해도 아이들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새삼스럽게도 베이더는 또 다른 차원에서 온 자신이 부러웠다. 비록 한쪽 팔은 자신처럼 기계로 대체되었지만, 그래도 다른 팔과 다리는 딱딱한 금속이 아닌 부드러운 피부로 싸여 있었고, 구리와 같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회로 대신 맥박이 뛰는 핏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 팔다리라면 아이들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팔에 안긴 아이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고, 놀아 달라며 다리에 달라붙는 아이의 부드럽고 말랑한 감촉을 느낄 것이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심장이 제 품 안에서 세차게 뛰는 감각을 느낀다면, 과연 무슨 감정과 무슨 생각이 들까? 팔다리를 잃은 자신은 평생을 가도 느낄 수 없는 감각이라는 생각에 갈망이 피어났다.

베이더는 지금 당장 금속과 회로와 기름으로 만들어진 팔다리를 버리고, 어머니가 제게 만들어 주셨던 살과 피와 뼈로 이루어진 팔다리가 가지고 싶었다. 설령 제대로 기능할 수 없더라도 상관없었다. 조금이라도 온기와 감촉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그제서야 오비완이 자신에게서 빼앗아 간 것은 비단 팔다리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아, 다시는 가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것을 향한 인간의 열망은 얼마나 참혹한가! 그건 자신의 감정이었기에 더욱 버겁게 다가온다.

베이더는 몸을 의자에 기댔다. 서서히 이륙을 준비하는 데바스테이터 호의 육중한 엔진의 소음이 들렸다. 마지막 정찰조가 귀환한 모양이었다. 베이더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C-3PO가 잔소리하는 게 들렸지만 피곤에 젖은 몸은 꼼짝도 하기 싫을 정도로 무거웠다.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조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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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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