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

글터디 5주차

글터디 by 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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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부터 바깥에 괴물들이 마구 기어다니고 있습니다.

 

아스팔트 위에 진득한 흔적을 남기며 포복하고 있어요. 햇빛을 봐도 잘 증발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체액인 모양이에요. 닿으면 분명 불쾌해지겠지요. 잘 씻기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악취가 나는 것은 당연할 겁니다. 바이러스 마냥 한 번 전염하기 시작하면 끈질기게 우리를 따라오겠지요. 아무리 씻어도 영원히 이별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놈들은 우울입니다. 그것처럼 집요한 구석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일단은 집 안에서 동태를 살피기로 했습니다. 창문 밖을 잠시 살펴보니 그 새 몇 놈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아요. 금방 창문 아래로 몸을 숨겼습니다. 시력이 나쁘길 빌어봐야겠어요. 혹은 우리 집 아파트가 몇 번의 그들의 습격에도 버틸 수 있게 단단하거나. 혹은 당신이 이 이야기를 보다 빨리 들어주거나.

 

우리들의 소개를 해보자면, 우리들은… 평범한 학생인데, 어쩌다보니 고립되었습니다. ‘어쩌다보니’라는 것은, 정말 어느 평범한 순간처럼 그저 눈을 감고 떴을 뿐인데 이 같은 상황에 뚝 떨어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마치 누가 의도적으로 의식을 빼앗은 것처럼, 슬라이스 칼로 깔끔하게 치즈를 잘라낸 것처럼, 기억이 절단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분명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듣고 있었거든요. 국어였습니다. 수능특강을 풀고 있었어요.

 

선생님이 사라지셨습니다. 그건 이틀 전의 이야기예요. 선생님은 꽃다발을 구하러 간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외출하셔서 다신 돌아오시지 않으셨어요. 아직까지도요. 고작 이틀이라 어쩌면 그냥 외출이 길어지시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이 근방의 꽃다발이 전부 마음에 드시지 않으셨는지도 모르죠. 어쨌든 꽃다발이라는 것은, 평소 같은 때에는 잘 필요하지 않은 것이잖아요. 특별하거나 중요한 때, 예컨대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이나, 창업식이나, 졸업식, 그런 곳에서나 쓰이는 것이니까. 아무거나 턱턱 안겨주어서는 곤란할 지도 모르니까. 아무렴, 겨우 이틀째니까요.

 

그렇게 해서… 이곳에는 총 세 명 정도의 우리들이 남게 되었습니다. 방과 후 수업은 그다지 인기가 많지는 않았거든요. 아 잠시만, 현관문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어요. 쉿. …. ……. ………. 복도 쪽 입니다. 정체는 아직 밝히지 못했어요. 괴물일지도, 화난 아랫집일지도, 혹은 제 3의 등장인물, 외계인, 최종적으로는 당신일지도 모르겠어요. 소음이 있었을 때 한 번도 문을 열어 정체를 확인해본 적이 없거든요. 학교에서 배웠던 도덕심보다는 공포가 조금 더 컸던 모양이에요.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합의했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 대신 더 숨을 죽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찍 소리도 내선 안 됩니다.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요.

 

어제는 아주 조그만 다툼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흔히 있었던 다툼보다 조금 더 작은 다툼. A는 언제까지고 이곳에 숨어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고, B는 아직 식량이 충분할뿐더러 우린 아직 밖에 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나는 그들 사이에서 조용히 말을 듣고만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나는 그 싸움이 무서워서, 빨리 갈등이 해결되기만 기다렸던 것 같아요. 제 이야기인데도 ‘같아요’와 같은 변찮은 어미를 쓰는 것에 대해서는 저 스스로도 미덥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그 둘은 꽤 오랫동안 싸웠는데… 결국은 선생님이 돌아오시기까지는 기다려보기로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걸 계속 지켜보고 있던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일한 벙커인 이곳조차 저 밖처럼 전쟁터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킬 수 있는 평화라는 것은 보통 그렇게 유지되는 법이니까요.

이 곳에서 바깥 소식에 대해 ‘안전’하게 접할 수 있는 건 하루에 세 번 편성되어 있는 라디오 방송 뿐입니다. 처음에는 우리 셋 모두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는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한참을 쩔쩔 맸었습니다. 아무리 태엽을 돌려도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말소리보다 더 컸거든요. 여하튼, 그렇게나 필사적으로 맞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이라곤 유명 아이돌 S군의 솔로음원이 외국의 저명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연예 정보, XX대교의 정체가 심하다는 실시간 교통 정보, 요즘 유행하는 꽃무늬 원피스에 대한 쇼핑 정보 같은 것들 뿐입니다. 한참 유행이 지난 대중가요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걸 셋이 숨죽여 들으면서, B가 속삭이곤 했습니다. “괴물들, 발라드를 좋아할까?” 어제는 알앤비였고, 그저께는 댄스음악이었지만, B는 그때그때마다 음악의 장르만 달리 그렇게 묻곤 했습니다.

SOS, 아무튼 살려달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옥상에다가 크게 적어 놓는 건 어때. 아직 전기가 남아있을 때 밤에 모스부호로 우리의 상황을 전하자. 편지를 써서 유리병에 담아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지…. 그 어떤 신호에도 우린 아직 여기 있지만,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우리의 상황이 닿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그 많은 시도 중 하나가 성공해서, 당신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될지도요. 그러나 이것은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그 누구에도 우리의 상황이 닿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기대와 낙관만으로 기약 없는 수많은 시도를…. ……. ………. 어라, 복도에 있었던 그거, 아직도 있는 모양입니다. 방금 엄청 큰 소리가 났어요. 규칙적으로 몸을 문에 부딪히는 소리입니다. 이른 바 노크라고 하던가요. 손등으로 문을 두드리고 있는지, 정수리로 문을 두드리고 있는지는 알지 못해도, 일단은 노크라고 볼 수 있는 시도입니다. 적어도 그렇게 들려요.

A는 지금이라도 문을 열어봐야 한다고 말했고, B는 한 번 없는 척을 했으니 끝까지 없는 척을 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조용히 말을 듣고만 있었습니다. 이번의 평화는 기적적으로 지켜질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학교에서 흔히 있었던 다툼보다 조금 더 큰 다툼은 A가 현관문의 문고리를 움켜지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문고리가 돌아갑니다.

철컥, 하는 소리가 납니다.

A가 문을 당깁니다.

이틀 전, 선생님이 나가신 후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문이 열립니다.

빛이 쏟아집니다.

무엇인가가 쏟아집니다.

아주 많이, 아주 강렬하게, 감히 가늠할 수도 없을 정도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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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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