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 (2022년 작)

사랑하는 나의 동반성에게 1

오토로지

2차 백업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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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로지.

첫 번째 줄은 수신인으로 시작했다. 오토는 그 끝에 점을 찍고 한참동안 텅 빈 종이를 노려보기만 했다. 물론 이런다고 다음 단어가 술술 생각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빛─그리고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받은 종이가 자연적으로 발화할 가능성이 더 컸다. 로지를 생각하면 몇 날 며칠에 걸친 고민 끝에 내놓은 문장마저 초라하고 볼품없었다. 목이 말랐다. 옆에 둔 컵을 들어 물을 마시면서도 머리는 온통 ‘첫 문장을 어떻게 떼어야 할까’ 하는 고민뿐이었다. 펜을 느슨하게 쥐고 좌우로 까닥이길 반복하던 오토는 자신이 평생토록 이해하지 못할 어떤 인물을 떠올렸다.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책장 어딘가에 그의 시집이 꽂혀 있었음을 기억해내고서는 개중에서도 가장 얄팍한 것 한 권을 꺼내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털썩 앉아서 표지를 넘기고, 색지를 넘기고, 작가 소개나 서문을 전부 넘기고 나서야 시가 보였다. 이번에는 집중해서 읽고 뭐라도 생각해내야 했다.

눈을 뜨니 종이 만큼 단조로운 천장이 보였다. 전등이 켜져 있는데도 어둑한 걸 보면 밤 내지는 새벽이 분명했다. 책은 소파 옆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오토는 놀라서 허겁지겁 책을 들고는 이리저리 살펴봤다. 책등부터 떨어졌는지 다행스럽게도 상한 곳은 없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흠집이 생겼다면 오토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같은 책, 같은 판본이라도 로지가 그에게 준 책은 세상에 단 한 권 뿐이었으니까. 애틋한 표정으로 표지를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으로 수 차례 쓰다듬고는 원래 있던 자리에 도로 꽂아두었다. 책을 펴본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었는지,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온 오토는 수신인만 적어두었던 종이를 곱게 접어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 그리고 새 종이의 귀퉁이에는 조금 다른 표현을 써내려갔다.

 사랑하는 나의 동반성, 로지.

 항상 당신 생각을 해.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공원 벤치에 앉아서 내게 손짓하거나, 파도치는 백사장 위를 맨발로 나란히 걷는 거야.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시를 한 구절, 때로는 더 길게 읊어주지. 나는 그 옆에서 무슨 뜻인지를 물어보고, 당신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도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몇 번이고 되묻고 있어…

편지는 그 뒤로도 길게 이어졌다. 오토는 시작해보니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라도 이상한 소리를 써놓지는 않을지 걱정을 놓을 수 없었다. 그는 항상 로지에게 최선의 것만을 보여주고 싶었다. 종이의 빈 공간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어느덧 한 줄 또는 두 줄 정도의 여백만이 남았다. 새로운 페이지를 꺼내 쓸 자신은 없었으므로 이쯤에서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온 사랑을 담은 인사를 적고 나서도 어쩐지 허전한 마음에, 오토는 짧은 문장 하나를 덧붙였다.

 보고 싶다.

이제 발신인을 적고 봉투에 넣어 봉하면 끝이었다. 물론 편지봉투에도 이름과 주소를 적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어야 하겠지만, 그건 보낼 용기가 생겼을 때 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영원한 당신의 동반성, 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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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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