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 (2022년 작)

사랑하는 나의 동반성에게 4

오토로지

2차 백업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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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잘리 옥타비우스는 불길한 열기와 공포, 유리 파편을 뒤로 하고 희미하게 눈을 떴다. 가슴께까지 덮인 얇은 천이 체온을 가둬 따뜻했고, 분출음을 내며 작동하는 가습기 덕에 숨이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 가습기 덕분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아주 적절한 밀도와 비율의 공기가 들어왔다. 이를 위해 코와 입을 덮은 마스크는 그가 얼마나 불안정한 상태였는지 알려주었다. 로잘리가 힘겹게 움직인 흐릿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자, 상태를 확인하던 간호사가 알아채고 말을 걸었다. 입 모양으로 보자면 아마도 날짜 따위를 알려주는 듯했다. 그러나 로잘리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정신을 되찾은 순간에는 저번과 다르게, 한쪽에서 일정한 소리가 반복되고 있었다. 로잘리는 근원을 찾으려 한참 애를 썼다. 발치 쪽에서 바람을 타고 비스듬히 내린 빗방울이 창문으로 달라붙는 모습이 보였다. 병실 안에는 로잘리 뿐이었다. 짧은 틈만을 두고 조금씩 다른 높낮이로 타닥거리는 것은, 마치 적힌 글을 조심스럽게 읽어내려가는 음성 같았다. 로잘리는 깨어 있는 시간 내내 그 소리에 집중했다. 안정적인 소음은 감각이 다시 암전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가 인지하는 시간은 불연속적이었다. 인식 수준에서의 완벽한 정지는 시간마저 멈추게 했다. 그러나 아직은 이 상태를 항시 유지할 수 없기에, 그에게 시간은 어떤 간격을 두고 명멸을 반복하듯이 느껴졌다. 밝거나 어두운 세상은 규칙 없이 나타났고, 환경은 드물게 바뀌곤 했다. 지금 로잘리의 세상은 이 과정이 전부였다. 자기파괴를 향해 연속하는 시간을 끊김 없이 따라가는 현재의 오토와는 달랐다. 두 사람이 각각 그리는 궤적은 서로 다르게 진동하며 수 차례 만나기만을 반복했을 뿐, 하나의 선으로는 수렴하지 못했다. 결코 수렴할 수 없었다. 서로를 향한 애정 어린 관심과 사랑은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두 줄을 붙잡아주었으나, 삶과 다르게 감정은 몇 번이고 부재할 수 있는 탓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큰 사고로 발전한 적은 없다시피 했다. 로잘리와 오토가 기억하는 한─그리고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부재가 마지막으로 찾아온 순간에 둘은 정말 운이 나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걷잡을 수 없이 몽롱하게 깨어나는 일은 며칠이고 계속되었다. 로잘리가 본래 상태에 가까운 감각, 판단력, 인지를 가지고 일어난 날은 시연 사고로부터 2주하고도 조금 더 된 평일이었다. 전담 간호사는 오토가 맞이한 결말을 언제 알려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동료와도 충분히 의논했다. 그리고 로잘리가 재활치료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는 날에 보관해둔 데일리 뷰글 신문을 건넸다. 그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간략히 설명하고는, 발간일 이후로는 목격자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로잘리는 다른 무엇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슬퍼했다. 단순히 눈물을 흘린 게 아닌, 이전에도 겪고 배운 바가 있었음에도 진정 이해했다 말하지 못했던 영구적인 상실의 의미를 겨우 통감하고 그 상흔을 쓰라려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긴 후로 로잘리는 그 전보다 의연해 보였다. 2인실이 되면서 사소한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생겼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새해를 맞이하고부터는 실종이라는 단어가 갖는 미약한 희망을 되찾기도 했다. 병문안을 온 친구들에게는 “퇴원하고 나면 오토의 행방을 수소문해보겠다”라고 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로잘리는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그 한 편에는 반드시 오토를 놓아둘 생각이었다. 로잘리는 오토의 소멸이 확실해지더라도 그가 점차 사라져가기를 바라지 않았다. 상처와 감정은 오롯이 그의 것이므로 처분 또한 그의 결정에 달렸음을 로잘리는 잘 알았다. 그리고 어떤 한 톨도 망각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런 한결같은 어떤 저녁이었다.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는 8시 30분부터 1시간 30분 동안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의 애청자였다. 이 방송의 1부에서는 신곡을 소개하지만, 2부에서는 청취자가 보낸 사연과 함께 다양한 음악을 송출해주었다. 로잘리는 이를 흘려들으며 책을 읽는 일이 익숙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9시 40분이 지날 무렵에 시작된 어떤 사연에서 기시감이 들었다.

“…그는 노래도 시와 같은 거라고 종종 말하곤 했어요. 시에 음율을 붙이면 노래가 된다고, 듣다보면 정리된 글이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요. 그러면서 들려주었던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저는 그걸 듣고 처음으로 시라는 것을 받아들여 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결심을 알려줬을 때 표정이 어땠는지……”

그리고 로잘리는 사연의 마지막 문장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 곡이 제 사랑하는 동반성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가능하다면요. 아, 정말 아름다운 사연이네요. 세상은 사랑이 있어 빛나고, 사랑이 있어 연결되나 봅니다. 이어서 신청곡 들려드립니다. 사연에서도 언급됐었죠. 짐 크로치의 ‘타임 인 어 보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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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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