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동반성에게 3
오토로지
누구도 붙잡을 수 없는 것, 인간이 오래도록 염원했음에도 그저 붙잡았다는 착각만을 생산해내는 데에 불과했고 이후에도 그러할 것이 하나 있다. 어딘가에서는 쏘아진 화살에 빗대고, 어디서는 발이라도 달린 듯 말하는─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생기는 변화는 명확하죠. 어떤 대상의 역학적인 상태를 기술할 때는 필연적으로 시간과 그 흐름에 의존하게 됩니다. 따라서 방정식을 보면 운동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어요. 가장 기본적인 뉴턴의 제2 법칙에 따라 작성한 미분방정식에서 시작한다는 건 다들 알 겁니다…”
연구 주도나 설계 면에서 신뢰를 잃은 그가 당장 얻을 수 있고, 그나마 멀쩡하게 수행 가능한 일은 강의 전담 교수가 전부였다. 그중 단 한 군데에서 이번 학기부터 일부 기초분야를 맡아줄 수 있겠냐며 연락해주었다. 지난 학기까지만 해도 확답을 주기 어렵다고 했던 곳이었다. 내부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도, 아니면 정서 면에서 오토가 영 못미더워 결정을 끝까지 보류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쪽이든 오토에게는 결과만큼은 잘된 일이었다.
강의가 끝나고 질문까지 모두 답변한 오토는 차를 주차한 곳까지 느리게 걸으며, 시간에 대해 한참 생각했다. 되돌리기는커녕 붙잡는 일도, 어떤 한 부분만을 추출해 보존하는 일도 불가능한 것. 그 직선적인 성질은 인간의 유구한 비극으로 그려졌고, 동시에 축복이나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주변에서 각기 목적지로 향하는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오토에게만큼은 결코 극복해내지 못할 한계이자 적이었다.
오토는 로잘리를 어떤 어구에 가두어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첫째로는 그가 고작 너덧 개의 단어로 표현될 사람이 결코 아닌 탓이었으며, 둘째로는 틀을 정했다가는 그 외의 요소가 모조리 희미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직선적인 시간이 인간의 기억력에 작용하면, 시간과 함께 지나온 뒷부분은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가 지나간 듯이 불완전하게, 간혹 완전히 지워지고 말았다. 오토가 편지를 쓰는 것은 이를 경계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게다가 상대가 살아 있다고 여기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듯이 두 사람이 공유했던 일을 정리하면 그리움이 가셨다. 편지의 수신지는 어차피 이곳이니 나중에 다시 열어 확인할 수도 있었다. 봉투들이 서랍 하나를 한가득 채웠을 때쯤, 오토는 진작에 일기를 꾸준히 쓰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언제나 오토의 발목을 붙잡았다.
기어를 바꾸고 내린 뒤,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한 오토는 우편함을 쳐다보지도 않고 며칠간 방치했던 내용물을 모조리 꺼내 가져왔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움직임으로 식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는, 방으로 비척거리며 들어가 침대 위에 엎어졌다. 늦은 오후에 한 시간짜리 강의가 하나 더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쉬고 싶었다. 지금 쉬지 않으면 저녁이 지나고서까지 쉴 시간이 없을 것만 같았다.
오토가 다중우주의 체험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도 우편함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꽉 찬 상태였다. 처음 몇 개는 발신인을 보고 분류했으나, 광고 우편만이 한참을 이어지자 오토는 정리를 포기하고 전부 버렸다. 중요한 연락을 위해 보낸 우편이었다면 다시 보냈거나, 차라리 전화를 걸었을 테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결과 오토는 로잘리가 입원한 병원에서 보내온 연락을 어떤 경로로도 받아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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