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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온라인 게임은 무법지대

6화

익명 by 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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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2일. 35층 방황의 숲.

슈크림은 홀로 렙업에 임하고 있었다. 그 과정이 너무나 거칠었다. 랜덤으로 변하는 날씨가 오늘따라 악천후였다. 눈으로 덮힌 숲 속에서 푹푹 빠지는 발을 어떻게든 움직이고 있었다. “허억, 후….” 쏟아지는 몬스터에 대응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는데, 자꾸만 발이 빠지는 바람에 골치가 아팠다.

슈크림은 ‘불꽃발바닥’이라는 멤버가 20명인 길드에 소속하게 되었고, 그곳에는 레벨 업 할당량이라는 것이 있어, 전체적으로 레벨의 평균치가 맞아야 한다. 슈크림의 레벨은 겨우 38. 이번주까지 최소 40까지는 올려야 했다. 솔직히 벅차다. 이번 주 안으로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아…. 미치겠네.”

하루라도 쉴 수는 없었지만, 나빠지는 날씨 탓에 다른 장소로 옮겨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마땅히 아는 던전도 없고, 지금의 레벨로는 사실 35층도 벅찬 편이다. 선발대는 이미 40층 이상 나아갔는데, 슈크림은 한참 뒤쳐져 있었다. 1층에서의 난전 이후, 슈크림은 보스전을 몇 차례 쉬었다. 그 직후 19층부터 ‘불꽃발바닥’이라는 저레벨대 길드에 속하게 된 이후로는 순조롭게 레벨링을 해 나갔다.

하지만, 25층에서 벌어진 ‘그 사건’으로 모든 길드의 움직임이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 때문이었을까.

“하앗!”

리젠된 몹이 접근하자 슈크림은 망설임 없이 메이스를 붕붕 휘둘렀다. 그녀는 이 무기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묵직하고, 한방을 먹이면 몹들이 주춤거리는 게 손맛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이곳은 방황의 숲이다. 나아갈수록 길을 잃게 되는 법이다.

“…여긴 어디지?”

맵핑 데이터를 받아올 걸 그랬다. 아까운 텔레포트 크리스탈을 사용할 수도 없으니. 한참을 고민하고 있자, 숲 안쪽 어둠속에서 몬스터의 안광이 번뜩였다. 못 보던 몬스터였다.

“너무 깊게 들어왔나…….”

메이스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슈크림보다 몇 배는 더 커 보이는 고릴라형 몬스터였다. 긴장한 채 놈의 패턴을 살피기 위해 공격을 유도했다. 가까이 다가온 고릴라 몹의 커서가 빨갛게 빛났다.

적어도 레벨이 슈크림보다 10은 더 많다는 뜻이다.

“……이건, 안돼.”

슈크림은 급하게 인벤토리를 열었다. 크리스탈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분명 가져온 것 같았는데. 바로 그때, 원숭이 몹이 들고 있던 몽둥이를 휘둘렀다.

“꺄악!”

슈크림이 급하게 몸을 옆으로 날렸으나, 몽둥이가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그 작은 공격만으로도 피가 4분의 1이 깎여나갔다. 정통으로 맞으면 빨피가 될 게 분명했다. 도망가야 한다. 그러나 눈에 발이 빠져 뛸 수도 없었다. 처벅, 처벅, 어떻게든 발을 움직여 뛰려고 했으나 팔다리가 긴 고릴라 몹 쪽이 더 빨랐다. 놈의 몽둥이가 슈크림의 뒤통수를 가격하려는 순간.

카앙!

분명 슈크림에게 가격했어야할 몽둥이가 두 동강이 났다. 어리둥절해 보이는 고릴라의 몸에 상흔이 났다. 그렇게 몰려오던 몹이 하나씩 처리되더니 깔끔하게 사라졌다.

“허억, 허억…….”

슈크림이 간신히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 고개를 돌렸다. 까만 뒷태.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슈크림.”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였다. 들고 있던 한손검을 등에 메고는 몸을 돌렸다. 스테노였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주저앉은 슈크림에게 손을 내밀었다. 슈크림은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몸을 일으키자 푹 빠졌던 다리에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러자 곧장 주변을 둘러보는 스테노에게 손사레를 쳤다.

“고마워요, 도와줘서…. 그런데 일단 바깥으로 나가죠. 여긴 위험하니까.”

스테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묵묵하게 앞장서기 시작했다. 슈크림은 그런 스테노의 옆모습을 얌전히 바라보았다. 약 세 달 만에 만나는 건데도 스테노는 과장된 표현 하나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았다.

약 10분만에 숲에서 빠져나온 두 사람은 내리는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스테노는 어깨를 드러낸 차림이었다. 춥지 않나?

“일단, 어디 좀 들어가죠.”

하는 수 없이 슈크림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랜만에 만난 차에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고.

두 사람은 작은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앉은 자리에서 NPC 점원에게 호박 스프와 흑빵을 시킨 후, 두 사람은 한참동안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

“…저.”

“왜 그런 곳에 있었어?”

스테노가 먼저 말문을 텄다. 슈는 엇, 어어… 몇 번 말을 더듬었다.

“레벨 업, 하려고…….”

“음.”

“저레벨대가 레벨링하기엔 효율이 좋다고 해서.”

스테노는 한참동안 물을 들이켰다. 원래도 과묵하긴 했지만,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을 텐데.

“길드에 들어갔다고 들었어.”

“마, 맞아요. 불꽃발바닥이라고…….”

“알고 있어.”

“역시 아시겠죠. 스테노는 공략팀이니까요…. 거긴 렙업 할당제가 있어서, 일정 레벨대로 길드원 전체가 맞춰야 하거든요. 저렙이더라도….”

점원이 스프와 흑빵을 가지고 오자, 스테노는 말없이 스프를 마시기 시작했다. 슈크림도 눈치를 보다가 스프를 홀짝거리며 마시기 시작했다.

“지금 몇?”

“지금은 38이에요. 이번 주 내로 40까지는 올려야 해요.”

“사흘.”

그렇다, 앞으로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스테노는 그새 음식을 모조리 먹어치우고는 턱을 쓸어만졌다.

“내가 도와줄게.”

“네?”

“렙업하는 거 도와줄게. 그 편이 빠르잖아.”

“그, 그건 맞는데…….”

스테노는 입가에 빵가루까지 묻힌 채로 진지하게 말했다. 확실히 공략팀이 스테노는 슈크림보다 레벨이 한참 높겠지.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도움을 받아도 괜찮을까?

“가끔 그렇게 도와줘.”

“응? 네? 다른 플레이어를요?”

“응.”

“……어, 설마. 공짜, 로?”

“아이템만 배분받으면 돼.”

아아……. 슈크림이 작게 탄식했다. 사람이 좋아도 너무 좋잖아. 아니, 필요 이상으로 순진한 걸까.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걱정되는 마음 반, 답답한 마음 반.

“그으, 아무리 그래도 돈은 제대로 받아야지! 시간도 쓰고 목숨까지 거는 거잖아? 다음부터는 제대로 돈 받고 도와줘야 해.”

“…….”

“알겠어?”

“응, 그런데.”

스테노가 아까보단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반말 했어.”

“앗, 그게…….”

“그 편이 좋아. 편하게 말해.”

슈크림이 말을 잇지 못하고 어버버 거렸다. 예상치 못한 곳에 허를 찔린 탓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슈크림은 크게 당황했다. 자기도 모르게 반말을…. 생각해보면 상대가 허락했는데 굳이 존댓말을 고수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 난 제대로 돈을 지불할 테니까, 좀 도와줘.”

“응.”

“그러고보니 레벨이 몇이야?”

“음, 60.”

…세상에, 슈크림보다 22나 높다. 확실히 선두를 달리는 공략팀은 달라도 뭐가 다르다. 조금 설렁설렁하긴 했으나 나름 열심히 레벨을 올렸을 터인데도, 이렇게나 차이가 난다니.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슈, 강해질 수 있어.”

“……슈?”

“응, 슈. 부르기 편해.

하루 뒤, 두 사람은 46층으로 향했다. 이 층은 그랜드 캐니언 급으로 대협곡이 이어져 있었다. 이 대협곡에는 ‘개미계곡’이라는 거대한 파밍 구역이 있어, 파내도 파내도 아이템이 쏟아져 나오는 곳으로 유명했다. 사실 아이템도 아이템이지만 몬스터 리젠 속도도 빨라 공략팀은 이곳에서 꽤나 꿀 빨았던 걸로 안다.

당연히 슈크림은 처음 오는 곳이었기에 모든 풍경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안쪽에 아직 전부 털지 못한 던전이 있어.”

“거길 가는 거야? 괜찮을까…….”

“문제 없어.”

스테노는 아무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이 사람은, 어째서 이렇게 아무 두려움 없는 것처럼 나아갈 수 있는 걸까. 슈크림은 여전히 조금 두려웠다. 몇 번 보스 공략에 참여할 때도 제발 자신에게는 타겟팅이 되지 말아 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그동안 슈크림이 봐온 스테노는 변함이 없었다.

정말 신기한 사람이야.

“……?”

그 순간 스테노가 발을 멈췄다. 하마터면 부딪힐 뻔한 슈크림의 발이 꼬였다. 스테노가 바라보는 곳을 보자 그곳에는 대여섯 명의 사람이 지하로 가는 던전 입구를 막고 있었다.

“저기, 지나갈게요…!”

입을 다물고 있는 스테노 대신 슈크림이 말을 건네자 중장비를 입고 있던 플레이어 몇 명이 두 사람 쪽을 보았다. 그러더니 가소롭다는 듯 픽 웃고는 앞을 막아섰다.

“안돼, 리더가 오면 우리가 들어가기로 했어.”

“네? 던전은 공동 구역이잖아요. 선점 같은 건 따로 없는 걸로 아는데…….”

“너네 어느 길드야? 못 들었어? 오늘은 우리 길드가 던전을 돌기로 했거든.”

그….

그런 게 어딨어! 슈크림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던전 선점? 이런 건 처음 듣는다. 왜 던전에서조차 웨이팅을 해야 하는데. 누가 정한 법인데? 그런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올 즈음,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이곳은 무법지대다. 정해진 법 따위 없다. 누군가 우기면 그것이 사실이 된다. 말로는 아무리 설득해도 이들을 비키게 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분한 마음을 억누르며 스테노에게 다른 곳으로 가자고 말하려던 그때….

“듀얼하자.”

“뭐, 뭐라고?”

예상 밖의 말이 튀어나와 문앞을 지키고 있던 남자들도, 슈크림도 경악했다. 그러든 말든 스테노는 검을 뽑아들었다.

“이기는 사람이 먼저 들어가는 걸로.”

“……나 원, 뭐라냐, 얜?”

“무서워?”

듀얼. 소드 아트 온라인 내에서 유일하게 PVP 항목이 있다 하면 바로 듀얼일 것이다. 데스 게임이 되지 않았더라면 많은 플레이어들이 유흥 거리로 많이 했을 텐데…. 중앙에 있던 양손검을 든 남자가 스테노를 위아래로 슥 훑어 보았다. 그러고는 씨익 웃더니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래, 지루한 차에 잘 됐네.”

“진짜 하시려고요?”

“못할 게 뭐 있어. 내가 질 것 같아?”

“아뇨…….”

마른 남자가 양손검 남자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뒤로 빠졌다.

“받아들이지, 듀얼.”

승부는 단숨에 끝났다. 압도적이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승패가 정해졌다. 첫 한 방으로 끝나는 ‘초격 결판 모드’를 적용했기에 빠르게 끝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감각적으로 ‘빨랐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승부였다.

스테노가 단발 소드 스킬을 사용해 몸통을 공격하려던 상대의 허를 찔렀다. 스테노의 공격은 이상하리만치 무거웠다. 한손검인데도 양손검보다 더 무거운 것 같았다. 그 검이 상대의 검을 맞춘 순간, 그대로 손에서 놓쳐 검이 멀리 날아가 버린 것이다.

승자, 스테노.

믿기지 않는 결과에 다섯 명의 사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여성 유저들이라고 얕본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힘을 과신한 것인지.

“이제 지나갈게.”

하지만 듀얼에 이겼어도 슈크림은 이들이 순순히 지나가게 두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남자들은 약속을 지켰고 스테노와 슈크림은 무사히 던전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던전에 들어가고 4시간이 넘게 경과했다.

두 사람은 안전 구역에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스테노와의 안정적인 연계 덕분에 레벨은 39가 되었고, 이틀만 더 열심히 하면 금방 오를 것 같았다.

“……….”

스테노는 스위치를 제외하고는 역시나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 미스테리함 때문인지 슈크림은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스테노는 그저 눈을 감은 채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자는 걸까? 싶어 얼굴 가까이 손을 가져가 흔들어 보았다.

슈크림은 인벤토리를 열어 무언가를 꺼낼지 말지 망설였다. 자는 거면 자게 냅두는 게 나으려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배고파.”

갑자기 눈을 번쩍 뜬 스테노가 작게 중얼거렸다. 슈크림은 이때다 싶어 꺼낼까 말까 고민하던 그것을 오브젝트화 시켰다.

그것은 원형 샌드위치였다.

“머, 먹을래?”

“응.”

먹을 것을 포착한 스테노가 잽싸게 샌드위치를 받아들었다. 한입 베어 물때까지 슈크림은 그 모습을 조마조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눈 깜짝할 새에 샌드위치를 먹은 스테노가 입맛을 다셨다.

“맛있었어. 고마워.”

“다행이네…….”

“얼마야? 낼게.”

“아, 그…. 아, 안 내도 돼.”

“?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알려준 건 슈 너잖아.”

물론 그 말은 사실이지만…! 이건, 만든 거였으니까. 가격을 매길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이틀 동안 사냥을 이어갔다. 마지막 하루를 남기고, 슈크림은 레벨 40에 진입했다.

“고마워, 스테노. 마지막 식사는 내가 살게.”

“오.”

감정 표현이 덜한 스테노가 드물게 감탄사를 뱉었다. 두 사람은 다시 35층으로 돌아갔다. 사람이 많은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아 앉았다. 이렇게 앉아 있으니 처음 식사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슈크림은 이렇게 스테노와 있을 땐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서로 아는 게 거의 없는데도 마음 한 켠이 편해지는 기분.

“이거랑, 이거랑, 이거… 먹을래.”

“많이도 먹네.”

하나 아는 사실은 밥을 많이 먹는다는 것 정도려나.

“레벨링 도와줘서 고마워. 덕분에 빨리 끝났어….”

스테노는 구운 다리 고기와 생선 샐러드, 고기 스튜를 번갈아 음미하며 슈크림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먹으라는 듯 손짓했다.

“그, 그래…. 잘 먹겠습니다.”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 치운 두 사람이 포만감에 긴 한숨을 내쉬었을 무렵이었다. 늘어지는 듯한 스테노의 표정을 보며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 그렇구나.

슈크림은 그동안 이런 시간을 원했던 것이다. 안정적인 시간.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 시간. 길드에 속해 있을 때와 확연히 달랐다.

“……저, 스테노. 그.”

“앞으로도 내가 필요하면 불러.”

“어…?”

잔뜩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자 스테노의 올곧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아아, 이 눈이다. 늘 남의 눈치를 보며 시선을 살피던 나와는 다른 솔직한 눈.

“내가 도우러 갈게.”

“…….”

슈크림이 살짝 미소 지었다.

“그럼 우선 친구 등록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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