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작

[성우] Stand By Me

CHERRY by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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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1집 앨범 Stand By Me

윰뀨님 봄나무님과 함께 한 2021년 8월 합작

날조가 있습니다. 픽션은 픽션으로 봐주세요.

 

 

“형 이러려고 찾아왔어?”

“뭐?”

 

서늘한 눈빛이 피부에 와닿는 게 느껴졌다. 살짝 찡그려진 미간과 꾹 다물린 입술은 아직 성규가 화를 참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요 며칠 동안 쉴 틈도 없이 쏟아지는 스케줄 탓에 잠도 못 자고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정말 오랜만에 스케줄이 없는 날이었다. 원래라면 스케줄이 없으니 연습이라도 하러 나갔었겠지만 이번에는 그동안 힘들고 피곤하긴 했는지 성규도 우현도 연습을 잡지 않았다. 모처럼 가지게 된 개인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쉬는 만큼 혼자서 푹 쉬라고 우현을 찾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바빴던 만큼 둘이 같이 있을 수 있었던 날 역시 오래전이라 우현을 찾아갔었다. 별말도 없이 갑작스레 찾아온 성규를 보고 우현은 놀라면서도 내심 반기는 듯했다.

간만에 갖게 된 둘만의 시간에 좋았던 것도 잠시. 근데 우현아. 요즘 무슨 일 있어? 분위기가 전이랑 좀 다른 것 같은데. 무슨 의미야? 우현의 낯이 빠르게 굳어졌다.

 

한번 시작된 언쟁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입에서는 이미 모진 말을 뱉어낸 후였다. 그럼 또 좋지 못한 말이 들려왔고, 그에 대응하듯 또다시 모진 말을 내뱉었다. 멈춰야 된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너 요즘 왜 그러냐?”

“내가 뭘.”

“자꾸 이럴 거야? 계속 이따위로 굴 거냐고.”

살갗을 꿰뚫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과 힘을 주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 박혀있는 가시들. 서로에게 상처만 가득한 매서운 말들이 누구 하나 멈추지 않고 계속 오가자 안 그래도 요새 우현을 끈질기게 괴롭히던 두통이 다시 일었다. 그에 못 참고 우현은 결국 먼저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싸우기 싫으니 피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수년 동안 우현을 봐왔던 성규가 그걸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래서인지 더욱 화가 치밀었다. 이렇게 또 피할 거야? 피하는 거 아니야. 우현은 이 언쟁을 멈추고 쉬고 싶었다. 이 두통을 가라앉히고 싶었다. 솔직히 말한다면 성규의 말대로 피하는 건 맞지만 피하고 있다는 걸 인정을 하든 인정을 하지 않든 어차피 성규의 화를 돋우는 건 똑같았고, 이 언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생각들이 표정에 다 드러나고 있을 게 분명해 성규의 화에 부채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처럼 숨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표정 관리를 할 최소한의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평소 제가 아무리 숨긴다고 해도 금방 알아차릴 정도로 눈치 빠른 형이니 뭐 의미 없지 않을까. 그러니 우현은 한 번 더 제 의견을 피력했다.

 

“형 나 정말 피곤해. 머리도 아프고. 이만 쉬고 싶어. 다음에 이야기하자.”

 

아까까지 제게 쏟아내던 매서운 목소리는 어디 가고 금방이라도 스러질 듯한 목소리로 말을 하자 안쓰러운 마음이 불쑥 치고 들어왔지만, 깊숙이 치고 들어오기에는 이미 그 속에 화가 단단히 자리하고 있었다.

 

“형.”

 

그래. 이러려고 온 건 아니까. 제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연인의 아픈 목소리까지 이겨낼 재간은 없었다. 우현의 목소리에 생각은 제법 빠르게 정리됐지만, 아직 마음속에 남아있는 답답함에서 나오는 한숨은 미처 막을 수 없었다.

 

“하……. 됐다. 알았어. 그만하자.”

 

-

 

 

성규가 돌아가고 적막만 남은 이 공간에 혼자 남게 되자 나을 줄 알았던 두통은 오히려 심해졌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침대에 몸을 뉘었다. 푹신한 침대에 몸을 맡겼지만

편해지기는커녕 여전히 돌덩이 아래에 짓눌려있는 기분이었다. 두통을 가라앉히기 위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들을 떨쳐내려고 해보았지만 떨쳐내려고 하면 할수록 상념은 더욱 집요하게 달라붙어 절 괴롭혔다.

중구난방으로 부푸는 생각들은 아까 성규와 있었던 일을 상기하게 만들었다. 우현 역시 성규가 찾아온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았었다. 요즘 혼자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들이 종종 절 덮치곤 했으니 성규와 함께 있으면 괜찮겠지 싶었는데. 성규와 함께 있더라도 어딘가 날 서 있는 마음은 그대로였나보다. 만약 내가 성규형한테 돌아가라고 했으면…… 이미 찾아온 형을 돌려보낼 수는 없었겠지. 그렇다면……. 이제는 아무 의미도 없는 가정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그러다 떠오른 성규의 말. 근데 우현아. 요즘 무슨 일 있어? 분위기가 전이랑 좀 다른 것 같은데. 그리고 이어서 떠오르는 팬들과 대중들의 절 향했던 반응들. 얘 요즘 변한 것 같은데. 원래 이랬어? 좀 떴다고 초심 잃었네ㅋㅋㅋ 어차피 그룹 아니면 누가 알아본다고.

 

내가 뭘 그렇게 달라졌다고. 예전도 지금도 난 그대로인데. 난 여전히 남우현인데.

다들 나한테 왜 그래…….

 

애써 부정하고 있던 말들이 성규의 말 한 마디로 인해 전부 맞는 말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다 맞는 말일 것이다. 김성규라는 사람은 애인한테도 빈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만큼 이성적인 사람이니까. 그렇다면 난 정말 변한 걸까. 당연히 좋은 방향으로는 아니겠지. 좋은 의미였다면 성규가 굳이 찾아와서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 테고, 성규의 말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바뀐 반응들을 보며 이런 식으로 불편해하고 찔려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가슴 한 편이 욱신거렸다. 그동안 사람들이 너무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사실은. 내가 다 잘못한 게 아닐까. 내가 멋대로 변해버려서, 사람들이 바라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그러니 정말로 잘못한 사람은. 눈앞이 흐려졌다. 제 눈가를 마구 문질렀다. 손등이 축축하게 젖어갔다. 그럼에도 한번 터진 마음은 멈출 줄을 몰라서 계속 흘러넘쳤다. 소리라도 내보지 않으려 입술을 짓이겼지만 제 마음이 계속해서 입술을 두들겼다. 결국 터져 나온 제 목소리가 제 마음이 귓가에 닿자 이젠 정말 막을 수가 없었다. 울 자격이 없다고 절 다그쳐보고 이런 이유로 울 필요 없다고 달래보고. 그럼에도 이미 쏟아진 제 마음은 다시 담기지 않았다. 한참을 막아보려 버둥거리다 결국 우현은 이렇게 된 거 차라리 남는 게 없게, 오늘이 지나면 괜찮아지게 이 눈물에 제 마음을 스스로 담아 보냈다.

 

데뷔 초부터 무수히 들어온 안 좋은 반응들에 이제는 익숙했다고 생각했다. 정말 아무도 관심이 없던 때보다는 차라리 나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우현은 이상함을 느꼈다. 무어라 콕 집어 말할 수는 없는 감정이었지만 그 감정은 점차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연습에서 실수를 했을 때, 무대에서 실수를 했을 때, 방송에서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하나씩 축적이 될 때마다 그 감정은 더욱 짙어져 선명해졌다. 괜찮다며 다독여주는 멤버의 말에도 그 모습도 귀엽다며 위로해주는 팬들의 말에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질책하는 목소리가 잘하자고 하는 형의 목소리가 귓가에 자꾸만 맴돌았다. 김성규는 남우현 애인이기 전에 팀의 리더였다. 연습할 때 하는 실수는 혼내더라도 무대에서의 실수는 오히려 다독여주는 그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의 우현에게는 그 다독임조차 질책으로 들렸다.

 

부정적인 마음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들러붙어 엉켰고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커져 있었다. 이미 단단하게 뭉쳐져 부수려고 할수록 저만 다치는 그런 눈덩이. 그래서 그 앞에 주저앉았다. 이겨내지도 못하고. 그런 우현의 마음은 갈수록 티가 났다. 남이 보더라도 달라졌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거기에 또 따라붙는 지독한 말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딜레마였다. 괜찮냐는 말에도 일어날 생각도 못 하고 그 눈덩이만 끌어안고 있었다. 이미 커져버린 마음이 더 커지지 않도록 다른 말들을 다 무시하고 모른 척하며. 그런 우현에게 성규와의 다툼은 제일 의지하고 믿고 있는 사람과의 다툼은 우현을 무너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넘어져도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일어났던 때가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그냥 이대로 무너진 채 있으면 안 될까 싶을 정도로 무력감이 심했다. 그저 이 마음이 다 넘쳐흘러서 남는 게 없어지면 홀가분해지지 않을까,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었다.

 

 

-

 

 

화, 많이 났으려나.

 

조용한 핸드폰을 툭 굴렸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하아……. 한숨을 쉬고 몸을 돌려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실컷 울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되어 이성이 돌아오니 제가 지나쳤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문제도 아니었는데. 아까만 해도 부정적으로만 들렸던 형의 말이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걱정해서 하는 말 같았다. 제게 따지려고 피곤할 텐데 집까지 찾아온 건 아니었을 거다. 형 성격이라면 지켜보다가 오히려 내가 실수를 했을 때 요즘 너 이상하다며 따지는 쪽에 가까웠다.

이번에도 먼저 사과를 건네야 하는 건 제 쪽이었다. 하지만 그만하자,라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박혀 섣불리 연락하기가 힘들었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부터 다시 스케줄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데다 이대로라면 성규 역시 오늘 하루 찝찝하게 보낼 것이다. 그만하자는 말이 지금의 대화를 끝내자는 말이 분명할 텐데 왜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지. 왜 오늘은 마치 성규가 우리의 끝을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인지. 그래서 우현은 그 와중에도 순간적으로 성규를 붙잡을 뻔했다. 그 상황에 성규를 붙잡아서 그만하자의 의미를 물어봤다면…… 넌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우리 사이 끝냈으면 좋겠냐고 다시 화를 낼 게 분명했다. 안 봐도 그려지는 성규의 모습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미 걱정을 비난으로 받아들이고 안 좋은 말을 쏘아붙였는데. 역시 먼저 연락을.

 

근데 난 아직 괜찮아지지 않았는데 연락을 해도 될까. 성규에게 다시 연락을 하려 핸드폰을 들자 스스로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아까보단 괜찮아지긴 했어도 근본적으로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일시적인 감정일 뿐이지. 다시 또 성규를 화나게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때는 정말 제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끝이 같이 올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김성규는 애인이기 전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는데 저 때문에 한순간에 모든 걸 날리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저와 성규의 사이가 틀어진다면 멤버들도 분명 불편해할 테니까. 찾았던 핸드폰을 슬며시 내려두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형에게 상처 주지 않을 수 있을 때까지 조금만 더…….

 

 

-

 

“노란 머리 안 어울려.”

 

툭툭. 등 뒤에서 무언가 치는 소리가 들렸다. 냉전 중이라 험한 말이 한마디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건 소심한 손짓뿐이라 되려 성규가 티 안 나게 당황을 했다. 지금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걸 감안해도 말 한마디 없는 건 이상했다. 뒤를 돌아보고 싶은 걸 참아내며 다른 웃는 애들을 따라 성규도 애써 웃었다. 지금은 이래도 카메라가 꺼진 후에는 제게 달려들겠지, 하고 생각하며.

 

 

그렇게 생각했는데.

 

“형 싸웠어?”

 

촬영이 끝나고도 다른 멤버랑 딱 붙어있는 우현을 신경질적으로 바라보다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무심하게 성열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에 성열은 우현과 명수 쪽에 눈짓했다. 아. 싸운 거 아니야. 남우현이 혼자 화낸 거지. 성열을 따라 우현에게 달라붙은 시선은 곧 다시 떨어질 줄 모르고 계속 우현만 향했다. 우현은 제 뺨을 뚫을 정도로 바라보는 성규를 아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성규에게 시선을 조금도 주지 않았지만 성규는 끈질기게 우현을 바라보았다.

 

“아까 형이 그런 말 하고 우현이 표정 안 좋아 보이던데.”

 

그제서야 성규는 우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성열을 바라보았다. 더 자세히 말해보라는 듯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날카로운 시선에 괜히 주눅 든 성열이 성규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별 건 아니고 내가 우현이 옆에 앉았었잖아. 형이 그러고 나서 나도 우현이가 형한테 대들 줄 알았는데 아무 반응이 없길래 표정 봤더니 웃는 것도 아니고 어색한 표정으로 허벅지만 치더라고. 그래서 싸웠나 싶었지. 그리고 좀……. 성열은 목소리를 부러 더 낮췄다. 나중에는 표정관리를 해서 괜찮아졌나 싶었는데 카메라 꺼지면 표정 다시 안 좋아지길래.

 

그랬단 말이지. 평소처럼 대들지도 못하고 혼자 제가 안 보이는 곳에서.

 

우현의 앞에 앉아있는 데다 평소처럼 장난으로라도 자주 뒤돌아보기도 애매한 시기라 성규는 우현을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나마 뒤에 있던 다른 멤버들을 보기 위해서는 종종 돌아보긴 했지만 우현 쪽은 의식적으로 보지 않았다. 정말 필요에 의해서만 시선을 줬었다. 저도 모르게 가려는 시선을 잡으려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아마 모니터링하면 제 어색한 시선처리가 잡혀있을지도 몰랐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근데 우현이가 저렇게까지 화낼 정도면 형 얼마나 잘못한 거야?”

“뭐 인마?”

 

굳어있는 제 표정에 성열이 장난스레 말을 던졌다. 남우현이 혼자 화낸 거라니까. 성규 역시 성열의 마음을 눈치채고 장난스레 웃으며 성열의 팔을 툭 쳤다. 아프다며 엄살을 피우는 성열과 그 몸이 아깝다며 장난치다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성규는 고개를 돌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본 우현은 여전히 성규 쪽은 쳐다보고 있지 않았지만 성규는 누구의 시선이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제는 나가려 하는 우현에 성규 역시 성열을 뒤로 한 채 그 뒤를 따라나갔다.

 

“남우현.”

 

아직 문 앞에 서있던 우현이 잠시간 머뭇거리다 뒤를 돌아보았다.

 

“할 말 있어? ……아까부터 계속 쳐다보던데.”

 

성규는 우현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실로 오랜만에 가까이서 보는 얼굴이었다. 싸우기 전만 해도 거의 매일 가까이서 봐왔는데. 별다른 말없이 우현의 얼굴만 바라보자 우현은 성규를 재차 불렀다. 형.

 

“넌 나한테 할 말 없냐?”

 

성규는 성열의 말을 떠올렸다. 그 정도면 제게 더한 말을 하고도 남았을 텐데 오히려 조용하니까 아무 말도 없으니까 그게 마음에 걸렸다. 차라리 제게 화를 내면 이번에는 제가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일전의 일까지도 다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우현이 먼저 한마디 해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없어.”

 

표정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게 고스란히 담겨있는데. 우현아.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거야?”

“그 노란 머리말이야.”

 

결국 성규가 먼저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현이 성규의 말을 막았다.

 

“그 말을 하려고 이렇게 쫓아온 거야?”

 

괜히 기대했네. 속으로 말을 삼키며 우현은 방금까지와는 다르게 다소 굳은 눈빛으로 성규를 바라보았다.

 

“금방 다른 색으로 염색할 거야. 지금은 시간 들여서 탈색했는데 빨리 다른 색으로 덮기 아까우니까.”

“우현아. 형 아직 말 안 끝났어.”

“그런다고 방송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잖아.”

“남우현.”

 

마냥 날카롭게 절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제대로 바라보니 오해라는 걸 깨달았다. 아까 성열이 말한 표정이 이 표정인 걸까. 서운함과 실망감이 뒤섞여 성규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하지는 못하겠고 또 다르게 보면……. 우현은 성규의 말을 듣고 스스로 역시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날카로운 말로 제 심정을 숨기고 있었다. 평소에는 마음에 안 들면 그렇게 잘 대들면서, 싸우기 시작하면 지지 않겠다는 듯이 달려들면서 왜 정작 이럴 때는. 뒤늦게 죄책감이 몰려왔다.

애초에 성규는 둘이 다퉜던 그날도 우현의 상태가 안 좋아보여서 찾아갔던 거였다. 둘의 싸움으로 인해 기억 저편으로 밀려있던 우현의 상태가 다시 스물스물 떠올랐다.

 

“우현아 미안하다. 그거 그냥 방송이라서 한 말이야. 난 네가 다시 따질 줄 알았지.”

“아냐, 됐어. 안 그래도 돼. 형은… 빈말 못 하잖아.”

 

그게 무슨 의미냐며 따지기도 전에 닫혀있던 대기실에서 멤버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뭐야, 아직도 여기 있었어? 먼저 간 줄 알았는데. 시끌벅적한 멤버들을 바라보다 우현을 다시 바라보니 우현은 금세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그른 것 같아 성규 역시 다음에 해야겠다 생각하며 제게 말을 걸어오는 멤버를 바라보았다.

 

 

-

 

 

피곤하다.

 

제 몸을 감싸는 푹신한 침대에 절로 눈이 감겼다. 몸은 확실히 편해서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불편해 쉬이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개연성 있게 떠오르는 한 인영. 해외 로케에서는 종종 같은 방을 쓰거나 서로의 방에 놀러 가는 게 일상이었는데 오늘은 방이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했다. 조용한 거 좋아하는 것도 다 옛말인 싶어 자조하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역시 우현에게서 온 알람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현의 메시지를 기대하는 제 모습이 우스웠다.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대화를 해보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우현이 지금 피곤하다며 일찍 잠들었을 수도 있었기에 조심스러웠다. 내일도 스케줄이 있어 쉴 수 있을 때 쉬어둬야 했다. 게다가 요즘 우현은 쉽게 피로해지는 듯했다. 평소라면 쉴 때도 날아다니던 애가 넋 놓고 있으니 눈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휴식을 방해하기에는 같은 팀의 리더이자 연인으로서 마음에 걸렸다. 괜히 아무것도 보내지 못 한 채 우현과의 대화를 죽 훑어보다가 핸드폰을 내려두었다. 보면 볼수록 괜히 찾아가고 싶어지기만 했다. 원래 이런 성격도 아닌데 웬 강아지가 정말 제 성격을 다 바꿔놨다.

 

충동적으로 일을 벌이지 않는 편인데 요즘 우현의 상태가 전에 비해 안 좋아 보여서 한 번 찾아간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었다. 차라리 그때 찾아가지 않고 쉬게 내버려 둬야 했을까, 우현이 화를 냈을 때 내가 더 참아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마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성규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어차피 그대로 두면 언젠가는 터질 문제였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진 상태가 되어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크게 후회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끌게 될지는 몰라서 걱정이 되긴 했다. 거기다 직접적으로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멤버들은 성규와 우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성열은 오늘 결국 물어보기도 했고. 그리고 아마 이번 영상 역시 싸웠냐는 질문을 많이 받을 것 같기도 했다. 그 정도로 티가 날 정도니 여러모로 민폐인 상황이었다.

 

항상 우현과 잘 지내보려고 해도 우현을 대하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이런 유형의 연인은, 연인이기 전에 이런 유형은 지인으로서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갈등도 자주 있었지만, 항상 잘 넘겨왔고, 또 거기서 자신과 다른 모습에 오히려 눈이 가기도 했었다. 마음이 맞아 연인이 되고도 다툼은 자주 있었고 풀면서 더 가까워지기도 했었다. 그래서 쉽지 않았던 상대도 어느 정도 패턴을 파악하면서 이렇겠구나 싶어서 다툴 때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다. 보통 우현이 성규의 말에 상처를 받고 싸우고 둘 중 한 명이 사과를 건네는 편이었으니까. 그리고 높은 빈도로 우현 쪽이 먼저 사과를 건네는 편이었다. 자기가 오해했다면서. 그래서 이번에도 당연히 그런 식으로 우현이 먼저 말을 건네지 않을까 잠깐 생각도 했었지만, 싸우기 전 우현의 상태나 아까 상태를 봤을 때는 이번엔 제가 먼저 말을 건네는 게 맞았다. 서로의 잘잘못을 떠나서 이 일을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더 컸다. 그리고 어차피 저 역시 잘한 건 절대 없었다.

 

 

-

 

 

“…….”

“형 안 들여보내 줄 거야?”

들어와. 옆으로 살짝 비켜선 우현을 보고 웃어주며 들어섰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성규의 모습에 모르는 사이에 화해를 했었던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무슨 일이야?”

“우리가 무슨 일이 있어야 찾아오는 사이던가.”

 

그건 아니지만……. 성규가 다툰 후 돌아간 후에도 촬영 후 대화가 흐지부지하게 끝난 후에도 우현은 성규와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메시지도 나눈 적이 없었는데. 성규의 의중을 모르겠어서 성규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사 온 먹을거리와 술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 세팅하는 모습은 오히려 낯설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형 진짜 뭐하는 거야? 갑자기 술은 왜 사 왔고?”
“저녁 먹었어?”
“아니. 아직.”

“그럼 됐네. 이제 앉아.”

 

절 끌어당기는 손을 보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형.

 

“우리 대화 좀 하자고.”

아. 성규가 왜 찾아왔는지 이해가 가자 그제서야 순순히 성규의 손에 이끌려 의자에 앉았다. 맞은편에 앉아 먹을 것을 제게 밀어주고 술까지 따라주는 모습에 더 불편해졌다. 성규의 의중을 아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불편함은 여전했다. 우현은 아직 성규와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성규의 표정만 봐서는 안 좋은 말을 하러 온 것 같지는 않았지만 성규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서 엄한 생각도 들었다.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이라고 잘해주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입맛이 뚝 사라졌다.

 

이유가 어찌 됐든 성규가 절 생각해서 사 온 음식들이라 억지로 입에 구겨 넣었지만 이미 거부하기 시작한 몸은 음식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 안 먹어. 일부러 너 좋아하는 것만 사 온 건데.

그래서 못 먹는 건데. 우현은 말을 삼키며 억지로 한 입 더 넣었다. 입안에서 마치 모래가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차라리 빨리 무슨 말이든 해주면 좋겠는데 성규는 아직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몇 입 더 깨작거리다가 결국 우현이 먼저 젓가락을 내려두었다.

벌써 다 먹었어? 너 요즘 너무 못 먹잖아. 살도 다 빠져서. 걱정이 잔뜩 묻어난 말이 들려왔지만 우현은 이미 다른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있었다.

 

“형 그냥 말하면 안 돼?”
“뭐?”

 

목소리가 볼품없이 흔들렸다. 음식만 노려보고 있던 눈에도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형이 무슨 말이든 하기 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려 했으나 이미 부정적인 방향으로 모든 생각이 끝나버린 마음은 제멋대로 제 심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도 제일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상대에게.

 

“우현아, 왜 울어.”

 

오랜만에 듣는 다정한 목소리에 우현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작은 한숨과 함께 성규가 가까이 오는 게 느껴졌다. 우현아. 바로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 품에 끌어당겼다. 오랜만에 닿는 형의 품이 형의 체향이 좋아서,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났다.

 

“그래. 울고 싶으면 울어. 울어도 돼.”

등 뒤에 닿는 다정함에 정신 차릴 수 없었다.

 

“우현아 형도 슬럼프 와본 적 있어서 네 마음 다 알아. 힘든 게 있으면 형한테 말해봐.”

성규의 등을 끌어안은 손끝이 하얗게 도드라졌다.

 

“천천히 이겨내도 돼. 대신 잘 이겨내야 돼.”

 

형이 옆에서 도와줄게.

 

 

다정한 목소리에 취해 우현은 천천히 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 누구한테도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성규는 차분히 우현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를 다독여주었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우현이 들이키는 술잔 역시 많아졌다. 이젠 제 몸도 가누지 못하고 성규에게 반쯤 기댄 채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래그래. 성규는 우현의 손에 들려있는 술잔을 빼앗았다. 한순간에 손이 허전해지자 우현의 손이 테이블 위를 더듬었다. 알코올이 들어서인지 어딘가 엉성한 손길이었다. 그런 손을 잡아주자 우현이 성규를 마주 보며 웃었다. 비록 술을 마셔서 나오는 우현의 주사 중에 하나지만 그래도 그런 우현의 얼굴을 보니 성규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우현아, 이제 자러 가자.”

“싫은데, 나 조금만 더 마실래.”
“안 돼. 너 이미 많이 마셨어.”

 

싫다며 품에서 바르작거리는 모습을 보자니 조금 더 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기서 더 마시게 내버려 두면 우현은 정말 그대로 기절할 것 같았다. 우현을 살살 달래서 그를 안아들었다. 역시 못 본 사이에 살이 많이 빠져있었다.

 

우현을 침대에 눕히고 성규 역시 그 옆에 자리했다. 더 마신다더니 역시 눕혀두니 슬슬 잠이 오는지 눈을 천천히 꿈벅였다. 우현아, 졸리면 자도 돼. 안 졸려. 거짓말. 푸석해진 볼을 살살 쓰다듬어주자 기분이 좋은지 손에 볼을 부비며 눈을 감았다.

 

 

성규는 우현을 만나러 오기 직전까지도 많은 생각을 했었다. 성규 역시 우현처럼 슬럼프가 심하게 와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성규 성격에도 지독히도 힘들었던 슬럼프였기에 아마 우현 역시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성규는 우현이 저처럼 힘들지 않았으면 했다. 슬럼프가 오는 걸 막을 수는 없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잘 이겨냈으면 했다. 그래서 더 이상 미루지 않았다. 기회가 날 때까지 우현이 먼저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다가가기로 결심했다. 우현이 절 거부하고 밀어내도 성규는 끝까지 우현의 옆에 있을 생각이었다. 우현이 괜찮아질 때까지 만약 저에 대한 화와 원망이 남아있다면 다 풀릴 때까지 언제가 되었든. 하지만 우현은 그런 성규의 생각을 뛰어넘었다. 우현은 울면서 성규가 제게 헤어짐을 고하러 온 줄 알았다고 했을 때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성규가 각오하고 온 부분인데 우현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우현을 안고 성규는 계속 속삭여주었다. 미안하다고. 김성규가 사랑하고 있는 건 남우현이라고.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그동안 말을 아껴왔던 건 이때를 위해서였나 싶을 정도로 우현에게 말해주었다.

 

우현은 절 리더이자 애인으로서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지금 같은 상황은 제가 생각해도 최악이었다. 그리고 제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우현은 안 그래도 힘든 걸 쉽게 이야기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렇게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우현에게 저와의 다툼은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옆에 의지할만한 상대가 있다는 것과 없다는 건 차이가 컸다. 그걸 지금에서야 알아버린 제가 너무 한심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우현이 울고 웃는 모습을 보자 안심이 되었다. 제 감정을 보여줘서 안심이 되었다.

 

 

우선 내일 일어나면 해장부터 하게 하고 그동안 아픈 데다 다이어트의 문제로 못 먹었던 간식들도 좀 먹이고. 성규는 차근차근 내일 일어나서 할 일들을 정리했다.

 

“형.”
“그래.”

 

우현은 제 볼 위에 얹어져 있는 성규의 손에 제 손을 포갰다.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다 안다는 듯이 성규는 우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속삭여주었다. 우현이 흔들리지 않도록.

 

우현아, 괜찮아. 그런 말들에 연연하지 마. 그 누구도 널 대신할 수는 없어. 내게 있어서, 인피니트에 있어서 남우현은 너 하나뿐이니까.

 

고마워.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입술이 닿았다. 오랜만에 닿은 연인의 입술은 알코올의 씁쓰름함을 잊을 정도로 무척이나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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