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작

[성우] Sweet Day

CHERRY by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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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 데이

윰뀨님, 봄나무님과 함께 한 2022년 2월 합작

 

오랜만의 휴일. 나른한 오후. 둘은 넓은 소파 끝에 각각 자리를 잡고 앉아 영화를 보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는 성규 취향의 영화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번엔 네가 좋아하는 영화를 봤으니 이번엔 내 차례라는 말에 우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취향이 극과 극인 둘에게는 이 방법이 더없이 좋다는 걸 지난 10여 년간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영화 선택 문제로 싸운 것도 아니고 사이도 좋으면서 각 끝에 앉은 이유? 그야 간단했다. 그게 편하니까. 예전에는 휴일 틈틈이 붙어있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서로 끝에 앉아 편하게 있다고 해도 서로에게 정이 떨어지는 것도, 좋아하는 마음이 덜어지는 것도 아닌 걸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성규와 우현의 경우처럼 너무 극과 극이면, 오히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기도 한 법이니까.

 

오래전에는 그래도 연인 사이니까 그게 싫어서 좀 어떻게 바꿔보려 화를 내기도 하고, 그러다 다투기도 하고, 끝내 미안하다며 화해하기도 했었다. 다 어린 날의 치기였다. 그래도 다툼과 상처만이 남은 건 아니었다. 다투며 나눈 대화를 통해 상대에 대해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니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지금은 그때의 다툼을 다시 꺼내 들며 웃으며 장난치기도 한다. 형, 그때 했던 말 진짜 웃겼는데. 너는 안 그랬는 줄 아냐. 넌 더 했어. 그때 했던 흑역사들을 꺼내보며 다시금 따라 하며 웃기도 하고. 이제는 정말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그렇게 김성규와 남우현은 그들만의 방식대로 연애를 했다.

남들처럼 뭐든지 다 맞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래도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서로를 믿고 있으니까.

 

그렇게 연애를 하다 보니 둘은 기념일도 점점 무감각해졌다. 주년과 생일을 챙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처럼 무슨 선물을 해줄지, 이벤트라도 해줘야 하는지 며칠 전부터 고민하지 않고, 그때그때 필요해 보이는 걸 선물해주고 그날 하루를 같이 보내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그러다 보니 화이트 데이, 밸런타인 데이? 뭐 그런 건 당연히 신경을 쓰지도 않게 되었다.

 

그러나 항상 그래왔다고 해서 늘 그러는 건 아니었다. 문득 변심이 들기도 했다.

아까부터 우현이 눈치채지 못한, 성규가 내내 품고 있던 초콜릿이 바로 그것이었다.

 

“받아.”

“응? 초콜릿?”

 

툭 무성의하게 초콜릿이 소파에 떨어졌다. 슬금슬금 몸을 움직여 가까이 간 우현이 초콜릿을 집어 들었다. 갑자기 초콜릿? 의아함을 담아 이걸 던져준 성규를 바라보았다.

 

“왜.”
“이걸 왜 사 왔는데?”
“초콜릿 좋아하잖아, 너.”

 

뭐 그건 맞는데……. 그렇다고 이런 거 사오는 편은 아니었잖아. 초콜릿을 만지작거리며 중얼이던 우현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잠깐 오늘이 며칠이더라? 속으로 날짜를 가늠해 본 우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 형이 또 귀여운 짓을 하시네.

 

“형, 나한테 고백하는 거야?”

 

목소리에는 이미 성규를 놀리겠다는 생각에 장난기가 듬뿍 어려있었다.


“뭐?”
“오늘 그거였네.”

 

밸.런.타.인.데.이. 우현은 일부러 강조하여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말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나서 사 온 거야?

어느새 쪼르르 가까이 다가온 우현이 성규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뭐야, 왜 이래? 저리 가.”

 

우현의 어깨를 밀어냈으나 힘이 안 들어간 손과 성규에게서 떨어질 생각 없는 우현이 합쳐져 결과적으로 우현은 여전히 성규에게 딱 달라붙어 있는 상태였다.

 

“너 이제 그러는 거 안 귀엽거든.”
“거짓말하기는.”
“갈수록 뻔뻔해지네, 우리 우현이는.”

우현은 당당하게 성규의 말을 거짓으로 치부했으나 성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실제로 우현을 보는 눈동자에는 숨길 생각도 없이 귀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내가 정말 안 귀여워? 아니, 귀여워.

 

한결같던 그에게 있어서 10여 년의 연애로 달라진 게 있다면 이런 부분이었다. 김성규가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 이건 마지막까지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었던 남우현에게도 의미가 컸지만, 김성규 스스로에게도 의미가 크긴 했다. 칭찬이나 표현에 인색한 편은 아니었으나, 칭찬을 해도 그 기저에는 낯간지러움이 깔려 스스로가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결국 안 할 때도 꽤 있었다. 표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랑해, 라는 말을 못 해서 우현을 서운하게 만들었던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좋아해, 라는 말을 한다고 마음이 덜해지는 게 아닌데 왜 사랑해, 라는 말을 안 했다고 화내는지 이해를 못 하던 때도 있었다.

우현이 그 부분에 대해서 이제 미련을 버리고, 김성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생각했을 때, 김성규는 바뀌었다. 귀여우면 귀엽다, 잘생기면 잘생겼다, 멋지면 멋지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면 좋아한다가 아닌 사랑한다고 속삭여주었다. 처음 아무렇지 않게 성규가 말했을 때 우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성규를 바라보았었다. 형, 뭐라고? 다시 말해봐. 어버버하게 절 바라보는 우현을 보며 성규는 다시 한번 말해주었다. 사랑한다고, 우현아. 그렇게 귀엽게 굴래? 제 사심 담은 말을 더해서.

 

그때 귀여웠는데, 정말. 문득 떠오른 그때의 우현에 성규가 몰래 미소 지었다. 지금이라고 다른 때라고 안 귀여운 건 아니어도 그때는 다른 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귀여움이 있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종종.

 

“그래도 넌 그때가 제일 귀여웠어.”

 

하고 혼잣말이 튀어나오기도 했었다.


“뭐? 갑자기 뭔데, 또.”
“아닌가, 지금인가.”

 

또 알 수 없는 말을 한다며 제가 준 초콜릿을 손에 쥔 채 부루퉁해지는 모습도 아무래도 비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며 성규는 우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똑바로 말해.”

“어차피 다 너인데.”

“뭐? 그건 당연하지!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하면 당연히 안 되지! 그건 그렇다고 해도 말해.”

제 말을 제대로 듣기는 했는지. 성규를 바라보는 우현의 눈빛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다. 무슨 말을 해주긴 해야겠는데……. 잠시 고민하다 씨익 웃으며 다시 입술을 뗐다.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계속 물어봐? 네가, 남우현이 매 순간 귀엽다니까?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다시 말해줘? 원하면 몇 번이고 해줘야지. 그래야지.”

“악! 뭐야, 김성규 왜 이래!”

닭살 돋는다며 멀찍이 소파 반대편으로 떨어진 우현이 제 양팔을 문질렀다. 왜 떨어져. 듣고 싶다며. 이번엔 성규가 능청스레 우현을 끌어당겼다. 한순간 가까워진 거리에 우현이 떨어져를 외쳤지만 둘의 거리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절 안고 있는 성규의 허리를 감쌌다.

 

“형 진짜 옛날에는 안 그랬으면서.”

우현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웅얼거렸다. 성규가 표현할 때마다 우현에게서 나오는 익숙한 말이었다.

 

“그때랑 지금이랑 어떻게 같겠어.”

그러면 성규는 익숙하게 맞받아쳤다.

그렇게 표현해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것도 이미 몇 년이나 지난 일이긴 했으나 특히 우현이 마지막까지 미련을 못 버렸던 부분이기에 이 문제로 다툰 적이 제일 많았고 또 길었다. 그렇게나 우현이 집착했던 부분이었다.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부분일 텐데도, 우현은 막상 성규가 표현을 거침없이 해주자 부끄러운 마음이 커진 듯했다. 몇 년이 지나도 말이다.

 

“그렇게 해달라고 할 때는 안 해주더니.”

“그건 미안하다니까.”
“…….”

 

우현이 하는 말은 으레 하는 쑥스러움을 포장하기 위한 투정 어린 말이지만, 성규가 하는 말은 그렇지 않았다. 매번 성규는 질리지도 않고 말해주었다, 미안하다고. 처음 들었을 때는 당황함이 커서 오히려 성규에게 미안하다고 했었다. 괜히 지난 일 다시 꺼냈다고.

 

그런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지는 않았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우현이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성규가 사과할 때마다 우습게도 점점 익숙해졌고, 처음 들었을 때처럼 가슴이 아프지는 않았다.

사실 이 말이 듣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우현은 잠깐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라도 한 번 더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

성규가 이 부분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 또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우현으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김성규라면 이런 부분까지도 사랑해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부분이 남우현이 김성규와 연애를 하며 바뀐 부분이었다. 날 사랑하겠지, 하면서도 만약 아니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에 떨던 때가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현은 상대를, 김성규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됐거든.”

 

성규를 팍 밀친 우현이 떨어졌다. 이번엔 성규도 별 저항 없이 밀려나 우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초콜릿이나 먹자.”
“난 초콜릿 별로 안.”

먹어, 먹어. 어느새 포장을 벗긴 우현이 초콜릿을 반으로 갈라 성규의 품에 반쯤 기대 안기며 성규의 입에 넣어주었다. 샐샐 웃으며 우현도 남은 초콜릿을 입에 물었다.

 

허……. 분위기 환기를 위한 행동임을 알았으나 마찬가지로 그 부분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기에 우현을 따라주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생각을 바꾸기 더 오래전부터 우현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으면 지금보다 더 많은 마음을 표현해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그런 생각을. 괜한 다툼을 하지 않고, 차라리 다른 시간으로 같이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부질없다는 걸 알아도 그 시간들이,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던 순간들이 아깝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이제 갓 연애를 시작한 연인들처럼 불타는 관계는 아니어도 사랑하는 마음은 늘 그대로였기에, 오히려 알면 알수록 더해지는 마음이었기에 그런 생각이 한 번씩 들었었다.

 

“맛있지?”

 

성규는 초콜릿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우현이 낮게 웃으며 성규의 품에 완전히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아주 작게 성규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그래도 난 역시 형이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그런 김성규도 좋아했던 거니까.”

 

성규는 찬찬히 우현의 등을 보듬어주었다.

입안에 아직 머물러있는 초콜릿이 기분 좋게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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