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염

이름

광염소나타 단문

2차 by chun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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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란 것은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다. 사람들 사이의, 음악을 쓰는 사람과 연주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순간적인 소리를 역사에 기록할 사람들 사이의, 그 외에 선생과 제자 노인과 아이 거장과 초보자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오선지는 계약서이고 음표는 날인일텐데 그것은 도통 그들의 법칙대로 굴지 않았다. 사람에게 그것이라니!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보기에 도저히 사람같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자신과 같은 분류 안에 넣기 싫어했다. 어찌됐든 계속 그것이라 부르기엔 분명한 사람인 그에게 실례이므로, 불특정 다수는 그를 S라고 불렀다. 

다시, S는 도통 그들의 법칙대로 굴지 않았다. 친구따라 지원한 실기시험에서 대단한 점수를 얻어 추천입학을 했다던 그 인재는 한 학기 동안 악보에 계이름을 적느라 쩔쩔맸다. 도, 레, 미. 맨 아랫줄부터 하나씩 세어 올라갔다. 샾과 플랫을 들을 순 있었으나 그것을 음악의 문법에 편입시키는 데엔 1년이 걸렸다. 명문 음대생들 사이에 아이 하나를 던져둔 꼴 같았다. 그러나 S가 건반 위에 손을 올리면 학교의 그 누구도 그의 존재에 의문을 갖지 못했다. 음대에 음악이 있겠다는데 누가 토를 달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S의 소리를 좋아했다. 그가 치는 피아노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것이 S의 곡인지는 알지 못했다. 

S는 실기시험에 지정곡을 치지 않고 자작곡을 연주했다.

J는 S의 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 특히 더 S의 음악을 사랑했다. 열아홉에 글로리아 아르티스를 수상하고 그 경력으로 대학에 온 젊은 인재는 S와 붙어있을 때가 많았다. 사람들이 S의 피아노를 사랑할 때 그는 S의 흥얼거림마저 사랑했다. J는 감히 S와 같은 분류가 되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불특정 다수에게 J가 되었다. J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계이름을 알고 악보를 적으며 죽음과 단조를 연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엔 폭발할듯한 무언가가 존재했고 이것 덕에 그는 S를 사랑할 수 있었다. S와의 공통점이 J의 안엔 분명 있었다. 

J는 훗날 거장의 제자가 되어 얽매이지 않는 법을 알게 된다.

피네.

J가 J 내면의 S를 틔워낼 수 있던 것은 약간의 우연과 조금 더 많은 의도, 그리고 충분한 욕구 덕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기회라고 부르거나 천재성이라고 불렀으며 축복, 저주, 본능, 영감, 욕망, 악마, 심지어는 환각 내지 환청이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J는 어느순간 S를 소유했다는 것이다. S가 J의 첫 자작곡을 연주할 때, J가 S의 음악을 악보에 적을 때, 그가 어두운 밤 외곽도로에서 들은 멜로디와 마룻바닥 틈새에서 흘러나오는 더러운 피 냄새에. J는 자신 내면의 S를 찾아냈고 S와 동화될 수 있었다. J가 S를 그토록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S를 이미 그의 안에 갖고있던 덕이며 그렇기에 S는 J의 곁을 항상 맴돌았다. 

그는 끝내 S 그 자체가 되진 못했는데. 이유야 너무 당연하게도 그가 그의 손으로 S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덕에 그는 J라는 외피 정도는 유지할 수 있었다. J는 S가 되길 원했으나 정말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S를 뛰어넘길 원했으므로 S와 다른 존재가 되고싶었다는 쪽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J에게는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 있었고 훌륭한 음악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이것이 그가 최소한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증거 정도는 남겼다. J와 S 모두에게 그나마 나은 일이었다. 

종장|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는 어디에도 발 붙일 수 없다. 

길을 걷는 사람을 붙들고 물어보자.

그대, S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아니면, J라는 자의 이름은요? 

다 카포 알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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